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무량극 님의 서재입니다.

정령의 섬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무량극
작품등록일 :
2018.04.19 18:40
최근연재일 :
2019.09.30 23:58
연재수 :
200 회
조회수 :
56,563
추천수 :
269
글자수 :
1,220,287

작성
18.05.07 17:00
조회
698
추천
3
글자
12쪽

이변 (5)

DUMMY

“에고고··· 이 무식한 자식 같으니.”


건물들의 잔해에서 카를이 일어섰다. 나머지 둘은 거의 기절 상태였다.


그들이 타고 왔던 말은 점점 속력에 가속을 붙이더니 나중에는 떨어지지 않으려고 사력을 다해야 할 정도로 빨라졌다. 카를이 앞에서 바람을 막아주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한스와 말롬은 바람에 밀려서 날아갔을 것이다.


하지만 그 속도 덕분에 그들은 괴물들의 본대보다 상당히 일찍 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인마들아. 도착했다. 정신 차려라.”


“어··· 어어?”


그 말에 말롬이 벌떡 일어났다.


“벌써 마을이라고?”


말롬이 얼떨떨해하는 것도 당연하다. 아무리 걸어서 돌아갔다고 해도, 산맥까지 도달하는데 걸린 시간이 며칠이던가. 그것을 불과 몇 시간 만에 주파했다는 게 믿기지가 않는 것이다.


“흠···”


“왜? 한스 너도 믿기지가 않냐?”


“아니··· 뭔가 느낌이··· 꼭 산맥-”


“카를! 한스! 말롬!”


그때 저 멀리서 두 사람이 다가오면서 소리친다. 촌장과 경비대장이었다.


“아. 아버지.”


이내 다가온 두 사람은 일행을 번갈아 보았다. 촌장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무사히 도착했구나. 고생했다··· 고 말하고 싶지만 지금 상황이 녹록지 않구나.”


“야! 이 망아지 녀석 뭐야? 뭔데 남의 집을 다 부숴놔?”


경비대장은 자신의 집이 박살이 나버린 것에 화가 난 듯, 탑 옆에서 편안히 누워있는 말에게 다가갔다.


‘응? 저 놈 진정했네?’


“보아하니 말 등에 있다던 혹이 너희들인가 보구나.”


“지금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 급하니까 우선 한 대만 맞자. 이 망아지 자식.”


경비대장은 울화가 치밀어 말을 쥐어박으려고 공격 동작을 취했다.


“아저씨!”


“엉?”


후웅.


공기가 밀려난다. 어찌나 세게 밀려났는지 다시 공간을 채우려는 공기에 몸이 끌어당겨지고 있다.


경비대장은 자신의 앞에서 간발의 차로 지나간 말의 뒷발을 보면서 식은땀을 흘렸다. 일격으로 알았다. 이 망아지는, 아니 이 말님께서는 자신보다 강하다. 만약 카를이 뒤에서 끌어당겨주지 않았으면 뇌랑 심장은 이별의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고··· 고맙다.”


“뭘요.”


말은 고개만 까딱여서 뒤를 흘깃 쳐다보고는 공격 의사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 다시 배를 깔고 앉았다. 참으로 태연한 녀석이다.


“흠··· 대단한 말이군. 어떤 마을은 동물들을 길들여서 활용한다고 들었는데, 설마 네가 그런 능력이 있을 줄이야.”


촌장은 자식의 새로운 능력에 새삼 감탄했다.


“아닌데요.”


하지만 카를은 단칼에 그 감탄을 쳐냈다. 한스를 쳐다보니 고개를 젓고 있다.


“그럼 말롬이?”


“제가 저런 말을 길들일 수 있을 것 같으세요?”


“그도 그렇군.”


“그렇게 쉽게 긍정하시면 상처받는데요.”


말롬이 툴툴거린다. 촌장은 사과하려 했지만 카를이 이야기를 진행한 탓에 미처 하지 못했다.


“목적지가 같은 것 같아서 잠시 등 좀 빌린 거예요. 저희가 타고 올 때만 해도 정신이 나간듯한 모습이었는데 마을에 도착하니 정신을 차린 모양이네요.”


“정신 나간 듯이 우리 마을로 달려왔다고?”


“네. 무슨 문제 있나요?”


카를은 촌장의 심각한 얼굴에 덩달아 진중해졌다.


“마을 주변을 보지 못했느냐?”


“네. 저 녀석 목에 가려서 앞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습니다. 옆을 보니 동물들끼리 마을 앞에서 싸우고 있긴 한 거 같았는데.”


“... 지금 마을은 공격받고 있다. 그래. 여기서 이럴 때가 아니지. 얼른 마을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 다행히 너희들이 도착했으니 방어하기가 조금 더 수월하겠구나.”


촌장은 방어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 쪽으로 몸을 돌렸다.


“공격받고 있다고요? 대체 어떤 녀석들이 공격하길래 그리 심각해요?”


“그런 건 보면 알겠지.”


말보다는 행동이라는 듯 말롬의 물음에 카를은 탑을 기어올라갔다.


“인마! 어딜 함부로 밟는 거야!?”


“대장님. 지금 그런 거 따질 때입니까?”


마을의 어떤 건축물보다도 높은 탑 덕분에 카를은 쉽게 현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문제가 심각한데...”


“얼마나 큰 문제입니까?”


한스와 말롬은 자신들에게도 현황을 알려달라는 듯 빤히 쳐다보았다.


“사방을 동물들이 전부 감싸고 있어. 자기들끼리 왜 남의 마을 앞에서 싸우는지는 모르겠지만, 숫자가 너무 많고 마을 안으로 들어오려고 호시탐탐 노리는 녀석도 있어. 게다가 남쪽 문에는 지키는 사람도 없어서 얼마 안 있어 뚫릴지도 몰라. ”


“그러면 방비를 할 시간이...”


“어떻게든 녀석들을 최대한 빨리 쳐부숴야지.”


“잠깐. 무슨 방비를 한다는 거냐?”


둘의 대화에 담긴 다른 위기를 느낀 듯 경비대장이 물었다.


“저희가 저 말을 어디서부터 타고 왔는지 아세요?”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산맥 근처에서부터 타고 왔습니다.”


“응?”


경비대장은 그 말에 잠시 생각에 잠겼지만 촌장은 그 뜻을 단박에 알아차렸다.


“너희들은 길이 같기에 말을 타고 왔다고 했다. 그렇게 먼 곳에서부터 이쪽으로 오는 길이 같다는 것을 알았다는 건.”


경비대장도 그 뜻을 이내 알아차리고는 섬뜩해했다.


“무슨 일이 있는 거군. 그것도 굉장히 위험한 일이.”


마을 주변에서 일어났던 영문 모를 동물들의 행태를 눈 앞에서 봤다. 그 현상이 산맥 근처에 사는 동물들한테까지 영향을 미쳤다면? 지금 마을 주변에 있는 동물들은 그야말로 문제 축에 끼지도 못한다.


“혹시 동물들이 이곳으로 무작정 향했느냐?”


“네. 잘 아시네요. 설마 주변의 동물들도?”


“그래. 저 말처럼 무식하게 달려오지는 않았지만, 무언가에 홀린 듯이 마을 안으로 들어오려 했다. 저렇게 앞에서 서로 살육전을 벌이는 건 얼마 되지 않았어.”


촌장은 두통에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상황이 너무나 안 좋다. 동물들이 살육전을 벌일 때만 해도 최악의 경우 마을이 큰 피해를 입을 수도 있겠지만, 존속은 가능하리라 보았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멸망의 그림자가 자신들에게 드리우고 있었다.


“산맥에서부터 모든 동물들이 이곳을 향했느냐?”


“아뇨. 그렇지는 않아요. 제가 말 위에서 주변을 봤을 때 우리 마을로 향하는 동물들은 하나도 보지 못했어요.”


촌장은 두통이 가시는 느낌이었다. 그렇다면 희망이 있다. 하지만 다음에 이어지는 카를의 말은 그의 두통을 놓아주지 않았다.


“하지만 산맥에서 오는 동물들이 있어요.”


“산맥 주변도 아니고 산맥에서?”


“네. 그리고.”


말을 가리키면서 확답한다.


“저 말과 동급의 괴물들이 최소 수십. 늦어도 반나절 안에 우리 마을에 도착합니다.”


경악이 두 사람에게서 퍼진다. 특히 경비대장은 방금 눈 앞에서 저 말님의 뒤차기를 목격했다. 그런 짐승들이 최소 수십? 현재 인원으로는 절대 막을 수 없다. 아니, 그 어떤 마을도 단독으로는 막을 수 없는 수준이다.


“미치겠군.”


탄식이 촌장의 입에서 흘러나온다. 하지만 현실은 현실. 절망스러운 상황이라도 분명하게 대처해야 한다.


“어떠냐, 카를. 우리가 그 짐승들을 막을 수 있을 거라 보느냐?”


“... 글쎄요.”


두루뭉술한 카를의 대답이었지만 촌장은 그 뜻은 확실히 알았다.


이 중에서 그 누구보다 강한 카를이다. 어지간한 동물들은 모두 혼자서 무찌르는 게 가능한 것이 그다. 그런데도 이런 급박한 상황에 저런 어중간한 대답을 했다는 것은.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이다.


카를이라면 살아남는 게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마을을 지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아무튼 빨리 마을 사람들을 도와 주변의 동물들부터 몰아내죠. 저것들을 몰아내야 다음도 방비할 수 있겠죠.”


카를이 먼저 마을 사람들을 향해 걸음을 옮기려고 했지만 이번에는 촌장이 어깨를 잡아 그것을 막았다.


“안 된다.”


“네? 무슨?”


“넌 다른 일을 해줘야겠다.”


“아. 남문을 막으라고요?”


“아니.”


촌장은 경비대장에게 고개를 돌렸다. 경비대장도 촌장을 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넌 마을 방어에서 빠진다.”


“... 무슨 말이에요?”


“아까 네 말에 따르면 우리 마을 사람들만으로는 절대 주변과 산맥에서 다가오고 있는 동물들을 막지 못해. 게다가 이렇게 된 이상 그게 전부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상정도 필요하다.”


확실히 맞는 말이다. 가장 가까운, 그리고 가장 먼 곳에서 마을을 향해 다가오고 있다. 어느 정도의 범위에서 마을을 향해 올지 확신할 수가 없다.


“그렇기에 도움을 청한다.”


“누구에게요? 우리 마을만 이렇다는 보장도 없는데 어디에 도움을 요청해요?”


“사람들의 터전들 중에 가장 안 쪽에 있는, 남동쪽의 큰 마을에 도움을 청한다. 그들과는 옛 선조 때부터 협약이 맺어져 있으니 명분도 충분해. 만약 다른 마을들이 전부 이런 고초를 겪고 있다고 해도 그 마을만은 그렇지 않을 거다.”


“그렇다면 아버지가 가세요. 아버지가 평소에 큰 마을과 교류하셨잖아요. 제가 마을에 힘을 보태겠어요.”


“아니, 지금은 내가 아니라 네가 가야 한다. 방금 네가 말했듯이 이제 북쪽만이 아니라 남쪽에도 동물들이 가득해.”


“그 정도는 아버지도 뚫을 수 있잖아요. 그리고 제가 아니라 차라리 아버지와 같이 큰 마을에 갔었던 형이 더 나을 거에요.”


“난 지금까지 싸우느라 많이 지쳤다. 네 형도 마찬가지지. 어차피 증원이 없다면 힘든 싸움이다. 최대한 빨리 증원을 데려와야 한다. 그렇다면 가장 빠른 사람이 가야겠지. 네가 최적이다.”


만약 자신들이 산맥에서 출발할 때와 마을 사람들이 동물들에게서 마을을 지키는 것이 같은 시간에 이뤄진 것이라면 이들은 벌써 반나절은 싸웠다고 봐야 한다. 지쳤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하지만···”


하지만 이들을 놓고 가기에도 마음이 편치 않다. 마을은 지금도 충분히 위태로워 보였으니까.


“지금은 이런 쓸데없는 대화를 할 시간도 없다. 빨리 가거라. 한 시가 급해!”


언제나 침착하던 아버지가 격정을 토해냈다.


“저희가 마을을 지키고 있겠습니다.”


“그래 형. 마을은 우리가 지키고 있을게. 걱정 말고 빨리 다녀와. 물론 최대한 빨리.”


동생들마저도 옆에서 거들었다. 전혀 믿음직스럽지는 않았지만, 지금은 그것만이 정답이었다.


카를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이걸 가지고 가거라. 우리 마을 사람임을 증명해줄 거다.


카를이 증표를 받고 남쪽으로 걸음을 옮기려는 찰나.


“형. 저 말을 데리고 가면 더 빨리 가지 않을까?”


그저 달려가려고 했던 카를에게 새로운 길을 알려주었다.


“가능할까?”


만약 가능하다면 순식간에 큰 마을에 도착하는 것이 가능하다.


말에게 다가간다. 말은 옆에서 편안히 배 깔고 앉아서 자신에게 다가오는 카를을 바라봤다.


“야. 나랑 어디 좀 가자.”


카를이 등에 타려고 시도하자 땅을 발로 구르면서 등에 못 타게 격렬하게 거부한다. 어찌나 강하게 거부하는지 발을 구를 때마다 땅이 진동을 한다.


“이 자식이.”


그에 카를이 한대 쥐어박고 데려가려 하자 휙 피하더니 뒷걸음질로 탑 뒤로 숨는다.


히이이잉~.


그러면서 고개를 빼꼼히 내밀어서 쳐다보는 게 얄밉기 짝이 없다.


“히야. 꼭 사람 같네.”


“지금 감탄할 때에요?”


경비대장은 말이 뒷걸음과 모걸음을 치는 것도 모자라 약 올리는 행동을 하는 것을 보고서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아서라. 길들이지도 못한 동물을 타고 가다가 옆으로 새면 어찌하겠느냐.”


그러면 오히려 뛰어가는 것보다 느려질 것이다.


카를은 아쉽다는 듯이 남쪽으로 다시 몸을 돌렸다.


“최대한 빨리 다녀오겠습니다.”


“저희도 빨리 마을 사람들을 돕겠습니다.”


한스도 그것을 보고서 반대편으로 몸을 돌렸다. 지금은 가능한 한 빨리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


한스와 말롬은 북문으로, 카를은 남문으로 최대한의 속도로 달려갔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정령의 섬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42 동료? (3) 18.07.26 422 1 14쪽
41 동료? (2) 18.07.20 446 1 18쪽
40 동료? (1) 18.07.05 537 1 17쪽
39 고요의 평원 (6) 18.06.28 504 0 17쪽
38 고요의 평원 (5) 18.06.21 494 1 10쪽
37 고요의 평원 (4) 18.06.14 532 1 18쪽
36 고요의 평원 (3) 18.06.07 549 1 9쪽
35 고요의 평원 (2) 18.05.31 531 3 15쪽
34 고요의 평원 (1) 18.05.24 577 3 12쪽
33 일상으로의 초대 18.05.17 621 3 11쪽
32 도시 (11) 18.05.16 585 2 12쪽
31 도시 (10) 18.05.15 584 2 12쪽
30 도시 (9) 18.05.14 601 2 8쪽
29 도시 (8) 18.05.13 610 3 9쪽
28 도시 (7) 18.05.12 713 3 20쪽
27 도시 (6) 18.05.11 663 4 13쪽
26 도시 (5) 18.05.10 648 4 11쪽
25 도시 (4) 18.05.10 622 4 8쪽
24 도시 (3) 18.05.09 629 3 10쪽
23 도시 (2) 18.05.09 674 3 8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