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아빠의 노란 봉투
요즘 같이 추운 겨울철은
아빠에게 소위 말하는 대목이었다.
아빤 출판 편집디자인을 하셨는데, 예전엔 학교마다 나오던 문집이나, 또는 대학 논문, 그게 아니면 백화점 책자를 계절마다 만들곤 하셨다.
그래서 참 많이 바빴고, 카드나 연하장을 디자인해서 넘길 때도 있었기에, 겨울은 춥지만 이 한 철 장사로 우린 일년 내내 먹고 살던 중요한 계절이기도 했다.
요즘은 카드로 손편지를 쓰거나 연하장을 쓰거나 하는 일이 잘 없지만 그래도 예전엔 정말 많았고, 기업체나 사업을 하시는 분들은 꼭 아빠에게 연락을 하고는 했었다.
밖이 아직도 깜깜한 새벽이 되면
일어나 출근을 하고,
그리고 별도 달도 고개를 내민 그때
아빤 퇴근을 했다.
아주 추울 때 말이다.
겨울이 되면 아빤 좋아하던 낚시도 가지 못했고,
나랑 인형놀이도 하지 않았고,
이쁘고 여우같은 마누라 잔소리도
좀 덜 들었던 것 같다.
들을 시간이 없었겠지.
너무 바쁘니까.
그래서 겨울엔
가족끼리 넷이서 둘러 앉아
저녁을 먹기가 힘들었다.
아빤 아주 늦게 왔으니까.
그래도 난 주말 저녁이 되면
잠들지 않고 아빠를 기다렸다.
그렇게 기다렸다가
아빠가 들어오는 모습을 보면
가서 포르르 달려가 안기고 볼을 비볐다.
난 아빨 아주 좋아했다.
아빠는 주말 저녁엔 꼭 간식거리를
사 들고 들어오시곤 했는데,
그 중 내가 좋아하는 것은 통닭이다.
포르르 달려가 안기면
아빠는 오른 손에 잡은 봉투를 내밀었다.
그건 노랑 원형지로 된
봉투에 담긴 통닭이었다.
통째로 튀긴 것도 있고,
조각조각 낸 것도 있었는데,
튀긴 냄새는 멀리 있어도 맡을 수 있을 만큼
강력한 것이었다.
고소하고 따뜻한 내음이
벌려진 봉투 사이로 뿜어져 나오면
반기는 건 아빠였는지
튀긴 닭이었는지 모를 정도다.
겉은 비닐로 덮혀있었고,
원형지 안은 이미 기름으로 젖어있고,
그 봉투 속에 가득 담긴 닭 조각들은
황금빛을 빛내며 먹어달라 손을 뻗었다.
난 닭을 아주 좋아했는데
혼자 한 마리는 뚝딱이다.
하루종일도 먹을 수 있다.
그 다음 날도 먹을 수 있다.
그렇게 노랑 봉투 안에 든 닭을 좋아했었다.
조그마한 상을 펴 놓고,
비닐을 벗기고
노랑 원형지를 찢어낸다.
그럼 속에 습기찬 것이 확 열리면서
살짝 식어 기름내가 풍겨오는 듯 하지만,
그래도 속은 여전히 따끈하고
고소한 맛이 일품인 통닭이다.
바닥에 이불을 펴놓고,
그 위에 상을 올리고
튀긴 부스러기가 이불 위에 떨어져서
엄마의 잔소리에 시동이 걸리지만,
뭐, 괜찮다.
연예가 중계와 함께 먹는 닭은
그야말로 꿀소스다.
얼른 씻고 티비 앞으로 오신 아빠는
치킨무 비닐을 풀고
(예전엔 비닐 안에 넣어 주었다.)
그릇에 부었다.
(그 국물까지 먹었었다. 예전엔.)
그리고 함께 나란히 이불 위에 앉아
닭 부스러기를 흘리면서 연예가중계를 보았다.
손으로 쭉쭉 찢어가면서,
속은 촉촉하게 육즙을 품었고,
아직도 속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치킨이다.
등 뒤에서 엄마의 잔소리가 시작된다.
둘이 똑같다고. 어째그래 말을 안 듣냐고.
그러든지 말든지.
우리 둘이서 그렇게 치킨을 먹기 시작하면
뒤늦게 합류한 동생이 얼른 와서 앉았다.
그리고 집어든 건 가슴살.
싸울 일이 없다.
닭다리는 아빠가,
난 닭봉만, 엄마는 날개만,, 동생은 가슴살만,,
그렇게 주말 야식을 옹골차게 먹어대며,
네 식구의 밤은 깊어갔다.
연예가중계가 끝나고
주말의 명화를 같이 보면서..
그러다 잠이 들곤 했다.
그 시절 아빠에게 그리고 나에게
통닭은 한 주간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가족에게로 돌아온 아빠의 마음 같았다.
그렇게 고소하고
금방 튀겨내어 따끈따끈한
아빠의 마음 같았다.
- 작가의말
어릴 적 제 별명은 닭 귀신이었습니다.
그렇게 닭고기를 좋아했었죠.
아빠는 주말이면 늘 간식을 사 들고 돌아오곤 했습니다.
(물론,, 매일 사 들고 왔어요. 과일을 좋아하는 저는 아빠랑 매일 수박 한 통을 먹기도 했었죠.)
연예가중계가 시작되는 시간이 되면 집으로 돌아오셨는데,
전, 그 시간이 참 좋았습니다.
연예가중계 bgm도 기억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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