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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헤라

재능이 사기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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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헤라
그림/삽화
연재 ; 부정기
작품등록일 :
2021.12.28 10:50
최근연재일 :
2022.01.26 21:10
연재수 :
22 회
조회수 :
27,425
추천수 :
693
글자수 :
144,645

작성
22.01.05 17:20
조회
4,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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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글자
10쪽

#001 천하제일인의 아들로 환생했다

DUMMY

#001 천하제일인의 아들로 환생했다


"한 남자가 있었지."


아버지는 아련한 눈빛을 하며 허공을 보았다.

작게 한숨 쉬는 아버지의 눈동자에는 엷은 습기가 어려 있었다.

나는 아버지가 얼마나 잘 생긴 사람인지 정확하게는 모른다.

이 작은 산속 오두막에 사람이라고는 오직 나랑 어머니 아버지뿐이니까.

하지만 어머니가 하루 종일 아버지 얼굴만 쳐다보며 하루를 보내고, 다시 한 달, 일 년을 보낼 정도니, 아버지는 정말로 아름다운 사람일 것이다.

아버지가 문득 내 얼굴을 바라보더니 빙그레 웃었다.

머리를 한 번 쓰다듬고 아버지가 다시 입을 열었다.


"사람들은 그 남자를 위대하고 거대한 자라고 불렀단다. 모든 사람이 그를 부러워하고 존경했지."

"왜 그렇게 불렀는데요?"


내가 묻자 아버지가 피식 웃었다.


"그 남자는 한 끼에 밥을 열두 공기씩 먹을 만큼 위대하고, 부인을 열두 명이나 거느리고도 매일 기녀를 열 명씩 불러서 잘만큼 거대했거든."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잘 모르겠다.


"아버지, 위대하다는 건 위가 크다는 거죠? 그러니까 밥을 많이 먹었다는 거구. 나도 그 정도는 이해할 수 있어요. 이제 일곱 살이나 됐으니까. 하지만 거대한 거 하고 부인이 열 명이나 되는 건 무슨 상관이 있어요? 몸이 크면 부인이 많아요?"

"이런 녀석하고는. 덩치 얘기를 하는 게 아니야."


아버지가 나를 보더니 부드럽게 웃었다.


"잘 들어봐라. 이 세상 대부분의 물건은 크기에 따라 대짜, 중짜, 소짜로 나뉜단다. 한데 그 위대하고 거대한 사람은 거시기가 대짜였다는 거야. 그것도 그냥 대짜가 아니라 대대대대대짜 정도 되지."


거시기 큰 거랑 여자랑 무슨 관계가 있는 건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알아들은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잘은 모르겠지만 거시기가 크면 어쨌든 좋겠지.

내가 초롱초롱한 눈으로 올려다보자, 아버지가 내 머리 손을 툭 올려놓았다.

빙그레 아버지가 웃는다.

이 얼굴은, 항상 한숨만 쉬는 아버지가 나에게만 보여주는 표정이었다.

그래서 어머니는 아버지가 내게 뭔가 말할 때마다 몰래 훔쳐보고 기뻐한다.

아버지와 어머니밖에 모르는 나지만, 그런 행동이 조금 이상한 거라는 건 알고 있었다.

아마 엄마는 정상적인 인간은 아닐 거다.

아버지가 살짝 한숨을 쉬고 모양 좋은 입술을 열었다.


"거시기 크기라는 건 말이야, 남자에게는 정말 정말 중요한 일이란다, 적화야. 그것보다 소중한 건 없지. 명심해라."

"네, 아버지."


마적화, 그것이 내 이름이다.

할아버지가 지어준 거라고 한다.

할아버지를 본 적은 없었다.

정확하게 들은 건 아니지만 할아버지의 부하쯤 되는 사람이 이곳에 와서 이름만 전해준 것 같다.

아버지가 다시 한번 한숨을 쉬었다.

긴 속눈썹이 흔들리면서 입술 끝이 약간 밑으로 처졌다.

이것도 엄마가 좋아하는 얼굴이다.

이런 얼굴이 뭐가 좋은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똑같은 표정을 만들어서 엄마에게 보여줬을 때는 꿀밤이나 한 대 맞았을 뿐이다.

이 표정은 아버지가 지을 때만 좋은 것 같다.

아버지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 위대하고 거대한 남자는 엄청난 부자였단다. 이 세상 모든 여자를 유혹할 수 있을 만큼 빼어난 용모도 있었지. 말을 걸어서 사랑에 빠지지 않는 여자는 평생에 걸쳐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어. 이 세상 모든 남자의 우상이었다."

"와아."


뭔가 엄청 대단한 것 같다.

이런 산골짜기 오두막에서 사는 아버지나 자신과는 큰 차이다.

그렇게 대단한 남자라면 분명히 아주 멋진 곳에서 멋진 생활을 하고 있겠지.

적어도 이런 곳에서 풀과 함께 썩어가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부럽다.

나도 언젠가 크면 그렇게 되고 싶다.


"아버지, 그 사람은 누구예요? 어디에서 살고 있어요?"


내 질문에, 아버지는 다시 우울한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리켰다.


"...?"


내가 이해하지 못하고 고개를 갸우뚱하자, 아버지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나다."

"네?"

"그 위대하고 거대한 남자가 바로 나라구."


거짓말쟁이.

나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실망해서 중얼거렸다.


"치이, 아버지는 하루에 세 끼만 먹고, 부인도 어머니 한 명뿐이잖아요."

"이놈아, 끝까지 들어. 오늘 이 아버지가 남자 대 남자로 너에게 인생의 교훈을 들려주려는 거니까."


아버지가 가볍게 내 코끝을 살짝 쳤다.

아프다.


"그 위대하고 거대한 자는...."

"아버지죠."

"시끄러, 인마. 잘 들으라니까. 암튼 그 위대하고 거대한 남자는 행복한 나날을 보내다가 어느 날 한 여자를 만났단다."


아버지의 눈동자에 다시 습기가 어렸다.


"그 여자는 바로 천하제일...."


가슴이 두근, 크게 울렸다.

이 세상에는 천하제일미라는 게 있다고 한다.

이 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란다.

아버지도 만난 적이 있다고 했다.

그 여자 이야기구나, 직감한 나는 침을 꿀꺽 마시고 물었다.


"천하제일미예요?"

"잠자코 들으라니까!"


아버지가 내 이마에 꿀밤을 한 대 먹였다.

아, 왜 자꾸 때리는 거야. 어머니에게 맞고, 아버지에게 맞고, 이러다 머리가 남아나지 않겠네.

나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말을 꿀꺽꿀꺽 삼키고 방긋 웃었다.

일곱 살 평생, 오두막집 생활을 하면서 얻은 것은 튼튼한 머리통과, 맞아도 웃을 수 있는 얼굴 근육뿐이다.

웃어라, 그러면 더는 맞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산골짜기 생활은 재미없다.

형제나 친구도 없고 놀 거리도 별로 없었다.

기껏해야 산뱀이나 개구리 잡는 걸로 시간을 보내야 한다.

그렇다고 가족과의 시간이 많은가 하면 그렇지도 않았다.

어머니는 하루 종일 아버지 쳐다보는 게 일이고, 아버지는 그 옆에서 한숨만 쉬니까.

이렇게 가끔 아버지가 나를 붙잡고 이야기해 주는 게 유일한 즐거움이었다.

조금이라도 아버지가 길게 이야기해 주면 좋겠다는 생각에, 나는 공손하게 손을 앞으로 모으며 이야기 잘 듣는 아이의 모습을 만들었다.

마음에 흡족했던 모양이다. 아버지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 여자는 천하제일미가 아니라, 천하제일인이었단다."

"천하제일인이요? 어, 지금 아빠 얘기하고 있었던 거죠? 그러면... 혹시 엄마가 천하제일인이에요?"


저절로 눈이 동그래졌다.


"그래. 천하에서 제일 무공이 높은 사람이 하필이면 네 엄마였던 거야. 그리고 빌어먹게도 나를 사랑하고 있었던 거지."

"...."


어라.

아름다운 남자를 사랑하는 천하제일인.

험악하게 생긴 거구의 어머니.

뭔가 이상하다.

뭔가가 마음에 걸려.

누군가가 머리 뒤를 잡아당기는 기분이 들었다.


'왠지 어딘가에서 이런 이야기를 본 것 같은데.'


아버지가 분노한 듯 중얼거렸다.


"인생, 시궁창 되는 건 순식간이지. 천하제일인인 그 여자는 남자를 차지하기 위해서 그 사람의 열두 부인을 몽땅 죽여버렸단다."

"!"


아버지의 말을 듣는 순간, 엄청난 충격이 머리를 쳤다.

누군가가 망치로 머리를 두드린 것 같다.


열두 부인.

살해.

천하제일이라고 불릴 만큼 아름다운 남자.

그리고 거구에 괴력인 천하제일인.


'어라... 이거... 얀데레 무협 소설이잖아.'


순간적으로 그렇게 생각했지만, 아니, 아니, 설마, 그런 건 아니겠지.

무엇보다, 얀데레가 뭐야?

무협 소설이 뭐야?

그런 단어 자체가 낯설다고 할까. 태어나 지금까지 들어본 적도 없다.

혼란스러운 가운데, 아버지의 목소리가 계속 이어졌다.


"너도 이제 다 컸으니까 얘기를 해둬야 할 것 같아서 말이다."


아버지가 내 귀에 입술을 가까이 댔다.


"나는 머지않아 도망갈 거란다. 내가 무공은 익히지 않았어도, 어릴 때부터 구결은 몇 개 외우고 있었거든. 네 엄마 눈을 피해서 몰래 경공을 연습하고 있지."


후후후, 아버지의 웃음소리가 귀를 울렸다.


"멀지 않았다. 엄마가 무공이야 훨씬 높지만, 이렇게 가끔 집을 비울 때 도망치면 성공할 수 있을 거야."


아버지가 살짝 나를 끌어안았다.


"이건 너와 나의 비밀이다. 아무 말 없이 도망칠 수도 있지만, 넌 나의 하나뿐인 자식이잖니. 네 엄마는 미워도, 너는 내 핏줄이니까. 언젠가 커서 독립하게 되면 나를 찾아오너라. 너에게는 약혼녀도 있으니, 꼭 와야 한다. 아주 아름다운 여자의 딸이지."


아버지가 부드러운 소리로 웃는다.


"후후후. 얼마전에 그녀가 아이를 낳았다는 소식을 들었어. 고산신이라는 사람이 전해줬단다. 서로 성별이 다른 아이를 낳으면 혼인시키자는 약속이었거든."


그거 좋네. 약혼녀... 아니, 이게 아니고, 아버지... 나 지금 정신 잃어가고 있는데... 키득거리며 웃지만 말고 나 좀 잡아 주세요....

그렇게 생각하는 동안, 서서히 몸에서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머릿속이 아득해진다.

높은 건물과 새처럼 날아다니는 커다란 철기구, 바삐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머리를 가득 채웠다.


'... 이게 뭐야.'


빙글빙글 눈앞이 돈다.

한꺼번에 너무 많은 정보가 머릿속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처음 들어보는 언어가 웅웅 머릿속을 울리며 들렸다.

비행기, 아파트, 초등학교, 중학교, 백화점....

그리고 귀엽게 생긴 아이가 부모의 손을 양쪽에서 잡고 걷는다.

기쁜 듯이 어머니 아버지의 얼굴을 번갈아 보고 있었다.

어... 저건... 나잖아... 내 엄마, 아버지....

나는 그곳에서 마적화가 아니었다.

다른 사람이었다.

그 세상에는 깨끗한 건물이 있고 수세식 화장실이 있었다.

맛있는 음식이 산처럼 쌓여 있어 언제든지 사 먹을 수 있는, 그런 곳이었다.

나는 그 세계에 속하는 사람이었다.


"어, 적화야? 어이, 이봐, 아들? 아들?"


아버지의 목소리가 멀리 느껴졌다.

눈앞에서 색깔이 빠진다.

흑백 영화 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기절하고 있는 것 같다.


'빌어먹을.'


아무래도 나는 소설 속 세상에 환생한 것 같다.

아니, 다른 세계에 전생하는 거면 이세계 용사가 국룰 아닌가.

그런데 어째서 얀데레 무협 소설에 태어나는 거야.

그렇게 생각하는데 점점 시야가 어두워졌다.


'이대로 자고 일어나면 꿈이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렇게는 안 되겠지.

나, 분명히 그때 죽었던 거야.

울고 싶어졌다.

2022_01_05 17_17 Office Lens.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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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003 나는 살기 위해 밀고자가 되었다 +5 22.01.07 2,166 43 14쪽
2 #002 어머니를 닮았다 +7 22.01.06 2,780 49 13쪽
» #001 천하제일인의 아들로 환생했다 +11 22.01.05 4,010 64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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