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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 절세미녀 로마공주와 결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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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렁컨66
작품등록일 :
2024.07.25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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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9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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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5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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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4쪽

내가 유명해지다 (3)

DUMMY

<17>


‘와아! 이거 진짜 엄청난데.’


삼니움의 영웅, 잘생긴 세베루스.


전차 경주의 영웅 포르투스는 다부진 군인 인상이다.


그러나 세베루스는 소문대로 미남자였다.


그는 탄탄한 근육을 바탕으로 엄청난 무력을 보이기 시작했다.


단번에 한 동료를 구한 뒤 그에게 깃발을 던져줬고,


그때부터 세베루스는 홀로 파르티아군과 싸우기 시작했다.


총 5명의 파르티아군 병사들은 그런 세베루스를 포위했고, 그는 포위된 상태에서 번개같이 달려들며 검을 휘둘렀다.


요란한 쇳성과 함께 서로의 무기가 부딪히는 순간, 번개같이 몸을 틀어 상대를 베어버리는 세베루스.


누군가 비명을 지르며 뒷걸음치다가 주저앉았다.


그러나 그자는 세베루스가 달려들자 모래밭 모래를 손에 쥐고서 세베루스의 얼굴을 향해 힘껏 던졌다.


화악!


비열한 수법이지만, 달려오던 세베루스는 물러서지 않는다.


그의 무릎이 상대방 투구 쪽 안면과 쾅! 하며 부딪히는 순간, 상대는 비명을 지르며 나가떨어졌다.


그러나 모래알 때문에 두 눈을 찌푸린 세베루스.


투구를 벗은 뒤 그 모래알을 털어낼 시간조차 없다.


이때 세베루스는 본능적으로 또 다른 상대의 칼을 피했고, 쉑! 쉑! 하는 소리를 내며 상대방의 어깨와 다리를 번개같이 베어버렸다.


그러고 보면 이걸 영웅 세베루스와 로마를 위한 극본이라고 보기엔 현재 상황이 너무 살벌하다.


제압당한 두 명의 파르티아 병사는 거의 피범벅이 되어 있다.


그걸 관중들은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봤고, 세베루스의 반격 또한 놓치지 않고 목격했다.


그 때문에 관중들은 조금씩 술렁이기 시작했는데,


조금 전까지 승세를 점했던 파르티아군 병사들.


그러나 세베루스가 나서자 상황이 이상해졌고, 세베루스를 제압하기 위해 그들은 다시 의기투합하며 달려들었다.


그렇게 세 사람이 전력을 다해 세베루스를 노리자, 홀로 대적하는 세베루스는 그들을 상대하기가 쉽지 않다.


옆으로 피하면, 거기서 또 칼이 날아들었고,

데굴데굴 굴러 피하면 머리 위에서 그물이 뚝 떨어진다.


손발이 점점 어지러워지던 중,


세베루스는 쓰러져 있던 로마군 병사 때문에 뒤로 나뒹굴었고,


이때 관중들은 안타까움의 탄성들을 질러댔다.


그러나 세베루스는 노련하다.


데굴데굴 구르다가 바로 몸을 세웠고, 대략 거리를 벌리자마자 그물을 휘두르며 자신을 향해 다가서는 상대를 향해 일격을 가했다.


그러나 세베루스의 상대는 한 명이 아니었다.


바로 그때, 누군가 기다렸다는 듯이 뒤에서 나타나, 큰 방패를 들어 세베루스의 머리를 힘껏 내려쳤다.


엄청난 충격에 세베루스는 비명을 질렀고,


그 와중에 그의 투구는 튕겨 나갔으며, 쓰러진 세베루스의 긴 머리카락이 사방에 흩날렸다.


그러나 세베루스는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는 듯


잠시 비틀거렸을 뿐.


바로 자세를 잡은 뒤, 방패를 든 상대의 다리를 번개같이 베었다.


비틀거리는 상대.


그 상대로부터 방패를 빼앗은 뒤, 그걸 들고서 미친 듯이 상대의 투구를 내려 찍었다.


자신이 받은 걸 그대로 돌려주겠다는 세베루스.


상대방 투구에서 우수수 피가 튀었고, 이내 축 늘어지는 상대.


그 모습에 관중은 다시 열광했다.


-----


“우와아아아아!! 세베루스! 세베루스!!"

"로마는 절대 지지 않는다!"

"세베루스 힘내라!!”

"세베루스 힘내라!!”


절망의 순간에 대세를 역전시킨 세베루스.


그 불굴의 응전에 나 역시 흥분했고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금 전까지 1대5의 대결이었고, 그게 1대3의 대결이 되었으나

내내 약세였던 세베루스는 계속해서 상대방을 무력화시키고 있다.


또한,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치열한 공방전도 벌어졌다.


세베루스는 떨어져 있던 그물을 주운 뒤 그걸 휘두르며 상대를 교란하다가, 번개같이 한 사람을 더 제압했다.


상대의 몸통과 두 손이 그물에 엉키자마자 곧바로 달려들어 미친 듯이 공격을 퍼부은 것이다.


이번엔 자신의 검으로 내려치고, 또 내려치고.


상대가 칼로 막으며 저항했으나 점점 무기력해진다.


결국, 상대는 칼을 놓쳤고, 가슴팍에서 피가 튁튁 튀다가 결국 축 늘어졌다.


반면, 그사이 세베루스의 등을 노리며 다가온 마지막 상대는 세베루스의 목덜미를 노리며 번개같이 검을 휘둘렀다.


그 찰나의 순간, 세베루스는 그 기습 공격을 알아차린 듯 번개같이 몸을 앞으로 숙였고, 그 바람에 상대의 타점이 달라졌다.


상대방의 검이 세베루스의 뒷덜미를 스쳐 지나갔다.


우수수 잘려져 나가는 머리카락들.


그러나 그 순간을 놓치고 않고 데굴데굴 구르던 세베루스는 재빨리 일어서며 다시 자세를 잡았다.


뒤따라오며 다시 기습을 가하려던 상대는 멈칫했고,


세베루스는 포효하며 달려들었다.


그때부터 관중들은 묘기나 다름없는 두 사람의 일격과 반격을 숨을 죽이며 쳐다봤다.


그러나 그들의 승부는 얼마 지나지 않아 곧 막바지에 달했고, 요란한 비명 소리가 울렸다.


세베루스는 머리를 숙여 상대의 검을 피한 뒤 상대의 옆을 빠르게 돌아가며 번개같이 상대의 어깨를 베어버린 것이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그자를 노려보던 세베루스는 다시 달려들었다.


서로의 검이 또 다시 부딪혔고, 잠시 힘 싸움을 벌였으나


상대의 검을 힘껏 밀어 상대의 검이 위로 올라가자,


세베루스는 그대로 상대의 흉갑을 베어버렸다.


촤라락! 하는 소리와 함께 불꽃이 튀었고, 그 기세 그대로 상대의 팔도 베어버리는 세베루스.


비틀거리는 상대.


그러나 더 냉혹해진 눈으로 상대를 노려보던 세베루스는 하늘 높이 검을 들었다가 사자처럼 달려들며, 압도적인 힘으로 상대를 미친 듯이 내려쳤다.


투박한 공격이었지만, 그 공격을 막느라 상대는 미처 다른 행동을 할 수가 없다.


요란한 쇳성이 들리며 서로의 검이 계속 부딪히다가, 어느 순간 한 사람이 주저앉았다.


그의 검 끝이 부르르 떨리는 순간, 세베루스는 비틀거리는 상대의 머리를 겨냥하며 번개같이 검을 휘둘렀다.


번쩍!


검날에 빛이 반사된다.


조금 전, 세베루스의 뒷목을 노렸던 상대.


그러나 이번에도 그 위협을 그대로 돌려주는 세베루스.


그의 검날이 깊숙이 상대의 목을 파고든다.


그 모습에 관중들은 두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가 숨을 죽이며 쳐다봤다.


찰나 상대의 목이 기우뚱하더니 무척 전율적인 광경이 나타났다.


상대의 머리가 투구째 바닥에 떨어진 것이다. 마치 흘러내리듯 말이다.


설마 했는데 세베루스는 정말 상대의 목을 베어버린 것이다.


그렇게 목을 잃은 몸통. 그 몸통은 바르르 떨며 비틀거렸고, 그 광경을 목격한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번 대결은 생사대결이라 아니라고 했다.


그러나 세베루스는 조금 전의 앙갚음을 하듯 상대의 목을 그냥 베어버린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내가 정말 오해했던 모양이다.


이곳 원형 경기장의 검투사들은 모두 진심이다.


그저 로마군 편, 파르티아 군 편으로 나누어져 있을 뿐.


그들은 그저 전력을 다해 싸운 것이었다.


그리고 이때 엄청난 함성들이 터져나왔다.


모든 관중들이 토해낸 함성들.


세베루스의 승리를 축하하는 엄청난 함성들이었다.


그 작렬하는 함성에 나는 귀가 먹먹해지는 기분이었고,


거대한 열기에 휩싸인 원형 경기장은 마치 활화산인 듯 그대로 폭발할 것만 같았다.


-----


그러나 이럴 수가. 진짜 사람이 죽었다.


내 눈앞에서 벌어진 참상.


누군가는 죽었고, 누군가는 다쳤다.


이게 가상대결이라고 했으나 단순한 시나리오가 아니다.


그저 가상 상황만 만들었을 뿐.


실제 전투를 방불케 하는 교전이 있었고, 세베루스는 홀로 다섯 명과 싸워 이겼다.


그의 검술은 언뜻 봤을 때 화려하지 않으나


거칠고 투박하더라도 심장을 끓게 하는 강렬한 매력이 분명히 있었다.


그게 바로 로마 시민들이 좋아하는 세베루스의 매력일까.


-----


'하! 그래도 이럴 땐 적응이 안 된단 말이야.'


내가 저런 시체를 본 것은 처음이다.


특히 목이 잘린 시체.


나는 더는 차마 쳐다보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다가 이내 털썩 내 자리에 앉았다.


“세베루스!! 세베루스!! 세베루스!!”

“와아아아아아아!! 세베루스!!!”

"로마의 영웅 세베루스!!!"


환호하는 사람들.

그들의 함성은 거칠 줄 모른다.


물론, 세베루스의 용감한 도전은 칭송할 만하다.

그러나 지금 나로선 선뜻 받아들이기 힘들다.

조금 전에 있었던 살인 광경 때문.


그 때문에 현대인 김동호로서의 내 감정은 차갑게 식었으나 한편으론 이게 바로 '로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긴, 내가 있는 곳은 로마다.

나는 이제 이런 사실들을 현실로써 수긍해야 한다.


그 때문에 기분이 좀 복잡해지던 중, 나는 문득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왜냐하면, 내 자리, 우측 엉덩이 쪽에서 묘한 이물감이 느껴졌기 때문.


그래서 그 즉시 손을 넣어 만져 보자, 뭔가가 손에 잡힌다.


혼란한 함성들 속에서 그걸 빼서 즉시 살펴봤는데, 그건 새카만 가죽 주머니였다.


-----


'이건 대체 뭐지? 왜 여기에 있지?'


나는 좀 혼란스러웠다.


지금껏 여러 번 일어섰다가 자리에 앉았지만, 이런 물건을 본 적이 없다.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옆에 앉은 악테는 연신 고함을 지르고 있다. 다른 귀족들도 그 상황은 비슷하다.


그러고 보니 저 세베루스는 비틀거리는 동료들과 함께 정중앙에 서서 로마군 깃발을 힘껏 흔들고 있다.


바람을 가르는 찬란한 깃발.


그 퍼포먼스 덕분에 군중의 함성은 더욱더 커지고 있다.


그 열기는 아직 사라질 것 같지 않다.


그 때문에 나는 다시 고개를 숙여 그 가죽 주머니를 좀 더 자세히 살펴봤다.


주인이 누군지 알 수 있는 표식 같은 게 저 안에 있을까.


그래서 호기심을 느끼며 주머니를 활짝 열어봤는데, 그 안에는 단순한 표식이 아니라 반쯤 접혀져 있는 종이가 들어 있다.


‘이건 꼭 파피루스 같은데.’


묘한 감촉의 종이.


그걸 잡고서 꺼낸 뒤, 나는 곧장 펼쳐봤다.


그리고 거기엔 휘갈겨 쓴 글자들이 빽빽하게 적혀 있다.


나는 이때 카리우스의 기억에 의존하며 글자들을 하나씩 읽어가던 중, 얼마 지나지 않아 미간이 심하게 좁혀졌다.


또한, 당황한 나는 본능적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 와중에 생각해 보니 내 호위병 키르케는 내 명령에 따라 가짜 밀랍판을 들고서 원형 경기장을 떠난 뒤다.


그렇다면 나는 키르케의 도움을 받을 수 없고, 홀로 남은 나는 이제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솔직히 아주 당혹스럽고 아주 난감한 상황.


그러나 나는 이내 정신을 차렸고, 그 파피루스를 얼른 구겨 쥐고서 내 토가(귀족 의복) 안쪽 주머니에 넣었다.


새카만 가죽 주머니도 따로 챙겨 안쪽 주머니에 넣었다.


도대체 누가 나한테 이걸 남겼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 메시지는 아주 위험한 사건을 예고하고 있다.


다만 이게 진실인지 거짓인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이 메세지의 진위를 확인하는 것은 오히려 간단한 문제.


비록 발신자가 누군지 모르겠으나, 왜 그걸 내 자리에 던져놓고 갔는지 모르겠으나, 이런저런 상황들에 대한 이해는 내 머릿속에서 빠르게 조합되었다.


'그래. 시간만 지나면 알 수가 있어. 문제는 그게 정말 사실이라면···.'


나는 세베루스를 외치는 관중들 사이에서 점점 더 깊은 생각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다.


최소한 파피루스에 적힌 메세지는 아주 위험천만한 정보를 담고 있기 때문.


다만, 그걸 절대 공개해선 안 된다는, 만약 그걸 공개한다면 내가 더 위험해질 거라는 그런 경고도 적혀 있었다.


그래서 나로선 더 당혹스럽다.








<18>


사실, 나는 주민센터 공무원으로서 이런저런 자치 프로그램들을 기획했다. 구청급이나 시청급의 큰 프로젝트는 아니었지···만, 크고 작은 프로그램들을 기획하면서 나름 다양한 경험들도 해 봤다.


지난 번 진행했던 어르신들을 위한 효도 밥상, 나눔 한끼, 이런 일시적 행사 외에도 댄스, 바리스타, 캐리커쳐, 요가, 유도, 실용공예, 서예 등 이런저런 교육 프로그램들을 때론 내가 기획했다.


그리고 어린이날 아이들을 위한 마술쇼 같은 프로그램들도 내가 기안했었다.


- 근데 죄송한데 그거 좀 배울 수 있을까요? 유튜브에선 종종 기술 공개도 하던데.

- 선생님, 죄송합니다만, 저흰 그게 영업비밀입니다.


내가 만났던 프로마술사들은 그런 기술들에 대해 절대 가르쳐줄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내가 어디 포기할 사람인가.


행사 명목을 걸고서 줄기차게 달라붙자 한 푼이라도 아쉬운 마술사로부터 몇 가지 기술들을 배울 수 있었다.


일종의 손 기술들.


- 키르케, 잘 봐.


텅 빈 손바닥을 펼쳐 보이고 있다가 갑자기 손을 웅크리는 순간, 아담한 밀랍판이 내 손가락 사이에서 환상처럼 나타났다.


‘무’에서 ‘유’가 창출되는 그런 기술.


키르케는 눈이 커졌다.


물론, 그 기술의 방법은 아주 단순했다.


손가락 사이에 낄 수 있도록 한쪽 끝에 작은 돌기를 미리 만들어둔 밀랍판.


그 밀랍판을 내 손등에 감추고 있다가 순간적 스냅을 이용해 키르케에게 보여준 것이다.


그러나 밀랍판 사이즈가 너무 크면 손등에 숨길 수가 없다.


그러나 이 시대 도박 목적의 밀랍판들은 대체로 크지 않다.


도박 베팅하는 귀족들 숫자가 워낙 많다 보니 점점 더 축소되었던 것.


- 잘 봤지? 다시 해 볼게. 이번엔 여기 있던 밀랍판이 다른 판으로 교체될 거야.


아쉽게도 이 시대는 고무밴드 같은 게 없다.


그래서 밀랍판 한쪽에 약간의 홈을 만든 뒤 그걸 명주실로 미리 연결해뒀다.


그리고 그 실은 옷속 팔뚝을 지나 반대편 손과 연결된다.


옆구리에 올려져 있던 반대편 손은 기술이 시작되면 갑자기 쭉 뻗게 되고, 이때 손바닥에 있던 밀랍판은 재빨리 소매 안으로 빨려 들어온다. 동시에 손등에 숨기고 있던 밀랍판을 앞으로 밀어내 순간적으로 밀랍판들이 교체된다.


당연히 이런 기술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행동이 자연스러워한다는 것. 또한, 상대방 시선을 반드시 교란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 봤지?


다시금 키르케는 놀란 듯 날 쳐다봤다.


칼을 잘 쓴다는 키르케.


그러나 그녀마저도 순간적 변화를 인지하지 못했다.

내 손놀림이 빠른 것도 있지만, 기술의 성공을 좌우하는 것은 단순한 속도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른 손동작을 하며 중간에 키르케의 시선을 교란시켰기 때문에 좀 더 쉽게 성공할 수 있었다.


- 이제 어떻게 된 건지 알려줄게.


나는 키르케에게 밀랍판을 교체하는 방법 등을 알려줬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이 많이 있을 때, 어떻게 그 많은 시선들을 교란할 수 있는지 그 방법에 대해서도 알려줬다.


그리고 전날 밤, 키르케는 도박장에서 몰래 도박용 밀랍판 하나를 훔쳐 왔다.


그게 바로 가짜판.


그 가짜판에 나는 미리 ‘흑곰’ 베팅을 써 뒀다.


그래서 키르케는 조금 전 그 가짜판을 도박사한테 보여줬고, 이후 진짜판으로 교체한 뒤 그 진짜판만 회수함에 넣었다.


이런 수고를 자처한 것은 역시 쿨라를 믿을 수가 없기 때문.


도박장을 운영하는 쿨라는 어떤 경우에도 손해가 날 수가 없는 구조다.


도박 경기가 끝나면, 무조건 도박장 몫으로 수익을 떼게 되는데


나머지 수익 부분에 대해서만 도박 승자들에게 배당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쿨라는 누가 이기든 상관없이 수익을 취하게 된다.


‘결국, 그자는 이 경기의 전권을 가지고 있단 말이야.’


이런 자라면 자신의 의지에 따라 경기의 승패마저도 좌우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혹시 몰라 키르케에게 이 일을 지시한 뒤, 그녀를 경기장 밖으로 보냈다. 원래 민감한 증거는 최대한 빨리 제거하는 게 수순이기 때문이다.


-----


‘근데 나한테 이런 일이 생길 줄 몰랐단 말이야.’


내가 받은 은밀한 파피루스 쪽지.


우선, 그걸 감추긴 했으나 머릿속은 더 복잡해졌다.


그사이 영웅 세베루스는 동료들과 함께 안토니아 공주에게 인사를 마친 뒤 경기장에서 퇴장했으며, 그 요란했던 환호와 갈채들은 어느덧 사라지며 관중들은 다시 이성을 회복하고 있었다.


이후, 나는 계속 다른 경기들을 봤지만, 머릿속은 내내 복잡했다.


물론, 이런저런 경기가 끝날 때마다 관중석으로부터 요란한 환호성들이 터져 나왔으나 그건 세베루스 경기 때만큼 거대하지 않았다.


시민들의 집중력도 그리 높지 않았고,


결국, 세베루스 경기 때만큼 박진감이 없기 때문이다.


나 역시 경기에 크게 신경이 쓰이지 않았는데,


결국, 어떤 시대든 쇼맨십이 강한 스타가 필요하다.


이 시대 쇼맨십 스타. 그건 바로 세베루스였다.


-----


그리고 그로부터 이런저런 경기들이 진행되며 시간이 많이 경과되었는데,


이제 모두가 조금씩 허기를 느낄 무렵,


특별석에서 어느 시종이 옆으로 걸어나와 뭔가를 크게 외쳤고, 그러자 관람객들을 위한 특별 음식들이 드디어 배분되었다.


이런 검투사 경기는 로마 시민들이 모두 열광하기 때문에 민심 다스리기 일환으로써 황궁에선 이 특별한 순간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진다고 한다.


그리고 그 방편 중의 하나가 시민들을 위해 특별 음식을 제공하는 것이다.


일종의 무상 음식 제공.


특히 황제가 관람하는 경기 때는 그 음식이 더 많고 더 진기해진다고 한다.


오늘은 안토니아 공주가 황제를 대신해서 왔기 때문에 그나마 그에 준하는 음식들이 관람객들에게 제공되었다.


수백 명의 노예들이 이때 각 통로에서 나타났고, 그들은 갓 구은 고기와 과일, 포도주, 올리브 등이 가득한 음식 바구니를 들고서 관중들에게 적당한 음식들을 배분했다.


그러나,


- 여긴 적게 줬어!

- 여기도 더 적게 줬다고!

- 더 줘! 더 달라고!


더 먹겠다고 난리인 자들도 있었고, 음식을 배분하는 노예들에게 잔뜩 화를 내는 자들도 있었다.


그럼에도 간식 시간이 주어지자 로마 시민들은 공짜 음식을 마음껏 먹고 마셨다.


그런 잠깐의 시간이 끝난 뒤, 다시 검투사 경기는 시작되었다.


-----


“···쿨라님! 역시 흑곰에 베팅했다고 합니다.”


은쟁반 위에 가득 담긴 싱싱한 포도.


포도 한 알을 떼서 입에 넣는 쿨라.


그는 무표정하게 고개를 돌려 저 멀리 떨어져 있는 특별석 쪽을 한번 쳐다봤다.


그 특별석 바로 근처에 카리우스가 앉아 있다.


카리우스는 상급 귀족의 자제여서 특별히 특별석 근처에 앉을 수 있다.


그러나 쿨라는 귀족 계급이 아니다.


검투사 양성소의 주인이자 도박장을 운영하다 보니 그나마 1층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을 수 있으나 특별석으로부터 아주 먼 거리에 있는 자리다.


하지만 이곳도 일종의 특별석.


좀 더 넓은 자리인 데다가 주변 노예 호위병들이 그를 지켜주고 있다.


쿨라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이때 그의 입 주변에 나타난 옅은 미소.


그러나 그 미소는 금방 사라졌고, 쿨라는 이내 무표정하게 테니우스에게 손짓했다.


테니우스는 다가와 고개를 숙였고, 쿨라는 낮은 목소리로 소곤거렸다.


“전사의 약. 한 번 더.”


그러자 테니우스의 입가엔 음흉한 미소가 나타났다. 이것으로써 크릭수스는 무조건 승리할 것이다.


"알겠습니다. 쿨라님, 바로 전달하겠습니다."


테니우스는 공손하게 머리를 숙인 뒤 조용히 그곳을 벗어났다. 그리고 1층 출입구로 진입하는 순간, 그의 발걸음은 점점 더 빨라지고 있었다.


-----


어느덧 관람객들의 간식 시간이 드디어 끝나자, 가벼운 느낌의 일반 경기들이 더 진행되었다.


그러나 관중들의 반응은 간식 시간 전보다 더 약해졌다. 일부는 무료한 표정들까지 짓기도 하는데


일단의 대결들을 충분히 봤기 때문에

단순히 치고 박고 싸우는 것은 이제 루즈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관중들은 더 자극적인 경기를 원한다.


그리고 그런 요구에 반응하듯, 요란한 북소리가 갑자기 울렸고


둥! 둥! 둥! 둥! 둥!


드디어 색다른 대결, 맹수 대 검투사의 경기가 시작되었다.


이것은 십여 마리의 맹수들과 세 명의 검투사들이 벌이는 핏빛 전투.


먼저, 조금 왜소한 체격의 세 명의 검투사들이 등장했는데


일부러 긴장감을 고조시키려는 듯 검투사들은 상반신을 탈의한 상태고, 짐승의 피를 듬뿍 뒤집어쓴 상태였다.


그런 검투사들이 무대에 먼저 나왔고, 곧이어 며칠간 굶주린 맹수들이 우리에서 뛰어나왔다.


짙은 피 냄새에 코를 실룩거리던 맹수들.


자세를 낮추고 접근하면서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리는 맹수들.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원형 경기장은 피비린내가 아주 짙어졌다.


굶주린 맹수들이 검투사들에게 달려들었고, 죽기 살기로 검투사들이 대항했으나 굶주린 맹수들의 상대가 될 수 없다.


결국, 맹수의 날카로운 이빨에 목이 물린 검투사는 파닥 파닥거리다가 축 늘어졌고,


여기저기 쓰러진 검투사들에게 달라붙은 맹수들이 검투사들을 먹어 치우기 시작했다.


복부를 이빨과 발톱으로 찢은 뒤 내장을 뜯어먹기도 했고


누군가의 뼈를 씹어먹는 소리가 오도독! 오도독! 생생하게 관중석에 들려왔다.


그 그로테스크한 모습에 관중들은 놀란 듯 쳐다봤고, 일부 관중들은 비명을 지르며 흐느끼기도 했다.


압도적인 패배.


그러나 그 경기는 그게 끝이 아니었다.


잠시 후, 북아프리카 왕국 누미디아 출신 노예 흑인 궁수들이 일제히 무대로 걸어 나왔다.


그들은 맹수들을 노려보다가 일제히 활시위를 당기며 맹수들을 공격했다.


순간, 빗발치며 쏟아지는 화살 공격.


휙휙휙 날아가 소나기처럼 꽂히는 화살들.


한적하게 먹이를 먹고 있던 맹수들은 이리저리 날뛰다가 쓰러졌고,


일부 흥분한 맹수들은 포효하며 누미디아 흑인 노예 궁수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나 이때 우레와 같은 함성을 지르며 뒤에서 달려나오는 또 다른 검투사들.


그들은 로마군 복장을 하고 있었고, 일제히 칼을 휘두르며 맹수들과 싸웠다.


그러나 검투사들이 워낙 많다 보니 맹수들은 순식간에 처리되었고,


그 승리를 축하하듯 요란한 북소리와 뿔피리 소리들이 사방에서 울렸다.


그리고 그사이 어느새 대열을 이룬 검투사들.


그들은 요란한 발소리를 내며 정중앙으로 이동했는데, 마치 세레모니 같은 행렬이었다.


그사이 누미디아 궁수들은 죽은 검투사들의 시체를 붉은 천으로 덮었고


그렇게 장내가 정리되자,


검투사 중의 한 명이 대표로 나서 안토니아 공주에게 팔을 쭉 뻗으며 로마군단 식 경례를 했다.


그 행위는 마치 야만족들과 싸우다가 목숨을 잃은 로마군 병사들을 추모하기 위한 목적 같았고, 결국 로마군이 승리한다는 그런 각본 같았다.


안토니아 공주는 또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끄덕였고, 로마 시민들도 제각각 비분강개한 모습으로써 일어났다.


처음엔 작은 목소리로 ‘로마’를 외치던 군중들.


그러나 어느 순간 폭발할 것 같은 목소리로 ‘황제’와 '로마'를 외치기 시작했다.


-----


“봐! 이러니 황궁에서 쿨라의 능력을 높이 산단 말이야. 이번엔 사람을 꽤 많이 죽였어. 쿨라가 더 잔인해진 것 같아. 하지만 사람들은 피를 봐야 반응한다니까."


내 옆자리 악테는 이렇게 이번 경기에 대해 평가했다.


그러나 내가 표정이 내내 굳어있자, 더는 말하지 않고 그는 다시 경기장 쪽을 쳐다봤다.


현재 경기장 모래밭은 피로 물들어 있다.


검투사들의 피와 맹수들의 피가 뒤섞인 것.


하지만 이런 피의 흔적은 다음 이벤트를 위한 전주곡이나 다름없다.


물론, 여기서 추가적인 보조 이벤트가 더 있었다.


일단의 검투사들과 누미디아 노예 궁수들이 곧이어 퇴장하자,


다시 요란한 북소리가 들려더니


꽃바구니를 든 여자 노예들이 무대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유난히 붉은색의 꽃잎들.

마치 핏빛 같은 꽃잎들.


반나체의 여자들은 그 꽃잎들을 사방에 뿌려댔다.


그리고 그 전조가 끝나자마자


원형 경기장의 양쪽 끝, 거대한 메인 철문들이 마침내 철컥! 하는 굉음과 함께 활짝 열렸다.


지하 대기실에서부터 이어지는 거대한 철문들.


그 철문이 열리자, 웅장한 뿔 피리 소리가 들려왔고,


몸에 쇠사슬이 묶인 두 사람이 쇠사슬들을 질질 끌며 그 철문에서 걸어 나왔다.


그들의 뒤에는 다섯 명의 검투사들이 따르고 있는데


그렇게 오늘의 메인 이벤트, 파르티아의 전직 백인장 크릭수스와 도전자이자 바티카누스의 악마 흑곰 간의 생사대결이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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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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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 절세미녀 로마공주와 결혼했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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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학살자는 충성을 원한다 NEW 6시간 전 340 12 11쪽
29 누군가는 황제가 되고 누군가는 신이 되었다 +4 24.09.18 611 19 7쪽
28 안토니아 공주의 침실 +5 24.09.17 737 24 18쪽
27 첫날 밤, 그리고 태동 (2) +2 24.09.16 814 24 7쪽
26 첫날 밤, 그리고 태동 (1) +4 24.09.14 926 20 18쪽
25 수부라의 현인 +4 24.09.12 981 26 31쪽
24 안토니아 공주와의 첫날 밤 (2) +5 24.09.10 1,181 18 25쪽
23 안토니아 공주와의 첫날 밤 (1) +4 24.09.07 1,415 29 23쪽
22 카리우스 네로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게르마니쿠스 +5 24.09.05 1,349 33 25쪽
21 황제가 되다 (2) +3 24.09.03 1,371 30 30쪽
20 황제가 되다 (1) +3 24.08.31 1,516 30 14쪽
19 쿨라의 결단, 새로운 로마황제 +5 24.08.30 1,504 35 23쪽
18 우연히 시작된 로마 혁명 +2 24.08.28 1,547 41 29쪽
17 로마의 흑막이 되다 +7 24.08.24 1,664 44 23쪽
16 로마 식기 마트 +3 24.08.22 1,612 41 16쪽
15 로마를 바꾸자 +2 24.08.20 1,751 49 21쪽
14 강철의 주인 +4 24.08.18 1,870 57 24쪽
13 안타까운 이혼 공주 +3 24.08.15 2,006 52 21쪽
12 안토니아 공주 +3 24.08.13 2,007 57 21쪽
11 황금 궤짝 +2 24.08.11 2,048 54 24쪽
10 돈이 넘친다 +4 24.08.09 2,180 53 28쪽
9 영웅 (2) +5 24.08.07 2,161 52 23쪽
8 영웅 (1) +4 24.08.06 2,204 48 17쪽
» 내가 유명해지다 (3) +4 24.08.05 2,287 47 24쪽
6 내가 유명해지다 (2) +3 24.08.02 2,336 54 28쪽
5 내가 유명해지다 (1) +5 24.08.01 2,464 61 20쪽
4 출세의 길이 보인다 +9 24.07.30 2,575 65 22쪽
3 향락의 밤, 벌거벗은 무희들 +4 24.07.28 2,728 60 20쪽
2 특별한 능력 +4 24.07.27 2,889 61 22쪽
1 욕실의 여자 노예 +2 24.07.25 3,464 65 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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