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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수문학도
작품등록일 :
2019.03.04 13:13
최근연재일 :
2019.07.12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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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9,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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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05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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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8쪽

아델라 이블린 (2)

“나는 결코 그 누구도 신뢰하지 않는다. 한 사람의 작가로서 어느 정도까지 나는 평범한 사람들을 나의 친구로 삼아 왔다. 하지만 현재 내가 대중과 맺고 있는 관계에 관해서 보면, 나는 다시 한 번 후손들을 나의 신뢰할 수 있는 친구로 삼아야만 한다. 누군가에 대해서 웃고 있는 똑같은 사람들이누군가의 진정한 친구가 되기는 어려운 일이다.” 쇠렌 키르케고르 , 《일기》




DUMMY

“바다로 처음 나온 사람 같지 않은데.”

가장 놀라운 것은 원양 항해는 처음이라는 점 이었다. 물론 푸아티에서 멀지 않은 트리어 쪽으로 바다를 통해 이동한 경험도 있지만 이라클리오 장벽의 영향으로 근해 항해만 가능했다. 그런데 만들기 까다롭다는 소형 범선 블루에 호를 직접 설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믿지 않았지만 지금은 진짜가 아닐까 라고 믿기 시작했다.

배의 정원은 30명인 작은 배지만 대형 범선 못지않은 안정감이 있음을 승선한 모든 이들이 인정했다. 조엘이 오라녜에서 배운 조선술을 이용해 제작했다 하자 선원들은 제법 긴장한 눈치였다.

“그쪽도 많이 발전했구먼.”

경쟁자는 언제나 달갑지 않은 존재였기에 평소에는 유쾌한 피 영감도 진지하게 수염을 쓰다듬을 정도였다.

“그래도 아직은 여러분에 비해 많이 부족합니다.”

순간 딱딱해진 공기를 자연스럽게 환기시키는 것도 그가 가진 유용한 능력이었다.

“맞아요. 레-솔리튜드 만큼 다양한 배가 있는 곳은 처음 봤어요.”

아델라도 분위기를 유리하게 전환하는 능력은 뒤처지지 않았다. 그녀는 선원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기본적으로 미인인데다, 선원들에게 서글서글하게 대했기에 조엘에 못지않은 추종자를 거느리고 있었다. 그 중 가장 열렬한 사람은 단테이었다.

항해를 나갈 때는 갑판에서 바다 바람을 맞는 것을 즐기는 그가 그녀와 잠시라도 함께하기 위해 자진해서 식사 당번을 맡고 그녀가 좋아할 만한 화제를 고민하느라 실수를 범해 동료들에게 놀림 받기도 했다.

2주 정도 항해를 하면서 느낀 특이한 점은 그녀는 낮에는 대체로 선실에 있고 밤에 갑판으로 올라왔다. 지금처럼 점심 식사를 위해 올라올 때도 30분 정도만 그들과 어울리고 식사가 끝나면 바로 선실로 돌아갔다. 그가 그 점에 대해 묻자 배시시 웃으면서

“태양님이 질투해서 몸이 좀 따갑거든.”

“자의식 과잉 아니야?”

소년은 빈정거렸지만 사실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할 정도로 그녀에게 푹 빠져있었다. 그녀는 지금까지 봐왔던 이성과는 달랐다. 언제나 자신감이 넘쳤으며 막힘없이 질문하고 반론했다. 여러 곳을 돌아다닌 덕에 그가 책이나 수업을 통해서 알고 있던 나라들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해 주었기에 그녀와 함께하는 시간은 언제나 즐거웠다.

“진짜거든.”

그녀가 입을 쭉 내밀어 불평하자 단테는 미안한 마음이 들어 어색하게 미소 지었다.

“이소도스는 내일이면 도착할까요?”

조엘의 비서인 마테아스가 배식 받은 음식들을 챙기면서 어린 선원에게 물었다.

“네. 내일 저녁 쯤이면 도착할 거예요.”

마테아스가 알겠다고 대답하면서 얄씨와 발렝씨의 몫까지 받아갔다. 조엘은 레-솔리튜드에서 고용한 4명의 길잡이 이외에 15명과 동행했는데 저 셋은 영지에서 특별히 직접 데리고 온 사람들이라 했다.

“수고하세요.”

많이 잡아야 스물다섯 정도 되보이는 사내였는데 피 영감이나 데프테는 마테아스의 그을린 피부나 몸 군데군데 보이는 칼자국과 단련된 몸, 절도 있는 동작과 과묵함으로 보건데 비서가 아니라 노련한 군인처럼 보인다면서 관심을 가졌다. 그들이 항상 무언가를 물으면 마테아스는 대체로 이렇게 대답했다.

“주인 어르신의 은혜 덕분입니다.”

조엘과 그렇게 나이 차가 있어보이진 않았지만 언제나 깍듯했고 레-솔리튜드 사람들에게도 예의를 차렸기에 인기가 많았다. 귀족과 함께 바다로 나가는 것은 한몫 벌 수 있긴 했지만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었다. 귀족 본인은 가만히 있는데 그 아랫사람이 일을 벌여 그르치는 경우도 적지 않았기에 데프테가 프로도티의 제안을 들었을 때 주저했었지만 지금은 하루에 한 번 이 배를 소개해 줘서 고맙다고 말한다.

“오늘 점심은 어떤 거지?”

망루에서 내려오던 조엘이 음식을 나눠주고 있는 아델라에게 소리쳤다.

“평소 먹던 거랑 대구 튀김이요!”

저 둘은 사이가 무척 좋아서 선원들은 처음에 약혼자가 아닐까 생각했다. 이런 이야기를 좋아하는 프로도티가 넌지시 물어보자 조엘은 가볍게 미소 짓고 고개를 흔들었다.

“아델라의 부모가 제 친우였습니다. 안타깝게도 몇 년 전 세상을 떠난 후 보낸 후 제가 돌보고 있습니다.”

단테는 안심과 동시에 안타까웠다. 그는 부모 손에 자라진 않았지만 가족을 잃은 경험이 있기에 그 아픔을 알기 때문이었다.

“음식을 입에 맞으시다니 다행입니다.”

갑판으로 내려 온 조엘은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아델라에게 점심을 받은 다음 단테 옆에 앉았다.

“대학을 다닌다고?”

그가 쉽비스킷을 씹으면서 물었다.

“예.”

소년도 그를 따라 식판에서 비스킷을 집었다.

“시험은 언제 칠 생각인가?”

입 안에 남아 있던 쿠키를 위장으로 집어넣은 뒤 그는 잠시 생각하다 대답했다.

“언제인지 정하진 않았지만 이르면 내년 겨울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조엘이 놀랍다는 듯이 눈이 커졌다.

“아직 2학년이지 않은가?”

소년은 그게 무슨 상관이냐는 듯 어리둥절해 하면서 물었다.

“시험을 치는 건 학년이 상관이 없습니다.”

“그렇긴 하지만 대체로 졸업 학기 때 시험을 치지 않는가?”

“섬에 한시라도 빨리 들어가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이유?”

조엘의 대답을 요구하는 시선을 회피하고 바다를 바라봤다.

“제가 훌륭하진 않지만 바르게 자랄 수 있었던 건 형이 보살폈기 때문이지요. 저에겐 누구보다 소중한 가족입니다. 3년 형이 전 섬으로 들어갔을 때 다시 만나자 약속했습니다. 건방진 소리일 수 있지만 지금 당장이라도 시험을 볼 실력이 된다 생각합니다.”

단테가 말을 끝마치자 조엘도 바다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확실한 동기가 있단 것은 좋은 거지. 그걸 감안해도 자네는 참 대단한 사람이라네. 대학에서 공부하는 사람들은 태반이 귀족이거나 부유한 계층 출신이지 않은가? 어려서부터 좋은 교육을 받아온 사람들인데 그들과의 경쟁에서도 자네는 전혀 뒤처지지 않은 다는 것은 자네가 재능이 있다는 증거지.”

조약을 맺은 20년 전에 설립된 대학의 정식 명칭은 ‘파티마와 마리얌의 대학’이다. 레-솔리튜드의 전임 두체-공화국의 지도자-의 딸이었던 파타마와 마리얌의 후원으로 설립된 학교의 입학생은 공화국 귀족이거나 상인들의 자제였다. 개교한 후 2년 뒤부터 외국 입학생을 받기 시작했는데 그들의 신분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내전으로 피난 온 트리어를 제외하고 서대륙의 오라녜 공국, 푸아티에 왕국, 그리고 북쪽의 바스토뉴 연맹 등지에서 주로 왔는데 설립 초기에는 왕족이나 고위 귀족의 자제들도 제법 있었다 한다. 그들은 주로 이라클리오 교수들의 철학, 수사학 등 현실 정치에서 쓰일 사회과학 영역을 공부했는데 대체로 잘 교육 받은 덕인지 성적은 훌륭했으나 정치, 외교적으로 민감하게 얽힌 사람들이 많아 학교 내에서 싸움이 빈번하게 일어났었다. 교직원들은 이 문제에 대해 몇 가지 교칙을 세웠는데 핵심은 대학에서는 그들의 신분을 인정하지 않는 것 이었다. 이로 인해 그들은 일반 학생-그래봤자 상위 계급들이었지만-들과 같은 공간에서 숨 쉬며 생활하게 되었다. 많은 이들이 이 조치에 반발했고 많은 이들이 학교를 떠났다.

그래도 일부는 남아 졸업장을 받아 그들의 나라로 돌아갔고 그 중에는 현 푸아티에 국왕인 앙리도 있었다. 대학에서 쌓은 인맥들을 이용해 오라녜의 지원을 이끌어내 왕위를 쟁취했다고 조엘이 알려줬다.

“어떻게 그렇게 자세히 아세요?”

단테는 그가 귀족인 건 맞지만 소탈한 그의 행적으로 볼 때 잘 교육받은 에포로스 정도가 아닐까 생각했다. 그런데 왕의 측근정도가 되어야 알 수 있는 이야기들을 술술 풀어냈기에 단테는 고개를 갸웃했다.

“응? 내가 이래보여도 귀족이라서 말이지.”

“아.”

단테의 담백한 반응에 그가 ‘풉’하고 웃었다.

“아델라는 어떤 거 같은가?”

“바다가 처음이란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잘 적응하고 있습니다. 어떨 때 보면 저보다 나은 것도 있고요.”

조엘은 소년의 담백한 평가가 마음에 들었다.

“처음 봤을 때는 밖에 나가는 것도 무서워했는데 잘 됐군.”

아델라에 대해 궁금한 점은 산더미처럼 많았지만 단테는 그녀나 조엘이 먼저 말하기 전까지 어지간하면 묻지 않았다.

“그녀를 아껴주게. 상처가 많은 아이이고 또래 친구는커녕 교류하는 사람도 나를 제외하곤 없을 걸세.”

그는 대답하지 않고 생각에 빠졌다. 조엘은 그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내일 입항할 준비를 해야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밤에 경계 근무를 서고 있었을 때 좀 떨어진 곳에 아델라가 있었다. 경계를 서는 것도 까맣게 잊은 채 한동안 넋을 잃고 쳐다봤는데 수상한 시선을 눈치 챈 아델라가 그를 발견하고 다가 왔다.

“내 얼굴에 뭐 묻었어?”

그녀가 싱긋 웃자 정신을 차렸다.

“네가 밖에 오래 있는 게 신기해서.”

정곡을 찔린 그녀의 얼굴에 ‘아차’ 하는 표정이 되었다 바다 바람에 날아갔다.

“우리 거래하자.”

“거래?”

“응.”

몸을 돌려 바다로 향하자 머리카락이 바람의 선율을 타면서 흐뜨러졌다.

“내가 밖에 나왔다는 걸 다른 사람들이 알면 곤란하거든. 오늘 일을 잊어 주면 선물을 줄게.”

“선물?”

단테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그녀는 미소 지은 채 자신의 팔로 소년의 팔을 끌어당겼다.

“받아들인 거로 생각할게.”

소년의 팔을 높이 뻗게 한 뒤 마주잡은 손으로 몸을 돌려 빙그르르 돈 아델라는 스텝을 밟기 시작했다.

“폭스트롯(foxtrot)이라고 알아?”

그녀가 무얼 하려는 건지 눈치 채고 그녀를 따라 발을 움직였다.

“폭스트롯이 무엇 인지는 모르겠지만 네가 뭘 하려 하는지는 알겠어.”

크리스와 함께 책을 읽으면서 보냈던 시절에 딱 한번 도시 축제인 '바다와의 결혼식'에 놀러간 적이 있었다. 항구 안에 옹기 종기 모인 작은 배들 위에서 사람들이 노를 들고 도시를 떠나는 사람들의 성공과 안녕을 기원하면 일반 시민들은 악단의 배경에 몸을 맡겨 춤을 췄다. 형은 몇 번 춤을 쳐본 듯 익숙하게 스텝을 밟으면서 단테를 이끌었고 그도 따라 해보려 했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아이 참, 단테 자꾸 스텝 꼬이잖아.”

그 뒤로 몇 번 시도해 봤지만 결국 포기한 그였기에 발이 자꾸 엉켰다.

“자 따라 해봐. 천천히(slow), 빠르게(quick), 빠르게(quick).”

아델라가 설명해주는 춤은 그가 알고 있는 평민들이 추는 춤곡이 아닌 난이도가 높은 귀족들의 사교댄스인 것도 문제였지만 서로에게 바짝 붙인 채로 홀드(Hold) 했기에 그는 터질 듯이 뛰는 심장을 진정시키는데 애를 먹었다.

바다가 잔잔해서 다행이었다. 파도가 조금이라도 높게 쳤다면 그는 분명 자빠졌을 것이다.

“오 이제 좀 하네.”

열다섯 번 정도 반복하니 서로의 스텝이 맞기 시작하자 그녀는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빠르게, 빠르게, 턴···앗!”

그녀를 따라 턴을 할 때 파도에 배가 흔들려 아델라의 자세가 순간 흔들렸고 단테가 황급하게 끌어당겼다.

“···.”

“···푸흡.”

자신의 눈에 고정된 눈동자를 쳐다보는 모습에서 어떤 생각을 하는지 궁금해져서 한참을 있다가 한쪽 눈을 살짝 감았다.

“내 눈이 무섭지 않아?”

“뭐라고?”

그는 아델라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채 되물었다.

“내가 무섭지 않느냐고.”

“너가 왜 무서운데?”

너무 바짝 붙어있어서 그의 심장소리가 들리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아델라는 개의치 않았다.

“사람들은 나를 마녀라고 부르면서 무서워하는데?”

“마녀?”

마녀가 무슨 뜻인 잠시 생각하다가 예전에 책에서 읽었던 기억이 났다. 매부리코와 주걱턱의 기이한 외모에 인간의 것이라 생각 되지 않을 만큼 긴 손톱을 이용해 저주를 내리거나 사람들을 홀려 납치하는 무시무시한 존재였다.

“···마녀치고는 너무 예쁜데?”

너무 오래 밀착했던 탓일까 그는 무심코 본심이 나오고 말았다.

“푸흐흡.”

바다에서 한참 떨어진 육지에서 누구라도 알아챌 수 있을 정도로 단테의 얼굴은 새빨개져 아델라를 살짝 밀어내고 그 자리에 굳어 버렸다. 그런 모습을 지켜본 아델라의 꾹 깨문 입이 결국 버티지 못하고 자고 있는 사람들을 다 깨울 기세로 웃기 시작했다.

“아하하하”

한참을 웃는 그녀는 단테가 헛기침을 몇 번 하자 겨우 진정했다.

“나온 거 들키면 안 된다면서 다 깨울 생각이야?”

민망함을 숨기려 딴지를 거는 소년의 모습을 보자 웃음소리는 한층 높아지더니 그녀 역시 헛기침을 몇 번 하면서 멈추려 노력했다.

“음, 크흠. 그래 그러면 곤란하니까 그만 웃을게.”

입을 겨우 다물었지만 고개를 흔들다가 눈을 마주쳐 버려 다시 빨개진 소년의 얼굴을 보고 다시 웃음이 터지기를 세 번 반복했을 때 아델라의 낭랑한 웃음은 겨우 잦아들었다.

“아, 너무 웃어서 이제 눈물이 나려고해.”

진심인지 농담인지 모를 말을 하면서 손가락으로 눈가를 닦은 아델라는 어색하게 뒤통수를 긁고 있는 단테를 보고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넌 이미 마녀에 홀렸는데? 간이고 쓸개고 다 빼 갈 수 있을 거 같아.”

홍당무 소년이 얼굴을 찡그렸다.

“그거 참 못된 마녀인데?”

“어머, 몰랐니? 마녀는 악마하고 계약하기 위해 사람의 장기나 뼈들을 바친데. 혹시 모르지 정말 그럴지도.”

그건 알지 못한 이야기였다. 그가 읽은 책에선 마녀의 외양이나 내리는 저주와 같은 내용만 있을 뿐 무언가를 바친다는 이야기는 없었다. 오히려 외모와 연구하는 영역만 제외하면 평범한 학자와 다를 바 없었다.

“그래? 내가 아는 마녀하곤 다른데?”

“어떻게 다른데?”

“음, 무시무시한 것만 빼면 학자 같았어.”

“그래?”

장난기가 발동한 아델라가 바짝 다가와서 물었다.

“예쁘진 않고?”

단테는 몸이 굳었지만 다행히도 얼굴이 빨개지는 것만은 겨우겨우 참아냈다.

“치.”

아까와는 달리 별다른 반응이 없자 토라진 아델라가 몸을 돌려 난간으로 걸어가 팔을 걸쳤다.

“푸아티에···아니 서대륙의 마녀는 붉은 눈에 새하얀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다는 전설이 있어.”

잠시 말을 멈춘 아델라는 똑같이 팔을 기댄 채 물었다.

“딱 나 아니야?”

언제나 자신감 넘쳤던 그녀가 장난기 사라진 어조에 단테가 흠칫했다. 순간 바람이 강하게 불어 머리카락에 가려졌던 그녀의 얼굴이 다 드러났다.

“···.”

밤바람이 찬 탓인지 자신을 쳐다보는 핏기 없이 새하얀 얼굴의 눈가에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슬픔이 배어 있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부끄러워서 터질 것 같았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그녀는 재촉하지 않고 멈춰버린 소년을 그저 바라봤다. 잠깐의 침묵이 흐르고 단테는 입을 열었다.

“내가 태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가 돌아가셨어.”

한참을 망설이다 꺼낸 말에 아델라의 눈에 슬픔 대신 놀라움이 솟아났다. 그는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새까맣게 어두운 바다를 바라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많이 아꼈었대. 어머니 친구인 유모가 말해주기를 그래도 내가 다섯 살 까지는 어떻게든 버텼지만 어머니를 닮은 나를 보면서 괴로워 하다가 결국 모든 걸 내려놓았다 하더라. 네가 어떻게 살아 온지 모르지만 나보다 더 힘들고 괴롭게 지냈을 거야. 부모님은 없었어도 가족이 되어준 사람이 있었고 가까운 사람들은 나를 챙겨줬으니까 외롭긴 해도 견딜 수 있었어.”

바다에서 시선을 거두고 아델라를 바라보자 그녀가 평소에 지니던 장난스러움도 방금 본 슬픔도 아닌 불안함이 드러나고 있었다. 그는 그것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나는 너를 안타까워하지도 동정하지도 않을 거야. 조엘 씨는 너가 상처가 많으니 신경써주라고 부탁했지만 그러지 않을 거야. 어설프게 동정하는 것이 너를 얼마나 무시하고 모욕한다는 것을 나도 겪어봐서 알거든. 네가 평소처럼 당당하든 지금처럼 슬픔에 빠지든 처음 만났을 때처럼 대할 거야. 물론 예전과 똑같을 수는 없겠지만 나는 내가 알고 보아왔던 당당하고 짓궂은 아델라 이블린이 마음에 들거든. 그러니 내가 다른 사람처럼 너를 동정하진 않을까 불안해하지 않아도 돼.”

눈가에 맺혀있던 방울이 하나씩 바닥에 떨어지다 바람에 날아가 사라졌다. 툭 툭 떨어지던 방울은 이내 볼에 얇은 줄기를 그리며 바닥에 닿기 시작했다. 그녀가 스스로 극복해 일어설 때까지 단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직 다 가르쳐주지 않았어.”

“응?”

“춤 말이야.”

소녀가 손을 내밀었다.

“···.”

소년은 말없이 소녀의 손을 잡았다. 두 손 모두 바람 때문에 차가웠지만 맞잡은 손들은 춥지 않았다. 두 사람이 호흡을 맞춰 스텝을 밟고 턴을 하고 다시 스텝을 밟으며 연습하기를 몇 번 반복했을까 제법 숨이 찼다.

“저번에 내가 태양이 날 질투한다 했었지?”

평소의 낭랑한 어조로 돌아온 아델라가 가빠진 호흡을 뱉었다.

“응.”

“그거 진짜야. 나는 태양의 질투를 받아서 오래 있으면 따갑거든. 그래서 밤 밖에 활동할 수 없어.”

“···그렇구나.”

“날 동정하지 않겠다고 했지? 그래서 말해준 거야. 널 믿지만 이 사실은 아무에게 말하지 말아줘. 부탁할게.”

“약속할게.”

담담한 약속에 소녀는 수줍게 웃었다.

“고마워.”

달 아래의 무대에서 달빛을 조명으로 파도와 바람 소리를 음악으로 삼아 그들만의 춤곡을 완성해갔다.




안녕하세요. 처음으로 연재를 시작한 수문학도 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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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델라 이블린 (2) 19.03.05 221 3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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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레-솔리튜드 (1) +11 19.03.04 1,542 19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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