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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극자의 작은 서재입니다.

천살(天殺) 먹은 노인(路人)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쌍극자
작품등록일 :
2022.05.11 13:02
최근연재일 :
2023.05.21 14:20
연재수 :
34 회
조회수 :
5,120
추천수 :
44
글자수 :
148,938

작성
22.05.21 18:15
조회
192
추천
2
글자
10쪽

비사풍(飛沙風)

DUMMY

* * *


곧이어 그들 중 초아가 가장 먼저 은발 사내 쪽을 향해 다가오며 조심스러운 어조로 말을 걸어왔다.


“공자님이 시키신 대로 사람들을 도주시키려 했는데, 생명의 은인인 공자님을 혼자 남겨두고 가는 것은 염치가 없다며 사람들이 하나같이 계속 고집을 부려서요······. 그래서 무공을 모르는 일반인들이랑 그 사람들을 보호할 몇몇 무인들을 빼고는 다 같이 일단 공자님의 흔적을 쫓아 이곳으로 와봤어요. 그나저나 공자님, 어디 다치신 곳은 없는 거죠?”


다만 이 순간 초아의 말투는 이전과는 달리 몹시도 주눅이 들어 보였는데, 그도 그럴 것이 지금 그녀가 마주하고 있는 진서우(은발 사내)의 분위기로부터 지금껏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낯선 느낌의 살기와 불편한 거부감이 물씬 풍겨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초아가 아는 진서우란 사람은 그토록 강한 무위를 지닌 무인이 아니었기에, 방금 전 그녀가 목격한 싸움에서 진서우가 보여준 가공할 위력의 무공을 눈으로 보고도 차마 믿을 수 없었던 탓도 있었다.


한편, 날카로운 광망을 번뜩이며 초아를 바라보던 은빛 사내는 불현듯 입가 가득 불길한 느낌의 미소를 머금으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래. 시작은 네 녀석과 가까운 자들부터 시작하는 것도 좋겠어. 네 놈이 기댈만한 이들이 없어지면 없어질수록 너는 점점 더 살아갈 의지를 잃은 채 나에게 네 삶의 주도권을 내어놓게 될 테니깐 말이야.”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은발 사내는 자신 쪽으로 다가오는 초아를 향해 불현듯 한쪽 팔을 내밀었고, 그와 동시에 순식간에 은발 사내의 손 끝으로 은밀한 살기가 깃들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에 수상함을 느끼고 문득 제자리에 멈춰서는 초아.


하지만 이미 은발 사내의 발은 너무나도 빠른 속도로 보법을 전개해가고 있었고, 그 속도는 차마 초아가 피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도 신속한 것이었기에 결국 그녀는 아무런 대처조차 하지 못한 채로 은발 사내의 공격권 내에 들어와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그렇게 은발 사내의 살수가 막 초아의 목에 닿으려던 바로 그 순간의 일이었다.


갑자기 은발 사내가 보법을 전개하다 말고 고통스러운 듯 양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감싸며 신음성을 흘리기 시작했다.


“으아아아!”


생각보다도 고통이 심한 지 어느 새 자신도 모르게 그 자리 그대로 무릎을 꿇은 채로 비명을 지르는 은발 사내,


이윽고 그는 두 눈 가득 실핏줄이 불거진 상태로 힘겹게 입을 열며 증오가 가득 어린 목소리를 쏟아내었다.


“젠자아아아앙! 이제 와서 왜 또 방해질인 것이냐!”


그 말과 동시에 은발 사내의 전신에서도 살기의 폭풍이 폭발하듯 터져나왔고, 그로 인한 먼지구름으로 인해 초아는 멀찍이 튕겨나 바닥에 나뒹굴었다.


이에 초비는 서둘러 초아의 곁으로 다가가 그녀를 보호하듯 앞을 막아섰지만, 그 이외의 무인들은 그저 너무나도 당황하고 두려운 나머지 온 몸의 근육을 경직시킨 채 주춤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먼지구름이 서서히 걷히면서 조금씩 그 내부의 광경이 사람들이 시야 속에 들어왔다.


다행히 아까 전의 그 살기 어린 기세는 전부 사라진 채, 언제 그랬냐는 듯 바닥에 대자로 뻗어 정신을 잃고 누워있는 은발 사내의 모습.


그리고 그런 사내의 머리카락이 다시 은발에서 본래의 흑발로 되돌아가며 그 주위에는 고요한 정적만이 맴돌았다.


그러자 초비는 슬금슬금 은발 사내, 아니 진서우의 곁으로 다가가 그의 상태를 확인하기 시작했고, 이내 진서우의 몸에 큰 이상이 없음을 확인한 듯 가볍게 그를 안아들어 다시 초아의 곁으로 다가갔다.


“초아야, 괜찮아?”


“······응.”


걱정스러운 듯 묻는 초비의 질문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방금 전의 공포가 완전히 사라지진 않은 듯 시선을 피하던 초아.


그러던 중 초비의 등에 업힌 진서우의 모습에 눈길이 가 닿자, 그녀는 한번 더 흠칫 놀란 표정으로 몸을 긴장시키다 이내 다시 긴 한숨을 내쉬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나서 그녀는 여전히 놀란 표정을 지으며 서 있는 무인들을 향해 시선을 옮기며 평소와는 다른 힘없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말 못할 사정이 있어서 그러니, 저희 공자님의 신분에 대해선 모두들 함구해주셨으면 해요.”


그 말을 끝으로 신형을 돌리며 터덜터덜 앞장서서 걸어가기 시작하는 초아.


이에 진서우를 업은 초비 또한 말없이 성큼성큼 초아의 뒤를 따라 걸음을 옮겨갔다.


그렇게 조금씩 어둠 속 작은 점들로 멀어져가는 그 세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남겨진 이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이유 모를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 * *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커다란 폭포소리가 들려오고 있는 강 상류의 어느 바위 지대.


거센 강물이 쉴새 없이 사방에 폭력을 행사하며 주위를 지나가고 있는 그곳의 가장 크고 평평한 바위 위에서 모두 같은 복장을 하고 있는 오남일녀가 정체불명의 어느 시신 하나를 둘러싼 채 침중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모인 이들 중 유일하게 무릎을 꿇고 앉아 시신의 상태를 자세하게 살피던 땅딸보 초로인이 불현듯 천천히 고개를 들며 확신 어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확실해. 비록 안면부가 심하게 훼손되어 정체를 직접적으로 알아보긴 힘들지만 그 외의 다른 모든 신체적 특징들은 정확히 내가 아는 내용들과 일치하는군. 특히, 왼쪽 어깨 위에 있는 이 청응 문신······. 이 모든 것들을 봤을 때, 이 시신의 정체는 사풍이괴(沙風二怪) 비사풍(飛沙風) 선배가 틀림없어. 아마도 저 폭포가 있는 절벽 위에서 떨어져 이곳까지 떠내려왔던 거겠지.”


“이럴 수가······!"


땅딸보 초로인의 말에 하나같이 비통한 표정을 숨기지 못하는 사람들.


심지어 이 순간까지도 그들은 무림의 대선배가 이토록 처참한 상태로 죽음을 맞았단 사실을 차마 쉽게 믿을 수가 없는 상태였지만, 지금처럼 땅딸보 초로인이 이토록 확실하게 장담을 하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그 시신의 주인이 사풍이괴 비사풍이라는 얘기는 분명 틀림이 없는 사실일 것이었다.


더군다나 이 땅딸보 초로인은 강호에 출두한 무인들 대부분의 신상내력이나 신체적인 비밀들, 심지어 그들에게 숨겨둔 첩들이 몇 명이나 되는지 등의 정보들조차 모두 다 파악하고 있기로 정평이 나있는 자.


비록 그 모든 정보들을 어떻게 손에 넣는지에 대해선 아직까지도 전혀 알려진 바가 없었지만, 적어도 그가 지금처럼 누군가의 신분과 정체를 유추하는 데 있어서만큼은 단 한 번도 허튼 소리를 한 적이 없었던 게 사실이었던 지라, 그 주위에 모여있던 모든 이들은 군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저 말없이 시신을 향해 슬픈 눈빛을 보낼 뿐이었다.


특히 그들 중 가장 정중앙에 서 있던 한 키큰 중년인의 경우, 생전 눈 앞 시신의 당사자와 깊은 인연이 있었던 듯 유독 애통한 눈물을 흘리며 자신도 모르게 몸을 휘청거렸다.


그리고 이같은 중년인의 모습에 깜짝 놀라 다급히 그를 부축하는 나머지 사람들.


"지부장님!"


"괜찮으십니까, 지부장님?!"


이처럼 지부장이라 불린 그 중년인은 부하인 듯 보이는 사람들의 부축을 받으면서도 한동안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다가,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에야 겨우 호흡을 진정시킨 채 다소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괜찮네. 자네들에겐 괜한 걱정을 끼쳤구먼. 미안하네."


곧이어 주위 사람들의 어깨를 토닥이며 긴 한숨을 몰아쉬던 그는 땅딸보 초로인에게로 시선을 옮겨가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몇 번이고 제 눈을 의심하며 한 가닥의 희망에 기대를 걸어봤건만, 구 형님께서도 그리 말씀하시니 이젠 저로서도 이 시신의 주인이 비 숙부님이란 사실을 믿어야할 수 밖에 없겠군요."


이와 같이 말하며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는 중년인.


그런 그의 정체는 무림청(武林廳) 곡옥(槲鈺) 제삼지부장(第三支部長) 모중악(貌重鶚)으로서, 곡옥성의 서쪽 다섯 개 현 내에서 무림인들과 관련된 사건, 사고들의 공식적인 처분을 총괄하고 있는 자였다.


한편 그런 모중악의 힘없는 모습을 바라보며 땅딸보 초로인, 즉 만박지(萬博知) 구충(坵充)은 안타까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사풍이괴는 무림청 곡옥 제삼지부의 고문이기에 앞서 사적으로도 모중악과 이십여 년 간 숙질(叔姪) 관계로 지내며 친혈육보다 가까운 사이를 맺어왔던 이들이란 사실을 구충 또한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죽하면 지부장이라는 자가 그저 비사풍의 시신이 발견된 것 같다는 짧은 보고만으로도 열일 제쳐두고 이 바위지대까지 달려와 부하들보다 더 열심히 솔선수범하여 현장조사까지 하고 있었겠는가······. 더군다나 이미 시신을 보자마자 스스로도 그것이 비사풍 선배인 걸 알아챘을 텐데······. 굳이 내게 한 번 더 시신 감정을 맡기려 했던 것은 아마도 끝까지 비사풍 선배의 죽음을 믿고싶지 않아서였겠지.’


비록 자신보다 공적으로는 상관의 위치에 있는 모중악이었지만, 사적으론 막역한 사이의 후배였기에 구충은 모중악의 슬픔에 자신 또한 왠지 마음이 더 침중하게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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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독신패령검법(毒神覇靈劍法) 23.05.21 26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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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심마(心魔) 23.05.01 54 1 9쪽
30 섭인활독마공(攝人活毒魔功) 23.04.30 62 1 10쪽
29 독망무괴(毒蟒楙怪) 23.04.29 59 1 10쪽
28 훼방(毁謗) 23.04.28 68 1 10쪽
27 희생(犧牲) 23.04.27 77 1 10쪽
26 함정(陷穽) 23.04.26 74 2 9쪽
25 구약촌(具藥村) 23.04.25 68 1 11쪽
24 동행(同行) 23.04.24 78 1 12쪽
23 수검(銹劍) 23.04.19 95 1 9쪽
22 악몽(惡夢) 23.04.18 87 0 9쪽
21 자제(自制) 23.04.17 87 0 8쪽
20 도살(屠殺) 23.04.16 92 0 10쪽
19 십염수라해(十閻修羅海) 23.04.15 102 0 9쪽
18 농락(籠絡) 23.04.14 99 0 10쪽
17 재등장(再登場) 23.04.13 105 0 10쪽
16 결투(決鬪) 23.04.13 111 0 9쪽
15 청룡표국(靑龍鏢局) 22.07.17 139 0 10쪽
14 격돌(激突) 22.07.09 149 0 9쪽
13 황금산(黃金山) 22.07.05 157 1 11쪽
12 밀담(密談) 22.07.03 183 1 10쪽
11 흉수(凶手) 22.05.28 197 1 9쪽
» 비사풍(飛沙風) 22.05.21 193 2 10쪽
9 동귀어진(同歸於盡) 22.05.19 206 3 10쪽
8 암전(暗戰) 22.05.18 204 1 9쪽
7 등장(登場) 22.05.17 223 2 10쪽
6 격돌(激突) 22.05.16 239 1 10쪽
5 인암흑파(湮暗黑波) +2 22.05.15 247 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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