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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 님의 서재입니다.

왜 그냥 죽지 않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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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nrainso93
작품등록일 :
2024.02.29 20:41
최근연재일 :
2024.07.12 18:00
연재수 :
37 회
조회수 :
630
추천수 :
189
글자수 :
81,582

작성
24.03.29 06:20
조회
15
추천
6
글자
5쪽

#.8 요신(妖神)

DUMMY

온통 하얀 설원 위를 열심히 내달리는 이들이 있었다.

검은 머리를 휘날리는 설과, 못지 않게 검은 털을 휘날리고 있는 묵랑이었다.


“크릉-”

“응!”


열심히 달리던 묵랑은 안 되겠다 싶었는지 설의 앞에 엎드렸다.

멀리서도 진하게 풍겨오는 혈향(血香, 피 냄새)에 설도 짧게 고개를 끄덕이고 그의 등에 올라탔다.

인간의 달리는 속도보다, 늑대가 달리는 속도가 훨씬 빠를 것이었다.

그게 눈으로 뒤덮인 설원이라면 더더욱.


“저깄다.”

“크륵-!”

“쉬- 진정해, 묵랑.”

“크르.....끄륵.....”


하얀 눈 밭 위에 붉은 피를 흘리며 쓰러진 여인이 보였다.

피 냄새에 지나치게 흥분한 묵랑을 진정시키며, 설은 천천히 그녀에게로 다가갔다.


“이봐. 내 말 들려?”

“츠스스-!”

“........뱀?”

“!”


여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도, 세로로 길게 갈라지는 동공도 너무나 뱀의 그것이라.

설은 서둘러 걸치고 있던 솜 옷을 벗어 그녀의 몸 위로 덮어주었다.

변온동물인 뱀에게 이 설원은 좋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하아........”

“쉬.....괜찮아.”


설의 체온으로 데워져 있던 따끈한 것이 닿으니, 여인은 허겁지겁 그것을 당겨 댔다.

그사이 설은 매고 있던 가방에서 긴 천을 꺼내 여인의 다리에서 흐르는 피를 지혈해 주었다.


“걸을 수 있겠어?”

“ㄴ.....네.”

“무리하지 않아도 돼. 힘들면 묵랑이가 도와 줄....”

“츠스스-!”

“크르르-!”

“아앗. 진정! 진정해! 묵랑이 너도.”

“크륵-!”


설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눈이 마주친 여인과 묵랑은 한껏 날 선 얼굴로 울음소리를 냈다.

금방이라도 서로에게 달려들 기세라, 설은 혼비백산하여 둘 사이를 갈라 놓았다.


“환자! 환자잖아. 네가 이해해 줘. 응?”

“캬륵-!”


여자를 도로 바닥에 앉힌 설은 묵랑을 좋은 말로 설득했다.

아무래도 여인이 혼자 걸을 수 있는 상태로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조그만 뱀에게 도발을 당한 묵랑은 잔뜩 성이 나버렸는지, 털을 빳빳하게 세우며 항변했다.


“저 여자 상처가 많아. 게다가 홑몸도 아니고.”

“크르-!”

“묵랑이 너, 정말 그렇게 매정하게 굴 거야?”

“......푸륵.”


아직 심통이 덜 풀린 표정이긴 했으나, 묵랑은 설의 설득에 결국 순순히 몸을 낮추었다.

건방진 뱀 따위가 자신의 위에 올라타는 것은 몹시 불쾌한 일이었으나, 설의 부탁이니. 묵랑은 도리가 없었다.


“아이, 착하다. 우리 묵랑이가 세상에서 제일 착하다.”

“푸-”


그런 묵랑의 속을 알아서 설은 할 수 있는 가장 다정한 손길로 그를 쓰다듬어 주었다.

윗 주둥이를 털며 고개를 홱 돌려버리긴 하였으나, 살랑살랑 흔들리는 꼬리는 거짓말을 못 해서.

설은 소리 없이 웃곤 여인에게로 돌아갔다.


“지금 네 상태로 집까지 걸어가는 건 무리일거야. 묵랑이 등에 타.”

“.....하.....하지만.....”

“괜찮아. 묵랑이는 좋은 늑대니까 걱정할 것 없어.”

“.........”

“이리 찬 곳에 앉아 있으면 너에게도, 뱃속 아기에게도 좋지 못해.”

“!...........”


뱀에게 늑대란 좋을 수 없는 존재라.

불안한 얼굴로 망설이던 여인은 그러나, 설의 시선이 만삭인 자신의 배로 향하자 결국 고집을 꺾고 그녀가 내민 손을 잡았다.


“묵랑아, 천천히. 너무 달리면 안 돼.”

“꾸륵-”

“..........”


설의 도움으로 집채만 한 늑대의 위에 앉게 된 여인은 여전히 불안한 얼굴로 둘을 번갈아 보았다.

그러나 그녀의 걱정과 달리, 검은 늑대는 아주 부드럽게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고, 그녀보다도 어려 보이는 여자는 천천히 그들 옆에서 걸었다.


“고맙습니다, 요신님.”

“응?”

“......?”

“아.....”


조심스러운 감사 인사는 놀라울 게 아니었지만, 뒤이은 호칭은 좀 낯설어서.

어리둥절한 얼굴로 여인을 바라보던 설은 한발 늦게 그것을 이해하고 푸스스 웃었다.


요신(妖神).


요괴들의 신이라는 뜻이었다.

설이 수백 년을 살아온 이곳은 요괴와 인간이 공존하는 세상이었다.

물론 설과 묵랑이 지내는 이 공간은 밖에서는 보이지 않았고, 둘 다 사람에게 질려버린 상태라.

바깥 출입을 잘하지 않으니, 인간이 있든, 요괴가 있든 그다지 상관은 없었다.

다만, 가끔 주변에 도움이 필요한 요괴들이 다가오는 경우가 있었고, 그것을 그냥 두고 볼 수가 없어 통과시켜 준 적이 몇 번 있었던 탓에.

어느새 설은 요괴들을 돌봐 주는 요괴들의 어머니, 요신(妖神)이라 불리게 되었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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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36 위로(衛虜, 붙들고 보듬다) 24.07.12 6 2 5쪽
36 #.35 마지막 크리스마스 24.07.09 11 2 5쪽
35 #.34 최후의 전투 2 24.07.05 15 5 5쪽
34 #.33 최후의 전투 1 24.07.02 16 5 5쪽
33 #.32 이브(Eve) 24.06.28 11 5 4쪽
32 #.31 걷잡을 수 없는 3 24.06.25 16 5 6쪽
31 #.30 걷잡을 수 없는 2 24.06.21 19 5 5쪽
30 #.29 걷잡을 수 없는 1 24.06.18 16 5 5쪽
29 #.28 소확행(小確幸, 작지만 확실한 행복) 24.06.14 16 5 4쪽
28 #.27 진실(Truth) 24.06.11 14 5 6쪽
27 #.26 트리거(Trigger) 24.06.07 14 5 6쪽
26 #.25 크리스마스 2 24.06.04 15 5 6쪽
25 #.24 크리스마스 1 24.05.24 17 5 4쪽
24 #.23 설(雪, 눈) 24.05.21 18 5 6쪽
23 #.22 요리(饒摛, 넉넉함이 번지다) 24.05.17 16 5 4쪽
22 #.21 청안(靑眼, 푸른 눈동자) 24.05.14 17 5 3쪽
21 #.20 요호(妖戶, 요괴들의 집) 24.05.10 19 5 4쪽
20 #.19 요양(療養, 휴식을 취하다) 24.05.06 16 5 4쪽
19 #.18 뒤통수 2 24.05.03 17 5 7쪽
18 #.17 뒤통수 1 24.04.30 16 5 4쪽
17 #.16 위엄(㥜掩, 엄습하는 불안) 24.04.26 14 5 5쪽
16 #.15 환궁(還宮) 24.04.23 17 5 5쪽
15 #.14 황궁(惶窮, 몹시 걱정하다) 24.04.19 15 5 7쪽
14 #.13 미남(謎婪, 탐나는 수수께끼) 24.04.16 19 5 7쪽
13 #.12 구신(覯新, 새로운 만남) 24.04.12 17 5 6쪽
12 #.11 봉별(逢別, 만남과 이별) 2 24.04.09 17 5 5쪽
11 #.10 봉별(逢別, 만남과 이별) 1 24.04.05 18 5 7쪽
10 #.9 설원(雪原, 눈밭) 24.04.02 17 6 5쪽
» #.8 요신(妖神) 24.03.29 16 6 5쪽
8 #.7 안온(安穩, 고요하고 편안한) 24.03.26 18 6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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