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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극자의 작은 서재입니다.

천살(天殺) 먹은 노인(路人)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쌍극자
작품등록일 :
2022.05.11 13:02
최근연재일 :
2023.05.21 14:20
연재수 :
34 회
조회수 :
5,117
추천수 :
44
글자수 :
148,938

작성
23.04.2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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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12쪽

동행(同行)

DUMMY

* * *


“소문에 의하면 거웅신권(巨熊神拳) 님과 쌍접마화(雙蝶魔花) 님은 웬만한 후기지수들은 모두 아래로 볼 수 있을 정도의 무위를 지니고 계시며, 은월랑 님의 경우 이미 정사파 최고의 후기지수들이라 할 수 있는 정사십사봉룡(正邪十四鳳龍)에 버금가는 실력을 선보이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광돈삼마와의 싸움을 직접 옆에서 지켜보니, 실제로 세 분의 무위가 소문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특히 은월랑 님께선 오히려 소문이 본신의 능력을 전혀 따라가지 못한다고까지 생각될 정도였으니깐요! 저와 비슷한 나이임에도 벌써 그 정도의 무위를 지니고 계시다니, 정말로 존경스러울 따름입니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노명휼의 동경 어린 말에 뒤이어 흘러나온 진서우의 무뚝뚝한 한 마디.


당금 강호에 알려진 자신의 위명이 스스로의 실력이 아닌 은월랑의 무위에 힘입어 얻은 허명이란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진서우 그 자신도 모르게 새어나온 반사적인 반응이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처럼 지금껏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던 진서우의 냉담한 반응에 순식간에 마차 안은 싸늘한 침묵으로 휩싸여갔다.


그렇게 얼마 간의 시간이 흘러갔을까?


그 어색한 분위기를 타개하려 한 듯 초아가 일부러 더 밝은 목소리를 내며 노명휼에게 물었다.


“그나저나 지금 이 마차는 어디로 향해가고 있는 건가요?”


그러자 노명휼은 현재의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자신을 구원해주어 고맙다는 듯 곧바로 초아를 향해 빙그레 눈웃음을 지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답했다.


“이번 표행은 미촉성(美觸省)에서 출발해 곡옥성(槲鈺省)을 지나 서안성(西安省)까지 이르는 여정이 될 예정입니다.”


이 같은 노명휼의 대답에 초아는 잠시 동안 뭔가를 생각하는 듯 싶더니 이내 해맑은 미소와 함께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저희는 이제 그만 이쯤에서 떠나는 것이 좋겠네요. 저희는 강동 쪽으로 이동해 가야하는 상황이거든요. 더군다나 저희가 계속 이 마차에 머무는 것도 아마 노 공자님이나 표국 분들 입장에선 불편함만 안겨드리는 일일 것 같고요. 어차피 이제 저희 공자님도 정신을 차리셨고 하니······.”


그러나 노명휼은 세차게 양 손을 내저으며 진서우 일행을 향해 다급히 소리쳤다.


“불편하다니요! 부디 그런 말씀 거두어 주십시오! 그리고 은공들께서 강동 쪽으로 가셔야 한다면 앞으로 며칠 정도는 더 저희와 동행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아마도 그 때 즈음이면 서안성과 강동 각각으로 향하는 갈림길에 다다를 수 있을 테니깐요.”


“음, 그럼 그렇게 할까요······?”


노명휼의 말에 진서우의 눈치를 살피며 되묻는 초아.


그리고 진서우는 아까 전 자신도 모르게 노명휼에게 드러내보였던 냉담한 반응을 후회하듯 곧바로 온화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으며 초아의 물음에 답했다.


“그래, 그렇게 하자꾸나.”


그렇게 진서우 일행과 노명휼 일행의 동행이 며칠 더 연장되는 순간이었다.


* * *


진서우 일행이 청룡표국의 표행에 일시적으로 합류하기로 한 이후에도 표사들과 쟁자수들의 일상에는 그다지 달라진 점이 없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길을 나서고 태양이 저 너머로 뉘엿뉘엿 넘어갈 무렵이면 주위의 적당한 장소에 자리를 잡고 하룻밤을 쉬어가는 일상의 반복.


그러나 그런 와중에도 몇 가지 사소하게 변화된 점은 존재하였다.


그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노숙할 때면 언제나 한가운데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그 주위에 둘러앉아 다 함께 저녁식사를 했던 지금까지와는 달리, 현재는 모든 이들이 저마다 눈에 띄지 않는 장소에서 조용히 끼니를 해결하게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진서우는 그에 대한 이유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며칠 전 본 그 놈의 잔인한 손속에 겁을 집어먹은 것이겠지.’


광돈삼마와의 싸움 당시 너무나도 잔혹하게 상대를 유린하였던 은월랑.


그런 은월랑이 실제로는 진서우와 다른 사람이란 사실을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하고 있는 이는 오직 초아 뿐이었으므로, 결국 청룡표국 사람들에게 있어 진서우 일행은 은인이기에 앞서 공포의 대상으로 자리할 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


원래부터 사람들의 눈에 띄기 싫어하는 성격의 진서우는 이 같은 표국 내의 분위기가 너무나도 부담스러워 참아내기가 매우 힘들었지만, 이미 며칠 간의 동행에 동의해버린 이상 어쩔 수 없이라도 일단 버텨내 볼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며 간신히 견뎌내고 있는 상황이었다.


한편, 그런 표국 사람들 중에서도 단 두 사람, 예외적으로 진서우 일행에게 호의적인 모습을 보이는 이들이 있었는데, 그 두 사람이란 바로 청룡표국의 총책임자인 주화명과 노송표국의 이공자 노명휼을 이르는 것이었다 .


특히 노명휼은 이동을 하는 내내 계속해서 진서우 일행의 곁에 착 달라붙어 편의를 위해 신경을 써주었고, 특히 현재에 이르러서는 아예 진서우를 형님이란 호칭으로까지 부르며 그와 가까워지고 싶어하는 마음을 고스란히 밖으로 드러내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역시나 노명휼은 진서우 일행을 위해 마차 안까지 자신이 직접 점심식사를 운반하며 그들의 안부를 챙기고 있는 중이었다.


“형님, 저 명휼입니다. 잠시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아, 명휼 아우로군. 어서 들어오게.”


진서우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커다란 나무 쟁반 하나를 양손으로 받친 채 마차 안으로 들어서는 노명휼.


그 나무 쟁반 위에는 표사들이 기본적으로 먹는 건량 이외에도 갖가지 재료를 넣고 만든 고기 죽이 냄비째 올려져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진서우가 미안한 듯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노명휼에게 말했다.


“이거, 매번 미안해서 어떡하지? 괜스레 이 아이 때문에 표국의 식량을 너무 빨리 축내는 것 같아서 말이야······.”


그 말과 동시에 진서우는 자신도 모르게 초비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은근한 눈빛을 주었다.


그도 그럴 것이, 최근 며칠 간 초비의 엄청난 식성을 감당하느라 꽤나 많은 양의 비축 식량들이 소모되고 만 것이 사실이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일반적으로는 가볍게 끼니를 해결하곤 하는 점심에서조차 초비는 어마어마한 양의 음식들을 먹어 치울 정도였으므로, 노명휼을 비롯한 표국의 사람들이 진서우 일행의 식사 준비에 알게 모르게 많은 고생을 하고 있을 것이란 건 너무나도 자명해 보이는 일이었다.


그러나 노명휼은 되려 밝은 미소와 함께 고개를 내저으며 진서우를 향해 입을 열었다.


“먹는 것 가지고 타박을 받는 것만큼 서러운 일은 없다 하였습니다. 그러니 너무 눈치 주지 마시지요. 그리고 비록 초제(礎弟)가 다른 이들에 비해 먹는 양이 많다고는 하나, 또 그만큼 힘을 쓸 땐 확실하게 써주지 않습니까? 더군다나 형님께선 이미 저희에게 식비 명목으로 돈을 내어 주시기도 하셨으니, 하등 저희에게 송구스러워하실 이유가 없습니다.”


“흐음, 그거 몇 푼이나 보탰다고······.”


“하하, 그 정도면 충분하고도 남는 금액이라고 주 표두님 또한 말씀하셨던 걸요. 그러니 그러지 마시고 어서 편한 마음으로 식사부터 하시지요. 자자, 초제도 어서 들도록 해. 초 소저께서도요!”


이 같은 노명휼의 재촉에 천천히 수저를 들어 올리던 진서우는 불현듯 무언가가 생각난 듯 장난스런 말투로 노명휼에게 귓속말하였다.


“그런데 명휼 아우는 비아(碑兒)에게는 편하게 대하면서 왜 아아(娥兒)에게는 계속해서 말을 높이는 것이냐? 혹시 명휼 아우가 우리 아아(娥兒)에게 마음이라도······?”


“무, 무슨 말씀 하시는 겁니까, 형님! 저, 저는 그저 아직 초 소저와는 친분을 많이 쌓은 것이 아닌지라······.”


진서우의 짖궂은 물음에 당황한 듯 진땀을 뻘뻘 흘리며 손사래를 치는 노명휼.


그러한 그의 모습에 애초 영문을 알 리 없는 초아와 초비가 이상한 눈빛을 보내오자, 노명휼은 다급히 화제를 돌리려는 듯 다소 열띤 목소리로 진서우 일행을 향해 입을 열었다.


“원, 원래는 식사 후에 말씀 드리려 했던 내용인데, 그냥 지금 의견을 여쭙도록 하겠습니다. 음,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며칠째 저희가 노숙만 해오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오늘 저녁에는 오랜만에 마을에 들러 하룻밤을 묵어가고자 하는데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떠신지요?”


“하하, 신세를 지고 있는 입장에서 되려 우리가 토를 달 이유가 뭐 있겠느냐? 아우님과 다른 표사 분들의 뜻에 따르도록 하지. 다만, 며칠째 민가의 모습조차 보이지 않고 있는데 오늘 당장 묵을만한 마을이 나타나긴 할 지, 그거 하나가 딱 걱정이군.”


그러자 노명휼은 걱정 말라는 듯 빙그레 웃어 보이며 곧바로 진서우의 의문에 답했다.


“실은 여기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저희 아버님과 오랫동안 친분을 맺어오신 숙부님 한 분이 살아가고 계십니다. 몇 년 전, 몇몇 사람들을 모아 함께 땅을 일구고 손수 건물들을 세워 마을 하나를 만드셨거든요. 그래서 오늘은 그곳을 찾아가 하룻밤을 지내고자 합니다.”


“그래? 그렇다면 방금 전에도 말했다시피, 우리는 아무런 이견이 없어.”


그렇게 말하며 싱긋 미소를 지어보인 진서우는, 이내 불현듯 침중한 표정을 지으며 노명휼을 향해 다시 물었다.


“그나저나 대공자는 여전히 그 상태 그대로이시고?”


그러자 노명휼은 이 같은 진서우의 물음에 씁쓸한 표정과 함께 머리를 긁적이며 답했다.


“네, 의식을 되찾은 이후로 아직까지도 마차 밖으론 한 발자국도 나서지 않고 있는 상태입니다. 솔직히 말해, 하룻밤이나마 마을에서 쉬어가고자 하는 것 또한 어느 정도는 저희 형님 때문이기도 하고요. 아무래도 마을 안처럼 아늑한 환경을 조성해주면, 형님이 마차 안을 나와 세상 밖에 다시 걸음을 내디디는 데 도움이 될 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말입니다.”


이러한 노명휼의 말처럼, 노송표국의 대공자 노신형은 지난 며칠 사이 깊은 잠에서 깨어나 이미 의식을 되찾은 지 오래였지만, 그 이후 오직 마차 내에서만 틀어박힌 채 끼니조차 거르고 있는 실정이었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최근 노명휼은 노신형을 돌보기 위해 아예 그쪽으로 옮겨가 생활하고 있는 중이었고, 나아가 혹시 조금이나마 자신의 형에게 더 심신의 안정을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안은 채 오늘 밤 마을에 묵을 것을 결정하게 된 것이었다.


한편, 진서우는 노명휼의 말에 수긍한다는 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흐음, 그렇군. 오늘 밤을 기점으로 명휼 아우의 바람처럼 노 대공자께서 기운을 좀 되찾으셨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그러자 노명휼은 고마움이 묻어나는 눈빛으로 진서우에게 나긋하게 웃어보이다, 이내 다시 밝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여하튼 오늘 마을 내에 묵게 된다면, 이 아우가 형님께 식사 한 번 거하게 대접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니 기대하십시오! 초제, 아우 또한 마찬가지야. 이 우형(愚兄)이 얼마든지 돈은 지불할 테니 마음 가는대로 실컷 주문해서 먹도록 해.”


“헤헤, 그게 정말이십니까? 정말 뭐든 시켜도 괜찮은 거지요?”


“어휴, 저 식충.”


노명휼의 말에 신난 듯 헤벌쭉한 표정을 지어 보이는 초비와 그런 초비의 반응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는 초아.


그리고 진서우는 그런 초아와 초비의 모습에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노명휼을 향해 대답했다.


“하하! 그래, 나 또한 한 번 기대해보도록 하지."


그렇게 웃음만이 가득한 마차 안 풍경 속에서 앞으로 그들에게 닥칠 일들을 예감하는 이는 아무도 없어 보였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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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독신패령검법(毒神覇靈劍法) 23.05.21 26 0 10쪽
33 경고(警告) 23.05.13 33 0 10쪽
32 해가령(瀣葭泠) 23.05.03 55 0 9쪽
31 심마(心魔) 23.05.01 54 1 9쪽
30 섭인활독마공(攝人活毒魔功) 23.04.30 62 1 10쪽
29 독망무괴(毒蟒楙怪) 23.04.29 59 1 10쪽
28 훼방(毁謗) 23.04.28 67 1 10쪽
27 희생(犧牲) 23.04.27 77 1 10쪽
26 함정(陷穽) 23.04.26 74 2 9쪽
25 구약촌(具藥村) 23.04.25 68 1 11쪽
» 동행(同行) 23.04.24 78 1 12쪽
23 수검(銹劍) 23.04.19 95 1 9쪽
22 악몽(惡夢) 23.04.18 87 0 9쪽
21 자제(自制) 23.04.17 87 0 8쪽
20 도살(屠殺) 23.04.16 92 0 10쪽
19 십염수라해(十閻修羅海) 23.04.15 102 0 9쪽
18 농락(籠絡) 23.04.14 99 0 10쪽
17 재등장(再登場) 23.04.13 105 0 10쪽
16 결투(決鬪) 23.04.13 111 0 9쪽
15 청룡표국(靑龍鏢局) 22.07.17 139 0 10쪽
14 격돌(激突) 22.07.09 149 0 9쪽
13 황금산(黃金山) 22.07.05 157 1 11쪽
12 밀담(密談) 22.07.03 182 1 10쪽
11 흉수(凶手) 22.05.28 197 1 9쪽
10 비사풍(飛沙風) 22.05.21 192 2 10쪽
9 동귀어진(同歸於盡) 22.05.19 206 3 10쪽
8 암전(暗戰) 22.05.18 204 1 9쪽
7 등장(登場) 22.05.17 223 2 10쪽
6 격돌(激突) 22.05.16 239 1 10쪽
5 인암흑파(湮暗黑波) +2 22.05.15 247 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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