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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fle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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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nifle
작품등록일 :
2016.03.19 09:17
최근연재일 :
2019.04.04 19:57
연재수 :
266 회
조회수 :
20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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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9
글자수 :
1,493,079

작성
17.03.01 19:06
조회
291
추천
6
글자
11쪽

173화-기다리는 이들의 마을(4)

DUMMY

언제부터일까. 아니, 어쩌면 그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을지도 모른다. 그녀에게 그런 것은 이미 아무런 의미도 가지지 못한 채였으니까.

아주 오래전, 그녀가 인간일 시절, 정확히는 인간이라 믿고 있던 시절에 그녀는 한 노인의 손에 구해져 인간으로서 자랐다.

인간처럼, 그저 평범한 인간 소녀처럼, 마법에 대한 재능이 썩 괜찮은 그런 평범한 인간처럼. 그녀는 자랐고, 그 시간이 영원하기를 바랬다.

하지만 그 자그마한 소망이 부서지기까지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눈보라가 유난히 사납던 그 겨울날.

마을의 어른들을 이끌고 촌장, 하르달리스가 식량을 구매하기 위해 조금 떨어진, 제법 규모를 가진 마을로 떠났다.

한달 안으로 돌아오겠다고, 식량이 모두 바닥나기 전까지 꼭 돌아오겠노라고 그렇게 약속했었다.

그래서 믿었다. 그래서 그저 기다렸다. 전에도 몇 번, 갑작스러운 추위가 몰아닥쳤을 때면 이런 일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것이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고, 마침내 한달이 지나 약속한 기한을 채우고, 일주일이 더 지나 식량이 바닥을 보일 때 쯤에야 겨우 깨달았다.

떠난 이들이, 마을을 지켜주고, 이끌어 오던 어른들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그것을 깨닫고는 하루하루가 고단함의 연속이었다. 하늘은 잔혹하게도 보호자를 한순간에 잃은 마을에 그 어떤 자비도 내려주지 않았다.

날이 갈수록 추워져만 갔고, 식량은 점점 사라져갔다. 그나마 마법을 배워 조금이나마 사냥이 가능했던 엘라의 힘으로 마을의 스무명의 아이들은 간신히 아사하지 않고 생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비록 힘들었지만 투정하나 부리지 않고, 자신을 따라주는 아이들의 모습에 엘라는 힘겹지만 미소지을 수 있었다.

적어도 이렇게 봄까지만 견딜 수 있다면 그 다음부터는 어떻게든 자신의 힘으로 이 아이들을 충분히 지켜낼 수 있으리라 그렇게 믿었다.

그날, 그 일만 없었더라면.


“아아아악!”


그녀가 잠결에 그런 비명소리를 들은 것은 피곤에 지쳐 쓰러지듯 잠이 든 날의 밤이었다.


“으, 응......”


“꺄아아아악!”


졸음을 이기지 못해 뭉그적거리는 그녀의 귓가로 다시 한번의 비명이 날아들고, 그녀가 튕기듯 일어서 방문을 박차고 나섰다.

그리고 그녀가 목격한 것은 그녀가 가장 보고싶지 않았던, 가장 절망적인 바로 그런 광경이었다.


“아, 으아, 아......”


“흐, 아......흐으......”


이곳저곳에 낭자한 선혈의 자국들과 이리저리 흩어져있는 신체의 조각들. 그리고 힘겹게, 고통과 공포에 물든 숨을 내쉬는, 간신히 목숨을 붙잡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었다.


“이, 이드......니엘......첼......이게 어떻게 된......?”


떨리는 손을 곧 마지막 숨을 내쉬고야 말 아이들에게 가져갈 때에 섬뜩한 느낌이 척추를 흐르고 지나는 것이 느껴졌다.

그에 반사적으로 마력을 뭉치며 뒤로 돌아선 그녀는 훅 끼쳐오는 노린내를 맡으며 그대로 얼어붙고 말았다.


-크르르르르.


푸른 털에 그려진 검은 줄무늬들과 피와 같은 색으로 번들거리는 눈동자. 틀림없이 산의 지배자라 불리는 루르브였다.

아이들을 해친 것이 분명한 피묻은 앞발과 주둥이를 묵직하게 움직이며 다가오는 그 모습에 얼어붙은 채로 그녀의 영민한 머리가 민활하게 움직였다.

어째서 저 게으르고 태만한 지배자가 굳이 이런 아래쪽까지 내려와 행패를 부리고 있는 것일까.

그렇게 이어지던 의문은 이내 정답을 찾아냈다. 그리고 그 답에 그녀는 눈을 질끈 감을 수 밖에 없었다.


‘내......탓이구나. 다, 내 잘못이었어......’


모든 것은 자신의 부주의 탓이었다. 루르브의 흔적을 보았으면서도 자신이 남기는 흔적에 대한 그 어떤 조치도 하지 않았다.

그저 언제나처럼 아무런 문제도 없을 거라고 그렇게, 안일하게 생각했다. 그리고 그 결과가 이렇게 되고 말았다.


“내, 탓이야......”


-크르르르.


잘게 떨려 나오는 그녀의 목소리 위로 오랜만의 유희에 잔혹한 즐거움이 가득한 맹수의 웃음같은 으르렁거림이 내려 앉았다.


“내, 탓이야......”


자신이 아니라면 죽지 않았을 터였다. 자신이 조금만 더 주의했더라면 이 아이들은 한명도 죽지 않았을 터였다.

자신이 조금만 더 주의 했어라면, 자신이 조금만 더 생각이 깊었더라면, 자신이 조금만 더 조심했더라면.

이 아이들은 죽지 않았을 터였다.


“미, 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덮쳐오는 죄책감에, 자책감에 그녀가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모든 것은 자신의 탓이었으니까. 자신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테니까.

자신이 없었더라면 다른 어른이 남았을 것이고, 그렇다면 사냥에 능한 아저씨였으니까 이렇게 어이 없이 아이들이 죽는 일은 없었을 터였다.

무사히 겨울을 넘기고 봄을 맞아 무사히 어른이 되어 각자의 미래를 영유할 수 있었을 터였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자신 때문에 망가지고 말았다. 어리석고, 멍청한 자신 때문에. 스무명의 아이들이 모두 헛되이 목숨을 잃고 말았다.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정말......미안해......”


-크아아아앙!


고개를 떨구고 만 그녀의 위로, 푸른 그림자가 덮쳐들었다. 그리고 바위조차 우습게 뭉개는 힘이 담긴 앞발이 그녀를 치려는 순간 그녀의 눈에서 붉은 눈물이 뚝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세상이 정지했다.


“아......?”


덮쳐들던 루르브도, 간신히 놓치지 않은 숨을 가쁘게 내쉬던 아이들도 모두. 그 모습 그대로 멈춰섰다.

그 이상하고, 이해할 수 없는 현상에 엘라가 멍한 탄성을 뱉을 때, 목소리가 들려왔다.


-늦었구나.


“아, 아?”


어디서 들리는 것일까. 머리에 직접 주입되는 것 같은 그 목소리에 엘라가 여전히 멍한 채로 주변을 두리번 거리자 사방이 새하얗게 명멸했다.

갑작스럽게 망막을 찌르는 강렬한 백색에 잠시 눈을 감았다 뜬 그녀의 눈에 비친 것은 아무것도 없는, 새하얀 공간이었다.

오직 자신의 존재만을 겨우 확인할 수 있는 그곳에서 그녀는 까닭모를 익숙함을 느꼈다.

어디서일까? 분명 느껴본 적이 있는 느낌이고, 본 적이 있는 장소와 빛이었다. 그리고


-너무 늦었어.


분명히 들어본 적이 있는 목소리였다.


“당신은......누구죠?”


바로 앞, 새하얀 공간에 녹아든 것처럼 아무것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하얀 상대에게 경계심 가득한 목소리로 그녀가 물었다.

그에 그의, 어딘지 모를 안타까움이 느껴지는 목소리가 공간을 울렸다.


-너무 늦었구나. 너무 늦었어. 조금만 더 빨랐더라면 너도, 그런 상처를 입을 필요가 없었을 텐데.


마치 자식을 걱정하는 부모의 그것과도 같은 그 목소리에 자연스럽게 풀려버리는 긴장을 느끼며 엘라가 다시금 물었다.


“당신은 누구죠? 왜, 저를 이렇게 부른 건가요?”


-그건 네가 더 잘 알고 있지 않니? 엘라.


“무슨 말이죠?”


-네가 인간이고 싶은 것을 안다. 인간으로 자란 것 역시 알아. 하지만 그것을 고집한 결과는 지금과 같구나.


그 말을 들은 순간 엘라의 눈이 사납게 치떠지며 그녀가 경계어린 태도를 취했다. 지금 그가 하고 있는 말은 세상에 단 두명. 자신과 스승만이 알고 있는 일이었으니까.


“당신......정체가 뭐죠?“


마력마저 끌어올리는 그녀의 모습에도 그는 여전히 평온한 모습으로 입을 열었다. 어딘지, 조금 쓸쓸해 보이는 목소리였다.


-너도 나를 잊었구나. 아니,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해야할까.


“당신은 누구냐고요!”


거세게 반항하는 것 같으면서도 반말은 하지 않는 그녀의 태도에 그의 목소리에서 약간의 웃음기가 느껴졌다.


-다행이구나. 완전히 잊은 것 같지는 않아서. 정말 다행이야.


“당신은 누구냐고요! 대체 왜 이제와서 내게 이런 일을......!”


-쉿.


언제 다가온 것일까. 귓가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엘라가 흠칫 놀라며 돌아서 한 벌짝 뒤로 훌쩍 물러섰다.

마법사라고는 믿기지 않는 날렵한 움직임에 엘라의 눈이 커졌다.


“이, 이게......?”


-후후......


“당신, 내게 무슨 짓을 한 거죠?”


갑작스럽게 달라진 자신의 몸에 엘라의 목소리에서 한층 강한 경계심이 느껴졌다. 단순히 몸만 달라졌다면 그저 마법의 범위에서 이해할 수 있었겠지만 지금 그녀의 머릿속에는 전투의 감각마저 하나둘 떠오르고 있었으니까.

빈말이라도 평범하다고 할 수 없는 일을 간단하게 한 그의 모습에 엘라가 가만히 마른침을 삼켰다.


-그러니, 말하지 않든? 너는 기억하지 못하는 거라고.


“그러니까 그게 무슨......!”


-쉬이.


또, 또다. 이번에도 기척조차 느끼지 못하도록 다가온 그가 가만히 엘라의 입술을 검지로 눌렀다.

이번에는 자신의 바로 앞에 나타난 그의 모습에 그를 가만히 바라보던 엘라는 그의 얼굴을 인식할 수 없음에도 그가 웃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게, 무엇을 바라는 것인가요?”


-글세? 바라는 것? 아니, 아니야.


그가 고개를 내젓고는 손가락을 들어 엘라를 가리켰다.


-오히려 네가 바래야 해. 바라는 것은 순전히 네 몫이야. 나는 그것을 들어주고, 이루어 주는 입장이고.


“당신이......누구길래......?”


-글세......


어딘지 씁쓸하게 느껴지는 목소리로 말한 그가 작게 고개를 흔들었다.


-그건 무의미해. 적어도 지금은. 아주아주 나중이라면 모르겠지만 확실히 지금은 그래. 나는 그저 이름도 없고, 선명한 존재도 없는 그런 존재일 뿐이니까.


“그럼, 왜?”


자신의 앞에 나타난 것이냐 묻는 그녀의 얼굴에 그가 답했다.


-오로지 너로 인해 내 존재가 이렇게나마 유지되고 있는 거니까. 네가 아니었다면 난 오래전에 이 정도의 형체와 존재조차 유지하지 못하고 오랜 망각 속을 헤매고 있었을 거야.


“대체 제가 뭐 길래요?”


-너?


키득거리며 숨죽여 웃는 소리가 잠시 들려오고, 그의 얼굴이 엘라의 눈 바로 앞까지 다가왔다.

상대가 인간이었다면 숨결마저 느껴질 거리. 하지만 상대는 인간이 아님을 증명이라도 하듯 그 어떤 호흡도 하지 않고 있는 상태였다.


-내 유일한 성녀. 나의 사랑하는 딸. 이 세상에 겨우 혼자 남은 유일한 신의 사랑을 받는 이.


“네......?”


-그러니 말해. 너의 소원을. 이루어 줄테니. 그러니 빌어. 너의 간청을. 들어 줄테니. 그러니 원해. 너의 원망을. 내가 허락할 테니.


“저, 저는......”


-너는 나의 딸, 나의 성녀. 나의 사랑하는 아이.


그가 팔을 뻗어 엘라의 머리를 가만히 쓰다듬었다. 그녀가 움츠러들지 않도록 조심히, 하지만 사랑스럽게.


-그러니 의심치 말고, 의혹을 가지지도 말고, 의문을 가지지도 말고 그저 원하고, 말하고, 바래. 그러면.


쪽. 작은 입맛춤이 그녀의 이마에 내려 앉고 그가 미소를 그렸다.


-이루어 질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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