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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nifle
작품등록일 :
2016.03.19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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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3,0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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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1.23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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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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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글자
12쪽

133화-일곱 기둥(8)

DUMMY


“흐음······”


별의 탑을 떠나와 마녀의 탑으로 향하는 아인즈의 표정은 상당히 굳어 있었다. 어려운 일을 앞에 두고 있다기 보다는 골치 아픈 것을 앞에 두고 있는 듯한 그런 표정.

그의 입에서 작은 가는 한숨이 새어 나왔다.


“하아······골치 아프네.”


지금까지 통과해 자격을 얻은 탑은 총 네 곳. 별의 탑에 있던 허락 받지 못한 신의 육체를 제외하고는 모두 간단한 대화와 좋은 분위기로 무난하게 통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이후로는 일이 그렇게 무난히 지나갈 것 같지는 않았다.

가장 처음의 세 탑의 경우 자신을 잘 알거나 안면이 있었기에 간단히 끝났지만 진짜는 이제부터다.


“마녀, 마녀라······”


마녀. 마법사도, 마술사도 아닌 그 어떤 존재.

비록 전에 마녀의 총본산이라 불리는 헥스 학파의 학파주와 그녀를 비롯한 마녀를 만나기는 했었지만······

그녀들은 아무래도 ‘진짜’마녀와는 조금 거리가 있었다.

마법사처럼 세계의 진리를 파고들기도, 마술사처럼 술(術) 그 자체를 파고들기도 하지만 그 어떤 것보다 자신의 행복과 즐거움을 추구하는 예측할 수 없는 존재.

어찌보면 이번의 탑이 가장 어려울지도 모른다.

학파를 결성해 집단을 이룬 마녀와 달리 여전히 독자적으로 존재하며 은거해 혈육, 혹은 사제지간으로만 일인전승으로 전해지는 진골 마녀들은 도저히 일반인으로서는 예상도, 예측도 하기 힘든 존재다.

자신을 죽이려 했던 이에게 사랑에 빠지기도 하고, 은혜를 베푼 이에게 분노를 느끼기도, 행복하지만 슬퍼하기도 하는 그야말로 혼돈 그 자체.

오직 자신만의 룰을 세워 자신의 행복만을 추구하는, 설사 혈육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행복에 부합되지 않으면 아무런 저항도 없이 죽여 없애는 그런 존재들.

그렇기에 만약 아인즈가 마음에 들지 않게 행동한다면 지금 가는 곳에 있는 마녀는 열쇠를 파괴하거나 혹은 숨길 것이다.

설령 자신의 존재가 영원히 소멸된다 할지라도 그로 인해 아인즈의 고통이 피어날 것을 감미로이 음미하며 기꺼이.

그것이, 마녀라는 존재다.

그 탓에 아인즈의 표정은 펴질 줄을 몰랐다. 다만, 이제 곧 도착하는 마녀가 되도록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이이기를 기대할 밖에.


* * *


“흐응, 흐으응, 흥흥.”


장미잎을 뿌린 욕조에서 따스한 물의 나른함을 누리던 여인, 페르미스는 오랜만의 호사에 눈을 감고 지금의 행복감을 만끽했다.


“으응, 좋아······구현계(具現界)는 다 좋은데 영 조용하지가 않단 말이야.”


찰박. 한껏 고조된 기분에 수면 위로 올라왔다가 내려가며 잔잔한 물방울이 튀어 올랐다.

옅은 분홍빛을 띈 물방울. 마학과 관련한 연구를 하는 이들이라면 모두가 피를 토할 광경이다.

왜냐고? 그녀가 몸을 담그고 있는 것이 바로 희석된 엘리서였으니까.

전설의 비약. 제 5원소, 현자의 돌. 세계수의 씨앗. 따위로 불리는 지극히 귀중한 물질이었지만 그녀에게는 마음만 먹는다면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 물건에 불과했다.

비록, 제법 고생은 하겠지만 목숨이 위험할 만큼은 아니니 별 상관은 없었다.


“흐으응, 그럼 이제 한동안은 엘릭서가 부족할 일은 없겠네~ 그동안 뭘 하고 빈둥거릴까아~?”


이번에 구현계를 방문한 것도 다 엘릭서를 구하기 위해서였던 만큼 그녀는 앞으로 쌓여 있는 엘릭서가 바닥날 때까지 무슨 일을 하며 시간을 죽일까 곰곰히 생각에 빠져 들었다.

나른한 그녀의 시선에 비치는 것이라고는 딱딱한 석벽과 끝없이 이어진 마력의 흐름들 뿐. 그것을 느낀 페르미스가 비죽이 입술을 내밀었다.


“하아, 내가 미쳤지. 어쩌자고 그런 계약을 해서 요 모양 요 꼴이 됐데.”


과거, 정말 아득한 옛날. 학살의 여인이라고 불리던 소싯적에 그녀에게 어떤 꼬마가 찾아 왔었다.


‘안녕하세요? 당신이······음, 학살의 여인이라고 불리는 페르미스 에르미단티아르 릴르시아. 맞나요?’


짙은 갈색 머리칼과 별빛을 닮은 은색 눈동자. 어째서였을까? 권태와 분노만이 몸을 지배하고 있던 그때에 유독 그 소년만은 손을 대기가 싫었다.

그리고 그가 제시한 계약.


‘음······이번에 제가 어떤 제안을 받았는데요. 저랑은 취향이 아니라 적임자를 추천해 주기로 했거든요? 제가 보기에는 그쪽이 상당히 잘 맞을 것 같아서요.’


‘어떤 조건이지?’


‘일단 지켜야 하는 것은 ‘어떤’ 조건을 충족하는 적임자가 나타나 모든 조건을 만족할 때까지 어떤 탑의 관리자가 될 것. 권리와 혜택은······조건이 충족될 때까지는 결코 줄어들지 않는 시간과 강대한 힘······정도이려나요?’


크게 만족할 법한 조건은 아니었다. 힘이야 그때에도 충분했고, 어딘가에 구속된다는 것은 딱 질색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그 소년의 말에, 자시도 모르게 그 계약을 하고 말았다. 어째서일까?

지금 생각해도 어이가 없지만 그 소년의 입에서 나온 언어가 어찌나 매력적이었던지. 거부할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고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그 덕에 지금은 이렇게 언제 올지도 모르는 적합자를 기다리며 허송세월을 하는 잉여로움에 찌들어 있을 뿐인 존재가 되어 있었다.


“이 잉여로움은 언제나 끝나려나······”


어차피 자신의 시간은 줄어들지 않고, 애초에 마녀에게는 수명 따위 아무런 의미도 주지 못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지루하다는 점이다.

게다가 이놈의 계약은 어떻게 생겨먹은 것인지 다른 적임자에게 물려주지도 못하게 만들어 놔서 언제까지고 이 지루함에 절며 끝없이 기다리기만 한 것도 벌써 수천년.


“이제는 슬슬 나와주지 않으려나~ 이대로 가다가는 만녀도 찍겠네.”


작게 중얼거리는 그녀의 말이 지금 그녀의 심경을 대변했다. 언제나 제멋대로, 자신의 행복과 즐거움만을 위해 움직이는 마녀에게 지금의 생활은 고문이나 다름 없었으니까.

그녀가 구현계에 마음대로 게이트를 뚫을 수 있는 특수한 능력의 보유자가 아니었다면 진즉에 미치고도 남았을 터였다.


“아~ 지루해, 지루해, 지루해! 언제 오는 거야아-! 날 여기서 꺼내줄 적합자느은!”


첨벙첨벙. 아이가 투정을 부리듯 팔다리를 사방으로 휘젖는 그녀의 몸짓에 따라 희석된 엘릭서가 사방으로 비산하고, 욕조 밖으로 흘러 넘쳤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힘이 빠진 다는 듯, 눈 바로 아래까지 잠기도록 몸을 담근 그녀가 입으로 공기를 불어 수면 위로 떠오르는 방울을 만들어냈다.


‘하아아······어차피 다 의미 없는 일이지.’


애초에 지금 자신이 지키고 있는 탑이 바벨 시스템의 일부인 것을 알았다면 그런 계약 따위, 곧 죽어도 하지 않았을 터였다.

하지만 이제와 누구를 탓하겠나. 멍청했던 자신을 탓해야지. 결국 무료함에 머리끝까지 욕조에 몸을 담그던 그녀가 순간 엄청난 기세로 몸을 일으켰다.


“어? 어? 이거, 이거 진짜? 정말이야? 정말로?”


그녀의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리며 자신에게 전달되는 신호를 끝없이 확인했다. 지금 자신에게 전해지는 신호를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으니까.


“왔어? 왔어? 왔다고! 드디어 왔어!”


하지만 그것도 잠시 물이 흘러 내리는 몸을 닦을 생각도 하지 않고, 심지어는 옷도 입지 않은 나체 그대로 탑의 정상을 향해 달려 나갔다.

그토록 오랫동안 기다리던 이가 마침내 이곳에 도달했다.


* * *


“흐음······”


어느새 인가 마녀의 탑에 도착한 아인즈는 미묘하게 눈썹을 꿈틀거리고 있었다.

시간과 공간을 완전히 무시하는 독립세계인 하늘길을 타고 온 탓에 출발했을 때부터 시간은 거의 흐르지 않은 상태라 어슴푸레하게 밝아진 숲의 젖은 전경이 묘하게 기분을 차분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지금 아인즈에게서는 그런 기분과는 별개로 약간의 초조함이 느껴지고 있었다.


“왜 안 나오는 거지?”


분명 자신이 신호를 보내고 있음에도 나타나지 않는 관리자의 모습에 아인즈는 초조한 듯 발로 바닥을 두드렸다.


“설마 외출중인 건가······”


관리자 역시 지성이 있고, 감정이 있는 만큼 탑 밖으로 외유를 다닌다고 한 라오하이드의 말이 떠오르며 아인즈의 미간이 좁아졌다.

자칫, 다른 차원에 방문한 것이라면 신호를 감지하고 돌아오는 데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터. 아인즈의 손가락이 불안한 심리의 리듬을 나타냈다.


“도대체 언제 오는 거냐고.”


슬슬 초조함에 마력마저 요동칠 무렵, 마침내 기다리던 반응이 포착되었다.

탁탁탁탁.

빠른 템포로 들려오는 걸음 소리. 하지만 어째서? 탑의 관리자씩이나 되는 마녀가 설마 공간 계통의 마법을 쓰지 못할 리는 없을 터. 어째서?

하지만 그런 아인즈의 의문도 끝까지 이어지지는 못했다.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관리자의 모습에 얼어붙고 말았으니까.


“드디어 왔다!”


“어,”


불과 십 오륙세 정도로 보이는 미모의 소녀. 어디에 가나 한눈에 주변의 시선을 모을 법한 외모였지만 몸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있다는 제법 음, 그런 문제가 있었다.


“드디어, 드디어 왔어!”


그 모습이 시야에 비치자 마자 얼어붙은 아인즈를 앞에 두고 뭐가 그렇게 기쁜 것인지 방방 뛰는 그녀의 모습에 아인즈의 두 눈이 질끈 감겼다.

아니, 애초에 아인즈가 로리타 콤플렉스도 아니고 생전 처음 보는 미성숙한 여자아이의 알몸을 계속해서 감상하는 따위의 취미는 가지고 있지 못했다.

물론, 그 알맹이는 이미 만년 가까이 살아온 괴물이지만 일단 눈에 비치는 외관이 무척이나 여러가지로 문제가 있었다.


“와아! 와아아아아!”


이제는 숫제 아인즈의 바로 옆에서 주변을 빙글빙글 돌며 신나라 하는 그녀의 움직임이 느껴졌기에 아인즈의 눈은 떠질 줄을 몰랐다.


‘······미친건가?’


“와아아아! 드디어 왔다아아아! 너무 좋아! 진짜 좋아!”


자신의 손까지 잡고 신나라 소리를 지르는 그녀의 움직임에 눈을 떠 호응해 주고는 싶었지만 차마 도의상 그럴 수는 없었다.

지금 그녀의 기분을 맞춰 주는 것이 여러모로 좋겠지만 그래도, 그래도! 지금 눈을 떠 그녀의 잔뜩 날아오른 기분에 맞춰 룰루랄라 해 주면 무언가 중요한 것을 잃어버릴 것만 같았다.

그런 아인즈의 심경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전히 머리에 꽃이라도 꽂으면 어울릴 것 같은 몰골에, 행동을 해 보이던 페르미스는 문득 피부를 온몸에서 느껴지는 싸늘함에 정신이 들었다.


‘에? 나······무슨 짓을?’


그리고 그제야 직시하게 되는 자신의 상태.


“에? 에? 에에에에?”


전신의 피부가 발갛게 달아오르며 덩달아 달아오르는 마력에 아인즈는 여전히 눈을 감은 채 불편함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분명히 말하지만 난 눈을 감고 있었고, 그 앞에서 신나라 한 것은 그쪽입니다. 괜히 저에게 불똥이 튀기는 일은 없었으면 하는군요.”


그 말이 기촉제였다.


“꺄아아아아아악!”


그제야 몸을 감싸 앉으며 상당히 그 외모에 어울리는 비명을 내지른 그녀가 눈물이 가득 고인 눈으로 아인즈를 노려봤다.


“너, 너! 너!”


심리는 육체를 따라간다는 말이 맞는 것일까, 아니면 마녀란 존재가 원래 그런 것일까.

물질재조합조차 간단하게 해 낼 수 있음에도 당황만 하고 있을 뿐인 그녀의 반응에 아인즈는 내심 한숨을 내쉬었다.


“슬슬 듣기 거북하니 비명은 그쯤 지르고 옷이나 챙겨 입기를 바랍니다. 정 뭣하면 제가 술식이라도 불러 드릴까요?”


적극적으로 마도의 길을 걷는 이의 자존심을 긁는 말. 그에 페르미스가 벌떡 일어나 아인즈에게 삿대질을 했다.


“뭐야! 그 건방진 말은! 내가 살아도 너보다 한참 더 살았고, 알아도 더 많이 알거든? 어디서 건방지게 지적질이야! 지적질은!”


“그러면 당장 옷이나 차려 입으시라는 말입니다.”


“응? 꺄아아아아악!”


“하아······”


“꺄아아아아악!”


그 반복되며 끝날 줄 모르는 반복에 아인즈의 한숨이 한층 더 깊어졌다. 아무래도 정상적인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제법 오래 걸릴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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