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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 님의 서재입니다.

불의 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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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piedbleu
작품등록일 :
2015.04.06 21:49
최근연재일 :
2015.05.23 23:00
연재수 :
97 회
조회수 :
40,763
추천수 :
1,024
글자수 :
490,880

작성
15.05.22 18:00
조회
562
추천
9
글자
7쪽

#25. 전쟁터의 소녀

DUMMY



라스카는 조용히 몸을 일으켰다. 옆자리에 잠들어 있는 아나를 깨우지 않기 위해서였다. 소녀는 고양이 걸음으로 걸어 막사 밖으로 나왔다.

3월 밤의 차가운 바람에 몸이 떨렸다. 소녀는 두 팔로 몸을 감싸며 재빠르게 뛰어갔다. 다리가 풀숲에 스치며 사스삭 소리가 났다. 긴 머리채가 바람에 흩날렸다. 라스카는 두 손으로 얼굴에 휘감기는 머리칼을 떼어내며 낮은 자세로 계속 뛰었다. 이내 목적지에 가까워지자 라스카는 뜀박질을 멈추고 그림자 속에 몸을 숨겼다.

풀숲 속에서 실랑이 소리가 들렸다. 라스카는 눈살을 찌푸리며 잠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날로 어수선해지는, 아수라장이 되어 가는 왕국 중부에서는 이제 법보다 칼이 더 가까웠다. 일부 용병들은 이 판국을 이용해 한탕 해먹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용병대들의 규모는 날로 커져갔다. 칼밥 먹은 사람들이란 사람들이 모두 끼어든다 말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치안대원이나 군인들은 물론이고, 규모가 큰 용병대에는 전직 기사들도 끼어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들을 구속하는 것은 별로 없었다. 용병대의 규칙, 강자의 폭압, 그날그날의 기분, 스스로의 양심. 마지막 것은 거의 기대하기 힘들었다. 앞의 두 가지는 대개 함께 갔다.

자연히 용병대 내부에는 폭력의 향기와 방종의 분위기가 감돌았다. 라스카가 아나와 레이브를 따라 몸을 의탁한 아브란 용병대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이런 일도 일어나는 것이다. 라스카는 풀숲에서 몸을 일으켰다. 인기척을 느낀 누군가가 멈칫했다. 그는 이쪽을 돌아보며 외쳤다.


“누구냐!”


라스카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손을 들어올렸다. 달이 없는 밤하늘 아래 흰 빛이 번쩍 터졌다. 상대방은 눈이 부셔 한 팔로 얼굴을 가렸다. 라스카는 그 때를 놓치지 않고 다른 마법을 쏘아 보냈다. 누군가를 보호하기 위한 방어막이었다.

라스카는 그제야 입을 열었다.


“그만두세요.”


당혹과 분노에 찬 시선이 돌아왔다. 거친 욕설도 빠지지 않았다.


“어린 마법사 년이잖아!”


소녀의 흰 얼굴에는 냉엄함이 떠돌았다.


“후환이 두렵지 않으신가 보죠.”


한 손에는 빛을, 한 손에는 불꽃을 띄우며 라스카는 말했다. 상대방은 주춤하며 뒷걸음질쳤다. 그의 얼굴은 알았지만,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용병대의 용병들 중 하나였다. 대개의 용병들과 마찬가지로 건들거리는 태도와 불량한 목자의 소유자였다.

그리고 항상 미치를 힐끔거렸다. 이 역시 다른 용병들과 마찬가지였다.

미치는 멍한 표정으로 라스카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풀숲 속에 주저앉아 있었다. 이미 겉옷이 찢겨 나가고 동그란 두 어깨가 드러난 채였다. 그녀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는 것 같았다.

라스카는 성폭행 미수범을 향해 몇 발자국을 더 내딛었다. 검은 눈동자 안에 싸늘한 바람이 불었다.


“재수가...... 없으려니까......!”


침을 퉤 뱉은 후 용병은 뒤로 돌아 도망쳤다. 라스카의 마법을 꺼리기도 했겠지만, 이미 들킨 이상 정말로 후환이 두려웠을 것이다.

라스카는 천천히 미치에게 다가갔다. 검푸른 눈동자가 라스카를 올려다보았다.


“괜찮아?”


라스카가 묻자 미치는 고개를 끄덕였다. 라스카는 그녀의 옷차림을 정돈해 주었다. 미치가 생각났다는 듯이 물었다.


“카세는?”


미치도 밀렌다 어를 할 줄 알았다. 점점 맑은 정신이 돌아오면서 카세 이외의 사람들과도 조금씩 의사소통을 하기 시작했다.

라스카가 대답했다.


“아직 전투중이야.”

“데려다줘.”

“안 돼. 위험하니까 널 두고 간 거잖아.”


아름다운 눈동자가 흐려졌다. 라스카는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너도 어차피 저 사람 이름 모르지? 없었던 일로 하자.”

“왜?”

“카세가 알면 저 사람 죽여버릴 테니까.”

“아.”

“너의 eladie에게 그런 일을 시키고 싶지는 않겠지?”


사실은 자기가 보고 싶지 않았다. 라스카는 미치를 일으켜 세웠다. 그녀가 기대 오자 마치 온 세계가 자기 어깨에 얹힌 듯 마음이 무거워졌다.

선생님이 돌아가시고 미르센 남작이 실종된 이후 라스카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고민했다. 그런 걸 고민할 기분이 아니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사건 다음 날 아도르 일행이 나스푸젠에 도착했지만, 제이드가 없기 때문에 더 이상 lamennes로 사람들을 도울 수 없었다.

제이드는 나스푸젠에 묻혔다. 로티스는 크렐라인으로 돌아갔다. 그는 미르센 남작을 살인 용의자로 고발할 생각인 듯했다. 사실 그렇게 추리할 수밖에 없기도 했다.

크렐라인으로의 귀환길은 험난할 게 틀림없었다. 라스카는 따라갈 수 없었다. 로티스는 자기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카세는 크렐라인으로 갈 이유가 없었다. 미치와 함께 있을 수 있다면 그는 어디든지 좋았다.


‘나는......’


미치를 막사로 데려와 옆자리에 누이면서 라스카는 생각했다.


‘.....누구와 함께 있는 걸까.’


물론 혼자였다.


“Eladie!”


짧은 호명과 함께 막사의 장막이 젖혀지고 찬바람이 새어 들어왔다. 라스카는 벌떡 일어나 앉으며 손가락을 입술에 가져다 댔다.


“조용히. 사람들 깨잖아.”

“아, 미안.”


뜨거운 불기운이 느껴졌다. 아직 전투의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모양이었다.


“Kasellion!”


미치가 그의 품으로 달려들었다. 카세가 미치를 안아 달래는 동안 라스카가 질문을 던졌다.


“이번에는 어땠어? 너무 늦진 않았어?”

“사망자가 아주 없진 않았어. 별게 다 달려들더라고. 이 세계는 텄어.”


카세는 신랄한 표정을 지었다.


“옛날에는 그래도 짐승의 형체라도 남아 있었는데 말이지, 이제는 다리 개수도 안 맞아. 이봐, 밀렌다에 원래 코끼리가 살아?”

“모르겠는데.”

“다리 여섯 개 달린 코끼리 봤어?”

“코끼리가 뭔데?”


카세는 대답이 곤란하여 입을 다물었다. 에르타가 신기한 것만 골라서 보여줬기 때문에 카세의 견문은 매우 편향되어 있었다. 남들이 다 아는 걸 모르는 반면 아무도 모르는 걸 알기도 했다.


“뭐...... 중요한 건 아냐. 별일 없었지?”

“없었어.”


미치가 아까 일을 말하려나 싶어 그녀의 눈치를 살폈지만 미치는 이미 다 잊어버린 것 같았다. 카세도 자기가 한 질문과 그에 대한 답을 금세 잊어버렸다.


“그래, 그럼 잘 자.”


둘은 다시 외국어로 떠들며 나가 버렸다. 라스카는 텅 빈 가슴을 실감하며 다시 자리에 누웠다. 먼동이 틀 때까지 잠들지 못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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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방영
    작성일
    15.07.15 15:44
    No. 1

    어쩐 일인지 모바일로 접속하면 자꾸만 보안 에러가 난다능;; 이 사이트가 위험한 곳인가여;;;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8 pi******
    작성일
    15.07.16 09:42
    No. 2

    여기 요즘 사이트 망했엉ㅠㅠ 댓글백업해놔야되나 싶을정도야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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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25. 전쟁터의 소녀 +2 15.05.22 304 7 9쪽
» #25. 전쟁터의 소녀 +2 15.05.22 563 9 7쪽
86 #24. 마법사 제이드 +2 15.05.22 542 8 11쪽
85 #24. 마법사 제이드 +2 15.05.22 539 9 12쪽
84 #24. 마법사 제이드 +2 15.05.21 560 9 11쪽
83 #24. 마법사 제이드 +2 15.05.21 527 8 9쪽
82 #24. 마법사 제이드 +2 15.05.21 552 11 13쪽
81 #23. 순회 +2 15.05.21 608 8 13쪽
80 #23. 순회 +2 15.05.20 480 7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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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23. 순회 +2 15.05.20 561 9 8쪽
77 #22. Farewell +4 15.05.20 458 9 10쪽
76 #22. Farewell +2 15.05.19 441 9 11쪽
75 #22. Farewell +2 15.05.19 487 9 7쪽
74 #21. 재반격 +2 15.05.19 510 9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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