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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극자의 작은 서재입니다.

천살(天殺) 먹은 노인(路人)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쌍극자
작품등록일 :
2022.05.11 13:02
최근연재일 :
2023.05.21 14:20
연재수 :
34 회
조회수 :
5,119
추천수 :
44
글자수 :
148,938

작성
23.04.28 06:00
조회
67
추천
1
글자
10쪽

훼방(毁謗)

DUMMY

* * *


곧이어 한꺼번에 쏟아지는 녹의인들의 공격을 간발의 차이로 피해낸 진서우의 손가락이 가볍게 목표물의 왼쪽 가슴과 부딪혔고, 그와 동시에 그 손가락부터 흘러나온 한 줄기의 지력(指力)이 마치 붓으로 점을 찍어내듯 정확하게 상대의 심장 사혈(死血)을 가격하며 어느 새 그 녹의인을 한 줌 고혼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러나 다음 순간 진서우는 연이어 다른 녹의인들에게 반격을 하는 대신, 재빠른 몸동작으로 그들의 머리 위를 타고 넘으며 독안 사내를 향해 몸을 날려가고 있었다.


‘저 자만은 절대로 이곳에서 내보내선 아니 된다.’


이윽고 진서우의 손가락에서부터 쏟아지는 수십여 개의 지풍(指風).


축섬팔예 무천화지 중 나양엽애(拏揚葉愛, 흩날리는 꽃잎과 같은 사랑을 붙잡다)의 초식이 펼쳐진 결과였다.


마치 바람을 타고 흩어지는 사랑을 필사적으로 붙잡아두려 하는 실연인(失戀人)의 몸부림처럼 진서우의 지풍들은 대기를 빼곡하게 메운 채 독안사내의 이동을 제약해가고 있었고, 이어서 진서우가 아까 전과 같은 점엽백화의 초식으로 변환하며 아래로 떨어져 내리자 어느 새 독안 사내의 주요 사혈들이 진서우의 사정권 아래 놓이며 빈틈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러던 그 때, 독안 사내가 한 차례 가볍게 장을 내뻗자 그곳에서 갑자기 막대한 양의 기운이 발산되며 진서우가 날려보낸 그 수많은 지풍들이 모두 한 순간에 눈 녹듯이 사라져 갔다.


그리고는 여유롭게 검지와 중지를 들어 자신의 몸 바로 앞에 막 다다른 진서우의 손가락을 너무나도 간단히 붙잡아버리는 독안 사내.


곧이어 그는 진서우를 향해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오호라, 지금 그 무공은 분명 축섬팔예가 아니던가? 그렇다면 너는 소문으로만 전해지던 묵요산장의 치부(恥部), 소장주 진서우가 틀림없겠군. 흐흐, 그동안 묵요산장주가 안으로 감싸고 돌기만 하던 그 못난 소장주가 어이하여 이곳에 그 모습을 드러냈을까나?”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독안 사내는 잡고 있던 진서우의 손가락을 튕겨 그를 방 안 저 멀리 던져버렸고, 그 후 곧바로 다시 신형을 돌려 문 쪽으로 걸어가며 여유로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굳이 지금 당장에 묵요산장과 원한관계를 맺을 필요는 없으니 너의 몸에는 위해를 가하지 않도록 하마. 하지만 그래도 앞으로 이곳에서의 내 볼일이 모두 끝나기 전까지는 만약을 위해 조용히 붙잡혀 있어줘야겠어.”


그러자 방안의 녹의인들은 서둘러 진서우의 신병을 확보하기 위해 그에게로 접근해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을 그대로 당해주고만 있을 진서우가 아니었다.


벽에 날아가 부딪힌 충격에도 불구하고 곧바로 몸을 일으킨 진서우는 녹의인들을 향해 강력한 일권을 시전하였다.


축섬팔예의 권공(拳功)인 철산육양권(剟山六洋拳).


그 중에서도 가장 광범위한 공격을 전개할 수 있는 청존대양(靑存大洋)의 초식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었다.


진서우의 권에서 뻗어 나온 푸른색 권기(拳氣)는 공간을 가득 메운 채 사방으로 퍼져나갔고, 그 광경은 마치 눈 앞에서 끝도 없이 펼쳐진 망망대해의 모습을 연상케 했다.


이윽고 진서우를 향해 짓쳐들던 녹의인들 중 가장 앞에 있던 십여 명의 사내가 고스란히 그 권기의 바다와 충돌하며 내장조각이 섞인 선홍색 피를 내뿜었다.


그리고 곧바로 진서우의 손에서 펼쳐지는 우아한 동작의 장법(掌法).


축섬팔예의 장법(掌法)이자 수공(手功)인 백화단장애(百花斷腸愛),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은 변화를 지니고 있다는 고엽분분(孤葉紛紛, 외로운 꽃잎이 정처 없이 흩날리다)의 초식이 이 순간 진서우에 의해 전개되어가고 있었다.


전면과 측면에서 자신을 공격해오는 녹의인들의 검을 고개 숙여 피한 진서우의 손이 대기 중에서 끊임없이 이리저리 움직이며 수화(手花)를 피워내자, 미처 그것을 피해내지 못한 전면의 녹의인들 다섯 명이 그대로 숨이 끊어진 채로 튕겨져 날아갔다.


그러나 진서우 또한 완전히 피해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상대를 가격하는 과정에서의 반작용으로 인해 약간의 빈틈이 생겨났고, 그 사이를 노려 검을 찔러 넣은 녹의인들의 공격으로 인해 옆구리와 허벅지 부분에 얕은 찰과상들이 생겨났기 때문이었다.


따끔거리는 통증에 살짝 양미간을 찌푸리던 것도 잠시.


진서우는 이내 다시 자세를 바로잡으며 또 한번 수공(手功)을 전개해가기 시작했다.


축섬팔예 백화단장애 중 절난비망(絶蘭悲亡)의 초식.


마치 슬픔에 빠진 여인이 눈 앞의 난을 조각조각 잘라내듯, 이 순간 진서우의 손은 아름다우면서도 군더더기 없는 움직임으로 연신 적들의 급소를 정확히 노려가고 있었고, 그 결과 진서우가 잠시 숨을 고르기 위해 제자리에 멈춰 섰을 때에는 이미 또 다시 십여 명의 녹의인들이 시신이 되어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이제 녹의인들 중 남은 인원은 단 여섯 명 뿐.


이윽고 진서우는 아까 전 식탁에서 몰래 챙겨두었던 네 개의 나무젓가락을 품 속에서 꺼내 그것들을 비수처럼 날림과 동시에 그 스스로도 녹의인들을 향해 몸을 날리며 곧바로 쌍장을 내뻗었다.


축섬팔예의 암기술(暗器術)인 소성악비도(宵星櫮飛刀), 그 중에서도 가장 직선적이면서 막강한 위력을 지니는 암천혈우(暗天血雨, 어두운 하늘의 핏빛 비)의 초식이, 백화단장애 중 가장 쾌(快)의 묘리가 잘 깃들어있다는 주포문안(走抱捫顔, 달려가 안긴 채 얼굴을 어루만지다)의 초식과 함께 나란히 전개되어가고 있는 것이었다.


한편, 이처럼 서로 다른 두 개의 초식이 동시에 적들에게 빗발치자, 상황은 허무할 정도로 간단하게 끝을 맺어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네 명의 녹의인들이 날아오는 나무젓가락에 미간이 관통되어 쓰러졌고, 나머지 두 명의 적들 또한 검을 휘두르기도 전에 즉시 진서우의 쌍장에 가슴팍을 얻어맞으며 검은 피를 허공에 흩뿌렸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눈 깜짝할 사이에 모조리 바닥에 싸늘히 몸을 뉘이게 된 삼십여 명의 녹의인들.


그리고 이 일련의 과정들이 끝을 맺은 것은 정확히 독안 사내가 방 밖으로 걸음을 내디디려 하던 바로 그 순간과 일치하는 것이었다.


곧이어 진서우는 녹의인들을 향해 짓쳐들던 움직임의 빠르기를 전혀 감속하지 않은 채 곧장 독안 사내를 향해 재차 공격을 진행해갔다.


그리고는 방금 전까지 장법을 전개해가던 손을 말아쥔 채 살기 어린 권공을 시전하는 진서우.


그러자 진서우의 주먹으로부터 톱날처럼 날카로운 느낌의 파도가 몰아치며 독안 사내의 몸을 덮쳐가기 시작했다.


아까 전의 경험을 통해 진서우는 일반적인 초식으론 상대의 털끝조차 건드릴 수 없단 사실을 이미 깨달은 직후였고, 그 결과 이 순간 철산육양권 중 가장 패도적인 위력을 자랑하는 적살경양(赤殺鯨洋, 고래를 죽이는 붉은 바다)의 초식을 전개함으로써 처음부터 상대에게 승부수를 걸어가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 승부수는 그저 이도 저도 아닌 느낌만을 남기며 무위로 돌아가고 말았다.


독안 사내가 가볍게 마주 장을 내뻗자 거기서 흘러나온 기운이 마치 거인의 손처럼 진서우의 권기(拳氣)를 감싸 쥐며 너무나도 쉽게 그것을 소멸시켰기 때문이었다.


이어서 독안 사내는 반격을 진행하는 대신에 짜증 어린 눈빛으로 진서우를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분명 나는 네 신변에는 해가 가지 않도록 배려해주겠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이렇게 계속 반항을 하는 꼴이라니······. 내 참을성에도 한계가 있다는 점을 분명히 기억해두었으면 좋겠군.”


그리고 나서 그는 방 안에 쓰러져있는 녹의인들의 모습을 쳐다보며 이내 불만이 가득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나저나 이 놈들은 하나같이 다 약해빠졌군. 하긴 애초에 정규 무력부대가 아닌 소모품으로 키워졌던 놈들이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이려나? 에휴, 은월랑인가 뭐신가 하는 애송이 놈한테 죽임을 당한 혁련 늙은이는 그렇다쳐도, 광돈삼마 그 바보 같은 놈들이라도 돌발행동을 하지 않고 이곳에 남아있었더라면 그나마 이번 일도 번거롭지 않게 빨리빨리 마무리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런데 생각해보니 광돈삼마 놈들은 그 은월랑이란 놈을 해치웠으면 빨리 귀환이나 할 것이지 왜 아직도 돌아오지 않고 있단 말인가!”


독안 사내의 입장에선 그저 별 생각 없이 푸념처럼 읊조린 말이었겠지만, 진서우는 그 얘기를 결코 가볍게 넘길 수가 없었다.


‘인암흑파와 광돈삼마······? 그렇다면 저 자 또한 그 두 사람과 한 패였다는 말인가? 도대체 저들이 속한 단체의 정체가 무엇이길래······?"


그러다 그는 이내 한 가지 사실을 깨닫고는 회심의 미소와 함께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저 자는 아직 광돈삼마가 죽임을 당했단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는 것 같군. 그렇다면 만약 내가 그에 대한 얘기를 전해준다면 적어도 저 자의 분노와 관심을 한번에 나에게로 돌릴 수 있겠어. 그 틈에 밖에 있는 사람들은 도주를 시작할 수 있을 테고 말이야.’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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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독신패령검법(毒神覇靈劍法) 23.05.21 26 0 10쪽
33 경고(警告) 23.05.13 33 0 10쪽
32 해가령(瀣葭泠) 23.05.03 55 0 9쪽
31 심마(心魔) 23.05.01 54 1 9쪽
30 섭인활독마공(攝人活毒魔功) 23.04.30 62 1 10쪽
29 독망무괴(毒蟒楙怪) 23.04.29 59 1 10쪽
» 훼방(毁謗) 23.04.28 68 1 10쪽
27 희생(犧牲) 23.04.27 77 1 10쪽
26 함정(陷穽) 23.04.26 74 2 9쪽
25 구약촌(具藥村) 23.04.25 68 1 11쪽
24 동행(同行) 23.04.24 78 1 12쪽
23 수검(銹劍) 23.04.19 95 1 9쪽
22 악몽(惡夢) 23.04.18 87 0 9쪽
21 자제(自制) 23.04.17 87 0 8쪽
20 도살(屠殺) 23.04.16 92 0 10쪽
19 십염수라해(十閻修羅海) 23.04.15 102 0 9쪽
18 농락(籠絡) 23.04.14 99 0 10쪽
17 재등장(再登場) 23.04.13 105 0 10쪽
16 결투(決鬪) 23.04.13 111 0 9쪽
15 청룡표국(靑龍鏢局) 22.07.17 139 0 10쪽
14 격돌(激突) 22.07.09 149 0 9쪽
13 황금산(黃金山) 22.07.05 157 1 11쪽
12 밀담(密談) 22.07.03 183 1 10쪽
11 흉수(凶手) 22.05.28 197 1 9쪽
10 비사풍(飛沙風) 22.05.21 192 2 10쪽
9 동귀어진(同歸於盡) 22.05.19 206 3 10쪽
8 암전(暗戰) 22.05.18 204 1 9쪽
7 등장(登場) 22.05.17 223 2 10쪽
6 격돌(激突) 22.05.16 239 1 10쪽
5 인암흑파(湮暗黑波) +2 22.05.15 247 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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