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또다른 불청객(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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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표정은 마치 오래전 잃어버린 혈육이나 부모의 원수를 찾은 듯 매우 복잡하고 이해가 어려운 얼굴이 되었다. 예쁜 얼굴이라도 이런 표정을 지으면 망가질 수 있다는 것을 오늘 처음 알았다. 천천히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두 눈을 반짝이는 모습에 난 침대 밑으로 들어가고 싶어졌다.
“최인공!”
내 이름을 또박또박 나름 반가운 느낌으로 부르는 그녀.
요즘 그렇게 이름을 쉽게 불러주는 사람이 없었는데, 기뻐해야하나. 하지만 목소리 톤을 생각한다면, 그건 지나치게 긍정적인 판단일거다.
그녀는 들고 있던 고지서를 내던지고, 그대로 맹수처럼 날 향해 돌진했다.
“으랴압!”
“으악!”
피할 겨를도 없이 내 위에 올라탄 그녀는 어깨를 강하게 눌렀다. 그리고 얼굴을 내게 가까이 대고 다시한번 외쳤다.
“최 서방!”
‘아. 이제야 제대로 날 불러주는군. 고마워. 하지만 더 이상 가까지 오지 않았으면 좋겠어. 키스를 하려는 게 아니면 말이야.’
이 와중에도 허세를 부려보지만 어림없었다.
마음속으로 말하는 게 들릴 리가 없지. 그녀는 덜덜 떠는 날 밑에 두고 기쁜 듯 미소를 지었다.
위험하다.
이건 정말 위험해. 어떻게 하지 않으면…….
“저. 오…승환인데요?”
“…”
왜 그랬을까.
기껏 떠오른 가짜 이름이 야구 선수 이름이라니.
나름 진심을 담은 척 눈을 마주치려 했지만, 그녀의 눈빛은 너무 무서웠다. 거짓말인 거 다 알고 있다는 듯한 경멸적인 시선에 무의식적으로 눈을 피하고 말았다. 들통 나는 것은 시간문제다.
“아. 오 서방이었구나. 하하”
“하하하…”
설마. 믿어준 것인가?
「퍽!」
역시. 바랄 걸 바래야지.
그녀의 주먹은 귀를 아슬아슬하게 빗겨가면서 바닥에 강하게 내리쳤다.
내 방에 새로운 랜드 마크가 새겨졌다. 이름은 ‘소녀의 주먹자국’
맞았다면 최소 골절에 기본은 사망, 최대는 목 없는 귀신이 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의 강력한 일격.
“거짓말하면 도깨비가 잡아간다는 소리 못 들어봤어?”
“노. 노. 나 도시 출신이라. 그런 말은…”
이 역시 거짓말.
본가는 시골이다. 도깨비가 누굴 잡아간다는 이야긴 처음이었지만.
이제 그 이야기의 실존 여부를 몸소 체험해볼 기회가 왔다. 하하.
이를 바득바득 가는 모습이 엄청 화가 난 듯했다.
‘역시 거짓말은 자신이 없어.’
눈을 찔끔 감고 고개를 돌렸다. 이제 어떤 일이 벌어지는 걸까.
그녀는 내가 최인공이라는 것을 확신한 듯 외쳤다.
“찾았어! 찾았다고! 드디어! 드디어! 하하”
“갑자기 왜 그러는 거야. 너? 내가 또 뭔가 잘못을 한 거야?”
그녀는 흥분되고 떨리는 목소리로 나지막하게 읊조렸다.
“최 서방 심장만 있으면. 나는! 나는!”
“히익! 제발! 누가 나 좀 살려줘!”
이런 상황에서 놀라울 정도로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 내 심장을 뭐에 쓸려고?
어디 이식 수술에 필요한데 내가 적합자라서 찾아온 것인가? 강제로 심장을 빼앗으려고?
“내 심장 같은 거 어디 쓸데도 없어! 요즘 뛰는지도 잘 모르겠어. 그냥 시장에 파는 염통꼬지가 차라리 낫다고! 500원도 안하니까 그거 사줄 테니까 제발 놔 줘!”
내가 생각한 변명이었지만 참 구차했다. 고작 염통꼬지랑 비교당하는 내 심장.
심장은 다른 장기랑 달라서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세포가 바뀌지 않는다던데, 20년이 넘는 시간을 함께 한 내 심장은 분명, 이런 매도를 당하고 기분이 편치 않겠지. 정말 미안하다.
하지만 죽고 싶지 않아. 이런 식으로는…….
그런데 죽기는 하는 건가? 사실 실감이 나진 않았다.
그녀는 약간 흥분을 가라앉힌 듯 차가운 눈으로 날 바라보면서 내 심장이 있는 부위를 검지로 꾹꾹 눌렀다. 마치 잘 익은 복숭아인지, 아니면 물러터진 건지 확인하는 것처럼.
난 초등학생의 손아귀에 잡힌 햄스터 마냥 숨을 죽이고 가만히 있었다.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나. 이제 …될 수 있는 거지?”
“뭐? 뭐가 말이야…?”
“…인간.”
그녀는 조금 전의 공격적인 태도에서 차갑고 슬픈 표정으로 바뀌었다. 날 누르던 힘도 조금 약해진 것 같았다. 내 가슴을 누르는 것을 멈추고 이제 양 손바닥을 가슴에 대었다.
당혹스러울 정도의 태도 변화.
모르겠다. 도대체.
새벽에 알몸으로 들어오더니,
멋대로 때리고,
멋대로 음료수를 마시고,
멋대로 옛 여자 친구의 옷을 입고,
멋대로 기절하고.
처음부터 모든 게 제멋대로인 그녀.
그럼에도 지금까지 제멋대로인 것 중에서 이번과 견줄만한 것은 없는 것 같았다.
“이제, 겨우 될 수 있어. 내가 얼마나 기다렸는지. 이 순간을. 모를 거야. 아무도.”
“너.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있게 설명해줘. 인간? 그게 무슨 소리야?”
“…서방은 모를 거야. 아니, 믿어주지도 않잖아. 내가 뭔지.”
나도 모르게 저항을 멈추고 그녀와 눈을 맞추었다.
그녀의 커다란 눈동자는 심하게 떨리고 있다.
창문을 타고 들어온 가는 빛줄기가 그녀의 볼이 반짝였다.
두 눈엔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금세 흘러내릴 것처럼.
왜지?
왜 눈물을 흘리는 거야?
기쁨의 눈물?
아냐. 이건 조금 다른 거 같아. 왠지 익숙하지 않은 느낌의…….
그건 정말…….
그녀의 눈을 덮고 있던 눈물은 이윽고 두 뺨을 타고 흘러 내 얼굴에 조금씩 떨어졌다.
「툭― 툭―」
따뜻한 느낌.
하지만 이내 차갑게 변한 눈물에 가슴이 떨렸다.
그 때, 평생 멈춰 있을 것 같은 내 심장이, 온갖 놀라운 일에도 미동도 하지 않던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마치 처음 어머니의 뱃속에서 생명을 품게 된 순간처럼. 강렬하게.
「두근두근」
왜지. 우는 건 그녀인데, 왜 내 가슴이 이렇게 아프지?
눈물을 흘리면서 굳게 입을 다물고 있던 그녀는 더 이상 참지 못한 듯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리고 흐느끼듯 나지막하게 내게 말했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
뭐가 미안하다는 걸까.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날 그렇게 버린 사람도 미안하다는 말은 없었는데.
겨우 수 시간 정도 얼굴을 마주친, 감정하나 섞일 일 없는 생판 남남끼리 뭐가 미안하다는 걸까.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 심장 때문? 뭐가 일어날진 모르지만, 그런 건 솔직히 저지르고 나서 해도 상관없잖아.
어차피 죽는다면, 원망을 하고 싶어도 못할 테니까.
살아있긴 하지만 산 것 같지 않은 인생을 살고 있는 나인데.
그렇다고 해서 악어의 눈물론 보이지 않았다. 이 눈물의 의미는…….
‘너. 정말. 미안한 거구나.’
“…흐흐흑.”
그녀의 목소리는 이제 흐느낌으로 바뀌어서 알아듣기 힘들었다.
보통 사람들이 ‘미안하다’고 하는 말은 자신의 양심에 두고 하는 사과이다. 그 사람의 상처를 두고 하는 말보다는 자기가 입는 상처에 대한……. 내 생각이 틀렸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그렇게 믿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그런 사과를 받았다는 기분이 든다.
아직 아무 것도 바뀐 게 없는데.
상처 받은 것도 없는데.
마음 상할 것도 없는데.
가슴 깊이 파고드는 그녀의 마음.
내게 조금 전해진 걸까.
심장의 고동소리는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두근두근」
그녀는 완전히 고개를 숙여 내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가슴이 뜨거워졌다.
조금 전까지 당했던 것에 대한 복잡한 감정이 한 순간에 날아가 버렸다.
‘반칙이야. 이런 식으로 울어버리면. 화도, 겁도 마음대로 못 내잖아.’
나는 그녀의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전정시키려 애썼다.
그녀의 머리카락은 길고 부드러워서 마치 붉은 비단실을 엮어 놓은 것 같았다. 조심스레 어루만져 주었다.
갑자기 예전에 유진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을 때의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그만해.’
망할 전두엽아. 그딴 건 지워버리라고 제발.
아무리 좋은 기억이라도, 슬플 때는 슬픈 기억이 될 뿐이야.
떨쳐내려고 하면 할수록 짙어지는 옛 기억의 자취.
내 위에 있는 그녀의 감정에 전염된 것처럼 가슴이 아리고 슬펐다.
분명 그녀는 날 거의 죽일 기세로 덤볐는데, 이게 뭐야. 나.
스톡홀름 증후군?
아니면 잃어버린 연심이라도 생겼나.
바보 같아. 정신 차려. 이 멍청아!
자책을 해 보았지만 무의미했다.
여태껏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감정의 태동은 알 수 없는 기대감으로 가슴을 가득 채웠다. 그런 내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는 한참을 그렇게 가만히 있었다.
이제 높이 뜬 해가 빛으로 방을 가득 채웠다.
빛이 점점 진해지면서 그녀의 울음도 차차 잦아들었다.
그서야 겨우 고개를 든 그녀는 다시 날 내려다 봤다.
마주치는 두 눈동자가 햇살에 반짝거렸다.
이제 겨우 눈물이 멈춘 듯했다.
눈물자국 범벅이 된 예쁜 얼굴.
그녀는 살짝 고개를 돌려 손으로 눈가에 아직 남아있던 눈물을 훔치더니, 내가 입고 있던 셔츠 아랫자락에 손을 가져다 되었다.
‘…응? 서…설마.’
‘…’
뭔가 진지한 표정.
그녀의 손에 이끌려 위로 벗겨지는 내 셔츠.
셔츠아래의 배가 그대로 들어났다.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아래로 내렸다.
셔츠 아랫자락을 자신의 젖은 얼굴에 가져다 댄 그녀는…….
쿠크○스 같은 작가의 멘탈 개선에 큰 힘이 됩니다.
- 작가의말
2화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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