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오예쓰 님의 서재입니다.

아포칼립스 속 괴물 저격수가 되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오예쓰
작품등록일 :
2023.05.10 10:02
최근연재일 :
2023.06.01 21:11
연재수 :
20 회
조회수 :
9,513
추천수 :
800
글자수 :
121,544

작성
23.05.18 18:03
조회
1,151
추천
33
글자
11쪽

666

DUMMY

‘죽고싶다.’


망할 집구석은 들어올 때마다 숨이 턱턱 막힌다.

벽면을 뒤덮는 곰팡이 때문만은 아니었다.

대낮부터 술에 찌든 저 아저씨 지분이 크지.


“야. 왔으면 왔다고 인사를 해야 할 거 아냐!”


잔소리는. 대꾸하지 않고 방으로 가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꿉꿉한 방바닥에 가방을 패대기치고 나서야 방문을 닫았다.


쾅!


“너 이 자식, 또 쌈박질 처했어?”


문을 잠가도 주정뱅이의 고함은 흐려지지 않았다.

한숨이 절로 나온다.


“쌈박질은···. 다구리 까였는데.”


혼잣말에 터진 입가가 따가웠다.

아. 구질구질해.


시궁창같은 인생을 정리해 읊자면 이렇다.

이름, 이성준.

직함, 흙수저 찐따 고딩.


너덜거리는 주먹에는 피가 잔뜩 맺혀있었다.

친한 척 굴던 일진들한테 집안형편을 들킨지 반 년.

괴롭힘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항상 죽자고 덤벼들어 되갚아주긴 하지만.

당장 두 놈이나 코피 터뜨려줬고.


“그럼 뭐하냐.”

내가 더 많이 맞았는데.

일 대 다수였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악으로 깡으로 버텨도, 세상엔 내 편이 거의 없다.


띵!


[사랑하는 아들, 유부초밥 해놨으니까 저녁에 데워먹어~ ^^]


딱 하나 뿐인 아군. 엄마를 제외하면.

알림과 함께 도착한 따뜻한 문자에 울적하던 마음이 나아졌다.


[잘 먹을게요.]


띵!


아.

생각해보니, 아군은 하나 더 있다.


[성준아.]

[과탐은 이거 사서 공부해.]


(기출 문제집.jpg)


[너 머리 좋다. 자신감 갖고 열심히 해라.]


재수없지만 똑똑한 형까지. 대학 가고 나서부터는 얼굴을 통 못 보긴 했지만. 그건 같이 사는 엄마도 마찬가지였다. 생선 장수는 아침 일찍부터 나가니까. 자주 부대끼는 건 알콜 중독자인 아버지 뿐.


톡, 톡.


폰중독자답게 빠른 타자로 형에게 답장을 썼다.


[엉. 형도 대학 잘 다니고. 여친 생기면 자랑 ㄱㄱ.]

[대학 와도 안 생기더라.]

[ㅋㅋ]


그래도 형은 성공했잖아. 좋은 대학 가고, 독립도 하고. 나랑 다르게.

꼬인 말을 삼킨 채로 몸을 일으켰다.


“어으···.”

아직 잘 시간은 아니지만, 삭신이 쑤셔서 좀 눕고 싶었다.


털썩.


팟.


낡은 침대에 누워 다시금 핸드폰을 켰다.

북마크를 눌러 들어간 사이트는 웹소설 사이트.


난 웹소설이나 게임을 좋아한다. 보상이 정직하게 돌아오기 때문이다.

현실과는 다르게 말이다. 현실은 노력해도 뜻대로 풀리지 않는 경우가 많으니, 이런 것으로라도 대리만족을 해야지.


“볼 거 더 없나.”


깨진 구형 스마트폰을 스크롤하기도 몇 차례.

한 작품이 눈에 들어왔다.


‘S급 크리쳐가 됨.’


크리쳐라. 보나마나 요새 유행하는 양산형 헌터물일 게 뻔하지. 다만, 크리쳐가 ‘됐다’는 거면···. 헌터물 속 괴물에 빙의했다는 건가?


new 표시가 깜빡이는 걸로 보아 신작. 초짜치고는 도전적인 소재를 쓴 거 같은데. 어디 심해 탐사나 함 해볼까. 그 생각으로 눌렀던 손가락이 허공에서 딱 굳었다.


음?


“··· ···미친.”


신규 업로드 회차는 300.

300화를 업로드 했다는 게 아니다.

발견한 작품은, 300회차가 한꺼번에 올려져 있었다.


- 혼돈 (完)


그뿐인가. 완결까지 내버렸다. 그것도 단 하루만에.


“···뭐지?”


나도 글을 써본 적이 있다. 그래서 더 믿기 어려웠다.

하다못해 좋아하는 장르의 팬픽을 써도, 봐주는 독자가 없으면 이어가기 버거운 게 사람이던데. 이걸 모아 뒀다가 하루아침에 싹 올린다고?


“··· ···진짜 뭐지?”


보고도 안 믿겼다.

서재로 들어가보니, 심지어 이게 첫작품인 쌩신인이었다.


“황당하네···.”


도대체 뭐하는 놈이냐. 그 생각을 하며 확인해본 작가의 필명은 ‘요한’.


“어.”


이거, 내 세례명인데. 엄마만 알고 부르는 이름이긴 하지만.


“일단 찍먹이라도 해볼까.”


원래 자유 연재란의 작품은 잘 안 본다. 쓰다가도 접고 튀는 작가들이 하도 많아서.

그런데 첫 업로드에 완결까지 내고 간 작품이라니. 이거 귀하다.


작품을 발견한 것은 최초 업로드 직후. 따라서 총 조회수는 0.

내가 첫 독자였다.


톡.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프롤로그를 눌렀다.

그렇게 10화 정도 읽어본 감상은 다음과 같았다.


“뭐 이딴 걸 글이라고 썼냐?”


문장도 유치하고, 뭔 말을 하려는지도 모르겠다.

스토리는 대략 이랬다.


<2300년, 연구소의 고대 바이러스가 유출되며 괴물이 생겨났다. 괴물은 기존의 동식물이 변이된 것으로, ‘크리쳐’라 불렸다. 이들은 인간을 공격하는 습성이 있었다.>


오케이. 이건 익숙한 맛이지. 인류를 위협하는 몬스터의 등장! 흔한 헌터물 도입부랑 비슷하다.

게이트나 던전이 열리는 게 바이러스로 바뀌었을 뿐.


<이들을 처치하려면 ‘코어’라는 약점 구슬 같은 걸 찾아 부숴야 했다.

또, 크리쳐는 공통적으로 불꽃에 약하다는 특징이 있다.>


불꽃?


‘핵폭탄 떨궈서 쓸어버리면 되겠네.’


그리 생각하며 다음화를 보니, 소설 속 사람들도 같은 생각이었나보다.


<핵 보유국은 자국의 크리쳐 발생지에 핵을 투하했다.>


그러나 그렇게 쉽게 끝나면 소설이 안 되지. 당연히 결과는 대실패.


<핵폭발로 인해 지구는 쑥대밭이 됐다. 정작 죽이려던 크리쳐는 다수 살아남은데다, 일반적인 불꽃에 내성까지 생겼다.>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 그래도 희망은 있었다.


<바이러스로 인해, 인류 역시 크리쳐에게 대항할 힘인 '조절력'을 갖게 되었다.>


<‘조절력’을 가진 초인은 ‘조절자’라고 불렸다.>


괴물에게 대항할 초능력자들도 생겼다는 것. 이 소설의 주인공도 그 중 하나였다.


뭐, 세계관은 어찌어찌 알겠는데. 문제는 이거다.

낯선 소재에 설명까지 불친절하다는 거.


“웹소설 안 읽어본 사람이 쓴 건가?”


등장인물들이 이능력자라 물, 불, 공기, 토양 분야를 조절하는 힘으로 크리쳐와 싸운다는데···.

딱 와닿지가 않는다. 그래서, 그걸로 괴물을 어떻게 패는데?


추려낸 내용은 이정도였다.


‘조절력’은 곧 물질을 다루는 이능력.

분야는 넷으로 나뉨.


불, 말 그대로 괴물을 불 태우는 역할. 근거리 공격수.

물, 물을 생성하거나 액체 종류를 변형시키는 종류. 지원계.

공기, 산소를 차단하거나 바람을 불게 하는 등의 광역 지원.

토양, 크리쳐 감지 및 치료. 탐지계 힐러.


"에반데."


불꽃만 너무 사기 능력 아닌가.

벨런스도 그렇지만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주인공인 서정우라는 녀석이, 진짜 답 없는 성격이라는 것.


< “난, 이게 '옳다'고 생각해. 너흰 어때.” >


“안 옳아, 니가 다 틀렸어 이놈아. 여기서 쟤 사정을 왜 봐주냐?”


시원하게 패버려도 모자랄 상황에 용서해주고 앉았다. 심지어는 동료로 삼을 수도 없는 쪼렙이나 악당에게마저도 그랬다. 착한 것도 이쯤되면 중증이다.


그래도 주인공 답게 버프를 받긴 한다.


<서정우는 파견 직전, '각성자'로 발현했다.>


싸우다가 크리쳐와 체액이 대량 섞이면서 한 급 위로 각성한 것이었다.

그렇게 서정우는 사기 캐릭터로 거듭난다.


“아, 짜증나네.”


어쨌든. 그렇게 먼치킨 능력도 가지셨겠다, 팍팍 사이다를 터뜨려줘야 하는 법인데. 대체 왜 저러는지.


“이런 건 웹소에서 안 먹힌다고요. 작가 요한씨···.”


그래도 설정을 대강 알고나니, 의외로 그 이후는 읽을만했다. 어쩌면 내 입맛에 꼭 맞았다. 비호감이던 주인공조차도 내 또래긴 했으니까.


욕하다가, 피식 웃다가, 조금 울 뻔 했다가.

몇 시간이고 네모난 액정 속 삼백화짜리 소설에 푹 빠졌다.


< “그러니 아바돈은 여기서 죽는다. 우리가 그리 만들자. 더 이상 크리쳐로 인해 슬픈 사람이 없게끔.”>

<“내 이름은 서정우야. 누군가를 곧게 돕고 싶었던 사람. 너희의 곁에서 도울 수 있는 기회를 주어 고맙다는 말이다.” >


“새끼, 오글거리는 대사 치고 난리야.”


말과는 달리 그의 말에 뭉클한 감정이 들었다. 이야기의 끝을 향한 대장정, 그 끝에 답답하게 여겼던 서정우마저도 정이 든 것이었다.


“아, 벌써 끝인가.”


어느새 진도는 마지막화 직전. 창 밖은 깜깜해져 있었다. 감회를 느낄 새도 없이, 손가락이 관성처럼 다음화를 눌렀다. 그만큼 이야기에 몰입 했다는 증거였다.


그런데, 내용이 좀 이상했다.


“··· ···어?”


웹소설에서 인물은 쉽게 죽어서는 안 된다. 독자들은 애정 가진 인물이 죽는 순간, 공허함을 느끼고 작품에서 이탈하기 때문이다.


그걸 의식한 것인지, 이 작가는 조금 다른 방식을 택했다.

막판에 싹 다 죽인 것이었다.


<이제 이 지옥에 남은 인간은 없다. 오직 아바돈과 그와 같은 크리쳐만이 세상을 어지럽힐 뿐이었다.>


“··· 진짜? 여기서?”


마지막 구절은 너무 안 믿겨서 소리 내서 읽어보기까지 했다.


등장인물들은 최종보스 ‘아바돈’과 처절하게 맞서 싸운다.

평범한 소설이라면 최선을 다한 끝에 이기고, 모두가 웃으며 결말을 맞이하겠지.


그러나, 이 소설에선 모두가 죽었다.

주인공 서정우마저도. 그것도 눈알이 다 뽑힌 채로.

인류는 패배했고, 세상은 깔끔하게 쫑났다.


“···.”

어처구니가 없어서 말도 안 나왔다.

‘이거 사실 다 꿈’ 보다 더 개같은 결말이 있을 줄이야.


마지막 회차.

지금까지 쭉 비어있던 작가의 말에 무언가가 써져있었다.




요한: S급 크리쳐가 됨. 이벤트 합니다. 댓글을 달아주시면 응모 완료입니다.




“··· 뭐하는 새끼지?”


꾸역꾸역 10화까지 읽었을 때보다 더 머리가 멍했다.

300화. 글자수론 거의 몇백만자.

독자를 엿 먹이려 쓴 글이라기엔 정성이 지나치다.

왜 이런 결말을 낸 건지, 도저히 이해가 안 갔다.


핸드폰이 가리키는 시간은 벌써 새벽 6시 66분.


“아오.”

집중하느라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이제 한 시간 뒤면 학교 가야할 시간.

밤 새서 읽었는데. 작가 이 미친놈.


열 받아서 댓글을 달았다. 첫 댓글이었다.


애들 살려내라. 등신아. — 6: 66 AM


악플을 남겨도 기분은 나아지지 않았다.

이딴 쓰레기같은 결말 보려고 내가 지금까지···.


지금 시간, 6시 66분.

66분?


— '작가 요한'과의 유사도 66%. 기타 조건 부합.

— '작가 요한'의 업보 동기화가 시작됩니다.


갑자기 딱딱하고 작위적인 음성이 들렸다.

깜깜한 방. 그 안에서 유일하게 빛을 내던 휴대폰의 불빛이 강렬해졌다.


"이게 뭔, 윽!"


네모난 불빛이 결국 방 안을 새하얗게 삼켰다. 망막이 타는 것만 같았다.

질끈 감은 눈 사이로, 목소리가 명확히 읊었다.


— ‘S급 크리쳐가 됨’ 세계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3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아포칼립스 속 괴물 저격수가 되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안녕하세요, 오예쓰입니다. +4 23.06.03 181 0 -
공지 연재 관련 공지 23.06.02 58 0 -
공지 연재 시간 변경 공지 23.06.01 24 0 -
공지 고봉밥한개님, 후원 감사합니다. 23.05.28 60 0 -
20 재판 (3) 23.06.01 115 11 15쪽
19 재판 (2) +1 23.05.31 114 11 12쪽
18 재판 (1) +2 23.05.30 129 12 10쪽
17 탈피 (4) +3 23.05.29 151 13 15쪽
16 탈피 (3) +2 23.05.28 155 12 15쪽
15 탈피 (2) +2 23.05.27 174 14 17쪽
14 탈피 (1) +1 23.05.26 185 17 13쪽
13 추락 (3) +2 23.05.25 225 16 14쪽
12 추락 (2) +3 23.05.25 243 18 14쪽
11 추락 (1) +4 23.05.24 249 21 11쪽
10 단합 (3) +7 23.05.24 272 22 17쪽
9 단합 (2) +3 23.05.23 273 23 11쪽
8 단합 (1) +4 23.05.23 306 24 16쪽
7 게임 체인저 (3) +6 23.05.22 344 28 15쪽
6 게임 체인저 (2) +3 23.05.22 362 25 13쪽
5 게임 체인저 (1) +8 23.05.21 432 26 11쪽
4 탈출 (3) +8 23.05.21 494 26 14쪽
3 탈출 (2) +6 23.05.20 533 34 10쪽
2 탈출 (1) +4 23.05.19 807 32 13쪽
» 666 +3 23.05.18 1,151 33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