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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극자의 작은 서재입니다.

천살(天殺) 먹은 노인(路人)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쌍극자
작품등록일 :
2022.05.11 13:02
최근연재일 :
2023.05.21 14:20
연재수 :
3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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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18
추천수 :
44
글자수 :
148,938

작성
22.07.0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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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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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0쪽

밀담(密談)

DUMMY

* * *


이 같은 모중악의 말에 여욱은 알겠다는 듯 공손히 고개를 숙여 보인 후, 이내 자기 휘하의 세 조장들에게로 시선을 옮기며 명령을 내렸다.


“일조장(一組長)은 지금 당장 일조(一組)를 데리고 은사풍 선배님의 흔적을 추적해보도록. 그 어떤 희미한 흔적이라 할 지라도 절대 놓치지 말고 반드시 찾아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조장(二組長)은 이조(二組)의 다른 조원들과 함께 그 문제의 마을로 가서 혹시라도 그 곳에 정말 은사풍 선배님께서 계셨던 것인지를 꼼꼼하게 확인해보도록 하여라. 나아가, 그 흉수들의 정체를 어서 빨리 파악해내야 하니, 그곳에 남아있는 온갖 단서들을 최대한으로 수집하도록 하고······. 다음으로 삼조장은 이수사대를 도와······.”


“잠시만요, 대주님.”


“······?”


“저는 달리 만나보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허락해 주십시오.”


“달리 만나보고 싶은 사람이라······. 누구를 얘기하는 것이냐?”


“인암흑파를 물리쳤다는 그 은월랑이라는 자를 한번 만나보고자 합니다.”


“음, 이유는?”


“그 은월랑이라는 자는 이번 사건에서 인암흑파와 싸움을 벌인 유일한 사람입니다. 그 과정에서 혹시라도 인암흑파로부터 모종의 얘기를 전해 들었을 수도 있으니, 반드시 한 번은 직접 만나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자 이 같은 해가령의 말에 먼저 고개를 끄덕이며 승낙한 것은 바로 모중악이었다.


"좋아. 해 조장의 생각이 그러하다면 그렇게 해보는 것도 좋겠지. 그럼 그리 하도록 하게. 다만, 안전을 위해서라도 삼조의 조원들 중 일부를 함께 데리고 가는 게 좋을 것 같구먼."


"네, 그리 하겠습니다.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부장님. 그럼 저는 지금 당장 이번 일에 대해 조원들과 의논하러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모중악의 승낙에 정중히 허리를 숙이며 감사를 표하는 해가령.


이윽고 그녀는 여욱을 향해서도 한 차례 고개를 숙여 보인 후, 곧바로 그녀의 조원들이 대기하고 있는 곳을 향해 달려갔다.


한편, 모중악은 그런 해가령의 뒷모습을 한동안 말없이 응시하다 이내 나지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무림청 창설 이래 본청에서 역대 가장 뛰어난 성적으로 훈련을 수료하였다던 이가 바로 해 조장이었지, 아마?”


이에 여욱이 곧바로 모중악의 시선을 따라 해가령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 때문인지 훈련 수료 당시 본청에서도 눈독을 많이 들인 모양이던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내걸은 모든 제의를 뿌리치고 그녀 스스로 이곳 지부에 자원을 해서 온 것이라고 합니다. 본청에 그대로 남아 임관을 했다면 지금과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탄탄대로를 걸었을 텐데 말이죠······. 에휴, 대륙 내에서도 변방에 가까운 이곳에서 아깝게 재능을 썩히다니 개인적으로도 참으로 아쉬움이 많이 남는 녀석입니다. ······! 아아! 죄송합니다, 지부장님! 부주의하게 지부장님 앞에서 경솔한 언행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새어 나온 본심에 당황하여 다급히 허리를 깊이 숙이며 사죄하는 여욱을 향해, 모중악은 괜찮다는 듯 가볍게 한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허허, 개의치 말게. 해 조장의 능력을 담아내기엔 이곳이 너무나도 부족함이 많단 사실은 나 또한 잘 알고 있으니 말일세. 그러나 그것보다 나는 다른 맥락에서 참으로 안타까움이 남는구먼."


“무슨 말씀이신지······?”


“해 조장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나무로 만들어진 인형을 대하고 있는 것 같으니 말이야. 내 평생 저토록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사람은 해 조장이 처음이거든. 도대체 과거에 어떤 일을 겪었던 건지······.”


그 말과 동시에 해가령을 향해 안타까운 눈빛을 보내는 모중악.


그리고 이 순간 자신도 모르게 그런 그의 내심이 반영되었던 것이었을까? 지금 모중악의 시선에 비친 해가령의 뒷모습은 왠지 모르게 너무나도 고독해 보일 따름이었다.


* * *


몇 개의 촛불만이 간신히 사위를 밝히고 있는 어느 넓은 방 안.


그곳에서 유일하게 사방이 휘장으로 둘러싸인 어느 침상 위에서 두 남녀가 서로를 꽈악 끌어안은 채 거친 숨을 몰아 쉬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 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여인을 품에 안은 채 가만히 누워있던 사내가 천천히 시선을 내려 여인을 바라보며 나른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인암흑파와 백록대(白鹿隊)가 결국 전멸을 당했다지?”


그러자 여인이 교태로운 몸짓과 함께 눈만 살짝 들어올려 사내를 바라보며 말했다.


“본 쓰임새를 다하지 못한 채 전부 죽어버린 것이 조금은 아까운 것도 사실이지만, 어차피 그들은 쓰고 버리는 말에 불과했으니깐요. 여전히 그들을 대체할 말들은 많이 남아있으니, 상공께서는 그런 하찮은 놈들 때문에 괜한 심력을 낭비하지 않으셔도 되어요.”


“허허, 그런 놈들의 죽음 따위에 본좌가 관심이나 둘 것 같으냐? 다만 본좌는 인암흑파를 죽였다는 그 어린 애송이에게 약간의 호기심이 생겼던 것뿐이지. 비록 본좌에겐 보잘것없는 미물에 불과했다 하나 그래도 인암흑파라 하면 과거 꽤나 흉성을 날렸었던 놈이 아니었더냐? 그런데 그런 약관도 채 되지 않은 애송이에게 당하고 말았다니······. 허허, 아주 재미있는 놈이 강호에 등장했군.”


“며칠 사이에 이미 이번 일에 대한 소문이 퍼진 것인지, 일부 세간에선 그를 은월랑(銀月狼)이라는 별호로 부르고 있다고 해요. 그 마을에서 살아나온 무인 놈들이라면 뭔가 더 확실하게 그 놈의 정체에 대해 아는 바가 있을 것 같긴 하지만, 일단 그들이 그 문제와 관련해선 입을 꾹 다물고 있는 데다 현재 세간의 관심이 그들에게 쏠려있기까지 한 상태라 지금 당장은 알아내기가 힘들 것 같아요.”


“으흠, 그나저나 은월랑이라······. 꽤나 멋들어진 별호인걸? 허허, 애송이 주제에 기회를 잘 잡아 그런 별호까지 얻다니, 그 놈으로선 꽤나 횡재했군 그래.”


이처럼 자신의 부하들이 죽었다는 얘기를 나누고 있음에도 그저 여유만이 가득한 표정을 지은 채 즐거운 미소를 머금고 있는 두 남녀.


곧이어 여인은 자세를 고쳐 자신의 손으로 턱을 괴고 엎드린 채 고혹적인 눈웃음과 함께 나긋나긋 말했다.


“호호, 하지만 은월랑이라는 그 자, 이번에도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그게 무슨 소리지?”


“인암흑파의 죽음에 대해 전해들은 광돈삼마(狂豚三魔)가 그의 복수를 하겠다며 은월랑을 찾아 죽이러 갔거든요.”


“아무런 명령조차 떨어지지 않았는데도 자기들 멋대로 움직였다는 말인가? 이런 버러지 같은 놈들 같으니라고. 그나저나 초설(苕雪) 너는 왜 그 사실을 알면서도 그 놈들을 제지하지 않은 것이냐?”


보고의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살짝 양미간을 찌푸리며 묻는 사내의 말에 여인은 마치 달콤한 무언가를 상상하듯 혀로 입술을 핥으며 고혹적인 목소리로 답했다.


“과거의 유물을 꺾고 새로이 그 이름을 알린 강호의 신성. 그리고 그 유물의 복수를 하기 위해 다시 모습을 드러낸 또 다른 유물들이라······. 호호, 얼핏 생각해봐도 이들 간에 싸움이 벌어지면 왠지 엄청나게 재미있을 것 같지 않나요?”


“허허, 그 얘기를 들으니 본좌 또한 그 싸움의 결과가 궁금해지긴 하는군. 좋아, 그 문제는 일단 계속해서 상황을 지켜보도록 하지. 그리고 어차피 그 은월랑이란 놈이 우리의 행사를 방해한 것 또한 사실이니, 광돈삼마에게 그 놈에 대한 처분을 맡긴 셈 쳐도 될 것 같고 말이야. 거기서 또 다시 은월랑 그 놈이 살아남게 된다면, 이 또한 그 놈이 타고난 복인 거겠지.”


그렇게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며 다시 한번 즐거운 웃음을 터뜨리는 두 사람.


그러던 중 사내는 불현듯 눈빛을 날카롭게 번뜩이며 날 선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은사풍은 그 얘기가 다르지. 그 노인네만큼은 반드시 찾아내어 물건을 회수해야 한다. 명심하고 있겠지?”


“물론이죠, 상공. 어차피 은사풍은 곡옥성(槲鈺省)을 절대로 빠져나가지 못해요. 이미 우리측 사람들이 곡옥성 주변 길목들을 은밀히 둘러싼 채 성 밖을 벗어나는 이들을 꼼꼼하게 감시하고 있으니깐요. 그나마 은사풍이 곧바로 무림청으로 향했더라면 일이 복잡해질 수도 있었겠지만, 지금까지도 아무런 행적이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그는 무림청이 아닌 다른 곳을 찾아가려 하는 모양인 것 같아요.”


“하하, 아마도 무림청의 작자들 또한 믿을 수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겠지.”


그 말과 동시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스런 미소를 지어 보이던 사내는 이내 천장 너머 저 먼 곳을 바라보는 듯 몽롱한 눈빛을 한 채 나지막이 읊조렸다.


“은사풍으로부터 물건을 회수한 후에 지금 진행하고 있는 일의 마무리만 제대로 짓는다면, 앞으로 ‘그 분’께서 가시는 길에 이 손으로 직접 큰 도움을 드릴 수 있을 것이다. 아아, 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있겠느냐?”


“상공의 기쁨은 곧 저의 행복이기도 하여요.”


곧이어 애교 섞인 목소리의 말과 함께 교태로운 표정으로 혀를 빼꼼 내밀며 사내의 품에 다시 얼굴을 묻는 여인.


그리고 이처럼 관능과 순수함이 동시에 어려 있는 듯한 여인의 모습에 다시금 하초(下焦)가 꿈틀 반응해오기라도 했던 것이었을까?


다음 순간 사내는 곧바로 그 모든 잡념들을 머릿속 한편으로 밀어둔 채 재차 여인의 나신을 힘차게 끌어안아가고 있었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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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독신패령검법(毒神覇靈劍法) 23.05.21 26 0 10쪽
33 경고(警告) 23.05.13 33 0 10쪽
32 해가령(瀣葭泠) 23.05.03 55 0 9쪽
31 심마(心魔) 23.05.01 54 1 9쪽
30 섭인활독마공(攝人活毒魔功) 23.04.30 62 1 10쪽
29 독망무괴(毒蟒楙怪) 23.04.29 59 1 10쪽
28 훼방(毁謗) 23.04.28 67 1 10쪽
27 희생(犧牲) 23.04.27 77 1 10쪽
26 함정(陷穽) 23.04.26 74 2 9쪽
25 구약촌(具藥村) 23.04.25 68 1 11쪽
24 동행(同行) 23.04.24 78 1 12쪽
23 수검(銹劍) 23.04.19 95 1 9쪽
22 악몽(惡夢) 23.04.18 87 0 9쪽
21 자제(自制) 23.04.17 87 0 8쪽
20 도살(屠殺) 23.04.16 92 0 10쪽
19 십염수라해(十閻修羅海) 23.04.15 102 0 9쪽
18 농락(籠絡) 23.04.14 99 0 10쪽
17 재등장(再登場) 23.04.13 105 0 10쪽
16 결투(決鬪) 23.04.13 111 0 9쪽
15 청룡표국(靑龍鏢局) 22.07.17 139 0 10쪽
14 격돌(激突) 22.07.09 149 0 9쪽
13 황금산(黃金山) 22.07.05 157 1 11쪽
» 밀담(密談) 22.07.03 183 1 10쪽
11 흉수(凶手) 22.05.28 197 1 9쪽
10 비사풍(飛沙風) 22.05.21 192 2 10쪽
9 동귀어진(同歸於盡) 22.05.19 206 3 10쪽
8 암전(暗戰) 22.05.18 204 1 9쪽
7 등장(登場) 22.05.17 223 2 10쪽
6 격돌(激突) 22.05.16 239 1 10쪽
5 인암흑파(湮暗黑波) +2 22.05.15 247 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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