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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여자로 살고 있는 하윌라의 공간입니다. 환영합니다(^0^)/

추억을 먹다

웹소설 > 일반연재 > 시·수필, 중·단편

하윌라
작품등록일 :
2023.12.18 17:50
최근연재일 :
2024.01.22 11:00
연재수 :
7 회
조회수 :
303
추천수 :
46
글자수 :
15,939

작성
23.12.28 12:00
조회
37
추천
6
글자
4쪽

4. 아빠의 노란 봉투

DUMMY

요즘 같이 추운 겨울철은

아빠에게 소위 말하는 대목이었다.


아빤 출판 편집디자인을 하셨는데, 예전엔 학교마다 나오던 문집이나, 또는 대학 논문, 그게 아니면 백화점 책자를 계절마다 만들곤 하셨다.


그래서 참 많이 바빴고, 카드나 연하장을 디자인해서 넘길 때도 있었기에, 겨울은 춥지만 이 한 철 장사로 우린 일년 내내 먹고 살던 중요한 계절이기도 했다.


요즘은 카드로 손편지를 쓰거나 연하장을 쓰거나 하는 일이 잘 없지만 그래도 예전엔 정말 많았고, 기업체나 사업을 하시는 분들은 꼭 아빠에게 연락을 하고는 했었다.


밖이 아직도 깜깜한 새벽이 되면

일어나 출근을 하고,

그리고 별도 달도 고개를 내민 그때

아빤 퇴근을 했다.

아주 추울 때 말이다.


겨울이 되면 아빤 좋아하던 낚시도 가지 못했고,

나랑 인형놀이도 하지 않았고,

이쁘고 여우같은 마누라 잔소리도

좀 덜 들었던 것 같다.

들을 시간이 없었겠지.

너무 바쁘니까.


그래서 겨울엔

가족끼리 넷이서 둘러 앉아

저녁을 먹기가 힘들었다.

아빤 아주 늦게 왔으니까.

그래도 난 주말 저녁이 되면

잠들지 않고 아빠를 기다렸다.

그렇게 기다렸다가

아빠가 들어오는 모습을 보면

가서 포르르 달려가 안기고 볼을 비볐다.

난 아빨 아주 좋아했다.


아빠는 주말 저녁엔 꼭 간식거리를

사 들고 들어오시곤 했는데,

그 중 내가 좋아하는 것은 통닭이다.


포르르 달려가 안기면

아빠는 오른 손에 잡은 봉투를 내밀었다.

그건 노랑 원형지로 된

봉투에 담긴 통닭이었다.

통째로 튀긴 것도 있고,

조각조각 낸 것도 있었는데,

튀긴 냄새는 멀리 있어도 맡을 수 있을 만큼

강력한 것이었다.


고소하고 따뜻한 내음이

벌려진 봉투 사이로 뿜어져 나오면

반기는 건 아빠였는지

튀긴 닭이었는지 모를 정도다.

겉은 비닐로 덮혀있었고,

원형지 안은 이미 기름으로 젖어있고,

그 봉투 속에 가득 담긴 닭 조각들은

황금빛을 빛내며 먹어달라 손을 뻗었다.


난 닭을 아주 좋아했는데

혼자 한 마리는 뚝딱이다.

하루종일도 먹을 수 있다.

그 다음 날도 먹을 수 있다.

그렇게 노랑 봉투 안에 든 닭을 좋아했었다.


조그마한 상을 펴 놓고,

비닐을 벗기고

노랑 원형지를 찢어낸다.

그럼 속에 습기찬 것이 확 열리면서

살짝 식어 기름내가 풍겨오는 듯 하지만,

그래도 속은 여전히 따끈하고

고소한 맛이 일품인 통닭이다.


바닥에 이불을 펴놓고,

그 위에 상을 올리고

튀긴 부스러기가 이불 위에 떨어져서

엄마의 잔소리에 시동이 걸리지만,

뭐, 괜찮다.


연예가 중계와 함께 먹는 닭은

그야말로 꿀소스다.

얼른 씻고 티비 앞으로 오신 아빠는

치킨무 비닐을 풀고

(예전엔 비닐 안에 넣어 주었다.)

그릇에 부었다.

(그 국물까지 먹었었다. 예전엔.)

그리고 함께 나란히 이불 위에 앉아

닭 부스러기를 흘리면서 연예가중계를 보았다.


손으로 쭉쭉 찢어가면서,

속은 촉촉하게 육즙을 품었고,

아직도 속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치킨이다.

등 뒤에서 엄마의 잔소리가 시작된다.

둘이 똑같다고. 어째그래 말을 안 듣냐고.

그러든지 말든지.


우리 둘이서 그렇게 치킨을 먹기 시작하면

뒤늦게 합류한 동생이 얼른 와서 앉았다.

그리고 집어든 건 가슴살.

싸울 일이 없다.

닭다리는 아빠가,

난 닭봉만, 엄마는 날개만,, 동생은 가슴살만,,


그렇게 주말 야식을 옹골차게 먹어대며,

네 식구의 밤은 깊어갔다.

연예가중계가 끝나고

주말의 명화를 같이 보면서..

그러다 잠이 들곤 했다.


그 시절 아빠에게 그리고 나에게

통닭은 한 주간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가족에게로 돌아온 아빠의 마음 같았다.

그렇게 고소하고

금방 튀겨내어 따끈따끈한

아빠의 마음 같았다.


작가의말

어릴 적 제 별명은 닭 귀신이었습니다.

그렇게 닭고기를 좋아했었죠.

아빠는 주말이면 늘 간식을 사 들고 돌아오곤 했습니다.

(물론,, 매일 사 들고 왔어요. 과일을 좋아하는 저는 아빠랑 매일 수박 한 통을 먹기도 했었죠.)


연예가중계가 시작되는 시간이 되면 집으로 돌아오셨는데,

전, 그 시간이 참 좋았습니다.

연예가중계 bgm도 기억나는군요^^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3

  • 작성자
    Lv.13 해품글
    작성일
    23.12.28 16:52
    No. 1

    음... 윌라님...
    이 뭐죠... 항상 즐거운듯 하면서도 엄청나게 깔려진 애잔함은..
    이미 어른이 되어, 슬픔을 경험한 제게도... 이 수필을 접할때마다, 옛 감성들이 떠올라서..
    스르르 미소도 떠 오르는데, 마음은 짠해지고..
    얄궃어요..
    오늘도 감사히 좋은 글 잘 읽었어요. 윌라님~~^^

    찬성: 2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2 하윌라
    작성일
    23.12.28 18:03
    No. 2

    왜 슬프십니까요오오~~ 지금 커피 진하게 한 잔 먹고,,, 글을 쓰러 들어왔어요.
    오늘 못 쓰면 이제... 다음 주부턴 바로 라이부로 달려야 하기에..참.. 걱정이..
    쓰고.. 바로 올립니다.. 클나써요..정말..

    감성터치를 위한 글이기도 하구요.
    또,,, 뭐, 사실,,,대로 말하자면, 아빠 생각이 요즘 많이 나요^^
    아빠가 그립고 보고싶고 그렇거든요.
    또,, 음식을 볼 때마다 그런 기억들이 새록새록 나기도 하구요.
    얄궂은 맘을 위해 쓴 것이 맞아요^^ 정답입니닷 ㅋㅋㅋ
    이렇게 찾아와 주시는 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몰라요..
    덕분에 힘내서 적을 수 있고, 또 그것으로인해, 다른 소재를 찾아 기억하기도 하죠.
    너무 귀하신 분입니다. 해품글님~~ 따랑해~~!!! 리얼리얼~~!!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7 생사람
    작성일
    23.12.29 13:00
    No. 3

    정말 옛 생각에 푹 빠져들게 하는군요.
    저는 시골에서 자라서 자주 먹지 못하고 특별한 날에만 먹을 수 있었는데...
    ㅎㅎ
    그땐 통닭이 지금보다 훨씬 컸었죠.
    한마리 가지고 식구들이 둘러앉아 나눠먹었다는...ㅋ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 엄마는, 그리고 아빠는 무슨 부위를 먹었는지 전 기억도 안나네요.
    제 입으로 집어넣느라 정신이 없어서. ㅋㅋ

    재미있게 잘 보고 있습니다. ^^

    찬성: 1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2 하윌라
    작성일
    23.12.29 13:28
    No. 4

    크으.... 그렇지요. 누구나 기억 저어기 저편에 있는 노란 원형지의 통닭입니다. 요즘은 보기 드물어요^^
    닭을 아주 좋아해서, 저는 자주 먹었던 기억이 있어요. 하루 4마리를 먹은 적도 있지요ㅎㅎ
    매번 와 주시는 것이 너무 귀합니다. 늘 감사하구요^^ 작가님의 연말이 뜻깊은 시간이 되길 소망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십시오. 또 오십시오오오ㅎㅎㅎ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79 서백호
    작성일
    23.12.29 23:36
    No. 5

    옛날 통닭에서 옛날 맛이 안 나는 것은 세월이 흘렀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때 그 사람들이 없기 때문일까?

    찬성: 1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2 하윌라
    작성일
    23.12.29 23:55
    No. 6

    아... 작가님... 너무 깊은데요?
    세월,,, 그리고 그 사람들이 없다...
    아주,,,,,철학적인 접근입니다.
    그래서 더.. 와닿기도 하고 생각 속으로 푹 빠져들게도 되는 말씀이십니다.

    옛날 맛이라는 게, 사용하는 기름이나 온도는 같다 할지라도
    그 시간의 흐름 속에 내 입맛이 변한 건 아닐까요?
    그리고 함께 나누던 가족이나 친구들이 곁에 없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맛에 대한 기억이라는 것은, 나눈 분위기, 그리고 그것을 함께 공감할 수 있던
    내 주변의 사람들도 한 몫 한 것은 아닐런지요.
    그렇게 하나 둘 떠나고, 그 시절의 맛을 다시 느끼기 위해, 먹어보지만
    그때의 맛과 향이 없지요... 결국 변해버린 건 나 자신인걸요....
    오늘 깊은 밤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매일, 작가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 걸음이 제게 힘이 되고 있답니다. 고맙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0 오직한사람
    작성일
    24.01.17 14:04
    No. 7

    윽... 노릇노릇 황금 통닭이 먹고 싶다니... 이렇게 다정한 부녀간이라니요.
    저희 아버지는 그 옛날 모처에 계셨을 때 저녁 늦게 가지고 온 일본식 도시락을 혼자서 까드셨었지요. 엄마랑 저는 그 옆에서 구경만 했는데 반찬(튀김 포함 많았음)이라도 하나 나눠 주지, 엄마랑 난 침만 삼키고. 꾸역꾸역 혼자서 다 드심. 어린 맘에도 정말 치사했음.
    슬픈 부자지간... 흑흑
    그래도 따뜻한 글 잘 보고 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2 하윌라
    작성일
    24.01.17 14:07
    No. 8

    ㅋㅋ 튀김포함 많음에 웃음이 터져나왔어요ㅎㅎ 저는.. 아빠사랑을 정말 많이 받았어요^^
    요즘들어 더 생각이 나요~ 돌아보면 모두 사랑의 흔적이었다 싶구요^^
    한가로운 오후입니다. 전 오늘 음성파일 만들고, 오디오스펙트럼만 하면 된답니닷 어제 썸네일 만들었거등욧 헤헤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Lv.20 오직한사람
    작성일
    24.01.17 17:11
    No. 9

    오호~~~ 그 장비 좀 소개해 줘요. 저도 시간되면 한번 손 대 볼까나.
    하여간 축하드립니다. 이제 업로드만 하면... 기대됩니다. 수고하셨어요 !!!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2 하윌라
    작성일
    24.01.17 17:38
    No. 10

    어제부터 하고 있는데엣 하아.... 잘 안됩미닷 저 눈 가느다랗게 뜨고 있는거 보이시죠?? 오늘 밤새야 해욧 정말... 완전 수작업이라뉘까욧 으으으

    찬성: 1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2 하윌라
    작성일
    24.01.17 18:31
    No. 11

    musicvid.org 여기예욧 저두 오늘 저녁부터 해봅미닷 아직 손도 못봤어요ㅎㅎ 오디오스펙트럼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Lv.32 gr*****
    작성일
    24.04.30 14:47
    No. 12

    오랜만에 들어와서 재밌게 보고 갑니다. 늘 웃음 주시는 하월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즐겁고 좋은 날 되시길요^^
    갑자기 노릇노릇한 통닭이 먹고 싶네요

    찬성: 1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2 하윌라
    작성일
    24.04.30 22:37
    No. 13

    내일 근로자의 날 외식으로 좋지요^^
    추천드려요~~
    저두 크리스피한 느낌의 치킨이 먹고 싶네요.
    내일도 더워질까요? 갑자기 여름이 온 것 같아요~
    즐거운 휴일되시구요~ 맛있는 거 드시면서 힐링하세요^^
    늘 오시는 걸음에 감사함을 담아 보냅니다. 그 걸음에 머리숙여 감사드려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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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2. 아빠의 청국장 +12 23.12.21 46 8 6쪽
1 1. 메기 매운탕 +23 23.12.18 90 10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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