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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 절세미녀 로마공주와 결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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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렁컨66
작품등록일 :
2024.07.25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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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9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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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1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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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4쪽

황금 궤짝

DUMMY

<26>


점점 더 어둑어둑해지는 로마.


이제 요소 요소마다 횃불들이 사방을 밝히고 있다.


“카리우스님, 역시 무사하셨군요. 정말 다행입니다.”


방으로 들어서자마자 날 유심히 쳐다보며 머리를 숙이는 쿨라.


넓은 방.


화려한 이 방 안에는 열대수 화분 외에도 가죽 흉갑 등 장식용 전투 무구들이 한쪽 구석에 전시되듯 놓여 있다.


“그 궤짝들은 이쪽으로 놓거라.”


쿨라가 뒤돌아보며 지시하자 노예들은 안으로 들어오더니 궤짝들을 바닥에 차례로 진열한 뒤, 일제히 그 뚜껑들을 활짝 열었다.


나도 모르게 눈이 커진다.


노릿노릿한 금화들이 가득 차 있는 궤짝들.


“이번 배당금으로써 가져온 금화입니다. 총 15,000 아우레우스입니다.”


와우! 이게 정말 금화란 말인가.


무려 15,000 아우레우스!


넓은 방, 벽면 횃불들 덕분에 금화는 더 반짝인다.


이 요사스러운 것들. 이게 다 금덩어리 주화다.


나는 아까 키르케의 도움으로 간신히 몸을 일으킨 뒤 침대에 앉아 있다가 궤짝 속 수북한 금화들을 보자마자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


이 순간만큼은 도파민이 폭발하며, 퉁퉁 부은 채 고름과 피가 나오는 어깨마저 한결 소프트해지는 느낌.


역시 쿨라는 셈 하나는 확실했다.


“키르케. 의자 가져와.”


내가 명령하자 키르케는 의자를 가져왔다.


내 앞에 쿨라가 앉았다.


계산은 계산이고, 그렇다면 쿨라는 지금 어떤 표정일까.


아마 속은 시커멓게 썩었을 것이다. 그가 흑심을 냈던 백인장. 그 백인장 직책을 그는 빼앗지 못했다.


그런데 나랑 눈이 마주치자마자 쿨라는 갑자기 요사스럽게 웃기 시작한다.


“하하하! 하하하! 정말 축하드립니다! 존경하는 카리우스님! 도대체 어떻게 하신 겁니까!”


이것 봐라. 날 쳐다보며 웃는 표정. 목소리도 무척 밝다.

내 승리에 대해 진심으로 기뻐해주는 듯한 그런 표정.

설마?

그럴 리가 없을 텐데.

잘못된 정보까지 줬던 인간.

그러나 역시 장사꾼은 어딜 가나 비위를 잘 맞추며 표정 연기 또한 일품이다.


하지만 나는 애써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그런 표정을 지었다.


“카리우스님! 정말 시치미를 떼실 작정입니까? 저 금화들을 보십시오! 무려 15,000 아우스레스입니다!"


좀 많긴 많다.


꽤 넓은 방인데, 방 대부분이 금화 궤짝들로 가득 차 버렸다.


"저한테 빌린 500 아우레우스만 베팅할 줄 알았는데, 무려 5,000을 써냈더군요?”


이때 나는 손가락으로 금화를 가리켰고, 몇 개 가져오라고 손짓했다.


그러자 쿨라는 금화 한 웅큼을 두 손으로 가져와, 거동이 불편한 내 옆에 내려놨다.


촤라랑, 금화가 쏟아지는 소리들.


와아, 나 김동호가 이런 금 부자가 될 줄 알았나.


무려 15,000개!


나는 금화 몇 개를 손에 쥐고 만지다가 더 없이 행복해지며 자신감이 커져갔다. 앞으로 뭐든 못할 게 없다.


"그럼 이제 이걸 어디에 투자하지? 쇳덩이 쪽이 좋을까? 강철 합금 제작과 무구 판매 같은 것? 그것도 꽤 괜찮을 것 같은데, 아니면 로마 의식주 개선에 돈을 투자해볼까. 그 벌이도 짭짤할 것 같고."


그러자 쿨라는 의아해하며 날 쳐다본다. 뭔가 눈빛이 반짝이고 있는 모습. 내가 저 금화들을 다른 곳에 투자하겠다고 하자, 상인의 호기심이 발동한 모양이다. 그러나 그 일들은 아직 급한 게 아니다. 좀 더 따져봐야 할 게 많다. 억울하지만, 난 이공계가 아니라 인문계니까.


"혹시 장사를 시작할 생각입니까?"


"장사? 뭐 그럴 수도 있고."


조금 전과 달리 시큰둥하게 대답하자 쿨라의 눈매가 좁혀진다.


솔직히 나는 구태여 쿨라랑 동업할 이유가 없다. 속을 알 수 없는 그런 녀석과 무슨 동업을 한단 말인가. 그러나 내 신변에 대해 관심이 많은 쿨라는 뭔가 솔깃한 모양.


"카리우스님, 근데 어떻게 5,000 아우레우스를 베팅할 생각을 정말 하신 겁니까? 전 아직 이해가 되지 않습니까?"


아까 했던 질문. 그걸 다시 던지는 쿨라.

나는 가볍게 대답했다.


“실수였어. 그러나 남자답게 그냥 제출했고. 내 운을 시험해 볼 수도 있으니까."


그러자 쿨라는 조금 전 내 시큰둥함에 속이 이미 꼬였는지 그 대답을 듣자마자 욱해 버렸다.


"도대체 그게 말이 됩니까! 운을 시험하다니요! 무려 5,000 아우레우스입니다! 무려 5,000 아우레우스!"


평상시엔 감정이 거의 보이지 않던 쿨라.


그의 얼굴에도 어느덧 큰 변화가 생겼다.


그런데 정작 본인이 더 놀란 듯 움찔하더니 인상을 쓰며 고개를 돌려 버린다.


그러나 다시 쿨라는 날 쳐다보며, 낮은 목소리지만 힘이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껏 어떤 누구도 감히 5,000 아우레우스를 베팅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15,000 아우레우스를 배당금으로 받은 사람도 없을 테지.


이게 한 사람에게만 집중되니 엄청난 돈이다.


그리고 내 생각엔 도박장 주인인 쿨라가 번 돈보다 내가 더 많이 번 것 같다.


"카리우스님, 정말 자신의 운을 시험해보신 겁니까? 그러다가 막대한 빚을 지게 되면 어떻게 할 생각이었습니까? 마르쿠스님의 전재산을 다 합친다고 해도 5,000 아우레우스에 턱없이 부족할 겁니다.”


보통 사람은 도박에 미치게 되면, 집도 팔고 아내도 팔고 자식까지 판다고 한다. 쿨라의 눈에는 내가 그런 놈으로 보이겠지.


“그렇게 됐다면, 마르쿠스님마저 노예 신세가 됐을지도 모릅니다."


이 시대 기준, 어쩔 수 없이 연대적 책임이라는 게 있다. 내 도박 빚은 결국 가문의 빚. 아무리 아버지가 황궁 법무관이라고 해도 그 빚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다.


“한데 어떻게 그런 베팅을 할 수 있습니까!”


다시금 그 목소리에서 숨겨진(?) 분노가 느껴진다.


그러고 보니, 내가 5,000 아우레우스를 베팅한 건 너무 심했을까.


한 가문이 몰락할 수도 있는 돈.


그러나 나는 그저 내 특권을 활용했을 뿐이다.


카리우스의 이상한 능력, 그리고 상위 귀족이 가지는 특권, 바로 후불제.


"다만, 이번 일은 전례가 없어 배당금 지급을 미루지 않기로 했습니다. 배당금은 모두 가져왔습니다. 허나 이번 일 때문에 밀랍판을 쓰는 방법이 앞으로 달라지게 될 겁니다."


나 때문에 도박 규정마저 바뀌게 되는 모양이다.


“그리고 한가지 더! 저희 도박사는 카리우스님이 보내온 밀랍판에서 흑곰이 적혀 있는 걸 똑똑히 봤다고 했습니다. 헌데 경기가 끝난 뒤 회수함을 열어보니 크릭수스가 적혀 있더군요. 그건 또 어떻게 된 겁니까?"


이번에도 나는 시치미를 뗐다.


“난 크릭수스를 적었는데 그건 또 무슨 소린가?"


그러자 더는 추궁할 수 없다는 듯 쿨라는 뭔가 생각하더니 갑자기 눈가에 예리한 기운이 일어났다.


"아무래도 저희 내부에 뭔가 문제가 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건 제가 사적으로 처리해야 할 사안인 것 같군요."


이번에는 약간의 살기.


이렇듯 쿨라의 표정이 갑자기 다양해졌다.


내 백인장 직책을 가져가려다가 쿨라는 날 부자로 만들어줬다.


이러니 쿨라는 차마 감정을 속이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최대한 자제하고 있다.


그런 모습에서 난 솔직히 궁금하다.


카리우스의 기억 속에 쿨라는 누군가를 위해 일한다고 되어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그는 누굴 위해 일하는 걸까.


지금껏 쿨라와의 기억들을 생각한다면, 뭔가 심각한 위해를 나에게 끼친 적은 없고, 적당한 선을 지키고 있다.


그게 대다수 카리우스에게 손해가 됐지만, 최근엔 모조리 득이 되고 있는 상황.


브리타니아 공주 세실리아를 만난 것도 그렇고, 이번 베팅도 그렇다.


그러나 그럼에도 여전히 심적으로 거리감을 둘 수밖에 없는, 그는 그저 그런 음흉한 자일 뿐이었다.


-----


“쿨라, 나 대신에 헤타란에 500 아우레우스를 가져다 주고, 세실리아를 좀 데려올 수 있겠나?"


잠시 후, 내가 몸이 불편하다는 시늉을 하자, 막 일어서던 쿨라는 정중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알겠습니다. 그 일은 제가 잘 끝내겠습니다. 한데 그럼 저도 한가지 부탁을 좀 드려도 되겠습니까?"


"부탁? 나한테 무슨 부탁?"


내가 의아해하자, 쿨라는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설명했다.


“정확하게는 카리우스님한테 드리는 게 아니라 마르쿠스님한테 드리는 부탁입니다. 그러나 그 전에 마르쿠스님을 꼭 뵙고 싶습니다. 그것만 도와주신다면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그러니까 아버지를 통해 뭔가 부탁을 하겠다는 건데,


하긴, 아버지 마르쿠스는 황궁 법무관으로서 로마의 손꼽히는 권력자 중의 하나가 아닌가.


이런 걸 보면, 이런 청탁 루트도 나쁘지 않다.


"대체 무슨 일인가?"


"그럼 간단히 설명드리죠. 크릭수스의 용맹함은 기억하실 겁니다. 한데 어제 있었던 암살 사건으로 인해 크릭수스가 아주 난처한 상황에 빠졌습니다."


크릭수스가 난처한 상황이 됐다고?


"이곳에 오기 전, 저는 황궁 근위대 감옥에 잠깐 들렀다가 뜻밖의 소식을 들었습니다. 카리우스님은 그 일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으니 들으시되 이 정보는 절대 외부에 공개하지 마십시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쿨라는 목소리를 좀 더 낮췄다.


"어제 체포되었던 암살자들 절반이 호송 과정에서 혀를 깨물었고, 일부는 심각한 고문을 당한 뒤 죽기 직전에 자백했다고 합니다. 그들은 바로··· 파르티아에 매수된 자들이라고 합니다."


파르티아에 매수된 자들?


아! 역시 내 예상이 맞다.


당시 나는 그 쪽지의 의도는 확실치 않으나 적어도 암살자 정체는 그렇게 예상했다.


이 시대 황족에 대한 암살 시도는 결국 사적인 목적이 아니라 정치적 국가적 목적이 다분하다.


그렇다면 이 시대의 가장 중요한 정치적 이슈는 무엇인가.


로마 권력의 핵심, 세네카와 부루스의 실각. 새로운 황궁 근위대장이 되는 티겔리누스의 등장, 그리고 로마의 숙적 파르티아와의 전쟁. 하지만 파르티아가 왜 고작 안토니아 공주를 노렸을까. 파르티아 입장에선 꽃다운 공주를 암살하는 게 득이 될 수가 없다. 오히려 로마 시민들이 더 분노하고, 더 강력해진 복수심은 전쟁을 더 힘들게 만들 수 있다.


'그래서 진짜 범인은 따로 있을 거야.'


-----


"그러니 좀 도와주십시오. 그는 겨우 노예 검투사에 불과합니다. 이번 암살 사건과 무관하며 그는 어떤 이적 행위를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암살자들을 사로잡는데 큰 공을 세웠으나 그걸 인정받지 못하고 있죠."


쿨라는 아주 진지하게 말한다. 크릭수스를 걱정하며.


사실, 쿨라는 나름 인맥도 많을 텐데


나한테 이러는 걸 보면 아버지가 나서지 않고선 도저히 크릭수스가 살아남기 힘든 상황인가 보다.


하긴, 크릭수스는 파르티아 전직 백인장.


암살자들의 자백을 받아낸 근위대는 이제 크릭수스에 대해 의심의 눈길을 보낼 수밖에 없다.


크릭수스의 부상이 심해 아직 고문이 시작되지 않았다고 하지만, 그 고문도 곧 시작될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쿨라는 이미 백방으로 뛰어다니다가 그게 안 되니 지금 이런 부탁을 하게 된 모양이다.


물론 쿨라가 이런 부탁을 하는 것은 당연히 이유가 있다.


이대로 크릭수스가 죽게 되면, 쿨라 입장에선 애석함을 떠나 큰 돈벌이를 잃게 된다.


쿨라는 이미 크릭수스에게 큰 투자를 했다. 그리고 마침내 로마인들의 인정을 받게 됐는데, 크릭수스가 이렇게 죽고 나면 너무 허무해질 수밖에 없다.


"우선, 저는 헤타란에 다녀오겠습니다. 그동안 마르쿠스님께 말씀 좀 잘 부탁드립니다."


쿨라는 밖으로 나갔고, 나는 노예들을 불러 방안 궤짝들을 치웠다.


그러면서 머릿속은 또 복잡해진다.


어느날 갑자기 여러 사람들이 얽히게 된 암살 사건.


세네카의 실각을 앞두고서 벌어진 이 사건은 앞으로 어떤 파장을 낳게 될까.


또한, 암살을 계획했던 진짜 범인은 과연 누구일까.


나한테 쪽지를 보낸 사람?


같은 사람? 아니면 다른 사람?


적어도 이건 확실하다.


이번 사건의 진짜 범인은,

사람들의 시선을 파르티아에 돌리면서 큰 이익을 취할 거라는 것이다.


그 때문에 내가 안토니아 공주를 구한 건 다시 생각해봐도 잘한 일.


우선, 즉각적인 전쟁을 막은 것이다.


전쟁이 선포되면 나 역시 로마군에 배속되겠지.


난 그저 대한민국 육군 병장 출신일 뿐인데, 크릭수스나 세베루스 같은 그런 전투를 할 수가 없다.


'칼 싸움은 역시 좀 그래.'


거기다가 로마군단 생활은 짭밥통이 처절한 개밥통일 텐데.


다만, 이번 사건으로 인해 여러 사람들이 날 주목하게 됐다.


특히, 생면부지의 안토니아 공주.


내가 깨어났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안토니아 공주는 직접 여길 찾아오겠다고 한다.








<27>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의 순혈을 가진 안토니아 공주. 그 공주의 파트리키우스 별장.


총관 메투스는 지금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안토니아 공주를 계속 만류했다.


점점 깊어지는 밤.


횃불의 매캐한 연기가 간혹 기분나쁘게 콧끝으로 밀려드는데,


원형 경기장에서 암살당할 뻔했던 공주는 이 밤중에 황궁 법무관 마르쿠스의 집을 방문하겠다고 한다.


그러니 별장 총관 메투스의 입장에선 극구 만류할 수밖에 없다.


위험하다.


로마의 밤은 어둠 속에 가려져 있어 그 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알 수가 없기 때문.


날이 저물면 귀족들은 다들 집으로 들어가고, 그 집은 노예 호위병들이 철통 같이 지키게 된다.


밤거리, 부랑자들은 곳곳에서 출몰한다.


한낮엔 거지였던 자들. 그들은 밤이 되면 칼을 숨긴 채 부랑자가 되기도 하고 혹은 타지 출신의 가난한 자들이 몇 푼 되지도 않는 아사리우스(asses) 동전을 노리며 행인들을 공격하기도 한다.


여기저기서 부랑자들이 떼지어 뛰어다니기도 하고, 어디선가 구타 소리, 찢어지는 비명 등이 들려오기도 한다.


이런 부랑자들을 노리며 밤거리를 순찰하는 야경꾼들은 그 업무 특성상 무자비한 자들이다.


일부 야경꾼들은 로마군단 병사들처럼 칼을 휴대하기도 하고, 대다수는 가죽 흉갑을 착용한 뒤 쇠방망이들을 들고 있다.


다음 날 해가 떠오르면 이 쇠방망이들은 대체로 피와 살점 등이 묻어 있는데 그만큼 로마의 밤이 거칠고 흉폭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 흉폭함은 언제나 어둠 속에 가려지게 되고, 그래서 여관에서 아늑한 잠을 자고 일어난 외지인들이 봤을 땐 로마의 밤은 그저 아늑하고 평화로울 뿐이었다.


“공주님, 제가 전언을 넣겠습니다. 카리우스님이 이미 깨어났다고 하니, 그를 이쪽으로 부르겠습니다.”


그러나 안토니아 공주는 오른쪽 눈을 찡그리며 총관 메투스를 노려본다.


저 표정.


그리고 저 고집을 보일 때면 메투스는 달리 방법이 없다.


“공주님, 정말 가시겠습니까?”


“난 그렇게 냉정한 사람이 아냐."


"하지만 공주님은 어제 큰일을 겪었습니다."


"그렇다고 다친 사람을 여기로 부른다는 게 말이 돼?”


“그걸 염두에 두신다면 차라리 며칠 뒤, 이곳에 부르는 게 어떻습니까?”


그러나 안토니아 공주는 자신의 고집을 꺾지 않는다.


“메투스! 화살 하나가 내가 앉았던 자리에 깊게 박혔다고 했지?”


“네, 그건 그렇습니다.”


"위치는?"


"등받이 쪽입니다."


공손하게 대답하는 메투스의 미간엔 어느덧 여러 겹의 주름들이 생겨난다. 오늘 아침, 그 현장에 직접 갔을 때, 아직 그대로 둔 그 현장 모습을 그는 직접 확인했다. 끔찍한 모습. 끔찍해질 뻔한 일이었다.


“그러니 딴소리하지 말고 서둘러 준비해.”


"하지만 공주님!"


"더 이상 말하지 마!"


결국, 일갈이 터져나오자 메투스는 인상을 쓰다가 할 수 없다는 듯 다른 방법을 강구하기로 했다.


“그럼, 제가 사람을 보내 티겔리누스님한테 부탁해 보겠습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주십시오.”


티겔리누스는 로마 소방대 지휘관이자 로마 밤거리를 지배하는 야경꾼들의 사령관.


그는 최근 와병 중인 부루스를 대신하여 새로운 황궁 근위대 대장이 될 거라는 그런 소문들이 파다한 인물이다.


그런 티겔리누스가 이번 행차를 돕게 된다면 공주의 안전은 좀 더 보장될 것이다.


또한, 서둘러 황궁 근위대에도 연락을 취해야 한다.


지금으로선 무조건 만반의 준비를 갖출 수밖에 없다.


'혹시라도 문제가 생기면, 결국 다 죽게 될 거야.'


결국, 이 별장의 사람들은 안토니아 공주와 생사를 같이할 수밖에 없다.


실제, 어제 공주가 암살당했다면, 이 집의 노예들은 도의적 책임을 지고서 어제 모조리 처형됐을 것이다. 그게 암묵적인 로마의 법이다.


메투스는 해방 노예 출신이라 그런 죽음을 바로 당하진 않겠지만, 적어도 재판은 받겠지만, 그럼에도 본인 스스로가 공주의 그런 죽음을 절대 용납할 수가 없다.


이후 시간이 좀 더 흐른 뒤, 메투스는 공주에게 어느덧 준비가 됐다고 말했고, 그러자 공주는 자신의 처소 타블리눔에서 마치 나비처럼 가볍게 걸어 나왔다.


이때 메투스는 무척 놀란 듯 그녀를 쳐다봤는데, 그러나 이내 그 표정이 굳어진 메투스는 자신의 표정을 숨기려고 일부러 고개를 숙였다.


안토니아 공주의 살색.


주변 횃불들 덕분에 더 붉게 보이는데


더 짙어진 붉은색 입술과 더 선명해진 눈과 눈썹을 보면 숨이 막힐 정도다.


같은 사람이라곤 믿기 힘들 정도.


어떤 조각상보다 아름다우며 마치 황홀한 꿈 같은 모습.


- 공주님, 당신은 이 로마의 여신입니다!


그래서 노예들은 찬사하며 언제나 공주의 발에 입을 맞추고 싶어하지만, 공주는 절대 허용하지 않는다. 하긴, 더러운 노예 따위가 감히 공주의 발에 입을 맞출 수 있겠는가.


그런 고귀한 공주가 오늘 눈 밑에 작은 점을 찍었다.


흔히 로마 아가씨들과 귀부인들은 화장을 하면서 얼굴에 가짜 점을 찍는데 열중하는데,


오늘 공주는 자신의 눈 밑에 아주 작은 점을 찍은 것이다.


그걸 확인한 메투스. 그래서 머리를 숙인 그의 표정은 아주 딱딱해져 있었다.


'오늘 밤 내가 특별히 주의해야겠군.'


메투스는 거친 입술에 피가 날 정도로 자신의 윗니로 입술을 꽉 눌렀다. 약간의 통증, 약간의 피맛, 그제야 의지가 더 충만해진다.


황제의 은밀한 명령.

공주를 지켜보고 공주를 보호하라.


'물론, 공주님께선 자유가 없으시니 괜한 신경을 쓰실 수도 있겠지. 허나 그 어떤 누구도 공주님의 마음 속에 들어가선 안 돼. 오로지 황제 폐하를 제외하고.'


지금 메투스가 흥분하는 이유는, 공주의 눈 밑에 있는 점, 이른바 눈물 점 때문이다.


저건 바로 이성을 유혹하는 점.


한때 헤타란의 노예 집사였던 메투스.


그가 로마 여자들만이 아는 그 비밀을 절대 모를 수가 없다.


-----


“메투스, 밤이 깊었으니 빨리 이동하자.”


“네! 지금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제가 목숨을 걸고 공주님을 안전하게 모시겠습니다."


"네가 준비하라고 했던 선물은?"


"선물들은 따로 실어뒀습니다. 노예들이 수레를 끌고 갈 겁니다.”


어느새 강철 투구를 쓰고 사슬 흉갑을 착용한 뒤, 허리 쪽에 긴 칼까지 착용한 메투스.


그는 완전 무장한 모습을 하고서 안토니아 공주와 함께 아트리움에 나왔고, 곧이어 아트리움 광장의 모습에 나름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공주가 사랑하는, 인플루비움 수조 근처.


그곳엔 이미 여러 대의 가마들이 준비되어 있다.


가죽 흉갑을 착용한 노예 병사들은 좌우 행렬에 맞춰 대기하고 있고,


집 밖에는 백여 명의 근위대 병사들이 와 있으며, 야경꾼 수십 명이 무리를 이뤄 대기 중이다.


솔직히 너무 과한 행렬.


그러나 어제 일도 있다 보니 메투스는 절대 과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자! 모두 정신 바짝 차리도록! 공주님! 이제 출발하겠습니다!"


드디어 안토니아 공주의 행렬은 별장 밖으로 나왔고, 횃불을 든 병사들과 함께 어둠이 짙게 내린 으슥한 로마 거리를 천천히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28>


“···이쪽입니다.”


어수선한 경장비 소리들. 요란한 발소리들, 일단의 함성들.


조금 전, 크릭수스에 대한 일 때문에 아버지에게 부탁을 하자 아버지 마르쿠스는 내 침실을 방문했다.


그러나 대화는 길게 이어지지 못했고, 안토니아 공주가 집 앞에 거의 도착했다는 또 다른 전언을 받자마자 아버지는 황급히 밖으로 달려나갔다.


나 역시 밖으로 달려나가 공주를 맞이해야 했는데, 이때 아버지는 이런 말씀을 하셨다.


- 다친 놈은 원래 가만히 있는 게다. 다친 놈은 가만히 누워있어야 귀인의 면목이 서는 거야. 적당히 아픈 척하는 것도 머리 좋은 놈이 하는 짓이야. 너도 적당히 머리를 굴려봐.


하긴, 부상당한 사람이 집을 돌아다닐 정도면, 그리 심각하지 않다는 말.

그래서 병문안 온 사람이 그걸 보게 되면 입장이 좀 난처해질 수 있다.

하긴, 아버지 마르쿠스는 정치적 위협이 생기면 걸핏하면 꾀병을 부리는 남자다.


그렇다면 이제 나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나.


그대로 앉아 있을까, 아니면 상처가 보이게 등을 돌리고 누워 있어야 하나.


더 아픈 척을 하려면 등을 돌린 채 끙끙거리는 소리를 내면 된다.


그러나 그땐 공주의 얼굴을 내가 볼 수가 없다.


로마의 절세 미녀, 역사가들이 크게 찬양했던 안토니아 공주.


그런 역사적 인물을 내 침실에서 만나는데, 그런 걸 무시한다고?


이런 미친,


난 절대 그럴 수가 없다.


‘그렇다면 이렇게 앉아 있자.’


문제는 상처가 어깨 뒤쪽이라 잘 보이지 않는 데다가 내가 의식을 차린 이후 시간이 꽤 경과되어 나는 좀 더 나아졌다. 아직 열이 가시지 않아 현기증이 나지만, 그렇다고 해도 워낙 젊고 다부진 몸뚱이라 충분히 버틸 만하다.


다만, 이런 외형은 좋지 못하다.


청동거울로 내 모습을 쳐다보니 병색은 있으나 크게 아파 보이진 않는다.


"!!!!!!"


맙소사!


절대 이런 모습이면 안 되는데.


그래서 나는 순식간에 절묘한 방법들을 생각해냈다.


-----


“야! 키르케. 붕대 좀 가져와.”


나는 키르케에게 붕대를 가져오게 한 뒤, 그때부터 서둘러 붕대를 상반신 전체에 칭칭 감았다.


두 팔도 칭칭 감았다.


그러자 거의 상반신 미이라가 된 내 모습.


"도련님, 거긴 아프지도 않은데, 제가 다시 풀어드릴까요?"


키르케는 당황했다.


다친 곳도 아닌 곳에 붕대를 다 감아 달라는 내 요구.


‘하지만 이 정도면 돼야지. 이러면 침실에 앉아 있어도 뭐라고 하긴 힘들 거야.’


이러면 아버지가 최초에 원했던 대로 정말 병자 같은 모습이다.


그리고 이런 모습을 하고 있으면, 황족에 대한 예의를 구태여 차릴 필요도 없어진다.


내가 마중 나가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적절한 변명거리가 될 수 있다.


그러자 키르케는 무척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날 쳐다봤다. 내 설명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도련님, 그냥 엎드려 계시면, 붕대에 묻어 있는 피와 고름이 보이니까 제가 엎드리는 거 도와드릴게."


그러나 절대 그럴 수 없지.


내 뒤통수엔 눈이 없다고.


옆으로 돌려보면 아직 너무 아프단 말이야.


나는 호통을 쳤다.


"밖에 나가 있어!"


결국, 키르케는 침실 밖으로 쫓겨났다.


그리고 나는 뒤뚱뒤뚱 걸어가, 청동거울이 올려져 있는 선반 쪽으로 다가가 내 모습을 계속 확인했다.


'그래. 역시 이 정도는 돼야 돼. 그래야 동정심도 자극하고. 나한테 부담감도 느끼게 되겠지. 나중에 뭐든 부탁하면 적어도 하나 정도는 들어주지 않겠어? 근데 공주는 대체 언제 와?'


그로부터 한참 시간이 걸렸다.


아무래도 마중 나갔던 아버지 마르쿠스가 안토니아 공주와 따로 뭔가 대화를 나누는 모양이다.


그 때문에 시간이 더 길어진 듯하다.


그럼에도 마침내 인기척들이 들렸고,


어느 여자의 굵은 헛기침 소리와 함께 곧이어 아주 향긋한 향기가 내 코끝에 와닿았다.


그걸 감지하자마자 고개를 들자, 안토니아 공주 외에도 아버지의 후처인 데브라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때 데브라는 날 한번 쳐다보더니 뭔가 못 볼 것을 본 듯 눈매가 심하게 일그러진다.


다행히 데브라는 나에 대해 간섭을 하지 않았다.


"여기가 카리우스의 방입니다. 공주님. 들어가세요."


공주의 뒤에 서 있던 데브라. 안내를 마친 뒤, 뭔가 혐오스러운 눈으로 날 쳐다보더니 등을 돌리고서 사라졌다. 물론, 내 관심은 아버지의 후처가 아니다. 내 관심은 오로지 저 안토니아 공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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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 절세미녀 로마공주와 결혼했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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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학살자는 충성을 원한다 NEW 6시간 전 346 12 11쪽
29 누군가는 황제가 되고 누군가는 신이 되었다 +4 24.09.18 613 19 7쪽
28 안토니아 공주의 침실 +5 24.09.17 738 24 18쪽
27 첫날 밤, 그리고 태동 (2) +2 24.09.16 815 24 7쪽
26 첫날 밤, 그리고 태동 (1) +4 24.09.14 928 20 18쪽
25 수부라의 현인 +4 24.09.12 982 26 31쪽
24 안토니아 공주와의 첫날 밤 (2) +5 24.09.10 1,182 18 25쪽
23 안토니아 공주와의 첫날 밤 (1) +4 24.09.07 1,416 29 23쪽
22 카리우스 네로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게르마니쿠스 +5 24.09.05 1,351 33 25쪽
21 황제가 되다 (2) +3 24.09.03 1,372 30 30쪽
20 황제가 되다 (1) +3 24.08.31 1,516 30 14쪽
19 쿨라의 결단, 새로운 로마황제 +5 24.08.30 1,504 35 23쪽
18 우연히 시작된 로마 혁명 +2 24.08.28 1,547 41 29쪽
17 로마의 흑막이 되다 +7 24.08.24 1,666 44 23쪽
16 로마 식기 마트 +3 24.08.22 1,616 41 16쪽
15 로마를 바꾸자 +2 24.08.20 1,752 49 21쪽
14 강철의 주인 +4 24.08.18 1,871 57 24쪽
13 안타까운 이혼 공주 +3 24.08.15 2,006 52 21쪽
12 안토니아 공주 +3 24.08.13 2,007 57 21쪽
» 황금 궤짝 +2 24.08.11 2,049 54 24쪽
10 돈이 넘친다 +4 24.08.09 2,180 53 28쪽
9 영웅 (2) +5 24.08.07 2,161 52 23쪽
8 영웅 (1) +4 24.08.06 2,204 48 17쪽
7 내가 유명해지다 (3) +4 24.08.05 2,288 47 24쪽
6 내가 유명해지다 (2) +3 24.08.02 2,336 54 28쪽
5 내가 유명해지다 (1) +5 24.08.01 2,464 61 20쪽
4 출세의 길이 보인다 +9 24.07.30 2,575 65 22쪽
3 향락의 밤, 벌거벗은 무희들 +4 24.07.28 2,729 60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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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욕실의 여자 노예 +2 24.07.25 3,464 65 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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