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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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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후
작품등록일 :
2013.10.09 10:20
최근연재일 :
2020.02.06 06:00
연재수 :
6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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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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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493,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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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2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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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쪽

#00. 모든 사건의 서막 - 18

DUMMY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그녀의 방에서부터 정령수 호수기슭에 있는 포탈까지 나오는 내내 그녀가 했던 이 제안에 대해 고민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오늘 나는 어느 쪽도 선택하지 못하고서 도망치듯이 빠져 나왔다.

그리고 선뜻 정하지 못하는 날 본 릴리오어가 이렇게 다시 제안하기를,


“섣불리 정할 일은 아니니까요.

내일까지 충분히 생각하시도록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만약 수락하실 의향이 있으시거든 내일 해질녘까지 이 곳으로 돌아오시면 됩니다. 만약···.”


그 반대의 이야기,

표정이 미미하게 어두워지는 걸 보니 스스로 입에 담기에도 불편했겠지.


“오시지 않을 경우, 저희 길드와의 인연은 영영 끊어진다는 점. 명심해 주세요.”


그러니까 정령사 될 생각은 접는 게 낫다 이 말이다.

여기까지 들었으면 누군들 냉큼 수락했을 텐데 양자택일이란 선택지로 인해 수락하지 못하는 입장.

그렇다고 선뜻 거절하기엔 부드럽게 웃으면서 극도로 치졸한 뒤끝을 대놓고 드러내니 면전에서는 도저히 그러기 어렵다.


‘요정이란 다 이런 식인 걸까.’


썩 좋아하긴 어렵겠다.

웃는 얼굴로 촌철살인에 일방적인 악의를 통보 받아서 기분마저 편치 못하다.

꼬여도 단단히 꼬인 이 상황에 대해 이스칼에게 자문 한 번 구해볼까 했는데,

확실히 예전에 정령사였다니까 적어도 이 제안을 수락했을 때의 이점 같은 걸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그 한 번 올라갔다 왔다고 벌써 하늘도 어슴푸레지기 시작하고 슬슬 약속시간에 가까워진다.

일단 만나서 얘기하는 걸로 한결 이런 기분이 덜어지겠지.


- 6시, 8번가 푸른 독수리


메모 안해놨음 절대 기억 못했겠다.

게이트에 올라탄다.

두 번째여서 약간 익숙해졌다.





서광대로 8번가에 있는 주점 [푸른 독수리]는 독일식 목가적 인테리어가 친숙한 느낌을 주는 곳이었다.

8번가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눈에 띄는 곳이라 가게 찾는 것도 어렵지 않고.

들어선 내부는 나무 특유의 향이 물씬 나는 그런 곳이었는데 약간 어두운 듯한 조명이 그윽한 분위기를 줄 법도 했다.

이렇게 시끄러운 상황이 아니었다면.


“저기요! 모듬 소세지 아직 안 왔는데요!”


“주문 좀 받아주세요!”


“그래서 아까는 진짜 깜짝 놀랐다니까.”


워낙 사람들로 붐비다보니 정작 내 일행들을 찾는 게 더 까다로운 편이다.

물심 양면으로 꽤 지쳐 있어서인지 따지고 보면 대단찮은 일이 영 수고스럽게만 여겨진다.

이윽고 찾았다.

네 사람 중 내가 마지막으로 도착한 거였는데 자리가 꽤 구석진 곳에 있다.

등불 바로 아래 자리였는데 셋 다 어딘가 제법 초췌해져 있다.

가장 유난했던 건 녹라였는데 얘기하고 있는 꼴은 또 쌩썡하다.

다가가니 반기길래 기분이 한결 나아진다.

그리고,


“그 아줌마 그런 구석 있지.”


이는 이스칼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털어 놓았을 때의 반응이었다.

한껏 털어놓고 목이 타 미리 시킨 생맥주 500cc 네 잔 중 내 걸 마시니까 그런다.


“얼굴은 진짜 이 게임 최상위권이긴 해.

근데 성격이 워낙 괴랄해서 말이야.

말투만 나긋나긋하지 늘 지 할 말만 하고 생떼를 잘 써, 그 아줌마.

예전부터 유명했지.”


“하······.”


“···그럼 형. 혹시 오늘 오후 장안의 화제였던 수로 사건의 범인이 설마···?”


“어···. 수로 사건?”


이건 또 뭔, 아.


“수로에서 웬 물줄기가 펑펑 터지면서 튀어 오른다고 오후 내내 인터넷에서도 화제였는데.”


와. 깜빡 잊고 있었다.

듣고 보니 나 맞는 것 같은데 설마 그 일이 그 정도로 대규모 사건으로 번져 있다니.

얼굴이 다 화끈거린다.

녹라가 물끄러미 쳐다보며 실실거린다.


“그 범인이 여기 있으셨네.”


“와. 그게 오빠였어요? 우와. 오늘 교구에서 완전 화제였는데!”


어째 좀 전까지만 해도 다 죽어가던 눈빛들이 샛별처럼 반짝인다.

신이 나 떠들썩하게는 물의 정령 상태에 대해 구체적으로 추궁해 대는데

어찌나 열성적인지 나도 모르게 기억 나는 대로 술술 나왔다.

어느 정도 그녀의 호기심이 충족됐을 때 이번엔 녹라가 물었다.


“와. 그나저나 처음부터 길드마스터를 만난 것만으로도 모자라 제자 제의라구요?

거기에 50골드.

하 무슨 퀘스트가···. 난 하루 종일 노가다만 하고 왔는데.”


표정은,

그러니까 결국 부러워 죽겠단 표정이다.


“넌 오늘 뭐했길래 그래?”


“저요? 오늘 장난아니었죠. 성벽 증축 공사라고 들어는 보셨는지.”


“켁.”


“진짜 노가다라고 하기엔 너무 모자란 느낌인 게

무슨 일일 피라미드 건축 노예 체험한 것 같고 막 그랬었다니까요?

무슨 벽돌 하나가 우리 방 크기만 해.

그러고 10골드 받았는데 누구는···.”


“와···.”


인정하지 않을 래야 하지 않을 수가 없구만, 이거.

운빨로 망할 퀘스트를 건진 데다 50골드 받은 나는 그냥 조용히 찌그러져 있어야겠다.


“야. 넌 티라도 나지, 난 뭐한 줄 알아?

하루 종일 교구에서 걸레질만 했어.

성상이고 바닥이고 그렇게 사람 많이 지나다니는 데서 하루 종일 닦고 닦고 닦고 더러워져서 닦고···. 끼야아아악!”


확실히 그 정도로 보고 또 보다보면 없던 신앙심도 무럭무럭 피어나겠다.

근데 대체 얼마나 닦아댔으면 하루하고 저렇게 비명지를 정도인 지가 궁금해졌지만 그냥 궁금하지 않기로 한다.

이스칼이 피식 웃으며 묻는다.


“그래서. 벌이는 좀 됐어?”


“5골드 5실버요. 금액 보고 있던 생길 려던 신앙심도 다시 없어지는 것 같던데요.”


정색하는데 확실히 그럴 만한 금액 맞는 것 같다.

둘 다 솔직히 안 도망가고 아직까지 접속해 있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참고로 이스칼 오빠는 오늘 뭐하셨어요?”


화살이 갑자기 맥주 마시던 이스칼에게로 향한다.


“응? 영업비밀인데 꼭 말해야겠어?”


“네!”


“꼭 좀 들어보고 싶네요.”


그 대상이 내가 아니라서 그런지 상황이 어째 재밌어지네.


“별 거 아냐. 그냥 예전에 알던 NPC 상대로 어제 계약 따낸 도서관 사서 했지. 벌이는 13골드.”


나는 운이 좋았다 쳐도 이 녀석은 대체 뭐지.


“와······.”


“이건 사기야.”


둘만 빼놓고 다들 꿀 빨았다느니 투덜투덜투덜투덜.


“이것들아. 사서도 힘들어. 책 위치 다 외워야되고 안내 잘 해야되고.”


“그치만 벽돌보단 가볍잖아요.”


“그건 그렇지. 참고로 책을 읽을 시간도 있어서 나쁘진 않았지.”


“하.”


“너무해.”


여기서 이렇게 약을 올린다고?

결국 복장터진 둘이 나란히 맥주나 집어 들곤 쭉 들이킨다.


- 탁.


내려놓는 것 또한 꽤나 거하다.


“하···. 형들 저 솔직히 내일 또 할 엄두 안나는데 어떡하죠.”


“나도······.”


근데 그럼에도 이 둘이 투덜댈수록 기분이 편-안하구만, 껄껄.

그러는 새 종업원이 서빙하러 왔고,


“솔직히 오늘은 바람이 오빠가 쏴야 되요.”


그 편안함이란 정말이지 덧없이 사라진다.


“맞아! 이런 횡재 하셨는데 안 쏘시면 저희 진짜 섭섭할 것 같아요.”


“흠. 확실히 그건 그렇지.”


이렇게 셋이 담합해 버리는 통에 결국 마지못해 스테이크 정식 4인분에 맥주 한 잔씩이나 거하게 추가하기로 했다.

기왕 사는 김에 확실히 사두는 편이 뒷말이 덜 나오겠지.


“그래, 그래. 내가 산다. 사. 고생들 했다. 이 것들아.”


“크. 역시 바람이 형님이 뭘 좀 아시지.”


“오빠, 가만 보니 아침에는 없던 잘생김이 얼굴에 묻으신 것 같은데요?”


“시끄러, 이 것들아.”


이스칼이 다시 말을 꺼낸 건 종업원이 사라진 뒤였다.


“근데 뭐, 얘들아. 어쩔 수 없어. 당분간은 그거 계속 해야 돼.”


이 말을 듣자마자,


- 콜록콜록.


녹라는 사래 들리고 홍라는 맥주를 아예 뿜었다.

내 얼굴에.


“······.”


“헛, 죄송해요. 오빠.”


오늘은 웬지 액체랑 연관이 많은 날인 것 같다.


“녹라는 기사 장비 값이나 근력 문제도 그렇고.

홍라도 초반 노베이스 사제로선 그나마 신성력 오르는 제일 효율적인게 그거야.

지금 상황에서 단기간에 바짝 크려면 그거 만한 게 없어.

나중 되면 다 스노우볼링 되니까 힘들어도 좀만 버텨봐.”


“아우우우······.”


“하···. 그냥 기사 접을까.”


“안돼. 탱 있어야돼.”


“아···. 하기 싫어···.”


“대신 이번 프로젝트 끝나면 배분 제일 많이 챙겨줄게.”


“당연히 제가 탱을 봐야하는 부분 같습니다.”


그 부분에 피식.


“얘기가 빨라서 좋네.”


“암요. 탱은 파티의 꽃 아니겠습니까.”


꽃인 지는 잘 모르겠는데 아무튼 그렇다고 해주자.


“그렇지. 탱이 없으면 파티가 성립이 안되요~.”


“크. 그렇죠. 역시 바람이 형님 배포가 크셔서 잘 아신다니까.”


얘기하다보니 어느덧 식사가 나왔다.

시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바로 나오는 걸 보니 미리 만들어둔 모양인가 싶다.

근데 손님이 이리 많아서야 확실히 그러지 않으면 곤란하긴 하겠네.


“잘 먹겠습니다~.”


“오빠, 잘 먹을게요~.”


“잘 먹을게.”


본의 아니게 쏘게 됐지만, 뭐.

기왕 사게 된 이상 애들도 고생했으니 이걸로 다들 기분 풀면 좋은 일 아니겠는가.


“맛있게들 먹어.”


그리고 당분간을 포크질하느라 여념이 없어 조용하기만 하다가,


“냠. 오빠 그런데 어떡하실 거예요? 말씀 들어보니까 아직 못 정하셨다면서요.”


맞다. 잠깐 잊고 있었다.


“야, 좀 다 먹고 말해.”


“음흠흠흠. 맛있는 걸 오똑행.”


뭔데 이 귀여운 척.

소름끼쳤다.


“어휴.”


“글쎄···. 쉬운 문제는 아니라서. 이스칼 네 생각은 어때?”


“그러네, 흠.”


먹다말고 날 쳐다보며 고민하는 이스칼의 모습에 주목한다.

무려 정령사였던 클베 유저,

지금 시점에 이 녀석 외에 건설적인 대답을 해줄 만한 사람은 거의 없겠지.


‘근데 듣고 있긴 한 건가.’


고민하고 있는 건가 했는데 태도로 보아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조용히만 있으니 물은 입장에선 다소 답답하다고 여겨질 쯤에 똑바로 쳐다보며 이윽고 확답한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 이 제안, 거절하는 게 나을 것 같아.”


그러고 스테이크를 다시 집어먹는다. 꽤나 의외여서 놀라고 있는 사이에.


“그치만 형. 제가 잘은 몰라도 이 정도의 제안. 흔한 게 아니잖아요?

파티 전체로 봤을 때 바람이 형이 수락하시는 쪽이 전 옳다는 생각이 들어요.”


오히려 반발하고 나선 것은 녹라 쪽이었다.

여태까지의 장난기를 살짝 벗은 사뭇 진지한 태도로 정면돌파.

확실히 녹라 말도 일리가 있다.

본인도 아닌 같은 파티원 입장에선,

하물며 나인크리드에 대한 얘긴 당사자의 함구 요청도 있고 해서 굳이 꺼내지 않았으니 이 녀석들 입장에선 이 상황이 내게 찾아온 유일한 기회 정도로 보일 수 밖에 없겠지.

하물며 경제적 뒷받침에 대한 얘기도 했으니 어제 A, B 얘기하던 이스칼의 입장도 크게 다르진,


“단편적으로 보면 그렇게도 볼 수 있겠지. 근데 말이야.”


아니, 근데 님 좀 이런 중요한 얘길 스테이크 질겅이면서 하는 건 좀 아니잖아요.

어째 소같기까지 하다.


“내가 역으로 몇 가지 물어볼게.

첫째. 누가 봐도 좋기만 한 이 이야기를 바람이는 왜 처음부터 당장 수락하지도 않고 여지만 둔 채 그냥 돌아왔을까?

처음부터 수락할 생각이었다면 그 자리에서 바로 받아들였을 텐데 말이야.”


“아···.”


근데 이 한 마디로 이 모든 상황을 일축시키는 게 감탄이 절로 나오는 분석이다.

하고 있는 거랑은 영 안 어울리려서 그렇지.


‘이 새ㄲ 혹시 천잰가?’


“둘째. 아무리 스승 제자 관계인들 이 만큼이나 제약을 두는 성격,

그 아줌마 성격은 모른다 쳐도 이 부분만 봐도 그녀의 제자로서 지낸다는 게

그리 달콤하기만 한 이야기가 아니란 걸 의미하지 않겠어?”


구구절절 지당해서 무슨 내 뇌 뚜껑 열어보고 하는 말 같아 괜시리 머리 한번 더듬는다.


“그리고 셋째. 무엇보다 정령사였던 내가 왜 지금 마법사를 하고 있겠어.”


그런데 마지막 이건 말에 뼈가 좀 있다 싶은게 뭔가 사연이라도 있는 모양,

잔을 내려놓는 홍라가 마침 거기에 대해 묻는다.


“그러고 보니 오빠는 왜 정령사 안 하시고 굳이 마법사 하시는 거예요?”


이스칼은 질겅이던 걸 삼키고 맥주 딱 한 잔 들이키고 대답한다.


“크. 그냥 예전에 그 아줌마랑 일이 좀 있었다고만 알아둬.”


확실히 그 아줌마, 오래 대하다 보면 뭔 일이 안 일어나는게 이상하다.


“대충 어떤 느낌인지는 알 것 같네.”


“···그 정도로 싸이코예요, 그 사람?”


싸이코라니.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과한데.


“뭐, 사람은 아니고 요정···?

아니지. 여기선 요정도 사람이라 묶이긴 하니까 사람 맞구나.”


“어. 그래요? 그럼 우린 종족이 뭐인 거예요?”


“우린 인간이지. 존재에 대한 객체의 단위로서 사람이란 단어를 쓰더라고.”


“음. 뭔가 어렵네요.”


"흔히들 종종 헷갈리곤 해."


별 게 다 있네.

별로 안 궁금하니까 술이나 먹,


“그럼 바람이 오빤 결국 그거 거절하시겠네요?”


좀 끈질기네. 뭐, 말이 자꾸 새긴 했으니까. 이 쯤에서 슬슬 매듭 지어야겠다.

우선 뭐 여태까지의 얘기를 정리해 보면 거절한다고 보는 게 맞겠지.


“사실 아까 이 녀석이 말했던 대로지.

내키지는 않은데 아깝긴 하고.

마음 딱 먹고 포기하려니 거절하기 불편한 것뿐이고.”


메리트는 분명 있다.

근데 그렇다고 도둑 직업을 포기할 수는 없다.

이스칼 말마따라 릴리노어 본인의 성품도 다소 걸리기도 하고,

무엇보다 이 녀석들은 모르는 나인크리드의 존재.

양쪽 모두 기연이 있는 상황에 굳이 겸직 금지라는 성가신 조건을 받아들일 이유가 없다.


“흐. 아까워라.”


나라고 안 아깝겠니.


“그거 혹시 안하실 거면 저 주시면 안되나요?”


이 것 때문이었구만.

홍라가 진짜 어지간히도 부러웠던 모양인데 뭐, 이해는 간다.

오늘 하루 이 녀석이 보낸 하루를 생각하면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이상하지는 않겠지.

친절하게도 대답은 이스칼이 대신해 준다.


“안되겠지. 이 녀석 보고 준 대운데 그 아줌마 성격에 잘도.”


“치.”


“퀘스트 문제도 있고 무엇보다 정령 적성이 85는 넘어야 되는 모양이던데.”


“음······.”


그 뒤론 딱히 말 안 꺼내는 거 보니 안되나보다.

어쨌든 나인크리드 건은 일행들에게도 지금처럼 알리지 않는 게 좋을 듯하다.


“근데 진짜 아깝긴 한데요.”


“그러게나 말이다.”


슬슬 이 얘기 좀 끝냈으면 좋겠다.

이럴 땐 그냥 잔 내미는 게 최고지.


“일단 한 잔 할까.”


“어? 음. 그럴 까요.”


“사실 언제 쨍하시나 기다리고 있었죠.”


녹라 녀석도 마침 같은 생각을 했나본지 호응이 격하다.


- 쨍. 째쟁.


“크.”


목과 식도로 넘어가는 누를 수 없는 톡 쏘는 맛, 정말이지 말로 다 표현할 길이 없는 압도적 청량감.

오늘 하루 피로가 다 녹아내리는 것만 같다.

이 게임 맥주는 다 이런 식인가 보다.

식도락만큼은 훌륭함에 이견이 없을 정도로.


“근데 이 집 맥주 진짜 맛있네.”


“어. 음. 어제 그 맥주가 사실 이 집 맥주야. 린더마크 산.”


“엥?”


“어. 그래요?”


이건 또 신선하네.


“응. 수도 안에는 이 집에만 파는 건데 어젠 진짜 무슨 말도 안 되게 여기저기서 팔아대서 나도 놀랬다니까.”


“크. 어쩐지 낯익은 맛이다 했더니.”


어쩐지 굳이 이 집으로 오자는 이유가 여기 있었구만.

이렇게 맛있는 맥주를 자꾸 먹어서야 마냥 기쁘긴 한데 이틀 내내 같은 맥주만 먹어서야 그렇게 귀한 맥주인지는 어째 실감이 좀 안 나기는 하다.

뭐 어쨌든 한결 부담없는 화제로 완전히 접어든 덕분에 술이 솔솔 들어간다.

문득 아침에 했던 얘기가 갑자기 떠오른다.


“참. 그런데 홍라 동생 화장품은 다 구했어? 아까 사러 간다며.”


“아. 그게 말이에요. 와, 의외로 이 동네 진짜 완전 좋은 거 있죠?”


화장품 얘기 꺼내자마자 바로 들떠서 이 얘기 저 얘기 다 하기 시작했는데,

요약하면 생각했던 것보다 종류도 많고 질도 좋아 만족스러웠다는 모양이다.


“음···. 그거 사면 돈이 남긴 해?”


근데 돈 얘기하자마자 바로 시무룩해진다.


“아뇨···. 다 써서 사실 여기 밥값도 녹라한테 빌리려고 했거든요.”


“어? 나 빌려줄 돈 없어.”


“아씨. 야, 치사하게 좀 그러지 좀 마라.”


“내 코가 석잔데 어떻게 빌려줘.”


이거 내가 오늘 50골드 못 벌었으면 어떻게 될 뻔한 거냐.

이거 혹시 일부러 이러는 거면 부부사기단이 따로 없겠는데.


“뭐, 이건 홍라 동생이 이해해 주도록 해.

기사 직업의 장비값은 진짜 흔히들 치가 떨린다고 말하는 정도야.”


그 말에 당사자인 녹라가 바로 표정이 어두워진다.


“···아니 대체 어느 정도길래.”


자꾸 얘기가 나오니 나까지 궁금해진다.


“기본 장비부터가 철이 무지막지하게 들어가서 그래.

남들 잘 안끼는 투구에 전신 풀 플레이트, 무기나 방패도 보병용, 기병용 따로.

거기다 말까지 사서 관리해야 하고 그리고···.”


“그··· 그만 해주시면···.”


녹라만 빼놓고 셋 다 피식 웃었다.


“원래 힘 기반 직업들이 초반에 몸은 힘들어도 짭짤한 퀘스트들이 많긴 한데

써야할 곳은 더더욱 많으니까 알뜰하게 아끼는 게 좋아.”


“하···. 벌써부터 암 걸린다···.”


그러고 있으니 무슨 바람 빠진 풍선처럼도 보인다.

이스칼의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고 이 게임에 있는 적금이라는 시스템에 대한 설명까지 쭉 이어졌고 녹라는 성의는 없지만 꿋꿋이 다 듣고 얘기가 끝났을 때였다.


작가의말

분량 컷.


녹라 사래들릴 때 저도 사래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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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00. 라파스 영지 - 07 19.08.14 97 3 13쪽
27 #00. 라파스 영지 - 06 19.08.12 91 2 18쪽
26 #00. 라파스 영지 - 05 19.08.08 120 3 16쪽
25 #00. 라파스 영지 - 04 19.08.06 102 3 17쪽
24 #00. 라파스 영지 - 03 19.08.02 161 4 21쪽
23 #00. 라파스 영지 - 02 19.07.31 92 2 17쪽
22 #00. 라파스 영지 - 01 19.07.29 113 1 13쪽
21 #00. 모든 사건의 서막 - 19 19.07.25 118 1 23쪽
» #00. 모든 사건의 서막 - 18 19.07.23 116 4 18쪽
19 #00. 모든 사건의 서막 - 17 19.07.19 114 3 25쪽
18 #00. 모든 사건의 서막 - 16 19.07.16 120 3 9쪽
17 #00. 모든 사건의 서막 - 15 19.07.14 118 1 14쪽
16 #00. 모든 사건의 서막 - 14 19.07.09 116 2 15쪽
15 #00. 모든 사건의 서막 - 13 19.07.04 136 1 15쪽
14 #00. 모든 사건의 서막 - 12 19.06.25 142 1 15쪽
13 #00. 모든 사건의 서막 - 11 19.06.24 144 2 12쪽
12 #00. 모든 사건의 서막 - 10 19.06.18 153 1 19쪽
11 #00. 모든 사건의 서막 - 09 19.06.17 163 2 11쪽
10 #00. 모든 사건의 서막 - 08 19.06.16 199 2 13쪽
9 #00. 모든 사건의 서막 - 07 19.06.14 185 3 12쪽
8 #00. 모든 사건의 서막 - 06 19.06.05 213 2 17쪽
7 #00. 모든 사건의 서막 - 05 19.06.02 211 4 12쪽
6 #00. 모든 사건의 서막 - 04 19.05.30 257 3 19쪽
5 #00. 모든 사건의 서막 - 03 19.05.29 299 4 19쪽
4 #00. 모든 사건의 서막 - 02 19.05.27 400 5 25쪽
3 #00. 모든 사건의 서막 - 01 19.05.26 529 8 24쪽
2 #00. P-2 붕괴 19.04.24 642 6 18쪽
1 #00. P-1 상실, 그것은 늘 그렇듯 느닷없이 시작된다. 19.04.19 1,090 11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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