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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님의 서재입니다.

도망치지 못한 왕은 주나라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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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작품등록일 :
2022.10.28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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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01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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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2화 보신을 위한 지혜

DUMMY

452화 보신을 위한 지혜


“어, 어떻게 합니까?”


부관이 묻는 말에 잃었던 이성을 되찾은 총병 좌량옥은 재빨리 사방을 살폈다.


불행 중 다행으로 개봉에서 청나라 군사들이 나올 기미는 아직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다음으로 본 것은 동요하는 병사들이니 그는 자신의 실책을 깨달았다.


‘빌어먹을, 너무 감정대로 말했어.’


지휘관은 설령 좋지 않은 일이 있더라도 상정한 것처럼 움직여야 아래에 안심을 줄 수 있는 법이다.


좌량옥도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었지만 너무나도 억울함과 분함으로 인해 이성을 잃어 실수를 범하고 말았다.


한 차례 머리가 차게 식은 좌량옥은 그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헤아렸다.


‘돌아갈 수는 없어. 그러면 정말 끝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돌아가면 그 순간 모든 책임은 좌량옥에게 올 것이 뻔했다.


명나라 조정 돌아가는 사정이라면 북경이고 남경이고 가리지 않고 자세하다고 자부하는 좌량옥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얌전히 물러나는 걸 선택지에서 지웠다.


그렇게 얼마 없는 선택지 가운데 하나를 지우니 실질 남은 것은 무모함인가, 아니면 잠시 미룸인가 밖에 없으니 좌량옥은 고심 끝에 후자를 골랐다.


“물러난다! 물러나서 진을 친다!”



***



“놈들이 물러납니다!”

“흐음.”


개봉을 점거한 청나라 장수, 의정대신 타타라 잉굴다이는 눈살을 찌푸리며 멀어지는 좌량옥의 군대를 바라보았다.


‘살짝만 찌르면 무너질 거 같은데.’


생각 같아서는 당장에 출전해서 저들을 사방에서 휘몰아치고 싶었다.


그에게 주어진 병력은 수천이지만 모두가 팔기이니 작정하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한눈에 보아도 적들은 훈련이 부족하고 기강 역시 엉망이다.


있는 거라고는 오로지 숫자가 전부인 오합지졸로 보이니 구미가 크게 당기는 건 당연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역으로 잉굴다이는 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섣불리 나설 생각을 하지 못했다.


‘누가 먹어도 먹을 수 있는 적. 아주 적당한 상대란 말이지.’


당장 청나라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는 잉굴다이는 눈앞의 상대가 바로 먹기에 아깝다고 여기니 곧 그는 생각에 따라서 입을 열었다.


“낙양에 사람을 보내야겠다.”

“지원을 요청하실 생각이십니까? 저 정도는 저희만으로도 충분합니다.”


팔기 하나가 의아한 얼굴로 묻자 잉굴다이는 씩 웃었다.


“그 말대로지. 하지만 좋은 기회이니 두 분께 양보함이 낫겠다 싶어서 말이다. 이는 예친왕께서도 달가워하실 일이다.”

“그, 그렇습니까?”


유력한 친왕 셋이 좋아할 거라는 말에 팔기는 더 무어라 항변하지 못했다.


그런 팔기를 보며 잉굴다이는 웃으면서 명령을 내렸다.


“후후, 곧 알게 될 것이니 걱정하지 마라.”

“알겠습니다. 허면 무슨 말을 전하면 되겠습니까.”


팔기가 묻는 말에 잉굴다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서신을 따로 적어주긴 하겠지만 일단 말해주자면 정친왕과 성친왕 두 분께 이리 말씀드리면 된다.”


멀어지는 좌량옥의 군대를 보며 잉굴다이는 입맛을 다시는 듯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녹영에게 좋은 먹잇감이 있다고 말이다.”



***



물러난다는 말이 과연 어디까지 통용되는지 시험하겠다고 하듯 개봉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진을 친 좌량옥은 밤이 깊도록 고민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대인, 시키신 일을 하고 왔습니다.”


부관의 말에 좌량옥은 고개를 끄덕이며 외쳤다.


“들어와서 더 상세히 보고해!”


좌량옥의 말에 부관이 안으로 들어와서 다시 말했다.


“이르신 대로 병사들이며 장수들에게 단단히 일렀습니다. 여기서 도망치면 탈영이 아니라 적전 도망, 즉각 참수할 수 있는 죄라고 말입니다.”

“좋아.”


일단 병사들을 잠시나마 붙잡아 두는 일에 성공하였다고 여긴 좌량옥은 안도했다.


그러나 그도 잠시, 그것이 과연 얼마나 갈까 생각하면 절로 수심이 드니 좌량옥은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후우.”

“······대인.”

“뭐지?”


부관이 주저하다가 묻는 말에 좌량옥은 신색을 고치며 물었다.


그러자 부관은 한층 더 주저하는 기색을 보이더니 두 눈을 질끈 감으며 물었다.


“······싸웁니까?”


그가 물은 것은 좌량옥을 고민케 하는 근간을 꿰뚫는 것이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좌량옥은 사방을 한번 둘러보아서 듣는 귀며 보는 눈이 없는 건 연거푸 확인한 후에나 입을 열었다.


“자네만 있는 거 같으니 내 솔직하게 말하지. 이대로 그냥 물러나면 안 돼. 그건 확실해.”

“승산이 너무 없습니다.”


좌량옥이 하는 말에 부관은 착잡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익히 짐작은 했지만 직접 이렇게 들으니 암담한 현실이 한층 더 크게 다가오는 느낌이 든 좌량옥은 저도 모르게 성질을 냈다.


“그러면 어쩌라고! 이대로 돌아가면 병사들에게 말한 일이 내게도 일어날 판이야! 적전 도망이라고! 나는 물론이고 군대 전체가 말이네!”


가득 흥분하며 빠르게 말을 쏟아낸 좌량옥은 이내에 너무 지나쳤다는 걸 깨닫고 고개를 흔들었다.


“미안하네.”

“그것은 괜찮습니다. 하지만 저는 다시 말씀드리니, 싸우면 필패입니다.”

“나도 알아, 안다고.”


침울한 얼굴로 현실을 인정한 좌량옥은 머리를 가득 메운 짜증에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긁었다.


당장 좌량옥이 이끄는 군대가 부실함도 그렇지만 본디 수성에만 전념하면 된다고 계속 이르면서 진군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개봉에 이르니 상황이 바뀌어 졸지에 그들은 수성이 아니라 공성할 처지가 되었으니, 수성이라서 안심해도 된다는 말은 역으로 군대를 불안하게 하는 말로 바뀌고 말았다.


목숨이라도 건지고자 하면 지금 당장 야밤이라도 몸을 빼는 게 옳았다.


아무리 멀찍이 물러났다고 하지만 청나라 오랑캐들의 기동력은 좌량옥도 누누히 들었기에 솔직히 말해서 지금도 불안한 기분이 없잖아 있었다.


“일단 버틴다. 상황 좀 보고, 지원도 좀 청한 다음에 시늉은 했다고 주장하고 돌아가면 돼.”

“저, 정말 괜찮을까요?”

“안 그러면 돌아가는 즉시 내 목이 달아날 거에 더해서 자네가 벼슬길에 십 년은 발도 못 붙일 거라는 걸 장담하지. 아니면 내 관 파헤치고 불 지르게.”


장담을 해도 꼭 이런 것인가 스스로 생각한 것도 잠시, 좌량옥은 한층 더 확실하게 하기 위해 말을 덧붙였다.


“그렇군. 혹시 모르니 유서라도 하나 써 줄까? 내가 그렇게 하라고 했다고 말이네.”

“······아닙니다.”


부관은 이 말을 마지막으로 군례를 취하고 물러났다.


그가 나가는 걸 보던 좌량옥은 홀로 남아서 한참을 더 고민하다가 도무지 나오지 않는 답에, 더 정확히는 이미 나온 말 외에는 아무것도 더 나오지 않는 상황에 좀처럼 얼굴을 피지 못했다.


“마치 바둑판 사석이 된 기분이야. 아니, 사석이 된 거 같은 게 아니라 사석 그 자체인가? 응?”


조금이나마 답답함을 해소하고자 중얼거린 좌량옥은 귓가에 들리는 소리에 바깥을 향해 물었다.


“비가 오는 것이냐?”

“예, 그렇습니다.”


돌아온 대답에 좌량옥은 작은 희망을 담아서 중얼거렸다.


“비라. 적어도 오늘은 마음 편히 자려나.”


비가 오면 습격하기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하여 장담은 할 수 없지만 기병이 주력인 청나라를 생각하면 차라리 이게 나았다.


“제법 기세가 있는 거 같은데, 이대로 며칠이고 내려주면 좋겠군.”



***



좌량옥의 바람이 무색하게도 비는 아침이 되자 그쳤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일이 있다면 진으로 접근하는 길들이 모두 진창으로 변해서 기병들이 오가기 쉽지 않게 보인다는 점이었다.


허나 그것을 믿고 마냥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이니 좌량옥의 군대는 아침부터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거기, 목책을 단단히 세워라!”

“그게 해자냐? 우리 집 할머니도 그냥 건널 깊이잖아!”

“지금 나무로 징검다리 만드냐? 평평하게 하지 말고 뾰족하게 해야지!”

“이 멍청아! 흙은 당연히 바깥으로 퍼내야지!”


수성할 처지가 아니게 되었으니 최대한 비슷하게 흉내 내기 위해 진지를 아예 목성 형식으로 꾸리기로 하였으나 이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숙련병들이 시범을 보인다고 한들 한계가 있으니 진척이 좀처럼 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러다가 해 뜨면 청나라 놈들에게 그대로 휩쓸려 뒤지겠군.”

“해는 안 뜰 겁니다. 아니, 뜨기는 했지만 보이지 않는다고 해야겠습니다.”

“응?”


걱정과 짜증을 담아서 중얼거린 좌량옥은 부관의 말에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구름이 있다고는 하지만 곧 개이는 게 아닌가?”

“예전에 개봉에서 일했는데, 이 부근 날씨는 이렇게 되면 잘 개이지 않습니다. 아마 해가 질 무렵마다 비가 내리는 우중충한 날씨가 계속될 겁니다.”

“그래?”


생각지도 못한 대답에 좌량옥은 잠시 생각하더니 부관에게 물었다.


“부관, 개봉에서 무슨 일을 했지?”

“추관 일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도적들이 들이닥쳐서 몸만 간신히 뺐지요.”

“크흠, 크흠.”


개봉에서 도망쳤다는 말에 민망함이 든 좌량옥은 여러 번 헛기침했다.


그렇게 얼마간 민망함을 달랜 좌량옥은 애써 침착한 얼굴로 물었다.


“비가 얼마나 올 거 같은가?”

“며칠은 내릴 겁니다. 다만 기병이 움직이는 일에 지장을 받을 정도는 아닙니다.”

“그건 아쉽게 되었군.”


아쉬움은 진심이나 좌량옥은 입맛을 다시며 식사로 챙겨둔 주먹밥을 하나 꺼내어 물었다.


그러나 영 입맛이 돌지 않으니 그는 두어 번 베어 물은 후에 그대로 식사를 그쳤다.


“입맛이 이렇게 없기는 난생처음이야.”

“위안이 되실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몇 번 있습니다.”

“응?”

“황하가 오죽 무서워야지 말이지요.”


부관은 그렇게 말한 후에 몸을 부르르 떨며 말을 이었다.


“으으, 진짜 끔찍한 상상이 연이어서 들었습니다. 집이 쓸려나가면 어쩌나, 아니면 거둘 곡식이 부족하면 어쩌나 말입니다.”

“하.”


관리가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지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 좌량옥 자신이 겪고 있는 위기에 비하면 목숨은 확실하게 부지할 터이니 비할 바가 아니라고 여겼다.


“황하가 무섭다고 하나 제방이 있지 않나. 허니 그런 건 그야말로 기우라고 해야······잠깐만.”


말을 하던 중 좌량옥은 돌연 번뜩이는 생각에 멀리 개봉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가능할까?’


가부를 따지던 좌량옥은 이내에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지금 그가 여기에서 승산도 없이 버티고 있는 게 승리를 위해서가 아니듯 그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하나였다.


바로 ‘최선을 다했다’는 증거였다.


그런 면에서 이 방책은 매우 좋았다.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는 말을 붙이기에 아주 좋은 방법이었으니 말이다.


이리저리 생각한 그는 아직도 목책이며 해자를 준비하느라 분주한 병사들을 보며 부관에게 물었다.


“부관.”

“예, 대인.”


부관이 대답하는 말에 좌량옥은 입을 열다가 여기서 할 말은 아님도 그렇고 이렇게 그와 거리를 두는 식으로는 하기 어렵다고 여겼다.


잠시 생각하던 그는 부관을 향해 은근하고 친근하게 일렀다.


“내 편히 황 동생이라고 부르지.”

“예?”


돌연한 말에 부관 황주는 당황하여 되물었다.


“안으로 들어가지. 아무래도 자네하고는 논할 일이 있는 거 같아.”

“어······.”

“아, 걱정하지 말게.”


안심하라는 듯이 황주의 어깨를 두드린 좌량옥은 뱀과 같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자네와 나는 몸 성히 함께 남경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야.”


작가의말

[후원에 감사드립니다!]

비르지니님 후원에 감사드립니다!!

후원하여 주신 기대에 응해 더욱 좋은 글을 쓰도록 정진하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24년 갑진년 첫날, 인사 올립니다.

 

독자 여러분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행복하고 건강한 한 해 보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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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5 454화 거북이와 겁쟁이 +3 24.01.03 198 13 13쪽
454 453화 사람을 움직이는 힘 +3 24.01.02 197 14 13쪽
» 452화 보신을 위한 지혜 +7 24.01.01 213 17 12쪽
452 451화 공백 +8 23.12.31 220 18 12쪽
451 450화 기대 +3 23.12.30 222 17 12쪽
450 449화 쥐기 위해서는 놓을 줄도 알아야 한다 +5 23.12.29 207 15 12쪽
449 448화 호의의 뒷면 +1 23.12.28 210 19 13쪽
448 447화 사람은 지나간 일을 쉽게 여긴다 +2 23.12.27 232 16 12쪽
447 446화 사신도래 +1 23.12.26 235 19 13쪽
446 445화 영원 +5 23.12.25 207 19 15쪽
445 444화 성문 공방 +4 23.12.24 214 16 13쪽
444 443화 물러날 수 없는 자리 +3 23.12.23 208 15 13쪽
443 442화 상잔 +2 23.12.22 213 17 13쪽
442 441화 동관풍운 +4 23.12.21 238 17 12쪽
441 440화 막역지우 +2 23.12.20 227 17 14쪽
440 439화 욕심을 부려야 할 때도 있다 +3 23.12.19 244 16 13쪽
439 438화 갈림길 +3 23.12.18 221 14 12쪽
438 437화 도적인가 이웃인가 +5 23.12.17 233 17 13쪽
437 436화 천하는 쉬지 않는다 +2 23.12.16 241 16 12쪽
436 435화 사대부의 나라 +4 23.12.15 270 17 14쪽
435 434화 새로운 이웃 +3 23.12.14 235 19 12쪽
434 433화 노신과 황제 +4 23.12.13 235 14 13쪽
433 432화 관중왕 +3 23.12.12 225 15 13쪽
432 431화 죽은 말과 산 말 +3 23.12.11 231 18 13쪽
431 430화 패인 골을 메우기는 어렵다 +3 23.12.09 249 15 14쪽
430 429화 높을수록 떨어질 때 아프다 +4 23.12.08 260 13 15쪽
429 428화 산둥의 주인 +8 23.12.07 284 16 16쪽
428 427화 하늘의 뜻을 받고 덕을 세우고자 하는 자 +7 23.12.06 290 20 17쪽
427 426화 저울질 +6 23.12.05 242 16 13쪽
426 425화 중간 +7 23.12.04 258 16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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