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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로마제국에 이혼한 공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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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렁컨66
작품등록일 :
2024.07.25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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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7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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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1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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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0쪽

내가 유명해지다 (1)

DUMMY

<12>


“어떻게 됐느냐?”


뭔가 재밌다는 듯 바로 묻는 쿨라.


그 질문에 테니우스는 날 한번 쳐다보더니 공손하게 머리를 숙이며 대답했다.


“헤타란의 주인을 직접 뵙고 왔습니다.”


카산티나는 헤타란의 운영자이다.

주인은 따로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주인이 누군지 아직 알려진 바가 없다.

물론, 카리우스의 기억 속에도 그 주인에 대한 정보가 없다.

그래서 나 역시 그 주인이 누군지 궁금하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지 않은가.


“조건은?”


다급히 묻는 쿨라.

테니우스는 인상을 쓰며 대답했다.


“조건이 너무 과합니다. 세실리아는 브리타니아 공주라는 이점이 있다면서, 아우레우스(금화) 500을 주지 않으면 절대 팔지 않겠다고 합니다.”


아우레우스 금화 500?


나는 눈이 커졌고, 쿨라도 흠칫 놀라는 표정이다.


현대 기준, 대략 50억 원을 상회하는 몸값. 그걸 달라는 거다.


아마 일반적인 로마 귀족들이라면 절대 이 거래에 응하지 않았을 것이다.


필요할 때면 그냥 헤타란을 방문하면 되니까.


그러나 나는 인상을 쓰며 좀 더 생각해 봤다.


그렇다면 그게 정말 과한 돈인가. 아니면, 그건 몸값으로 충분한 돈인가.


한편, 내가 쿨라에게 빌리기로 한 돈도 아우레우스 금화 500인데, 그 숫자가 참 묘한 숫자였다.


혹시 쿨라의 의도가 어느 정도 반영됐을까.


아까 테니우스는 쿨라로부터 뭔가 귓속말을 들은 뒤, 협상하러 나갔고, 이후 이곳으로 돌아왔다.


그렇다면 차라리 내가 직접 협상을 해야 했나. 헤타란의 주인 역시 직접 만나 보는 게 나았고?


그러나 나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헤타란 주인은 아주 냉혹한 자야.'


이 일대의 매음굴 절반을 소유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 자는 악마다.


매음굴의 주인.


그래서 내가 나서는 거보다 쿨라를 이용하는 게 훨씬 더 나은 방법일 수밖에 없다.


내가 나섰다면, 어쩌면 헤타란의 주인은 500이 아니라 1,000 이상을 요구했을 지도 모른다.


적어도 헤타란의 주인은 쿨라에 대해선 아주 깍듯하며 공손하다고 한다.


그런 이야길 예전에 쿨라로부터 들은 적이 있다. 이건 카리우스의 기억.


그리고 그런 기억들이 떠올라 나는 아까 귓속말로 쿨라에게 협상을 부탁했다.

쿨라는 흔쾌하게 들어줬고, 그래서 헤타란의 조건을 이렇듯 알 수 있게 되었다.


다만, 너무 거액이라 지금의 내 재력으론 절대 지불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내가 이대로 물러설 순 없지.'


솔직히 나에겐 더 중요한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


"카리우스님,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솔직히 너무 비쌉니다. 제가 다시 한번 조율해 보겠습니다. 허나 500에서 많이 떨어지긴 힘들 겁니다. 제가 조금 전 머릿속으로 셈을 해 보니, 500이라는 돈은 절대 과한 게 아닙니다. 브리타니아 공주급의 노예라면 하룻밤 비용이 비쌀 수밖에 없고, 제가 오늘 이곳에서 지불해야 할 돈도 무려 10 아우레우스입니다."


순결한 아가씨에 대한 하룻밤 비용. 그게 무려 10 아우레우스(금화)라고 한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로마 군단병들의 4년치, 5년치 월급이다.


그러고 보니 쿨라는 막대한 비용을 치렀으나 그걸 나한테 양보한 것이다.


그리고 그걸 알게 되자, 나는 더 단호해졌다.


“좋다. 무조건 사겠다. 하지만 가격 절충은 더는 필요없다."


그러자 의아해하는 쿨라.


"그게 대체 무슨 말씀입니까? 제가 좀 더 가격을 낮출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한 인간의 몸값을 물건 사듯이 흥정하는 게 아직도 불쾌하기 때문.


물론, 최대한 이 현실에 적응하는 게 맞지만, 평생 익숙한 도덕적 잣대가 쉽게 사라지는 게 아니다.


그래서 나는 그냥 500 아우레우스(금화)를 지불하기로 결정했다. 거기다가 다른 측면에서 생각해 보면, 비싸게 사면 살수록 내가 예상하는 대가 역시 더 크게 나한테 돌아올 것이다.


"단, 사흘 뒤 500을 내겠다. 그때까지 반드시 순결을 유지하도록! 그게 내 조건이다!”


흠칫 하던 쿨라는 눈짓했고, 테니우스는 다시 밖으로 나갔다.


한편, 쿨라는 흥미롭다는 듯 날 쳐다보면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까지 지었다.


일개 노예한테 너무 많은 선심을 쓴다는 것.


그러나 나는 그런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머릿속으로 이런저런 생각들을 이어나갔다.


-----


'어쨌든 저지른 일이니까 앞으로 내가 수습하자.'


물론, 여전히 한 인간의 몸값을 흥정하고 그걸 빌미로 삼는 것은 거북하다.


하지만, 그래도 내가 큰돈을 들여 누군가를 구했다면, 나는 뭔가 큰일을 한 것이고,


이에 대한 자비, 동정, 이런 마음도 있겠지만,


앞으로 계약이 체결되면, 좀 더 현실적인 부분도 생각해야 한다.


'이것저것 따지면, 실비 정산은 반드시 해야지.'


왜냐하면, 인명을 구한다는 사실이 아주 중요하지만, 적어도 나 김동호는 나만의 방식으로 이익을 취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냥 땅을 파서 돈을 캐내는 게 아니다.


누굴 돕더라도 나한테 이익이 되지 않으면, 솔직히 난 관심이 없다.


물론, 대승적인 차원에서 거대한 선을 베풀 용의는 있지만.


그렇다면, 현재 상황에 대해 다시 한번 확인해 보자.


우선, 세실리아의 어머니 부티카는 여걸이다.


로마군단 1개 군단을 박살낼 정도로 아주 뛰어난 여성.


가까운 미래, 내가 세실리아를 부티카에게 넘기게 되면, 이때 적어도 이번 몸값은 반드시 최소한의 실비 정산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이게 단순한 사람의 몸값이 아니기 때문이다.


세실리아를 부티카에게 넘겨주면서 브리타니아(영국) 반란 사건을 막을 수 있다면, 로마군뿐만이 아니라 브리타니아인에게도 큰 도움이 된다.


로마 1개 군단을 박살냈으나 끝내 비극적인 죽임을 당한 부티카.


당시 무참하게 학살당한 수많은 브리타니아인들.


그들의 목숨을 내가 구할 수가 있다.


그들의 목숨 값을 다 합친다면, 이미 천문학적인 액수가 될 터.


'그러니 나도 적당한 이익은 챙겨야지.'


불쌍한 사람도 구하고, 나 역시 이익도 챙기고.


이게 바로 김동호의 원칙.


남 좋은 일만 하지 않고, 나한테도 좋은 일을 하는 것.


내가 전세금 5천만 원을 아끼면서 거지들에게 따뜻한 밥 한 끼를 줬던 것도 바로 서로에게 좋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럼 어떤 대가가 좋을까.'


이 사건을 빌미로 브리타니아와의 교역권을 내가 손에 쥐는 것도 하나의 방편이 될 테고,


그게 아니면 브리타니아인들로부터 군사적 도움을 받는 것도 하나의 방편이 될 수 있다.


물론, 그 원대한 계획을 달성하기 위해선, 내가 세실리아의 몸값부터 내야 하고, 다음으로 아버지 마르쿠스가 반드시 브리타니아에 파견되어야 한다.


'이럴 때 브리타니아 공주다운 몸값이라면 다들 내 노력을 무시할 수가 없어. 거기다가 여긴 일석이조가 아니라 일석삼조의 가능성도 있어.'


로마 전역에는 브리타니아인 노예들이 각 유명 가문에 포진해 있는데,


내가 브리타니아 공주를 구했다는 소문이 퍼지면, 어느 호사가는 카리우스가 방탕함을 넘어 미쳤다고 이야기할 것이며, 브리타니아인 노예들은 당혹함 속에서도 날 유심히 관찰할 것이다.


'그래. 이 시대도 정보가 아주 중요하단 말이야.'


주민센터에 있는 그 방대한 주민 기록들처럼 말이다.







<13>


사흘 뒤 드디어 검투사 경기가 열리는 아침, 수많은 사람들은 원형 경기장으로 모여들었다.


경기에 동원되는 맹수들은 지하 사역장에서부터 포효하며 괴성을 질러댔고, 바깥으로 통하는 문들을 모두 열어놓아 그 포효성이 경기장 주변을 요란하게 울리고 있다. 사람들의 짙은 살 냄새 때문에 맹수들은 더 광분하고 있었다.


이건 일종의 효과음.


그 포효성에 놀라 감히 경기장 근처로 다가오지 못하는 거지 아이들은 그럼에도 호기심 때문에 물러서지 않고 계속 원형 경기장 쪽을 쳐다보고 있다.


“이번엔 무조건 우리 로마가 승리할 거야! 파르티아의 크릭수스는 반드시 죽여야 돼.”

“크릭수스는 로마의 수치!”

“파르티아 백인장 크릭수스를 죽이자!”

“파르티아를 정벌하라!"

"로마여! 파르티아를 정벌하라!”


여기저기 주먹을 쥐고서 외치는 군중들 덕분에 경기 전부터 이 일대는 이미 열광의 도가니가 되어가고 있었다.


“이봐! 삼니움 출신들도 결코 무시하지 말라고!”

“삼니움의 세베루스! 그는 사자마저 찔러 죽였어!”

“세베루스! 반드시 이겨라! 우리의 영웅!”

“삼니움의 검투사들이야말로 우리의 영웅들이야!”


삼니움은 로마 남쪽 지대, 산악지대에 있는 야만 부족을 가리킨다.


이들 출신 검투사들은 노예상들에게 포획된 뒤 어쩔 수 없이 노예 검투사가 되거나 혹은 자신의 몸값을 받은 뒤 스스로 검투사가 된 이들도 있다.


특히 삼니움은 로마와 지리적으로 가까운 데다가 이런저런 시합에서 뛰어난 성적을 보였기 때문에 로마인들은 삼니움에 대해 꽤 후한 평가를 하고 있었다.


"야! 저기 봐! 검투사들이다!"

"와아아아! 검투사들이 나왔어!"


잠시 후, 검투사 경기의 전례와도 같은, 그래서 더 흥미를 고조시키는, 일종의 퍼레이드가 시작되었다.


강렬한 인상의 검투사들이 일제히 모습을 드러냈다.


이들 행렬을 보려고 사람들은 이미 난리였다.


“와아아아! 크릭수스를 처단하라!"

"와아아! 세베루스!”

“우와아아아아아!”


요란한 북소리와 함께 일제히 등장한 검투사들.


행사 감독관과 호위병들의 인솔하에 그들은 자신들의 우람한 체격과 멋진 용모를 드러냈다.


“와아아아아! 포르투스!”

“와아아아아! 세베루스!”


온몸에 올리브유를 잔뜩 바른 검투사들.

미끈거리는 구릿빛 피부는 아침 햇살을 받아 더 빛나고 있었고, 남성적인 매력은 더 강렬하게 사방으로 발산하고 있었다.

대다수 여자들은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고 선망이 가득한 눈으로 그들 검투사들을 쳐다본다.

이 시대의 검투사들은 일종의 아이돌이나 다름없다.


-----


“카리우스님, 곧 출입구가 열릴 것 같아요.”


호위병 키르케의 말에 나는 귀족 출입구 쪽을 힐끔 쳐다본 뒤 다시 고개를 돌렸다.


나는 귀족들이 들어가는 출입구 앞에 서서 그 모든 걸 계속 지켜봤다.


‘역시 이 시대 검투사들은 아이돌 급이야.’


하나같이 근육과 체격이 보통이 아니다.


이 시대 검투사들은 노예이긴 하지만, 하나의 상품이다 보니, 일반 평민들보다 훨씬 더 양질의 식사를 한다고 한다.


“세베루스! 날 가져요!”

“당신은 영원한 내 사랑!”

“당신을 원해요!”

"제 가슴을 보세요!"


특히, 잘생긴 검투사들은 유독 인기가 많다.


얼마 전에 열린 검투사 경기에서 사자와 싸워 사자를 때려죽였다는 젊은 영웅 세베루스.


그에 대한 기대감은 아주 대단했고, 그에게 열렬한 눈빛을 보내는 여자들이 아주 많았다.


그러나 이번 경기의 메인 이벤트를 장식할 검투사 크릭수스는 세베루스만큼 잘 생겼으나 오로지 악역일 뿐. 그를 칭송하거나 그에게 구애를 보내는 여자들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 이유는 바로 그가 파르티아의 백인장 출신이기 때문.


파르티아는 로마의 적국.

그래서 크릭수스는 그저 응징해야 할 대상일 뿐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도전자 흑곰을 응원하고 싶으나 그것도 쉽지 않다.


로마 테레베강 서안에 있는 바티카누스 경기장.

그곳에서 흑곰은 아주 잔인하기로 유명했던 검투사였다.


당시 흑곰은 바티카누스 경기장에서 꽤 이름을 날렸던 젊은 미남자 검투사를 죽인 뒤, 구태여 할 필요도 없는 퍼포먼스를 펼치며 그 악명을 높였다.


그는 미남자 검투사의 목을 자른 뒤, 삼지창에 꽂고는 득의양양한 모습을 하고서 경기장을 돌아다녔던 것이다.


당시 수많은 여성들은 그 모습을 보면서 통곡했고 대다수 관중들은 젊은 영웅의 죽음을 애도했다.


그래서 로마 시민들은 난감하다.


크릭수스와 흑곰의 생사 대결.


크릭수스는 로마의 수치. 흑곰은 잔인한 검둥이.


누가 죽어도 상관없으나


그나마 로마 시민들은 조금 더 크릭수스 쪽의 죽음을 원하고 있었다. 어쨌든 크릭수스는 적국 파르티아의 백인장 출신이니까.


-----


“카리우스님, 저기 좀 보세요. 원로원 의원 한 분이 지금 막 도착하신 것 같은데.”


로마의 축제 분위기를 두루 살피던 중, 나는 의아해하며 고개를 돌렸다.


솔직히 나는 좀 일찍 경기장 앞에 도착한 것인데, 현대인으로서 이런 거리 풍경을 보고 싶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통상 이런 경기가 열리게 되면 일반 관람객들이 먼저 경기장에 나타나 줄을 서게 되고, 이때 무척 어수선하고 무척 혼란스러운 시간이 된다.


때문에 상위 귀족들은 그런 혼란함을 피하고자, 대체로 일반 관람객들이 경기장에 다 들어가고 나면 그때서야 모습을 드러낸다.


원로원 의원들, 전현직 집정관들, 황궁 행정관들, 로마에 상주하고 있는 군단장들, 근위대장 등, 이런 사람들이 뒤늦게 나타나고, 또한 명문가 귀족들과 귀부인들도 조금 늦은 시각에 하나둘 가마를 타고서 나타난다.


그런데 굉장히 빠른 시기에 나타난 원로원 의원!


나는 하급 귀족가의 자제들과 섞여 있다가, 키르케의 언질을 받자마자 바로 정신을 차리고서 그 즉시 움직였다.


-----


'역시 이럴 땐 사회 경험이 정말 중요하단 말이야.'


이 시대 귀족은 나름 자부심이 있다. 자신의 가문에 대한 자부심과 자신의 자존심.


그러나 나는 현대인 김동호. 비굴할 때는 비굴한 모습을 보이는 공무원 김동호다. 민원들 앞에서 늘 비굴하게 웃었던 게 바로 나였다.


그리고 이런 방식은 이 시대에도 당연히 통할 수밖에 없다.


거기다가 카리우스의 기억에 따르면, 원로원 의원들은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존재들이다.


언제나 까탈스러우며, 언제나 비위를 맞춰줘야 하는 그런 존재들.


그래서 내가 재빨리 움직이자, 다른 하급 귀족들도 황급히 날 따라왔다.


그러나 내가 먼저 달려갔고, 어느새 나는 그들을 대표하듯 원로원 의원에게 먼저 인사를 드렸다.


-----


“아, 카리우스. 자네가 이렇게 예의가 발랐나? 이거 뜻밖이군.”


다행히 날 알아보는 원로원 의원.


그래, 내가 유명했겠지. 방탕하고 버릇 없는 놈으로. 그러나 나는 예의바르게 인사했다.


그리고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너무 경기가 기대돼서 조금 일찍 나왔는데, 의원님께선 어쩐 일이십니까?”


내가 슬쩍 질문도 하자, 다시 날 쳐다보는 원로원 의원. 그 때문에 다른 하급 귀족들은 대화할 기회가 없다.


"그야 이유가 있어 일찍 온 거네."


그러면서 약간 거만한 눈동자로 날 쳐다보는 원로원 의원 프로니우스.


사실, 저 얼굴에 비개가 가득한 저 남자는 자신의 아버지 덕분에 호민관을 역임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원로원 의원이 된 인간이다.


그나마 원로원 의원들 중에서 아주 젊은 나이 축에 속하는 남자.


그래도 원로원 의원이 되었기 때문에 그의 사회적 위치는 아주 대단하다.


“사실 난 자네처럼 도박 목적이 아니라 다른 목적이 있어. 뭐, 다들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겠지만."


좀 더 거만하게 주위를 둘러보는 프로니우스.


"바로 오늘은 저 로마의 수치! 크릭수스의 목이 잘리는 날이 아닌가! 나는 이를 축하하려고 일찍 나왔네.”


그러고 보면, 카리우스의 기억에 의하면, 저 원로원 의원 프로니우스도 광적인 매니아다.


몸은 뚱뚱하지만, 그는 혈기가 가득하다.


“그리고 폐하께서도 이번 경기에 큰 관심이 가지고 있네. 그래서 내가 폐하의 눈이 되고자 서둘러 나온 거네.”


프로니우스는 원로원 의원이지만, 친 황제파에 속하는 의원.

황제로부터 뭔가 언질을 받았다면, 당연히 그는 이런 식으로 충성을 다할 인물이다.


그러나 바로 그때, 나는 그의 입에서 황제가 언급되자마자 아주 과할 정도로 공손하게 머리를 숙였다.


그런 과한 모습에 프로니우스는 뭔가 만족스럽다는 듯 날 유심히 쳐다봤다.


역시 이런 적재적소의 과한 비굴함은 언제나 눈길을 끈다.


그리고 그런 비굴함 덕분에 날 쳐다보는 그의 눈빛은 조금 더 유순해지고 있었다.


-----


“하하. 자네가 요즘 정신을 차렸나 보네. 아! 그러고 보니 자네 아버지가 많이 편찮으시다고 하던데, 요즘 어떤가?”


나한테 이러저런 호기심이 생긴 듯 다른 이야기도 꺼내는 프로니우스.


나는 눈치껏 대답했다.


“점점 나아지고 있습니다."


"나아지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 의외라는 표정을 짓는 프로니우스.


나는 그 얼굴을 보면서 흠칫 했고, 프로니우스는 곧바로 묘한 이야길 꺼냈다.


"허면 브리타니아 파견을 갈 수 있단 말인가?"


이때 그의 입에서 브리타니아 파견 이야기가 나올 줄 몰랐는데


갑자기 그게 언급되자 나는 좀 당황했으나 그 즉시 두 눈에 이채를 띠며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이게 무슨 의도일까. 의도를 빨리 파악해야 한다.


우선, 프로니우스는 친 황제파.


그러나 카리우스의 기억들을 헤집어 보면, 당연히 알 수가 있다. 그는 아버지 마르쿠스와 정치적 견해가 다른 인물. 다른 파벌에 속해 있다.


그렇다면 이건?


순간, 나는 내 표정을 숨기며 다시 머리를 숙였다.


-----


"아, 그건 제가 말씀드릴게 아닙니다. 하지만 아버지께선 언제나 말씀하셨습니다. 폐하를 위하는 일이라면 목숨을 바치는 게 신하의 도리라고. 로마인으로서 전쟁에서 다쳤다고 해서 전쟁을 포기하고 물러설 수 없지 않습니까? 이것은 로마인으로서 절대 용납되지 않은 일입니다!”


그때 눈이 커지는 프로니우스.


“그렇다면 마르쿠스님은 무조건 브리타니아 파견을 갈 용의가 있다는 말인가?"


나는 대답하지 않고 그저 공손하게 머리를 숙였다.


사실, 프로니우스는 우리 가문에 호의적인 사람이 아니다.


그렇다면 반대파에 속한 프로니우스가 지금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아버지 마르쿠스의 속주 파견을 원하기 때문.


최근, 황궁 사정은 점점 복잡해지고 있다.


황궁 권력의 핵심인 권신 세네카는 어느덧 나이가 들어 노쇠했고, 근위대장 부루스 역시 잔병치레가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세네카와 부루스의 정치적 위세는 조금씩 금이 가고 있는 실정.


이런 시점에서 새로운 권력 구도를 형성하기 위해선 세네카의 잔당들인 구 행정관들은 조만간 척결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아버지 마르쿠스를 브리타니아 속주로 파견보내겠다는 것은 아직은 평화적인 방법.


그러나 그가 계속 황궁 일을 한다면, 어쩌면 큰 재앙이 닥칠 수도 있다.


'이게 바로 세력 교체 시기와 맞물려 있어.'


로마 역사에서 권신 세네카와 부루스의 퇴진은 기정 사실이다.


당연히 그 과정에서 정치적 숙청이 동반된다.

이 시대의 숙청은 단순한 정치적 은퇴가 아니다.

목이 잘려 효수되는 경우까지 포함되니까.


-----


"하하하! 듣던 중 아주 반가운 소리군."


프로니우스의 표정은 더 밝아진다. 거만했던 눈빛은 조금 더 부드럽게 변해간다.


“한데 아직도 믿을 수가 없어. 그런 말들을 분명 자네 아버지가 했다는 건가?”


나는 그 질문에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아버지는 브리타니아에 갈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을 테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거짓말을 한 것도 아니다. 분명 그는 과거에 명목상 그런 말들을 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럼 아주 잘 됐어! 내가 폐하께 이 충성스러운 말들을 반드시 전해야겠어. 마르쿠스님이야말로 진정한 충신이구나!”


나는 다시 머리를 숙인 상태에서 슬쩍 웃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아버지는 날 죽이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궁극적으로 아버지 마르쿠스의 안전을 위한 목적도 포함되어 있다.


아버지는 저물어가는 권력가 세네카 라인의 행정관이다. 세네카는 얼마 지나지 않아 네로의 손에 죽게 된다.


‘말실수했다며, 나도 벌 받겠다며, 브리타니아로 따라가면 되니까.’


그래서 나는 전혀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저 내 머릿속 잔꾀는 상황을 보며 계속 잘 회전되고 있을 뿐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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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로마제국에 이혼한 공주가 있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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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안토니아 공주의 침실 NEW +5 13시간 전 450 18 18쪽
29 첫날 밤, 그리고 태동 (2) +2 24.09.16 675 24 7쪽
28 첫날 밤, 그리고 태동 (1) +4 24.09.14 817 20 12쪽
27 수부라의 현인 (2) +5 24.09.13 787 22 7쪽
26 수부라의 현인 (1) +4 24.09.12 890 26 31쪽
25 안토니아 공주와의 첫날 밤 (2) +4 24.09.10 1,085 18 25쪽
24 안토니아 공주와의 첫날 밤 (1) +4 24.09.07 1,327 29 23쪽
23 카리우스 네로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게르마니쿠스 +5 24.09.05 1,275 33 25쪽
22 황제가 되다 (2) +3 24.09.03 1,296 30 30쪽
21 황제가 되다 (1) +3 24.08.31 1,449 30 14쪽
20 쿨라의 결단, 새로운 로마황제 +5 24.08.30 1,433 35 23쪽
19 우연히 시작된 로마 혁명 +2 24.08.28 1,487 41 29쪽
18 로마의 흑막이 되다 +7 24.08.24 1,604 44 23쪽
17 로마 식기 마트 +3 24.08.22 1,552 41 16쪽
16 로마를 바꾸자 +2 24.08.20 1,688 49 21쪽
15 강철의 주인 +4 24.08.18 1,806 57 24쪽
14 안타까운 이혼 공주 +3 24.08.15 1,930 51 21쪽
13 안토니아 공주 +3 24.08.13 1,932 56 21쪽
12 황금 궤짝 +2 24.08.11 1,966 52 24쪽
11 돈이 넘친다 +4 24.08.09 2,103 52 28쪽
10 영웅 (2) +5 24.08.07 2,089 51 23쪽
9 영웅 (1) +4 24.08.06 2,125 47 17쪽
8 내가 유명해지다 (3) +4 24.08.05 2,206 46 24쪽
7 내가 유명해지다 (2) +3 24.08.02 2,252 53 28쪽
» 내가 유명해지다 (1) +5 24.08.01 2,381 58 20쪽
5 출세의 길이 보인다 +9 24.07.30 2,486 63 22쪽
4 향락의 밤, 벌거벗은 무희들 +4 24.07.28 2,631 59 20쪽
3 특별한 능력 +4 24.07.27 2,787 60 22쪽
2 욕실의 여자 노예 +2 24.07.25 3,331 64 23쪽
1 주민센터 공무원 +5 24.07.25 3,914 65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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