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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nifle
작품등록일 :
2016.03.19 09:17
최근연재일 :
2019.04.04 19:57
연재수 :
26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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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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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493,079

작성
16.11.15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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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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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글자
12쪽

127화-일곱 기둥(2)

DUMMY


과연, 이라고 할까. 지혜의 탑 바벨을 떠받치는 첫번째 탑은 그 이름 그대로 아름답고, 찬란했다.


“보석탑······그 이름대로군.”


얼마나 찬란한지 이미 도착하기 전부터 눈에 닿는 광채에 시야 여기저기에 얼룩이 남을 지경이었다.

루비, 사파이어, 다이아몬든, 자수정, 토파즈 할 것 없이 말그대로 보석 그 자체인 탑의 모습에 작게 한숨이 나왔다.

저 보석이 그저 보기에만 좋은 조형이면 좋으련만. 그 안에 감춰진 마력이 아인즈의 몸을 짓눌러 온다.

그때의 외상은 전부 치료했지만 아직 체내에서 마력을 움직이는 것은 무리. 기껏해야 평소의 7,8할 정도의 마법 용량을 행사하는 것이 한계였다.


“어쩔 수 없겠지.”


충분히 준비를 할 수도 있었지만 어딘가 예감이 좋지 않았다.

지금 당장 서두르지 않으면 영영 후회할 거라고, 반드시 후회하게 될 거라고. 계속해서 재촉을 해 대는 탓에 몸을 완전히 추스르지도 않고 바로 길을 나선 터였다

그리고 이제야 겨우 첫번째. 징징대는 소리를 하는 것은 나중에 가도 늦지는 않을 터다.


“가 볼까.”


대륙에 존재하는 모든 신화시대의 탑은 하나같이 문이 없다. 애초에 자격이 되지 않으면 들어올 생각도 하지 말라는 오만하기 짝이 없는 일종의 경고.

그것은 이 보석탑도 마찬가지지만 그런 정도의 자격쯤. 이미 예전에 갖췄다.


“입장.”


이번에 무리를 한 보람이랄까, 불행의 끝에서 건져낸 약간의 행운이랄까. 권능의 일부를 고정하는 것에 성공한 덕에 가증해진 언령으로 발걸음을 탑의 내부로 인도한다.

사르랑.

어디에서 부는 바람인지 수렴처럼 늘어진 보석들이 부딪히며 내는 소리가 맑았다. 처음 들어오는 이라면 대부분 넋을 잃고 바라볼 법한 광경이지만 아인즈에게는 아무런 감흥도 되지 못했다.

아니, 감흥을 느낄 여유가 없다는 것이 정확할까.

무감정한 눈으로 시야를 가리는 주렴들을 보던 아인즈가 입을 열었다.


“토리스.”


작지만 마력을 담은 목소리가 탑을 가득 채워 나가고, 곧 탑의 관리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토리스. 진리를 추구하기 위해 탑과 하나가 된 탐구자. 그 힘으로 거짓 신위를 손에 넣은 위신.

그가 못마땅한 얼굴로 불청객을 노려봤다.


‘결국 왔나.’


언제가 닥칠지도 모른다고 생각은 했지만 이건 너무 빠르지 않은가. 적어도 10년은 더 흘러야 이곳에 찾을 거라 생각했었거늘.

무엇에 막힌 것인지. 저 전율적인 재능이 무엇이 부족한 것인지 그가 오래된 금기에 손을 대려 결국 자신을 찾아 오고야 말았다.


“오랜만이군.”


“예. 오랜만입니다.”


“쯧.”


돌아오는 답에서부터 느껴지는 마음의 짐에 토리스의 표정이 한층 찡그려졌다. 예상대로 뭔가 일이 생긴 것이 틀림이 없는 것 같다.


“말해 봐라. 뭐냐. 뭐가 네 마음에 짐을 지우고, 존재에 족쇄를 채우고 너를 조급케 하는 거냐.”


그의 말에 아인즈의 눈동자에 빛이 어렸다. 얼핏 섬뜩하기까지 한 눈동자.

세상의 모든 고뇌와 고통, 슬픔이란 슬픔은 죄 지고 있는 것 같은 그 눈동자에 결국 한숨을 내쉬고야 말았다.


“누가······죽었나?”


그 말에 약간이지만 움찔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토리스는 탄식을 뱉을 수 밖에 없었다.


“너······아니, 아니다. 내가 뭐라고 해 봐야 아무런 의미도 없겠지.”


착잡함에 머리를 쓸어 넘긴 토리스가 입을 꾹 다물고는 혀를 찼다.

얼마 지켜보지는 않았지만 저 양치기는 자신의 가족이라면 무슨 말도 되지 않는 짓을 대책 없이 저지르고 다닐 것이 뻔한 놈이었으니까.

그가 바벨을 찾는 것도 이해할 수 밖에 없었다.

바벨은, 신은, 사자를 소생시킬 수 있으니까.


“하아, 그래. 스피카가 죽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아니, 이것도 너에게는 아무런 위로도 되지 않겠지. 결과도 다르지 않을 테고.”


복잡한 상념이 소용돌이 치는 머릿속을 부여잡고 토리스는 아인즈를 직시했다.

지금 이곳에 있는 것은 마법사 토리스와 아인즈가 아닌 이명을 지닌 존재들. 바벨에 입장하기 위해서는 관리자의 허락을 받아야만 한다.


불을 노래하는 자가 하늘의 권세를 행하는 자에게 묻는다.


“너는, 너의 모든 행동과 인과와 업과 책임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겠나?”


“그래.”


“너는, 너의 존재와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것을 저당 잡힐 수도 있다. 너는, 그것을 감당할 수 있겠나?”


“상관 없다.”


“네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너는 직시하고 있나?”


“그래.”


“마지막으로 묻겠다. 너는······”


잠시 말을 끌던 토리스가 힘을 실어 한글자 한글자 뱉어낸다.


“어째서 나아가지? 두렵지 않은가?”


전혀 의외의 질문이었던 탓일까. 아인즈의 눈이 이채를 머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답을 내놓는다.

언제나 다짐했던, 다짐할 수 밖에는 없었던 그 문장을.


“뒤로 물러설 수도 없고.”


여기서 물러서면 자신이 행했던 모든 것이 거품과도 같고 아무런 의미도 찾지 못할 테니까.


“피할 수도 없고.”


이미 한번 도망치고 말았다. 여기에서 더 도망칠 수는 없었다. 또다시 도망친다면, 다시는 일어설 수 없을 것 같았으니까.


“멈출 수도 없으니”


여기에서 멈춘다면 언제까지고 이 마음을, 이 감정을, 이 짐을, 이 무게를 지고 영영 헤어나오지 못할 터다.


“결국, 나아갈 밖에.”


모든 선택지가 막혀 있다면 남은 것은 결국 하나뿐. 그 앞에 무엇이 있다 한들, 설령 끝없는 후회와 슬픔만이 존재한다 할지라도 일단은, 나아갈 밖에.

그에 대한 각오라면 이미 질릴 만큼 해 두었다.

그렇지 않으면 나아갈 수 없으니까.


“그래, 그러냐.”


그 슬픔과 각오가 가득한 답에 토리스는 공연히 머리를 긁적였다. 어찌된 게. 저렇게 굴곡진 답을 할 수 있는 것도 재주다, 싶었다.


‘뭐, 그래서 내가 이 녀석을 좋아하는 건가.’


애초에 시험 따위. 리에 닿은 이에게는 하등 무의미한 요식일 뿐이지만 굳이 그의 내심을 알고 싶어 그 허울을 뒤집어 썼다.

그 결과? 입맛이 쓴 느낌이다. 하지만 그만큼 더 마음에 들었다.


“좋아. 가봐. 첫번째 기둥은 너에게 협조하지. 너에게 첫 열쇠를 위임한다.”


빛이 산란되는 보석가루가 모여들고 그것은 하나의 결정을 이루어간다. 봉인된 지혜의 탑. 바벨을 열기 위한 첫번째 열쇠.

그것을 힘주어 감싸 쥐며 아인즈는 잠시 눈을 감았다.

이제, 진짜 시작이다.


* * *


“크윽, 커헉!”


접속을 종료하기가 무섭게 치미는 구역질에 곧장 달려가 치미는 것들을 게워낸 현휘는 허탈하게 웃었다.


“하, 하하.”


피. 토해낸 전부가 피였다.


“크윽, 하아, 하아······역시, 데미지가 큰 건가······”


얼핏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설마 이 정도로 피드백이 강할 줄은 몰랐다. 영혼이 이동한다는 것을 깨달은 뒤로 현휘는 줄곧 직접 영혼을 이동시키고 있었다.

진실된 세계를 살아가기 위한 일종의 다짐이랄까. 그 덕에 조금 더 생생한 감각과 감정을 누리고, 조금 더 원활한 마력을 운용을 손에 넣었다.

그것이 아니었다면 디알리아에서 그 괴수에게 이기지도 못했을 터였다.

하지만 얻은 것이 있는 만큼 잃은 것이 크게 다가왔다. 지금의 이 토혈도 그 여파였다. 그곳에서 입은 내상이 이곳까지 번져서 도진 것이니까.


“그나마 저기에서는 멀쩡했는데······”


쏟아진 피를 정리하고 쓰러지듯 침대에 몸을 던진 현휘가 한숨을 내쉬었다.


“앞으로······얼마나 더 이렇게 힘들어야 할까······”


이미 너무나 많이 힘들었는데, 아직도 그토록 원하던 안온은 주어지지 않았다. 왜일까.

세계가 자신에게 협조적이지 못해서?


“큭.”


막상 생각을 하고 보니 우스워졌다. 비협조적이라니, 비협조적이라니? 정말 비협조적이었다면 이런 힘을 주지는 않았을 터였다.

스르르륵.

이걸 어떤 감각이라고 해야 할까. 스스로의 능력을 그대로 느낄 때면 현휘는 그 생소한 감각에 놀라고는 했다.

비단 같으면서도 사포 같기도 했고, 공기 같으면서 물 같기도 했다. 어떻게 특정할 수 없는 어떤 느낌.

하지만 그 정체는 분명하다.


“신의 권능······현실 개변의 힘이라······”


비록 범위가 한정적이라고는 하나 자신의 능력은 분명 현실의 모든 현상에 개입해 스스로의 의지대로 변화시키는 신의 권능이나 마찬가지의 힘.

그런 것을 세계의 협조도 없이 손에 넣는다? 그것도 태생부터? 그건 불가능하다. 절대로.

세계가 스스로를 고칠 수 있는 힘을 그토록 무방비로 방치할 리가 없으니까. 하지만 어째서? 어째서 자신일까? 어째서 자신에게 이런 힘을 쥐여준 것일까?


“후우······생각하면 뭐 나오겠나.”


애초에 세상의 법칙은 철저한 등가교환. 갑과 을의 기준 모두를 충족하는 등가교환이 이루어지기가 마련이니까.

하지만 그렇다면 자신은 무엇을 해야 할까? 무엇을 행해야, 무엇을 완수해야 세계는 자신에게 평온과 안온을 보장할까?


“어려워.”


잠시 고민하던 현휘는 이내 몸을 일으켰다. 울렁이던 속이 진정된 것을 보니 내상이 어느정도 치유된 듯 싶었다.


“나가볼까.”


오늘 일찍 접속을 마무리 한 것도 그 때문이었으니까. 현휘가 방으로 들어가 외출할 채비를 했다.


* * *


수상 추모원. 지금으로부터 십여년 전 수상그룹의 연구소에서 일어난 대화재의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해 지어진 대규모 추모공원이다.

그리고 현휘의 부모님의 이름이 희생자 명단에 올라 있었다.


“후우······”


살짝 흘러 내리는 땀을 닦고는 현휘의 시선이 앞의 비석을 향했다.


수석 연구원 이선문

자문위원 유인화


너무나 그리운 이름. 현휘의 손가락이 그 이름을 가만히 더듬었다.


“아버지, 어머니. 저······왔습니다.”


‘현휘야, 연영이 잘 데리고 있어야 한다?’


‘올 때 맛있는 거 사올 테니까 동생 잘 데리고 있어야 해?’


‘네!’


‘난 아이스크림!’


‘그래, 알았다. 아이스크림 사올게. 오빠 말 잘 듣고?’


‘응!’


‘그래그래.’


이곳에 있노라면 떠오르고는 하는 그날의 기억들. 헤어지기 전, 마지막으로 봤던 부모님의 모습에 감정이 격해졌다.


“저는······저는······”


말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할말이 너무 많아서일까, 아니면 너무 적어서 일까. 얼마나 더듬더듬 입술을 뻐끔거렸을까.

결국 흘러나오는 눈물과 함께 안에 담겨있던 감정들이 봇물 터진 듯 쏟아져 나왔다.


“저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너무, 너무 힘 들어요. 이제, 그만 하고 싶은데······!”


이리안의 얼굴이 스쳐갔다. 그리고 꼭 닮은 연영의 얼굴도.


“이대로 그만두면 다시는 일어서지 못할 것 같아서······그게, 너무 무섭고, 두려워요.”


정말, 포기하면 편해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 다음은?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고 언제까지나 주저만 앉아 있는 것이 과연 사는 것일까?


“제가, 제가 원했던 것이 그렇게 큰 것인가요?”


다만, 단지 다른 평범한 사람들처럼. 평범하고 소소한 일상을 동생과 누리고 싶을 뿐이었는데. 가족과, 내 사람들과 함께 평범하고, 따스한, 안온한 그런 삶의 온기를 느끼고 싶었을 뿐인데.


“너무······힘들어요······”


비석을 마주하고 얼마나 시간이 흐른 것일까. 저물어버린 날의 냉기를 느낀 현휘가 고개를 들었다.

이미 얼굴은 눈물자국으로 엉망이었지만 그래도 속에 담고만 있던 것을 모두 토해낸 탓인지 한결, 홀가분해진 표정이었다.


“저, 이만 가 볼게요.”


자신이 유일하게 모든 것을 내려놓고 마음껏 울고 투정부릴 수 있는 곳에 작게 인사를 올리고 한결 가벼워진 걸음이 추모원을 떠나갔다.

그런 그에게 길을 보여주기라도 하려는 듯, 별만이 그저, 말없이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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