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 vs 나이트 길드 - 01
시작되는 맑고 경쾌한 바이올린 선율과 함께 대낮보다도 밝은 강렬한 불빛이 주몽의 재빠른 손놀림 위에서 번뜩임과 동시에,
- 푱.
군더더기 하나 없이 깔끔한 솜씨로 날리는 첫 화살.
- 쿵!
미리 누나 또한 지팡이로 지면을 내려 찍는다.
이를 따라,
- 촤륵.
물줄기가 그녀 앞으로 일어나,
- 춍.
쇄도하려던 화살이 저절로 잠겨 들어 그 힘을 잃고 바닥으로 툭.
그 한 번에 좌중이 술렁인다.
“미친. 중급 정령을 즉시전한다고?”
내가 정령에 문외한인 편이어도 이게 뭘 뜻하는 건지 정도는 안다.
특별한 준비없이 곧바로 소환하는 이 즉시전 된다는 것인 즉,
이 누나가 우리 모르는 사이 상급 정령과의 계약을 치뤘다는 것.
그러는 중에 누나는 다시 한번 더 쿵,
나타나는 물로 이루어진 소녀의 모습.
“합!”
그 합장 한번으로 일어나는 파장이 삽시간에 퍼져 총 두 기의 정령 모습이,
- 꼬드드드득.
“···오호라.”
새하얗게 얼어붙으며 경기장 불빛을 이리저리 난반사 시킨다.
내 기억 속 앳된 상의 장난기 넘치는 모습은 온 데 간 데없이 침착하고 잔뜩 긴장된 모습이 낯설다.
“속성 심화···.”
내 뒤쪽에 누군가가 그랬다.
“아예 초장부터 작정하고 몰아칠 생각인 가본데요.”
그 말 그대로 순간 나타난 얼음 가시들이 단단히 벼른 것처럼 주몽에게로 쇄도한다.
- 챙챙챙챙.
한편 상대는 새하얀 장각궁을 이리 저리 흔들듯이 뒤 쪽으로 빠지는 걸로 아직까지는 느긋하게 피하고만 한데 그 모습이 꽤 여유롭기까지 하다.
“기회를 노리고 있군.”
“네?
시간 끌면 불리한 건 그 쪽 아니예요?”
혼잣말하는 백수형에 되묻는 녹라.
“그게 꼭 그렇진 않아.
오히려 시간에 쫓기는 건 이 쪽인 지도 모르지.”
“···어째서죠?”
“저 중급 정령들은 그저 견제용도야.
저 것만으론 어렵지.
무한정 유지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따라서 지금 미리 입장에서 결착 내려면 결국에는 상급 정령이 필요해.
상대는 그 때를 기다리는 거고.”
주몽은 이리저리 쏟아지는 얼음 가시들을 시선 하나 안주고서 족족 피하고 있다.
돋아난 얼음 가시들의 숲속에서 그러고 있으니
무난하게 경쾌한 바이올린의 연주 탓에 우아해 보이기까지 하는 가운데,
‘과연 그렇군.’
그 말 의식해서 쭉 지켜봤더니 그 시선만큼은 단 한번도 미리 누나에게서 떼지를 않다니,
상대방이 가장 취약할 그 순간만을 냉철하게 숨죽여 기다리는 웅크리고 있는 맹수.
“···괜히 궁수 1위인 건 아니라는 건가.”
처음의 화살로 떠보고 이런 판단을 내렸다는 건가.
“과연 어떻게 나올지.”
아무래도 내가 상대하게 된다면 여유 같은 거 줘선 안되겠다고 생각이 굳어간다.
한편 미리 누나가 다시 쿵쿵. 본래의 물의 정령이 둘 는다.
“넷이나···?”
하나는 다른 얼음 정령과 함께 거느리고 나머지 하나는 반대쪽.
한창 유유히 피하고 있는 얼음 정령의 맞은 편에서 다가가자 마자,
- 촥!
작은 해일에 비견될 상당한 규모의 파도가 양 옆으로 몰아치는,
“어이쿠.”
- 철썩.
그 사각.
바로 정면으로 달려 그걸 빠져 나오,
- 붕붕붕붕붕.
는 순간에 회전하며 날아드는 단검.
거리가 거의 대각선 반대편이라 그런지 위력이며 그 정확도가 현저하게 떨어져 있었고,
- 슥.
그렇겠지.
손쉽게 피하겠,
- 홱.
거니 하는 걸 노렸다는 듯이 공중에서 낚아채고서
한 바퀴 도는 스핀에 어깨, 허리, 허벅지 힘까지 제대로 실어
역으로 미리 누나에게 날린다.
- 부웅.
그 반동으로 자세까지 완전히 낮추고서 교활하게 실실.
허물어지는 물줄기를 이리저리 피하며 적당한 자리로 나오는 사이에 날아드는 단검,
- 쨍그랑!
누나도 물론 거느린 호위역 둘 있으니 그야 속절없이 당할 리는 없었으나,
- 챰방.
예상치 못하게 깨지는 얼음 장벽 탓에 보험 삼아 건 물 장벽이 제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이거 어깨 힘이 제법···.’
얼음 장벽의 굵기가 상당했을 텐데.
‘그걸 이 거리에서 날려 부순다라···.’
그런데 아무래도 기회를 노리는 건 주몽 뿐만이 아니었다.
- 꾸물꾸물···.
바닥으로 쏟아진 물웅덩이에서 솓아오르는 수상쩍은 낌새.
“···음?”
녀석도 눈치챈 것 같은데,
- 푝.
이미 늦었다.
눈에 거의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얇고 대단히 날카로운 얼음 가시가 녀석을 향해 빠르게 날아드,
- 톡.
는 걸 춉으로 꺾어낸다.
“저걸 막는다고?”
“어림없지.”
‘위기 감지 능력이 보통이 아니다.’
- 펑!
쏟아졌던 물웅덩이가 다시 치솟아 오르는 걸 기점으로 두 정령은 파상공세를 더해간다.
주몽을 가두려는 지 이번에는 녀석 머리 위에서 거의 뒤덮으며 쏟아지는 물줄기가,
- 꼬드드드득.
쏟아짐과 동시에 순식간에 얼어버리며 여기서는 보이지 않는 공간 안쪽 전체를 잠식해 들어간다.
“흡!”
물론 이 구도라면 아까처럼 자세 낮추고 굴러 빠져나온다는 게 썩 나쁜 판단은 아니다.
- 좌르르르르.
흥건히 흩뿌려져 있던 물웅덩이가 그 아래로 모여들지만 않았다면.
“칫.”
나였어도 여기서 못 피했을 것 같은 그런 궁지를 대체 어떻게 빠져나올 것인,
“합!”
- 꽝!
- 챙그랑!
미친, 기세 만으로 이걸 터트린다고?
얼음 벽을 정면으로 뚫고 나온 녀석에게 사람들의 함상이 한 차례 쏟아진다.
“···저게 궁수야?”
“뭐······. 일단은······.”
“근데 여태 활 한번 안 쏘던데.”
“······.”
상당한 체술의 소유자.
“쯧.”
혀를 저절로 차게 된다.
이거 영 까다롭게 됐구만.
- 스으으으···.
한편 이번 한 번으로 공세를 놓치지 않으려 정령들이 다시한번 공격을 감행했다.
이제는 아예 대놓고 주변 바닥 전체를 거의 휩쓸다시피 다가오는 파도.
저건 전적으로 옳은 판단,
한번 실패했다고 실망할 것 없이 끈질기게 들러붙고 붙어야만 한다.
아까처럼 너무 빠르게 얼리지 말고
지금처럼 일단 물에 닿게만 해 움직임을 봉쇄해야만 한다.
그럼 물에 잠깐 닿은 걸로 그대로 얼어붙어 그 순간 즉사.
이 노림수를 이 쪽도 저 쪽도 서로 뻔히 알면서 노골적으로 끈질기게 쫓고 쫓기는 와중,
- 촥!
치솟는 물줄기,
이에 필요에 따른 도약,
앞으로 공중제비로 어찌저찌 또 피해낸다.
근데 하나 간과했다.
- 휙.
바로 부쩍 가까워진 거리 탓에 플로리스의 허용 범위 내에 들어섰다는 것.
머리를 제대로 노리고 직선으로 날아드는 걸,
- 홱.
그것도 공중에서 어떻게든 피해 뺨만 스치는 걸로 그쳤다.
근데,
- 휘휘휘휙.
아무래도 여태 역이용될 까봐 자제하던 단검을 마구잡이로 쏟아내기 시작한다.
- 챙챙챙챙.
저 괴물은 그걸 다급히 꺼내 쥔 화살로 튕겨내며 착지한다.
“···저거 진짜 궁수 맞는거죠···?”
“······.”
하지만.
- 척.
이제 막 착지하려 발을 디디는 녀석을 향해 플로리스가 왼쪽 앞발을 크게 내딛는다.
언젠가 본 적 있는 특유의 피칭에 가까운 자세.
- 피이이이잉···.
마치 불새의 울음소리에 흡사한 파공음과 함께 거기에 실린 이글거리는 불의 기운이 이제 막 일어서려는 놈에게 작렬했을 때,
- 뻥!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박력과 함께 터져 버린다.
모이던 물살이 산산히 튕겨 나간다.
공기의 박력이 여기까지 느껴져 온다.
이윽고 채 걷히지 않은 폭염 너머로 군중은 숨죽이며 결과를 기대했으나,
“이런 미친.”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폭염 뒤쪽 바닥에서 엉금엉금 기어서 일어서는 멀쩡한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와. 저 상황에 저걸 쏴 맞추네.”
그랬다.
착지하고서 맞기 직전,
저 미친 인간이 그 어정쩡한 상황에서 단검 쳐내던 화살을 욱여 맞춰서 터트린 것이다.
지금 저건 폭발 덕분에 튕겨 난 바람에 그리 됐고.
그리고,
- 꾸물꾸물.
아직 어수선한 그 틈을 다 물의 정령이 스르르 바닥을 기며 은근슬쩍 물길을 끌어오기 시작했고.
“흡.”
그걸 눈으로 보자마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서 피하려 했지만,
“나이스!”
“좋았어!”
한 끗 차이로 그 물덩어리에 발 끝을 내주고야 말았다.
- 탁!
- 꼬드득꼬드득.
그 순간 얼음의 정령이 기다렸다는 듯이 손가락을 튕겨 그 부분부터 얼어들어가기 시작,
“하아아압!”
- 꽝!
하려는 걸 무슨 맨주먹으로 내려 찍는다고?
여기 발끝에 느껴질 정도로 쩌렁쩌렁하다.
“시발 저게 어떻게 궁수냐고.”
우리 쪽이며 군중들이며 너나 할 것 없이 수근대기 시작했는데,
나도 지금 어처구니가 없어서 이게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지조차 감이 다 먹먹한 와중,
- 쩌저적쩌저적.
그러거니 말거니 잠깐 얼어붙으려던 얼음이 쩍쩍 갈라져 나가
결국 놈이 그 자릴 유유히 벗어나는 걸 허용해 버리고 만다.
“격투가···에 가까운 건가.”
“바람아.”
이스칼이 문득 부르더라.
무슨 말인지도 알겠다.
단단히 긴장하라는 거겠지.
예상했던 것 이상의 기량의 소유자니까.
“하.”
짜증이 팍 나 인상만 구기고 그 쪽 쳐다보지도 않은 채 긴장의 날을 살살 벼르기 시작한다.
아무래도,
- 웅성웅성···.
끝이 멀지 않은 듯하니까.
“···소환···이라고? 이 상황에?”
한편 미리 누나는 이 쪽 상황은 정령과의 사상공유와 눈짓만으로 거의 이 쪽에 맡겨만 놓더니
어느새 우리 기준 왼쪽 저 멀리,
건너편인 나이트 길드 쪽 구석에 틀어박혀서는 소환 준비에 한창이었다.
“위험한데···.”
누군가 했을 사정 잘 알지도 못하는 소리.
그딴 건 누나도 이 시합 시작하기 전부터 각오한 바.
이스칼의 주문도 있거니와 저 주몽이 본격적으로 나오는 순간에는 반드시 필요하다.
플로리스와의 연계와 중급 즉시전으로 소환할 여력을 쥐어짜내고 또 짜낸 거다.
그걸 위한 공세였고,
만에 하나 이 주몽만 잘 넘긴다면 다음 상대부터는 상급 정령으로 파죽지세로 몰아칠 수 있을 지도 모르니
해볼 만한 그 가치가 충분하다는 것쯤은 틀림없는 사실.
‘그랬음 좋겠지만···.’
“장난은 이쯤 해두기로 하고.”
그런데 그 간당간당했던 균형이 지금 막.
“이제 슬슬.”
‘눈빛이.’
주몽이 화살을 다시 꺼내며 시위에 건다.
‘변했다?’
“끝내 보도록 할까?”
무너지려 하고 있었다.
- 작가의말
후... 죄송합니다.
제가 참 많이 늦었습니다.
갑작스레 일상에 기복이 있었고,
컨디션 악화에 슬럼프까지 겹 악재...
2019년 왜이렇게 꼬였는지 참;
올해는 슬슬 좀 풀렸으면 할 따름입니다.
아무튼,
모쪼록 많이 기다리시게 해서 참 죄송할 따름이며,
그래도 그간 재충전도 충분히 했겠다,
열심히 달려보겠습니다.
늘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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