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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우 님의 서재입니다.

폐하를 베어도 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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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우
작품등록일 :
2021.02.14 17:49
최근연재일 :
2021.08.31 23:59
연재수 :
11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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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89
추천수 :
304
글자수 :
612,952

작성
21.02.22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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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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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글자
11쪽

8. 돌을 깰 수 없어도 (2)

DUMMY

썩은 듯이 있으라고 했다. 보통 이럴 때는 죽은 듯이 있는 게 맞지 않나. 그렇게 말한 아비는 썩은 듯이 있지 못해 붙잡혔다. 마린은 거름더미에 몸을 묻어 들키지 않았다.


삶은 머쓱하고 죽음은 어째서 오지 않나. 아비는 문득 그렇게 말하고 탈출하자 했다. 배를 곪아 벌레를 주워 먹던 어느 날이었다. 어미가 어느 병사의 배 아래에서 깔려 죽고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이었다. 죽을 텐데. 마린이 그렇게 말하자 아비는 그저 쑥스러운 듯이 웃었다.


9구역으로 넘어가는, 목책 몇 개와 부대 몇 개를 지나야만 하는 길목에서, 아비는 붙잡혔는데, 마린은 거름더미 안에서 전부 보고 있었다. 병사들에게 붙잡혀 끌려가는 아비는 여전히 쑥스럽게 웃고 있었다.


그 쑥스러운 웃음 덕분이었는지 아비는 즉결처형을 피했다. 제국군의 일이 그렇듯 보고를 올리기는 귀찮은 일이고, 그들은 항상 유희를 필요로 했다. 죽이지는 않았고 다만 농지 한복판에 매달렸다.


나무로 만든 말뚝에 몸이 매달린 아비 주변에는 돌들이 놓여있었다. 조잡하게 만들어진 팻말에는 거친 글씨로 이렇게 쓰여 있었다.


‘돌은 공짜.’


돌은 공짜였고, 병사들이 칼을 겨누었으므로, 사람들이 돌을 던졌다. 돌이 맞을 때마다 아비의 몸이 움찔거렸다. 마린은 이 역시 무리 한복판에서 지켜보았다.


노인 한 명이 떨고 있는 마린의 작은 손에 돌멩이를 들려주었다.


‘던져야 산다.’


매달린 남자와 소녀의 관계를 그가 어떻게 생각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의 말은 굉장히 현실적으로 들렸다. 마린은 제 아비에게 돌을 던져야 살 수 있는 삶을 살았다.


이건 삶의 방식이 아니야.


마린은 그렇게, 10구역에 있는 그 누구도 떠올리지 못하는 의문을 품었다. 그러므로 마린은 돌을 던졌다. 이것은 삶의 방식이 아니므로, 그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 살아남을 필요가 있었다. 아비는 자신에게 돌을 던지는 딸을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아비는 다행히 돌을 맞고 죽지는 않았다. 그러나 다만 죽지 않았을 뿐이다. 남은 삶 동안 아비는 절룩거렸고 아물지 않은 상처가 썩어들어갔다. 그래도 아비는 마린에게 웃어 보였다. 아비는 썩 머리가 좋지 못해 별다른 말은 않았지만, 마린은 아비를 보며 아무에게 말하지 못할 의문을 키워갔다.


이런 삶이, 있을 수 있나.


돌 세례 속에서도 살아남은 아비는 밭을 갈다가 쓰러져 어느 순간 죽어있었다. 그렇게 썩어갔다. 마린은 썩는 아비를 거름으로 덮고 그 위에 씨앗을 뿌렸다.


이런 삶이.


이번에는 그런 팻말은 보이지 않았지만 마린은 그 문장을 떠올렸다.


“보스, 괜찮으십니까?”


곁에서 사쿠마가 말을 걸었다. 그의 침착함은 흥분하기 쉬운 마린에게 항상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마린은 침착할 수 없었다.


느닷없이 제국의 처형식은 바뀌었다. 구역에서 벌어지는 모든 처형식이 그랬을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은 그랬다. 죄수들이 말뚝에 매달렸고, 병사들이 그들에게 돌을 던지라고 군중들에게 요구했다.


신민들은 처음에는 마냥 바라보기만 했다. 낯선 방식이었다. 그러다 사람 몇이 끌려가거나 폭행당하자 어기적거리며 돌을 던졌다.


“보스, 물러납시다. 오래 봐서 좋을 것 없습니다.”


사쿠마가 마린의 어깨를 잡았다. 마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처형식이었으니 죄수들은 죽을 때까지 매달릴 테고 마린의 아비처럼 운 좋게 살아남을 수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저 그뿐이었다. 아직 마린의 밤까마귀는 준비가 되지 않았다.


“그래, 물러가자. 저 잡것들이 눈치채기 전에.”


밤까마귀 조직원들이 마린의 곁을 감쌌다. 그들은 능숙하게 군중 속에 섞여 티 안 나게 움직일 줄 알았다.


마린은 돌을 쥔 애꿎은 손에 힘을 주며 발걸음을 돌리려 했다. 그러자 문득 곁에 선 소녀의 떨림에 눈길이 갔다.


소녀는 울고 있었다. 곁에 선 어미로 보이는 자가 소녀에게 돌을 쥐여주려 하고 있었다. 죄수 중 누군가가 소녀의 아비일지도 몰랐다. 소녀의 시선은 올곧게 누군가를 향하고 있었으니 아비라면 그일 것이다.


‘던져야 산다.’


어미는 소녀에게 그렇게 말하고 있을 것이다. 죄수의 가족이라면 더욱 그래야 했다. 과연 그만큼 병사들이 신경이나 쓰고 있을까 몰랐지만, 두려움이 떠미는 그들에게는 그것만이 면죄부이고 희망이었다.


삶을 빌어먹는 삶이 당연하므로, 그들은 돌을 던질 것이다.


“사쿠마.”

“예, 보스.”

“미안해.”

“보스?”


사쿠마가 의문을 표하기도 전에, 마린은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군중을 헤쳐나가 돌을 쥔 소녀에게 다가갔다. 소녀는 어설프게 손을 들어 돌을 던지려 하고 있었다.


“잠깐, 꼬마야.”


마린이 소녀의 어깨를 잡았다. 소녀가 마린을 올려다보았다. 그 눈을 바라보며, 마린은 어린 시절 누군가 말해주길 바랐던 그 말을 꺼냈다.


“너는 던지지 않아도 돼.”


마린은 소녀에게서 부드럽게 돌을 빼앗았다. 어미가 마린에게 뭐라 따지려 들었지만 벌린 입을 다물었다. 사쿠마가 마린의 곁에 있었다.


“보스.”

“사쿠마, 반대한다면 나를 말려라.”

“보스께서는 하고 싶은 대로 하셔도 됩니다.”

“그럴 거야.”


돌을 쥔 마린이 힘껏 어깨를 당겼다. 지금 돌을 던지려는 이유를, 마린은 설명할 수 없었다. 던지지 말아야 할 이유를 찾기가 더 쉬웠다. 조직원들의 무장은 채 갖추어지지 않았고, 그들이 싸울 이유를 충분히 부여하지도 못했다. 그런데도 마린은 돌을 던지고 싶었다. 던져야 했다.


이 살의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마린은 생각했다.


살의를 담아 힘껏 던진 돌은, 그러나 멀리 날아가지도 못하고 도중에 떨어져 굴렀다.


“으음······.”


마린이 머쓱하게 사쿠마를 돌아보았다. 사쿠마는 어깨를 으쓱였다.


“여전히 보스께서는 몸 쓰는 일은 더럽게 못 하시는군요.”

“닥쳐.”


마린이 소녀에게서 뺏어 들었던 돌을 사쿠마에게 던졌다. 사쿠마는 가볍게 받아쥐고는 마린을 바라보았다.


“각오는 되셨습니까.”

“나는 늘 되어있어. 사쿠마는?”

“보스의 결정은 늘 갑작스럽지만 제가 왜 불만을 말하지 않는지 아십니까.”


사쿠마가 돌을 들어 조준했다.


“보스처럼 늘 각오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쿠마가 돌을 던졌다. 피투성이가 된 채 늘어진 죄수를 살피던 병사를 향해서였다. 죄수가 아직 숨이 붙어있자 병사는 돌도 제대로 못 던지냐고 윽박질렀다. 돌은 그런 병사의 얼굴 정면에 꽂혔다.


병사의 얼굴이 함몰되었다. 순간 광장에 적막이 찾아들었다. 비틀거리던 병사의 몸이 허물어지자, 곳곳에서 번을 서던 병사들이 그제야 돌아보았다.


마린이 그 광경을 보며 담담히 말했다.


“조금은 이르지만, 드디어 시작이야.”

“이걸 조금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돌을 던진 궤적을 눈치챈 신민들이 사쿠마를 올려다보았다. 병사에게 돌을 던진다는 행위를 생각조차 못 해본 사람들은 막연한 두려움에 발걸음을 물렸다. 주위가 텅 비게 되자 마린이 팔짱을 꼈다.


“좋아, 다음.”

“지, 지금 뭘 한 거냐?”


제법 나이 들어 보이는 병사 하나가 마린에게 물었다. 멍청하기 짝이 없는 질문에 마린은 욕을 내뱉고 싶었다. 아마 이들의 머릿속에는 반란이라는 단어도, 그들이 사람을 죽일 수 있듯 누군가에게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해본 적도 없을 것이다. 제국식으로 말하자면, 마린은 그 멍청함을 죽을죄라고 부르기로 했다.


“이제 날뛰면 되는 겁니까?”


마린이 허공에 손짓했다. 군중 속에서 숨을 죽이고 있던 조직원들이 움직였다. 특히 오랫동안 조직에 있었던 일원들이었다.


움직일 때가 왔다. 마린은 깊이 숨을 들이켰다.


“빌어먹을 제국군 개자식들은 들어라!”


덩치를 곁에 세우고 소리지르는 마린에게 병사들은 넋을 잃은 얼굴이었다. 어설프게 무기를 뽑고 다가오는 자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도 사쿠마의 눈길에 움찔했다.


“우리는 이 자리에서 선언한다. 나는 마린, 목적은 반란, 목표는 너희들의 목! 내 삶으로 기림 제국을 부정하겠다. 잡을 수 있으면 붙잡아봐라! 내 목을 베면 너희들의 승리, 그러나 내 목을 베지 못한다면, 오늘은 내 승리를 선언하겠다!”


마린의 말은 광장에 있는 병사, 신민들 틈틈이 스며들었다.


마린의 가장 큰 목표는 제국에게 반란을 선언하는 행위 자체였다. 마린이 하루를 더 살수록 반란은 더 길어진다. 반란이 길어지면 제국은 긴장할 것이다. 마린은 그 긴장 속에서 온갖 부산물이 태어나길 바랐다. 자신을 적대해도 좋고, 가담하면 더욱 좋다. 마린은 다만 모든 사람이 과거의 자신과 같은 의문을 품기만을 바랐다.


이런 삶이 있을 수 있는 것인가.


마린은 자신의 목숨으로 제국민에게 반란을 가르치려 했다.


“똑똑히 알아들었나? 그렇다면 제군들은 아랫구역 곳곳에 내 이름을 알리도록. 나를 붙잡아 이 반란을 끝내봐라. 이상!”


흥분에 숨이 가빠진 마린이 심호흡을 했다. 마린은 아직도 자신을 멀뚱히 쳐다보는 병사들에게 인상을 썼다.


“아직도 모르겠어? 날 죽이지 않으면 너희들이 뒤진다는 소리야. 이 새끼들아.”

“체, 체포해라!”


대장으로 보이는 병사가 칼을 뽑았다. 그것을 시작으로 광장을 둘러싼 병사들이 마린을 노리고 달려들었다. 마린은 입으로 숨을 불어 앞머리를 넘겼다.


“시작해라, 무르히!”


마린이 무르히를 뒤로 하고 달렸다. 언뜻 도망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것은 무르히에게 말려들지 않으려면 당연한 선택이었다.


가장 화려하고 난폭하게, 마린은 이후 제국의 모든 관심이 자신에게 향하게 하도록 무르히에게 주문했다.


“시작하겠소, 보스.”


무르히가 등에 짊어졌던 삽을 꺼내 들었다. 공장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도구였다. 무르히가 삽을 밀반출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 그리고 정성스레 다듬은 삽은 무르히에게 더할 나위 없는 무기가 되었다.


가장 먼저 달려들던 병사의 관자놀이에 삽이 꽂혔다. 뼈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삽날이 두개골에 파고들었다.


다른 방향에서 칼날이 무르히를 내리치려 들었다. 무르히는 힘을 빼지 않고 삽을 휘둘렀다. 머리를 가르며 빠져나온 삽이 칼날을 쳐내고 연이어 적의 목을 꿰뚫었다.


순식간에 두 명이 피를 뿜으며 사라졌다. 심상찮은 기색을 감지한 병사들이 멈칫했다. 아무리 나태하기로 소문난 아랫구역의 병사들일지라도 그들도 군인인 이상 적의 힘을 감지할 줄은 알았다.


“고작 이 정도인가?”


무르히가 삽을 어깨에 걸쳤다. 적은 대략 스물 남짓. 화려하고 난폭하게 마린의 이름을 제국에 각인시키기 위해서는 아직 부족했다. 무르히는 최대한 병사들이 자신에게 이목이 쏠리기를 기다렸다.


“기억해라. 우리 보스의 이름으로.”


무르히가 삽을 들어 제국군을 겨누었다.


“너희들은 죽는다.”


진형을 갖춘 제국군이 달려들었다. 무르히는 온몸에 힘을 주고 맞부딪쳤다.


작가의말

한 주 잘 보내십시요.


정원교 // 댓글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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