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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MP9
작품등록일 :
2019.07.20 17:03
최근연재일 :
2019.10.01 17:00
연재수 :
6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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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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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7
글자수 :
339,0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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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11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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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51화

DUMMY

머리 위에서 들려오는 정체불명의 목소리에 모두가 고개를 들었다.


“저건···”


라이언은 하늘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태양은 먹구름 사이로 자취를 감춘 탓에 눈살이 찌푸려지지 않았다.


“하늘에 무언가 있다!”


누군가 한곳을 지목하며 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일찍이 발견한 사람들은 ‘저게 뭔가.’하고 눈가를 좁혔다.

상공에 검은색 점이 덩그러니 찍혀 있었다.


“사람 같은데?”

“사람이 어떻게 하늘을 날아?”


그것의 정체는 다름 아닌 사람이었다.

빗자루에 올라탄 여인.

바닥에 널브러져 죽음을 기다리던 이부키가 대답했다.


“마녀가 저기서 왜 나와?”


순간, 라이언은 비비앙을 떠올렸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체형이 달랐다.

검은색 로브로 전신을 두르고는 있지만, 눈썰미가 기가 막힌 라이언의 눈을 피해 갈 수 없었다.


“개미 같은 인간들이 바글거리네? 역겨울 수준이야.”


로마니아가 경기를 관람하러 온 사람들을 비웃었다.

모두가 그 목소리를 똑똑히 들었다.

이목구비가 제대로 확인되지 않는 거리에서 마치 뇌 속을 울리는 것처럼 선명히 들려왔다.


“요술인가.”

“정확히는 텔레파시 마법이지.”


오래 살아오면서 들은 게 많은 이부키가 덧붙였다.

마녀가 여기는 무슨 볼 일이지?

라이언이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잠시.

관중들이 웅성거렸다.


“저거 마녀 아니야?”

“마녀가 여기에 왜 있어?”

“경비들은 뭐하는 거야! 어서 신성 교단에 연락하라고!”


마녀의 악명을 익히 아는 사람들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웅성거림이 심해졌다.

그 모습을 보며 로마니아가 희열에 잠겼다.

두려움의 대상이 된다는 기분은 실로 유쾌했다.


경비들은 어쩔 줄 몰라 했다.

하늘 높이 떠 있는 마녀에게 공격할 수단이 없었다.

활도 거리가 먼 탓에 닿지가 않았다.

몇몇 이들은 급히 신성 교단에 연락을 취했다.

그중에는 토레스도 포함되어 있었다.


“어서 신성 교단을 불러주시오! 여기에 마녀가 나타났다고!”


오니와 라이언의 경기를 관람하던 토레스는 손톱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이 자리까지 있게 해준 감이 위험을 알리고 있다.

어서 대피하라고.

여기에 있으면 큰일이 벌어진다고.


‘내가 어떻게 올라온 자리인데!’


한낱 노예 검투사에서 이 자리까지 올라오는 데 20년이 걸렸다.


‘지배자는 마녀를 보자 마자 도망쳤다.’


그는 부리나케 도망가는 지배자의 등을 확인했다.

매일 거만스러운 표정을 짓던 놈이 겁에 질린 표정으로, 제일 먼저 도망치는 장면은 가관이었다.

다른 관리인들도 슬그머니 눈치를 보더니 몰래 콜로세움을 벗어났다.


“어,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저희도 도망쳐야 하는 거 아닙니까?”


하급 관리인들이 안절부절못하는 얼굴로 토레스에게 물었다.

지배자랑 상급 관리인들이 모두 도망쳤다.

그 덕에 토레스가 관리인 중에서 제일 높은 서열을 가지게 되었다.


‘이건 기회야!’


토레스가 눈을 빛냈다.

높은 직위를 넘보는 일은 쉽지 않았다.

전직 노예 검투사를 누가 상급 관리인에 앉히겠는가.

오히려 상급 관리 사이에서 토레스를 조롱하는 인간들도 많았다.

그런데 그들은 조치 하나 취하지 않고 도망쳤다.

이 사태로 지배자나 상급 관리인들에게 책임을 묻는다면 면책을 피하지 못할 터.


‘콜로세움의 지배자가 되는 것도 시간문제다!’


마녀의 속셈은 모르겠지만 신성 교단이 도착하기 전에 일이 벌어질 확률이 컸다.

일단은 마녀부터 해결해야 한다.

그는 시간을 끌기 위해 도박을 하기로 결정했다.

만약 이번 사태를 잘 해결한다면 제국도 본인을 눈여겨볼 것이다.

그럼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 있다.


“이보시오!”


마녀가 토레스를 내려다본다.

잘 보이지는 않지만 그는 그렇게 느꼈다.

사람들의 시선 또한.

시선이 쏠리자 긴장한 토레스는 심호흡을 하고 협상을 시도했다.


“원하는 게 있어서 나타났을 터! 내가 그 요구 사항을 들어줄 테니···”


퍼억!


토레스를 호위하던 병사가 얼굴에 튄 액체를 만져 확인했다.


“피?”


어디서 이게 튀었지.

옆으로 고개를 돌린 병사는 창백하게 질려 뒷걸음질 쳤다.


“히익!”


머리 없는 몸뚱어리가 천천히 쓰러졌다.

바닥에 피가 고이며 웅덩이를 이루었다.


“꺄아아악!”

“주, 죽었어!”

“도망쳐!”


비명이 터져 나왔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이 자리에 있으면 죽는다.


“어서 비켜!”

“내가 먼저 나갈 거라고!”

“살려주세요!”


그러나 사람이 몰린 탓에 시간은 더욱 지체되었다.

몇몇 이들은 관중에 밟혀 압사하기도 했다.

혼란의 도가니였다.


“쫑알쫑알 시끄럽네. 세상을 좀 먹는 해충들이 말이야.”


로마니아가 사람들을 내려다보며 소름 끼치게 웃었다.


“원하는 거? 당연히 있지. 바로 너희들의 죽음. 해충은 박멸해야 하니까. 세상에 도움이 되렴. 그러니 세상을 위해. 아니, 나를 위해 죽어줘.”


로마니아가 품 속에서 검은 구슬을 꺼냈다.


“자, 아가야. 날뛸 시간이란다. 너의 공포를 저들에게 똑똑히 알려주렴.”


그녀의 입술이 검은 구슬에 닿았다.

그것은 좋다는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로마니아가 사람들 사이로 검은 구슬을 떨구었다.

공포로 제정신이 아닌 사람들은 떨어지는 검은 구슬을 보지 못했다.


쩌저적-


땅에 닿자 마자 서서히 금이 가더니 깨지기 시작했다.

깨진 틈 사이로 검은 연기가 솟구쳤다.


라이언은 자기도 모르게 검은 구슬과 거리를 벌렸다.

직감적으로 위험하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검은 연기는 죽음을 부르고 있었다.

연기가 꾸물꾸물 뭉치더니 한 가지 형상을 만들어냈다.


“저건 또 뭐야?”

“쿨럭. 만티코어군. 백 년 전에 용사에게 토벌되었다고 들었는데.”


이부키가 힘겹게 말했다.

괴물을 목격한 사람들이 더욱 발걸음을 재촉한다.


“괴물이다!”

“마녀가 괴물을 풀었어!”


사자와 같은 외모, 전갈을 닮은 꼬리. 군데군데 찢어진 날개.

덩치는 어찌나 큰지 5 미터는 넘어 보였다.

얼굴은 흡사 인간을 닮았지만.

노랗게 빛나는 눈동자는 짐승을 닮았고 귀까지 찢어진 입 사이로 날카로운 긴 이빨들이 보였다.

놈은 혼비백산 달아나는 인간들을 보며 군침을 삼켰다.


크오오오오!


만티코어가 포효했다.

공기가 사방으로 떨려왔다.

라이언은 황급히 귀를 틀어막았다.


“모, 몸이 안 움직여!”


포효에 노출된 사람들이 움직임을 멈췄다.

마치 시간이 멈추기라도 한 것처럼.

만티코어는 유유히 산책하는 발걸음으로 눈앞의 인간에게 다가갔다.


“도, 도와줘!”


놈은 씨익 웃으며 입을 크게 벌렸다.


우저적!


뼈가 갈리는 소리.

인간이 통째로 씹혀 나가자 사람들이 공포에 떨었다.

공포는 전염되어 콜로세움을 감쌌다.


“우와아아!”

“어서 비키지 못해!”


이번에는 만티코어가 숨결을 뱉었다.

초록색 연기가 파도처럼 물결치더니 인간들을 휩쓸었다.


“으악! 살려줘!”


연기를 직격으로 맞은 이들의 피부가 녹아내렸다.

그들은 고통에 찬 비명을 지르다 뼈만 남아서 사라졌다.


“으아악!”


만티코어는 기분 나쁜 미소로 사람들을 학살하기 시작했다.

어떤 이는 사지가 찢어져 죽어갔고, 또 어떤 이는 놈의 몸에 깔려 서서히 죽어갔다.

상반신만 남은 남자가 놈을 피해 기어가는 모습은 참혹할 지경이었다.

그것을 만티코어는 즐겁게 관찰하다 남자가 움직임을 멈추자 재미없다는 얼굴로 앞발을 휘둘렀다.

놈은 사람들을 곱게 죽이지 않았다.

최대한 고통을 주고 죽이려는지 잔혹하기 이를 데 없었다.


“꺄하하하하. 아아, 즐거워라.”


어느새 지상으로 내려온 로마니아가 사람들의 비명소리를 만끽했다.


“···인간들이랑 전쟁이라도 벌일 거냐? 이게 뭐하는 짓이지?”

“어라? 몸이 아직도 살아있네. 정말 질긴 목숨이구나.”


로마니아는 이부키의 곁으로 다가와 무릎을 쭈그렸다.


“하찮고 열등한 인간에게 패배하다니. 오니의 명성도 한물갔구나.”

“···인간을 우습게 보지 마라.”

“그도 아니면 네가 약한 걸까?”


마녀가 오니를 비웃었다.

로마니아는 애초에 그녀의 말을 듣지 않고 있었다.

이부키가 한 방 먹이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오니 같은 최상급 실험체를 그냥 내버려 둘 수는 없지. 거기서 인간들이 죽어 나가는 걸 관람하고 있으렴.”

“미안하지만.”


라이언이 손도끼를 들어 로마니아를 쫓아냈다.


“나와 선약이 있어서 말이지.”

“아하. 네가 오니를 이긴 인간이니?”

“허튼수작 부리면 목이 날아갈 거다.”

“그새 정이라도 들었나 보지? 뭐. 상관없어. 너도 꽤 흥미로운 실험체니까. 사이 좋게 둘 다 써먹어주지.”

“누구 마음대로?”


라이언이 사납게 웃었다.


“···인간 따위가 주제를 모르고 설치는구나. 너무 건방져. 너는 원래 살려서 데려가려고 했지만. 시체로 써먹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로마니아가 손뼉을 쳤다.

그러자 인간을 학살하던 만티코어가 주인의 부름에 따라 곁으로 다가왔다.

그녀가 놈의 갈기털을 쓰다듬었다.

만티코어는 기분 좋은 듯 낮게 그르렁거렸다.


“아가야. 저 인간은 죽이렴.”


만티코어가 울부짖었다.


“재밌겠군.”

“···미친 거냐? 저놈을 상대로 싸우겠다고? 지금 네 몸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하느냐?”


이부키가 물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라이언은 지금 간신히 서 있는 상태였다.

몸은 망가질 대로 망가져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았다.

그러나.


“우리 바이킹 전사는 걸어오는 싸움을 피하지 않소. 어차피 튀어도 끝까지 쫓아올 기세인데. 도망치는데 힘을 뺄 바에는 차라리 여기서 승부를 보는 게 낫지.”

“···키히힛. 쿨럭. 너 같은 인간을 이제서야 만나다니··· 정말 아쉽구만. 저놈의 꼬리랑 숨결을 조심해라. 히드라의 독에 버금갈 정도니까.”

“그렇다면 내게는 통하지 않겠군.”

“뭐?”


크아앙!


만티코어가 입에 독의 숨결을 뿜은 채로 달려들었다.

무방비한 라이언은 그대로 노출되고 말았다.

이부키의 눈이 체념으로 물들었다.

오니의 육체로도 버티긴 힘든 독을 인간이 버틸 리가 만무했다.


“고양이 새끼가 어디서 입 냄새를 뿌려!”

“어떻게···”


이부키가 의문을 표했다.

피부와 닿기만 해도 육체를 녹이는 맹독이었다.

오니조차도 대비하지 않으면 속수무책으로 당한다.

그런데 라이언은 숨결 속에서 자유롭게 움직였다.

만티코어가 다시 한번 숨결을 뿜어냈지만 소용이 없었다.

오히려 이리저리 이동하며 공세를 퍼부었다.


“뭐 하는 거야! 어서 놈을 죽이라고!”


로마니아가 빼액하고 소리를 질렀다.

당황스러운 건 만티코어도 마찬가지였다.

독이 통하지 않는 까닭이었다.


콰직-


크아아!


방심한 만티코어가 고통에 괴성을 질렀다.

발등을 찍힌 탓이었다.

화가 난 놈이 거대한 몸짓을 부풀려 앞발을 휘둘렀다.

맞는 순간 골로 가는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간신히 피한 라이언이 거친 숨을 내셨다.


“커헉!”


입에서 왈칵하고 피를 쏟아져 나왔다.

내장이 뒤틀리고 근육이 고통을 호소했다.

망가진 몸을 억지로 움직이려 하니 생기는 부작용이었다.


‘몸 상태만 좋아도 해볼 만할 텐데.’


라이언은 목구멍 아래까지 나오려던 말을 간신히 삼켰다.

패배자가 내뱉는 변명이다.

변명을 대려는 시점에서 자신은 패배자였다.

전장에서도 변수 정도는 생각해 둬야 했다.


“진짜 죽겠군.”


한눈에 라이언의 몸 상태를 확인한 만티코어가 여유를 되찾았다.

가만히 내버려 둬도 죽겠지만.

벌레 주제에 내 몸에 상처를 낸 죄는 갚고 죽게 하리라.

놈은 다 죽어가는 인간을 어떻게 요리할까 고민했다.


“무의미한 발악은 끝났나 보구나. 아가야, 저놈의 머리를 내 앞에 가져오렴.”


크앙-


만티코어가 라이언을 통째로 씹기 위해 입을 벌렸다.

피하고 싶지만 몸이 옴짝달싹하지 않는다.

이부키가 저 멀리서 분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빌어먹을! 내가 몸 상태만 이러지 않았다면!”


진짜 끝인가.

라이언은 팔을 떨구었다.

반격하려고 해도 팔에 힘이 없었다.

앞을 보니 만티코어가 아가리를 들이밀고 있었다.


“크하하! 잘 놀다 간다!”


라이언은 담담히 죽음을 받아들였다.

호쾌하며 웃으며 죽음 기다린다.


툭-


그때, 머리 위로 차가운 게 내려앉았다.

고개를 올려보니 추적추적 물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우웅!


동시에 손도끼가 힘차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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