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겨울방학 김치국밥
날씨가 추워지고 뜨끈하고 시원한 국물을 떠올릴 때면, 엄마의 김치국밥이 생각난다.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시원하게 익은 김치 냄새가 확 코끝을 끼치면 멸치 냄새가 함께 느껴지는 국밥이었다.
겨울방학은 모두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시간인데, 그런 겨울이 되면 엄마의 시름은 깊어만 갔다. 날이 추워 나가 놀지도 않고, 방에서 뒹굴거리는 꼴을 보기 싫어서 일 것이다.
난 어릴 적에 바깥에서 노는 것 보다 집에서 노는 걸 좋아하던 집순이였고, 그나마 집을 나서면 동네 친구들 집을 돌아다니며 책을 빌려오는 것이 전부였다. 방학은 내게 책을 읽는 기간이었으니까.
그럼 엄마는 한숨을 쉬며, 바깥에 나가 친구들하고 놀라며~ 왜 넌 맨날 집에만 있냐고 그랬었다.
난 친구들하고 노는 것도 좋지만, 친구집에 가선 늘 책꽂이를 관찰하던 아이였고, 못 읽어본 책이 있으면 빌려서 읽었었다. 동네에선 소문난 책벌레였다.
그렇게 빌린 책을 들고 집으로 들어서면 엄만 길고 긴 방학에 밥을 챙기느라 힘들어 하셨다. 맛난 걸 바라고 바랐지만, 특별하게 뭘 근사하게 점심을 준비해 주시진 않았었다.
그래두 밥 때가 되면 늘 한 상 차려놓고 우릴 부르셨는데, 그 중 내가 정말 싫어하던 음식이 있다. 그건 김치 국밥이었다.
초등학생인 내게
김치 국밥은 당기지 않는 메뉴였고,
뜨겁고 매운 음식이었다.
그게 나오는 날이면 동생과 난
적잖이 실망감을 내비쳤고, 그런 우릴
엄만 이핼 못하겠다며~ 얼마나 맛있는데를 연발했다.
뭐가 맛있다는 건지.. 알 수가 없다.
혼자만 맛있는 음식인게지.
그리고 큰 냄비에다 그걸 잔뜩 끓이고
대접에다 퍼다 주면 난 딱 먹기가 싫었다.
어느덧 초등학교를 졸업한 겨울방학,
그날도 난 친구네에서 새로 들어온 전집이 있다고 듣고
새 책을 빌리고 온 터였다.
두 권의 책을 기쁜 맘으로 들고 집에 들어왔는데,
엄만 이미 끊인 김치국밥에
내가 싫어하는 콩나물까지 넣은 뒤였다.
한숨만 나왔다.
“손 씻고 앉어~”
“그것밖에 없어? 다른 건?”
“얘가~ 이게 얼마나 맛있는데~”
‘칫 그건 혼자만 맛있는 거다~ 아무도 안 좋아하는 것.’
속에 있는 말을 내비치진 못하고 조용히 앉으면
정말 커다란 대접에 그걸 한 가득 담아주었다.
벌써 시큼한 김치 냄새와 멸치 냄새가 진동한다.
그리고 엄청 뜨겁다.
엄만 뜨거운 걸 정말 잘 드셨는데,
어쩜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입으로 들어갈까를 생각하곤 했다.
동생은 한 국자만 받겠다고 했고, 나도,
“엄마~ 나도 한 국자만~”
“아니~ 이걸 이렇게 많이 했는데~ 넌 더 먹어야지~”
“엄마~! 얜 한 국자만 받아도 괜찮고~
난 더 먹어야 돼? 왜?”
그럼 아무 말도 못하고 내 것만 더 많이 퍼다 주시곤 했다.
큰 대접 가득 받은 나는
‘이걸 언제 다 먹나.’하며 쳐다보다가
뜨거우니 천천히 한 술 뜨고 호호 불어보았다.
‘이게 뭐야??’
“엄마 이건 뭐야? 김치 국밥 아니야?
뭘 또 넣었어?”
“아~~ 수제비 조금 만들어서 넣었어~
아빤 수제비를 싫어하니까,
엄만 혼자 해 먹거든~ 먹어 봐~ 맛있어~”
“수제비? 넙쩍한 밀가루??”
“어~ 그거 그냥 수제비도 맛있는데~
오늘 김치국밥에 넣어봤어~
맛있어! 으이그.. 증말!”
난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감자 수제비는 알지... 알고 말고.
그건 너무 맛있지. 그런데..
김치 국밥 안에 왜 수제비를 넣느냐 말이다~
내가 좋아하는 감자 수제비를 해주지~ 왜 그러냐고!!
먹기 싫은 까닭에 나랑 동생은
젓가락으로 깨작깨작 푹푹 찔러가며
눈치만 살폈다.
정말 할 수 없이~ 내가 오늘 먹어준다~
이런 마음으로 한 술 떠서 호호 불어보았다.
여전히 그 뜨거움은 가시질 않았으니...
숟가락 위에 올려진 얇은 수제비 반죽에
김칫 국물이 들어가 매워보였다.
엄마의 말을 믿을까 말까.. 하다가,,
굶을 순 없으니 한 입 먹어보았다.
이게,,, 이상한 게....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 김치국밥을 먹는 것과,
이제 중학생이 되면서 먹어본 맛과 느낌은
정말 다른 것이다.
내가 기억하는 맵고 뜨겁고 별로인 음식이 아니라~
이건 뭐, 식당에서 팔아야 할
겨울 별미가 되었다.
“엄마~ 이거~ 얇으니까
그냥 호로록하고 넘어가는데? 너무 맛있네~”
내 말 한 마디에, 동생은
나와 엄마를 번갈아가며 쳐다보더니,
크게 한 입 떠서 넣는다. 그리고.
안 매운데 하는 표정이다~
대접에 담긴 김치와 콩나물의 시원한 향이 어우려져
감기도 달아날 것 같은 시원하고 얼큰한 맛이다.
거기다 중간에 숨어있는 보물: 수제비의 등장으로
숟가락은 더욱 바빠졌다.
살짝 국물에 불어 통통해진 밥알은
걸쭉한 국물과 어우러져, 보들보들하다.
그 통통한 밥알은 이상하게도 든든하게 느껴진다.
셋 다 후루룩 소리만 가득 난다.
한 냄비 가득 끊여서 이걸 누가 먹나~
싶었지만 어느새 바닥이 보인다.
코를 훌쩍거리며, 호로록 넘어가는
얇다란 수제비와 통통한 밥알,
그리고 푹 익어 시원한 국물 맛을 더해주는 김치와 콩나물까지.
어려서 맛을 몰랐던 거다. 그런 거였다.
그렇게 배부르게 셋의 점심은 끝이나고~
빈 냄비에 그릇을 쌓으며 물었다.
“엄마~ 진짜 맛있다~ 오늘 저녁은 뭐야? 고기야?”
“으이그~ 맨날 고기타령이야~
오늘 저녁은 갈치조림이랑 꽈리고추볶음이야~
그냥 주는 데로 먹어!!”
“힝~ 난 고기가 좋은데~ ㅠ.ㅠ”
- 작가의말
요즘 같이 날씨가 추워지면 생각나는 음식 중 하나가
김치국밥입니다.
감기 기운이 생길 때도 늘 배달 시키던 죽이 지겨워지면
지금도 생각이 나구요^^
다음 음식은 갈치조림으로 할까~ 미역국으로 할까~ 고민도 되는군요~
맛있게 드시고 가십시오~ 뜨겁습니다. 천천히 드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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