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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투기 쓴것] '독특한' 본야스키... 피하지 않았던 아웃파이터

[K-1열전④] 레미 본야스키

 

'플라잉 젠틀맨' 레미 본야스키(39·네덜란드)는 K-1 역사를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인물이다. 한번도 우승하기 힘든 K-1 파이널에서 무려 세 차례나 정상을 밟아봤으며 쟁쟁한 역대급 파이터들과의 싸움에서도 호각을 이뤄왔다. 어네스트 후스트, 피터 아츠, 제롬 르 밴너 등 전설적인 선수들이 쇠퇴하며 대형선수 부제가 우려되던 무렵 그나마 빈자리를 어느 정도 채워주던 선수가 바로 본야스키다.

본야스키는 젠틀맨이라는 별명처럼 샤프하고 지적인 분위기로 팬들에게 어필했다. 은행원 출신이라는 커리어에서도 알 수 있듯, 정장을 차려입고 안경을 쓰고 있는 그의 모습은 엘리트 신사의 풍모를 풍겼다. 균형 잡힌 팔등신의 그는 링에 올라서면 또 다른 매력을 온몸으로 어필했다. 군살하나 없는 탄력적인 근육질 몸매를 바탕으로 한 마리 흑표범이 돼 거구의 상대들을 거침없이 때려눕힌 것. 링 밖에서나 링 안에서나 다른 선수들과 확실한 자신만의 캐릭터가 있었다.

 본야스키.JPG
 '플라잉 젠틀맨' 레미 본야스키
ⓒ K-1

 


 피하지 않았지만... 아웃파이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야스키는 팬들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많이 갈린다. 과거 레전드들 같은 경우 '낭만의 시대'를 이끌어간 주역으로 너나 할 것 없이 존경을 받는 경우가 대다수지만 본야스키는 그 못지않은 업적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도 열성팬 못지않게 안티 팬도 상당한 편이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파이팅스타일이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는 의견이 많다. 본야스키는 이른바 적극적으로 상대를 때려눕히기보다는 이기는 경기에 특화된 파이터였다. 누구도 따라하기 힘든 자신만의 패턴으로 상대를 잠식시키며 결국은 승부를 가져가는 유형이었던지라 화끈한 불파이팅을 선호하는 팬들의 구미에는 잘 맞지 않았다. 반면 다양한 테크닉과 경기운영에 매료된 팬들 입장에서는 한 수 한 수에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는 후문이다.

본야스키는 최고 수준의 스피드나 스탭도 그렇다고 일격필살의 무기를 갖춘 선수도 아니지만 자신만의 독특한 파이팅 스타일을 바탕으로 세 차례나 그랑프리 파이널을 정복한 선수다. 호리호리한 몸매에서도 알 수 있듯이 본야스키는 강펀치의 소유자는 아니었다. 펀치 테크닉도 정상급 선수들과 비교하면 다소 부족한 수준이다.

보통 이러한 경우 스탭을 적극적으로 살려 상대의 공격을 흘리거나 피하면서 자신은 잔 타격 위주로 많이 때리는 아웃파이팅을 할 수밖에 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야스키는 그런 유형의 패턴을 구사하지 않았다. 외려 상대의 공격을 몸으로 받아내며 경기 내내 버티었고 공세에 빈틈이 보이거나 약해질 때 쯤 소나기 같은 맹공을 펼쳐 전세를 뒤집어버리는데 능했다. 물론 그렇다고 절대 인파이터는 아니었으며 구태여 스타일을 구분하자면 아웃파이터쪽이 맞다고 볼 수 있다. 입식격투사를 통틀어서도 굉장히 특이한 유형임은 분명하다.

'슬로 스타터(Slow Starter)'라는 평가가 말해주듯 본야스키는 초반부터 거칠게 상대를 공략해서 승부를 보는 타입이 아니다. 그는 가드부터 확실히 올린 상태에서부터 경기를 시작한다. 두터운 글러브 속에 숨어버린 본야스키의 작은 안면을 맞추기 위해 상대 선수는 안간힘을 쓰기 일쑤다. 가드 위를 힘껏 두들기는가 하면, 가드를 내려오게 하기 위해 옆구리나 복부 쪽을 공략하기도 한다. 하지만 워낙 바디와 하체의 맷집이 좋아 안면만 착실히 닫아놓으면 상대는 좀처럼 그에게 충격을 주기가 쉽지 않다.

본야스키가 펀치 사용 레벨이 높지 않음에도 정상급 공격력을 선보일 수 있었던 것은 뛰어난 킥능력이 있기 때문이었다. 언제 어디서든 탄력 넘치는 다양한 킥이 가능한데 워낙 그 수준이 높은지라 다소 미흡한 펀치기술마저도 얼마든지 덮어버렸다. 특히 킥 타이밍을 적재적소에서 잡아가는 감각적 능력은 K-1 역사를 통틀어서도 최고 수준이다는 평가다.

본야스키는 강력한 하드펀처들을 상대할 때 미들킥을 즐겨 구사했다. 남발하기보다는 상대의 펀치가 나올만한 타이밍에서 미들킥을 때렸는데 이는 공격과 방어가 동시에 발휘되는 효과를 가져왔다.

본야스키의 놀라운 킥 타이밍 능력은 글라우베 페이토자(42·브라질)같은 뛰어난 킥커들을 상대했을 때 더욱 제대로 알 수 있다. 킥 자체의 파괴력은 같은 기술자들보다 특별히 나아보일 것은 없지만 서로 킥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자신은 잘 맞지 않고 상대에게는 쉽게 킥을 꽂아 넣기 일쑤다. 상대보다 더 뛰어난 킥 타이밍능력을 갖추지 못하고서는 불가능한 패턴이다.

본야스키는 철통 안면가드를 바탕으로 상대의 맹공을 받아내면서 천천히 상대의 경기 리듬을 몸으로 느낀다. 가드를 하는 순간에도 작은 틈만 있으면 회초리 같이 꺾여 쉴 새 없이 들어가는 로우킥을 차는데 이는 결국 후반에 가서 상대의 기동력을 묶어버리는 효과를 발휘한다. 무턱대고 본야스키를 향해 의미 없는 공격을 퍼붓다가는 외려 자신이 가랑비에 옷 젖는 식으로 잔매에 데미지를 입을 수 있다.

본야스키를 상대로 중반까지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면 이후에는 엄청난 반격을 각오해야 한다. 본야스키는 서서히 타이밍이 맞아간다고 느낄 무렵 공격의 횟수를 높여가면서 지속적으로 데미지를 입히고, 중반부를 넘어서 상대의 압박이나 체력이 떨어질 무렵 급피치를 올린다.

뛰어난 방어 실력만큼이나 상대를 몰아붙일 때의 화력은 상당히 강력하다. 하나하나의 위력은 다소 떨어질지 모르지만 펀치-무릎-킥 등을 소나기처럼 쏟아내는지라 아주 잠깐의 빈틈만 허용하더라도 치명적인 연타를 얻어맞을 수 있다. 난타전을 안하다 뿐이지 기세를 잡아 몰아칠 때는 어떤 파이터 못지않게 터프하기도하다.

불파이팅을 즐기는 터프가이들도 이때만큼은 본야스키의 맹공에 전면전을 펼치기 쉽지 않다. 경기 막판 상대의 체력이나 집중력이 떨어지는 시점에서 플라잉니킥 등 시각적으로 보여지는바가 큰 공격을 붕붕 날리며 이른바 분위기를 잡아먹는 퍼포먼스에도 능했다. 공격을 안할 때는 지긋지긋하게도 안하다가도 몰아붙일 때는 확실한 모습을 남기며 판정단에도 인상적인 모습을 각인시켰던 영리한 파이터가 바로 본야스키였다. 

 

-문피아 독자 윈드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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