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도깨비 그림자(1)
매주 화, 금 업데이트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눈을 뜨자 주변은 칠흑같이 어둡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물방울이 한 방울 한 방울씩 떨어지는 소리가 어디선가 들렸다.
계속 귀를 기울이자 소리는 점점 커지더니 세찬 소낙비가 내리는 소리로 바뀌었다. 하지만 비에 맞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소리에 익숙해 질 즈음, 지금 이 곳이 현실이 아닌 꿈의 세계라는 것을 직감했다. 하지만 으레 꿈이 다 그렇듯 현실에 대한 기억은 잊히게 된다. 마치 어두운 밤이 세상의 전부인양 받아들인 나는 장님처럼 손으로 허공을 더듬으며 조심스럽게 앞으로 한 걸음 한 걸음씩 걸어갔다. 빛이 보이지 않았지만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
그때, 어둠 한 구석에서 무거운 빗소리를 뚫고 슬픈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 나빈이니?’
그 목소리는 나빈이 아니었다.
좀 더 슬프고, 좀 더 차갑고 낮은 목소리였다.
계속 알 수 없는 말로 중얼거리던 여자의 목소리는 점점 선명해 졌다.
한 마디 한 마디가 귓속에 얼음송곳을 넣고 하나하나 새겨 넣듯이 날카로웠다.
「…이제 그만」
‘누구?’
「이제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
‘무슨 소리야? 넌 누구니?」
「…난 너무…쳤어」
‘어이. 이봐!’
「…다고…게…기하지 않을 거…」
‘뭘 말하는 거야? 왜 그러는 거야?」
「…쯧」
빗소리는 더욱 커졌다.
그 후 목소리는 더 이상 응답하지 않았다.
난 윽박질러보기도 하고 달래도 보았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비의 벽에 가로막혀 공허한 메아리만 쓸쓸하게 울려 퍼졌다.
그 때,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차가운 감각을 느꼈다.
‘뭐지? 설마 피?’
어둠 속에서는 그게 뭔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머릿속이 내 중심으로 빙글빙글 도는 느낌이 들면서 점점 속도를 내었다.
그 후 난 그 자리에서 다시 쓰러졌다.
그리고 다시 들리는 빗소리.
「쏴아-」
+ + + + +
“으으”
정신을 차리고 눈을 뜨니 달영과 허름한 창구는 온데간데없이, 밖으로 쫓겨나 있었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모르지만, 난 우체국 앞의 벤치에 정신을 잃은 채 누워 있었다.
달영이 부채로 내 머리를 치고 나서였던가?
이번엔 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아무 느낌도 없었는데, 마치 수술 전 마취를 한 것처럼 쓰러져있던 동안의 시간이 통째로 사라진 것 같았다. 불쾌한 꿈의 기억은 어렴풋이 남아있었지만.
덕분에 길을 지나던 불편한 시선들과 마주하게 된 것은 덤.
안경잡이 녀석, 좀 얌전한 방법으로는 안 되는 거냐?
‘그런데 아까 그 꿈은 뭐였지?’
손을 펴 봤다. 다행이 피가 묻어나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건 그냥 단순한 기우일까?
난 이상했던 꿈을 기억에서 떨쳐버리려고 고개를 절래 흔들었다.
휴. 이제 좀 나은 것 같다.
다행히 밖은 비가 거의 그쳤다.
만약 비가 내리는 상태로 누워있었다면 정말 노숙자가 따로 없었겠지.
젖은 생쥐 꼴로 감기에 걸렸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몸서리가 쳐졌다.
하늘은 아직 거뭇거뭇한 구름의 흔적들이 남아있었지만, 공기가 약간 습한 것 빼면 다시 비가 내릴 적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벌써 상당한 시간이 흘러버렸다.
구멍 뚫린 구름 너머로 해가 하늘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가슴 부분에 묵직한 느낌이 들어 고개를 아래로 내리니 몽땅이가 동그랗게 몸을 말고 새근새근 잠에 빠져있었다.
이 귀엽고 앙증맞은 몸뚱이에 가냘픈 다리와 꼬리를 가진 생물은 내 시선을 빼앗기에 충분한 마력을 내 뿜었다.
‘귀. 귀여워!’
철저한 영업맨 같아 보이는 몽땅이의 매력에 달영이 빠질 만하다.
몽땅이를 살짝 손으로 들어본 적은 있지만, 이정도로 가깝게 품에 안아 본 것은 처음이었다.
손으로 머리 부분을 가볍게 쓰다듬자, 몽땅이는 눈을 뜨고 크게 하품을 했다.
그리고 잠에서 깬 후, 인사를 하듯 고개를 내 쪽으로 가볍게 든 다음 기분 좋게 기지개를 폈다.
「냐우우~」
“하하. 잘 잤어?”
「냐아- 냐」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고양이들에 대한 일반적인 이미지는 새침하고 과묵한 동물이다. 하지만 서로 안면을 트게 되면 생각이상으로 수다스러운 동물이라는 것을 깨달게 된다.
몽땅이도 여느 마음을 터놓은 고양이처럼 내게 보채듯이 이런저런 소리를 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길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게 되자, 평소의 모습처럼 조용하고 예민한 모습이 되었다. 쑥스러워 하긴.
이런. 나도 참! 이제 시간이 얼마 없는데 이게 무슨 짓인지.
“자. 이제 가야지? 나빈은 어디에 있는 걸까?”
「딸랑딸랑」
“응? 웬 방울이지?”
나도 모르게 고양이 방울이 몽땅이의 목에 걸려있었다.
달영이 보여주었던 은색 방울이 달린 목걸이. 이걸로 나빈을 찾을 수 있다고 했던가?
방울 소리가 나자마자 갑자기 몽땅이는 내 품에서 뛰어내렸다. 그리고 귀를 쫑긋 세우더니 주변을 살폈다.
두리번거리기를 수 초간. 마치 레이더처럼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해 움직이던 양쪽 귀는 뭔가를 발견했다는 듯이 금방 같은 방향을 향했다.
몽땅인 날 한번 흘낏 바라보더니 곧장 등을 보이고 그 쪽으로 쪼르르 달려갔다. 마치 따라오라는 것처럼.
“어엇? 기. 기다려!”
대담하게 길 한 가운데로 달리는 몽땅이와, 그녀를 쫓는 나를 사람들이 서커스를 보듯 구경했다. 부끄러웠지만 어쩔 수 없다. 이대로 몽땅이를 놓칠 수는 없다. 나빈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니까.
슬슬 퇴근시간이 다가오면서 하나 둘씩 사람들이 거리로 나왔다. 부담스러운 시선들도 늘어났다.
몽땅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이리저리 사람들의 다리를 피해 앞으로 달려 나갔다. 나도 이리저리 사람들에게 부딪칠라 춤을 추듯 좌우로 몸을 흔들며 그 뒤를 쫓았다.
한참을 인도를 달리던 몽땅이는 순간 오른쪽으로 꺾어 좁은 골목으로 들어갔다.
나도 놓칠세라 골목으로 들어갔다.
“으윽…!”
공교롭게도 몽땅이가 들어간 골목은 모텔들이 즐비한 곳이었다.
「MOTEL PIANO]
「LOVE OASIS」
「호텔 야」
등등.
형형색색의 네온사인으로 자신들의 이름을 뽐내고 있다.
척 봐도 모텔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간판들과 화려한 장식들이 길 가는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문젠, 내가 갈만한 곳은 아니라는 것이지.
‘정신 차려. 이 멍충아!’
그래. 어딜 한눈파는 거야?
내가 시선을 고정해야할 곳은 고양이의 엉덩이지, 방구석 폐인과는 전혀 인연이 없을 공간이 아니라고!
몽땅이는 어느새 작은 점이 되어 저만치 앞서 가고 있었다.
‘놓치면 안 돼!’
난 크게 심호흡 한 후 앞으로 크게 달렸다.
길 한 구석에 비가 고인 작은 웅덩이를 실수로 밟으면서 구정물이 발밑으로 들어왔다.
“으으”
오만 잡생각이 떠올랐지만, 어제까지 내 방 꼴을 생각하면서 떨쳐 내야했다.
그 때 보단 지금 상황이 차라리 낫다고…….
“몽땅아. 이길 맞아?”
내 말을 들은 척 만 척, 몽땅이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계속 앞으로 달려 나간다.
이대로 어디까지 가려는 걸까?
정말 나빈이 있는 걸까?
만약 못 찾는다면 난 어떻게 하지?
그리고 만나면 무슨 말을 해야 될까?
쿠크○스 같은 작가의 멘탈 개선에 큰 힘이 됩니다.
- 작가의말
이번 편은 좀 적습니다.
마지막 편으로 가기 위한 추진력을 위해요즘 일 때문에 퇴고할 시간도 부족하네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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