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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MP9
작품등록일 :
2019.07.20 17:03
최근연재일 :
2019.10.01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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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39,0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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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27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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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63화

DUMMY

푸른 설산들은 태양 높은 줄 모르고 하늘 높이 치솟았다.

라이언의 코끝에서 하얀 연기가 규칙적으로 뿜어져 나왔다.

냉랭하게 시린 겨울바람이 몸 구석구석을 훑었다.

그가 지나간 자리에는 깨끗하고 새하얀 발자국이 족적을 남겼다.


남부 대륙과 달리 북부 대륙의 날씨는 변덕을 부렸다.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에서 해가 갑자기 뜨는가 하면, 어느 때는 갑자기 눈이 펑펑 쏟아지기도 했다.

푸른 하늘은 점차 어두워지고 기온도 급격하게 내려갔다.

잠시 후, 파란 하늘과 검은 하늘이 교차하더니 눈보라가 휘몰아쳤다.

북부 대륙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었다.

눈발은 거세게 빗발쳤다.

뽀득 뽀득- 좋은 울림소리를 내던 발자국 소리는 퍽퍽-거리기 시작했다.

밑창에만 번지던 하얀 눈은 어느새 발목까지 잠겨 가지 말라고 아우성치는 것 같았다.


“많이 내리네.”


하늘을 올려보던 비비앙이 휘날리는 눈발에 미간을 좁혔다.


“달링. 나 정말 궁금한 게 있는데 말이야.”

“뭔데.”

“그렇게 입고 안 추워?”


비비앙은 라이언을 보며 물었다.

그의 옷차림은 거친 날씨에 비해 유난히 가벼웠다.

갑옷 틈 사이로 찬바람이 들이닥쳐 몸을 으스스하게 만들었지만.

라이언은 얼굴을 찡그리거나 이빨을 딱딱 부딪치지 않았다.

추위는 끈덕지게 그의 체온을 뺏어갔다.

그러나 그는 무표정을 유지한 체, 앞으로 나아갈 뿐이었다.


“별로.”

“난 아직도 달링이 진짜 인간인지 의심스러워.”


라이언은 피식하고 웃고 말았다.

세상은 하얗게 물들어 모든 것이 얼어붙었다.

밟고 있는 땅도, 저 멀리 흐릿하게 보이는 설산도, 심지어 하늘까지.

그가 살던 세상에서는 익숙한 장관이었다.


“너는?”

“어머? 내 걱정해주는 거야? 감격스러운걸.”


괜한 걱정이었군.

비비앙은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녀의 옷차림도 라이언과 별다를 바 없었다.

회색 로브는 간편하고 편하기만 할 뿐이지 보온 기능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난 이게 있으니까.”


그녀는 로브 자락에 표시된 문양을 가리켰다.

뭔가 이상한 도형들이 잔뜩 그려져 있었다.

평범한 마법사들이라면 룬 문자에 눈이 돌아가 환장하고 달려들었겠지만.

아쉽게도 라이언은 마법에 문외한 인물이었다.

그의 입장에서 보자면 화가가 마구잡이식으로 그린 그림처럼 보였다.


“북부 대륙은 오랜만이네.”

“와 본 적이 있었나?”

“과거에 한두 번 정도? 그리 좋은 추억은 아니야.”


과거를 회상하던 비비앙이 미간을 찌푸렸다.


“지금껏 만난 야만인 중에서 정신머리가 제대로 박힌 놈은 못 만나봤거든. 모두 본능에 충실하더라.”


그녀는 가벼운 어조로 그렇게 말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읽을 수 없는 눈빛이었다.


“달링도 조심해. 야만인들은 말이 통하지 않는 놈들이니까.”

“말이 안 통하면 매가 약 이지.”


비비앙의 경고에 라이언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덤벼들면 죽일 뿐이다.

그게 라이언의 사고방식이었다.

그는 많은 사람을 죽였다.

지금은 제 손에 죽은 놈들의 얼굴이 가물가물할 지경이었다.

얼마나 죽였더라.

수 백? 아니면 수 천?

처음에는 죽였던 놈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기억했다.

패기가 넘쳐 마음에 들던 놈도 있었고, 버러지만도 못한 놈도 있었다.

모두 라이언의 손에 죽었다.

그게 열이 되고, 백이 될수록 라이언은 놈들을 잊어버렸다.

문득 뒈진 놈들의 얼굴을 떠올려도 아무 의미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웃으며 죽어 나간 동료들도 술 한 잔 걸치면 다음날 기억나지 않았다.

드디어 전사의 무덤으로 갈수 있다며 노래를 부르던 바이킹 전사들.

그들이 정말 그곳으로 도달했는지는 라이언도 몰랐다.


“어라?”

“저건.”

“발자국이네.”


비비앙이 라이언의 말을 가로챘다.

눈밭에 찍힌 발자국은 눈보라에 가려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다.

발자국을 발견한 것도 우연에 가까웠다.


“누구를 쫓고 있는 거 같은데?”


라이언은 고개를 끄덕였다.

발자국은 난잡하게 어질러져 있었지만 최종적으로는 한곳을 향했다.


“보아하니 예티의 발자국이네.”

“예티?”


라이언은 새로운 몬스터에 호기심을 빛냈다.


“북부 대륙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몬스터야. 집단으로 생활하다 보니 사냥도 무리를 짓고 다니지. 인육이라면 환장하고 달려드는 놈들이야. 아무래도 먹이감을 쫓고 있는 거 같네.”


비비앙은 커다란 발자국 속에서 작은 발자국을 찾아냈다.

사람의 흔적이다.


“어떻게 할 거야?”

“쫓는다.”


라이언은 앞장서서 발자국을 뒤쫓았다.

야만인은 과연 어떻게 생겼을지 궁금했다.

정말 자신과 닮았을까?

남부 대륙에서 그는 북부 대륙의 야만인이라 불렸다.

모두가 그렇게 알고 있었다.

그는 작은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발자국을 따라 걸어갔다.

예티들은 라이언의 머릿속에 안중에도 없었다.

그녀의 말을 들어보니 별거 아닌 놈들이었다.

어차피 세상은 약육강식.

뒈지면 뒈지는 거고.

아니면 아닌 거다.

조금 더 걷자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저기 있네.”


그녀의 말대로였다.

예티들은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라이언은 덩치들 사이에 가린 작은 인영을 찾았다.


“저게 야만인이라고?”


앳된 티가 엿보이는 소년이다.

몸에는 늑대의 가죽을 발라내 엮어 만든 옷을 입고 있었다.

소년은 손에 창을 쥐고 필사적으로 응전했다.

북부 대륙의 야만인들은 죽음을 모른다고 했던가.

그 말은 사실이었다.

두려움을 모르는 전사의 눈빛.

패기 넘치는 모습에 라이언은 가만히 지켜봤다.


“꽤 위태로워 보이는데?”


안간힘을 쓰며 버티던 소년은 예티의 주먹에 나가떨어지더니 일어날 줄 몰랐다.


“어쩔 거야?”


라이언은 말없이 허리춤에 손도끼를 풀었다.

그는 둥글게 몸을 웅크리더니 폭발적으로 뛰쳐나갔다.

돌풍이 몰아쳤다.

비비앙의 머리카락이 이리저리 휘날렸다.


“타누?”


예티는 갑작스러운 불청객의 등장에 화들짝 놀랐다.

손도끼가 채찍처럼 휘둘러지더니 놈의 목을 뜯었다.


콰지직-


등 뒤로 소년이 바라보는 게 느껴졌다.

라이언은 몇 마디 주고받고는 시선을 돌렸다.

놈들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으니까.


**


“타쿠푸라!”


예티들이 달려들었다.

라이언은 푹푹 발이 빠지는 눈밭 속에서 균형을 잡았다.

어찌나 눈이 쌓였는지 발목까지 잠길 정도였다.

한 놈이 펄쩍 뛰어오르더니 양손을 머리 위로 들었다.

라이언을 납작하게 만들 심산이었다.

그는 손도끼를 아래에서 위로 올려쳤다.

놈의 몸에 실선이 그어지는가 싶더니 뱃가죽이 갈라졌다.

피를 토하면서 꺽꺽거리는 모습이 참으로 인상 깊었다.

재빠르게 좌에서 우로 손도끼를 휘둘렀다.

졸지에 붉은 십자기를 세긴 놈이 땅으로 곤두박질쳤다.

놈은 그렇게 손을 부르르 떨다 축하고 늘어졌다.

라이언은 죽어버린 놈을 시선에서 치웠다.

관상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다른 놈이 옆구리를 향해 비집고 들어왔다.

라이언은 거리를 벌리기 위해 뒤로 물러섰다.


“이런.”


바닥이 푹하고 꺼져버렸다.

그는 균형을 잃고 몸을 갸우뚱거렸다.

놈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라이언의 위로 올라타 맨주먹을 마구 휘두르려고 했다.


“패누!”


예티는 비웃음을 머금었다.

순간, 눈앞에서 검은 물체가 튀어나왔다.

굉장히 빠른 속도였다.

예티는 ‘이게 뭔가.’ 하고 확인하다 반응이 늦어버렸다.

머리가 수박처럼 터져 나가더니 손도끼가 꽂혔다.

놈은 뒤로 발라당 넘어져 그대로 일어나지 못했다.

라이언은 땅을 짚어 죽은 놈의 몸 위로 펄쩍 뛰어올랐다.

손도끼를 뽑자 피와 뇌수가 흘러나왔다.

예티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라이언이 만만하지 않다는 걸 느낀 걸까?

서로 눈치를 살피다 일제히 덤벼들었다.


“덤벼라. 털북숭이 놈들.”


라이언은 호쾌하게 웃으며 덤벼드는 놈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했다.

손도끼가 움직일 때마다 괴성이 터져 나왔다.

물론 라이언의 목소리는 아니었다.

손도끼들은 물 만난 고기 마냥 신나게 춤을 췄다.


“뭐. 저런.”


우르카는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봤다.

주먹과 손도끼가 부딪히면서 쩡-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저게 정녕 같은 사람이라는 말인가?

예티들의 주먹은 일격에 바위를 부술 정도로 힘이 엄청났다.

오니 만큼은 아니더라도 오크와 오우거 그 중간 사이는 되었다.

놈과 주먹을 맞댄다는 건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그는 그런 예티들을 상대로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반격을 가하고 있었다.

예티가 주먹을 휘두르면 무식하게 도끼로 막아냈다.

그것도 제자리에서 버텨낸 체.

발자국은 원상태를 유지했다.

발이 뒤로 밀려나는 흔적도 없었다.

우르카는 라이언의 힘에 짧은 감탄사를 토해냈다.

그 사이에 라이언의 손도끼가 한 놈을 더 눕혔다.


“파파쿠!”

“그니까 못 알아 처먹겠다고.”


라이언은 손도끼를 난폭하게 휘둘렀다.

내려찍고, 막아내고, 반격하고.

살가죽을 찢고 살을 도려냈다.

날이 상할 만도 한데 예리함은 변하지 않았다.

살을 찢을수록 예기가 더 살아나는 느낌이었다.


“키에에!”

“크오오!”


핏물이 하나의 강물을 형성했다.

죽어 나자빠진 놈들은 덩치 때문에 산처럼 쌓이기 시작했다.

그 위로 내려앉은 눈이 둥근 언덕을 만들었다.

포위망을 형성하던 원은 더 넓어졌다.

놈들은 라이언 주변을 맴돌기만 할 뿐 얼씬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슬금슬금 뒤로 물러났다.


“안 덤비냐?”

“스, 스트파우.”


예티들의 목소리에 패기가 사라졌다.

놈들의 하얀 털 때문에 파란 눈동자가 더욱 선명하게 보였다.

공포에 젖은 눈동자는 사정없이 흔들거렸다.

라이언은 흥이 식어 손도끼를 허리춤에 걸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놈들은 달려들지 못했다.

힘의 격차를 느낀 것이다.


“꺼져.”


라이언이 사납게 웃었다.

놈들은 서로 눈치만 볼 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그는 푹하고 한숨을 쉬더니 휙 하고 손도끼를 투척했다.

날아오는 손도끼에 얻어맞은 예티가 괴성을 질렀다.

그리고 푹하고 쓰러졌다.

그제서야 놈들이 줄행랑을 치기 시작했다.

라이언은 도망치는 놈들을 바라보다 달아오는 근육을 식혔다.

추위 때문에 열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몸은 괜찮나?”

“어, 어어. 어어?”


소년은 턱이 빠졌는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충격적인 광경을 목도한 사람처럼 넋이 나가 있었다.

입에서 침이 흐를 지경이었다.

아무래도 제정신이 아닌 것 같은데.

뺨이라도 한 대 쳐줘야 하나.

라이언은 손을 움찔거렸다.


“형씨. 어디 출신이오?”


···얜 또 갑자기 왜 이래?

소년의 눈은 초롱초롱하게 빛이 났다.

굉장히 부담스러운 눈빛이었다.

말본새도 좀 존중해졌다.

라이언 입장에서는 그게 그거였지만.


“내가 꿈에 그리던 이상형이 떡하고 나타나다니. 한눈에 반해버렸다고!”


소년은 벌겋게 달라오는 얼굴로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뭐지? 이 새끼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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