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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국이 있다면

쓰레기에서 스테이크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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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산타있어요
작품등록일 :
2022.10.27 16:44
최근연재일 :
2024.02.23 07:00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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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548,5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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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17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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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96화. 멸망 게이지

DUMMY

커다란 화이트보드 앞.

커다란 안경을 낀 남자가 열변을 토하고 있다.


“사람이 욕심 버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내 몫의 100이 눈앞에 있는데 남 챙겨준다고 70만 가져가기가 쉽지가 않거든요?”


“근데 그게 되는 사람들이 있어. 70에서 만족하고 남이 좀 더 가져도 그러려니 하는 사람들. 보통 우리 같은 사람들은 그런 부류를 호구라고 부르잖아요?”


앉아있는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이비에 끌려갈까 봐 두려움에 떨며 들어왔던 두 남자도 그랬다.


“정당한 내 몫인데! 남 눈치 본다고 70만 가져가면 그게 바보고 멍청이지! 근데 태생적으로 바보 멍청이의 길을 택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호구라고 부르면서도 진짜 좋은 사람이라고 말하는 부류들.”


대략적인 예시가 쭉 펼쳐졌다.


지역사회에 공헌한다고 노인들 대상으로 무료 식사 요일을 정해 봉사하는 자영업자들.


내 집 마련도 멀었는데 달에 얼마씩 정기적으로 기부하는 직장인들.


내 이득을 포기한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다.

그게 뭐 별거냐고 말하는 사람도 많지만, 그런 말을 하는 사람 중 실제로 실천하는 사람은 손에 꼽을 것이다.


“이 사람들의 공통점이 뭔지 아십니까?”

“잘 모르겠습니다!”

“인간을 사랑한다는 겁니다!”


남을 미워하지 않고 함부로 대하지 않으며 공동체의 이익을 고려할 줄 아는 부류.


서로의 이해와 배려, 공동체의 이익을 위한 협력을 기반으로 구성된 ‘사회’를 정말 단어 그대로의 의미대로 살아가는 부류.


바로 초기 각성자들이다.

추가 각성자들과는 다르게 처음부터 초록별을 가진 사람들.


“우리는 바로 그런 사람이 돼야 합니다!”


진지하게 외치는 남자.

역시나 진지하게 강의를 듣는 사람들.


비록 내용은 사이비스럽지만 구성원들의 표정만큼은 전쟁터 한가운데에 떨어진 병사들의 얼굴이다.


강사는 굉장히 우스운 내용을 굉장히 열정적으로 풀어냈다.


“세상에 그런 사람들이 10%쯤 된다면, 우리처럼 적당히 욕심 많고 적당히 휩쓸리고 적당히 영악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한 50%쯤 될 겁니다.”

“예? 그거밖에 안 되나요? 나쁜 사람들이 그렇게 많아요?”

“나쁜 사람들이라 하기엔 좀 애매한 부류가 또 한 20%쯤 되죠. 타인이 피해를 보든 말든 내 욕심만 채우는 진짜 나쁜 부류가 나머지 20%를 채우고요.”

“애매한 부류는 뭔가요?”

“타인을 선동해 제 욕심을 채우는 부류죠. 이 사람들의 특징은 본인이 그렇다는 걸 모른다는 거예요. 직장 따돌림을 은근히 주동하면서도, 인터넷에 악플을 수도 없이 달면서도, 사기나 횡령 같은 진짜 범죄는 저지르지 않으니까.”


강사는 한 사람 한 사람 눈을 마주쳤다.


눈이 마주친 사람들은 제각각으로 반응했다.

눈을 피하는 사람도 있고 당당하게 가슴을 펴는 사람도 있고 움찔 몸을 떨면서도 끝까지 눈을 마주하는 사람도 있었다.


“우리처럼 적당히 영악하게 살아가는 부류가 조심해야 하는 게 바로 그 선입니다. 그 선을 넘어버린 사람들은 절대로 각성할 수가 없거든요.”


드디어 각성이란 단어가 나왔다.

사람들은 이제 필기라도 할 기세로 눈을 반짝였다.


“자, 우리는 지금부터 여섯 가지 철칙을 우리의 삶에 새겨야 합니다.”


칠판에 굵은 글씨로 여섯 개의 단어가 쓰였다.

배려, 정직, 용서, 공정, 봉사, 책임감.


배려.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버릇을 들일 것.

정직. 거짓말을 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진심으로 표현할 것.

용서. 타인의 실수를 죽일 듯 몰아가는 대신 적당히 용서하고 가능하면 극복할 수 있도록 돕는 것.


공정. 부정적인 편견이나 차별을 배제할 것.

봉사. 자신의 이익을 다른 사람의 이익 위에 두지 않을 것.

책임감. 자신의 행동이 타인에게 미치는 영향을 인식하고 그 결과를 받아들일 것.


“무엇보다 서로를 존중하고 이해하는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사고방식부터 바꿔야 한다는 겁니다.”


요즘처럼 개인주의가 득세하는 때에 ‘살아있는 성인’이 되라고 주문하는 강사.


심지어 겉보기 행동이 아니라 사고방식부터 바꾸라는 주문에 다들 한숨만 쉬었다.


그런데도 먼저 일어나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은 끝의 끝까지, 이 우스운 내용의 강의를 수강했다.

 

#

 

“···진짜 효과가 있다는 게 어처구니가 없는데, 제 마음 누가 알아주실 분 없나요?”


명석은 보고서를 보다 말고 테이블에 엎어진 채 시름시름 앓았다.


사회가 미쳐 돌아가는 느낌이다.

전체 유저수를 늘리려고 이런저런 방법을 쓰고 있긴 하지만 제일 먼저 결과가 나온 것이 이쪽일 줄은 진짜 몰랐다.


웬만해서는 시간 낭비하지 않는 명석이 꽤 오랜 시간 엎어진 채 움직이지 않으니 팀원들도 하나둘 관심을 주기 시작했다.


“대표님. 이제 포기하세요.”

“솔직히 효율로는 으뜸이잖아요.”


각성자 양성 학원.

소설을 통해 은근히 드러낸 개념이다.


마케팅 작전 중 하나로, 유저 작가 한 명을 섭외해서 소설 전반적으로 새로운 설정과 세계관을 녹여달라고 부탁했었다.


시스템상 감춰질 수밖에 없는 각성자 사회.

그런데도 아카데미물을 성립시킨 작가는 위대함 그 자체였다.


사실, 각성자가 실제로 늘어날지에 대해서는 명석을 포함해 팀원 중 약 80%가 회의적인 시선을 가졌었다.


그런데도 통과한 건 윤 팀장이 강력하게 밀었기 때문이다.


“처음에 사이비들 모집 창구로 쓰일 때만 해도 아찔했는데.”

“그러게요. 유저들이 일일이 찾아가서 폭파했잖아요. 지금도 간혹 튀어나오는 사기꾼들 때려잡는 중이고.”


유행을 타면 돈이 되고.

돈이 되면 사람들이 모인다.

너무나도 당연한 법칙이다.


소설에 나온 단서들을 조합해서 강의 자료를 만든 열혈 독자들이 굿즈 개념으로 배포한 것이 시작이었다.


소설이 대히트를 치고 드라마까지 제작되자, 그 자료는 굿즈를 넘어 일종의 각성 바이블처럼 자리를 잡았다.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사람들이 바이블에 의지했고, 결국 각성을 이뤄낸 사람 중 일부가 실제 학원처럼 교습소를 차린 것이 두 번째 전환점이었다.


수강생들은 미디어에서 본 호화로운 생활에 눈이 홀렸다.

저렴한 상점 아이템으로 돈지랄에 가까운 생활을 하는 각성자의 모습은, 휴머노이드의 등장으로 살림이 안정된 사람들조차 혹하게 했다.


이후에는 뻔하게 흘렀다.

유행에 맞춰 한탕하고 빠지려는 사람들이 우후죽순 학원을 설립하기 시작했다.


바야흐로 대-아카데미의 시대가 된 것이다.


“왜, 왜 효과가 있는 거예요······.”


미쳐버린 유행 속에서 명석만이 끙끙 앓았다.

정말로 손발이 오그라들어서 참을 수가 없었다.


강의에 잠입한 유저가 찍어온 영상을 보다가 죽음의 위기를 몇 번이고 넘겼다.

손발도 모자라 뇌가 타버릴 것 같은 수치심이 들었으니 죽음의 위기라고 표현해도 문제없다.


하지만 명석의 수치심은 아무런 반향도 일으키지 못했다.

왜냐하면 실제로 한국 추가 각성자의 수가 유의미한 증가세를 보였기 때문이다.


“소설, 웹툰, 드라마까지 전부 수출됐다는데요.”

“무려 24개국 수출 달성!”


팀원들은 까르륵 웃으며 명석을 농락했다.

이걸 박수를 쳐야 할지 등짝을 쳐야 할지 모르겠는 명석은 울면서 웃었다.

 

#

 

시간이 쭉쭉 흐르고.

신입 유저도 쭉쭉 늘어났다.


명석의 비전에 공감한 유저들도 자체적인 마케팅 수단을 동원해 영업에 나섰다.


여론을 조성하는 법은 간단하다.

삼인성호.

사람이 셋이면 없는 호랑이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유서 깊은 전략이다.


비유저 한 명에 유저 세 명이 달라붙으면 못 할 것이 없었다.


일단 각성만 하면 기존 유저들이 원정봇을 만들어주니 공짜 정화 인구가 늘어나는 것.

명석과 서포터들의 작전에 감복한 유저들은 자꾸자꾸 영업을 뛰었다.


그리고 마침내.

 

[천사의 총 인원이 10억 명에 도달했습니다.]

 

위대한 숫자에 도달했다.

전 세계 68억 인구의 14.7%에 달하는 엄청난 숫자였다.


유저들이 다들 온건(온건하지 않은 사람도 각성하는 순간 온건해진다.)해서 그렇지, 사실 세계 정복도 가능한 숫자다.


위대한 업적에 따른 보상도 주어졌다.

 

[멸망 게이지 바가 아지트에 등장했습니다.]

 

“뭐?!”


명석은 깜짝 놀라 몸을 일으켰다.


시간이 꽤 흘렀음에도 여전히 영역 추가를 위해 돌아다니던 중이었다.

갑자기 이런 메시지를 받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무전기가 울렸다.


-대표님! 지금 아지트에-

“지금 갈게요!”


명석은 곧장 아지트로 향했다.

입장하자마자 변화를 알아챌 수 있었다.


“지구 현황 지도랑 겹쳐 있네.”


아지트 로비, 커다란 지구본 홀로그램과 겹쳐있는 게이지 바.


멸망 게이지 바는 아주 심플한 모양새를 가졌다.

가로로 긴 직사각형 형태.

일반적으로 상상할 법한 딱 그런 모습이었다.


왼쪽부터 약 60%를 검은색이 차지했고 나머지를 노란색이 메우고 있다.


“너무 직설적으로 표현한 거 아니야?”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어느새 옆자리를 차지한 원종환이 명석의 혼잣말을 받았다.


아무런 정보가 없는 사람이라도 무슨 뜻인지 대번에 알 수 있을 생김새.


물론 명석은 따로 메시지를 받았다.

 

[검은색은 멸망을, 노란색은 안전을 표현합니다.]

[게이지 바에서 검은색이 모두 사라지면 E-689 차원계는 멸망에서 완전히 벗어납니다.]

 

“정확한 수치 나왔나요?”

“네. 61.6%입니다.”


게이지 바에 숫자는 없었다.

길이를 재서 자체적으로 수치화한 것이다.


“뭔가··· 미묘하네요.”


명석은 요상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좌절의 한숨을 쉬어야 할지 안도의 만세를 불러야 할지 몰라서 표정에 오류가 나버렸다.


대단히 위험한 것 같으면서도 또 60%면 할 만하지 않나 생각이 드는 거다.


사무실에 합류한 명석은 곧장 물었다.


“원래 99%였겠죠?”

“그랬을 거예요. 검은색이 사라지면 멸망에서 벗어난다고 했으니, 그간 쭉 줄어들고 있었던 거 아닐까요?”


윤 팀장의 대답에 모두가 동의를 표했다.


브레인이 아닌 명석마저 1초 만에 도출한 결론이다.

일부러 반대 의견을 내보려 해도 심플한 만큼 직설적이라 다른 해석의 여지가 없었다.


“뭔가, 뭔가······.”

“감동적이죠?”

“맞아요!”


아직 검은색이 노란색보다 많은 상황.

그런데도 명석은 뭔지 모를 감동과 감격과 셀프 대견함과 뿌듯함, 아무튼 갖가지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명석만 그런 것도 아니었다.

팀원들이 와글와글 떠들기 시작했다.


“99에서 98로 떨어지는 게 가장 오래 걸렸을 거예요. 그때부턴 쭉쭉 떨어지지 않았을까요?”

“이번 겨울은 온도가 작년과 큰 차이 없잖아요. 매년 떨어지기만 했는데.”

“아직 겨울 다 안 지났어.”

“아잇! 그래도 긍정적인 지표잖아요!”

“맞아. 그래서 우리가 엊그제 축하 회식한 거잖아.”


높은 톤으로 빠르게 이어지는 대화 속에 대놓고 들뜸이 묻어났다.


아무리 이성적으로 숫자를 분석하고 상황을 파악하려 해도, 직감으로 느낄 수 있는 기운이 있다.


“커뮤니티도 난리 났어요. 지금 로비에선 만세 삼창도 하고 있대요.”


역시.

똑똑한 유저들도 단번에 알아차린 거다.


우리의 노력이 틀리지 않았음을.

멸망에서 완전히 벗어날 날이 머지않았음을.

잃어버린 계절이 곧 다시 돌아올 것임을.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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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100화. 평생 이렇게 살았으면 (完) 24.02.23 38 2 13쪽
99 99화. 멸망을 극복하다 24.02.21 33 2 12쪽
98 98화. 올-인! 24.02.20 35 2 12쪽
97 97화. 2주의 가을 24.02.19 34 2 13쪽
» 96화. 멸망 게이지 24.02.17 36 2 11쪽
95 95화. 1.43%를 뚫으려면 24.02.16 38 3 12쪽
94 94화. 퍼플은 위대했다 24.02.10 42 2 11쪽
93 93화. 만 명 중 한 명 24.02.09 37 3 13쪽
92 92화. 내실을 다지니 병아리가 늘어났다 24.02.08 37 2 12쪽
91 91화. 고인물과 병아리들 24.02.07 37 2 12쪽
90 90화. 한라산 폭발 24.02.06 36 2 12쪽
89 89화. 수증기와 오존이 만나면 24.02.05 42 2 12쪽
88 88화. 안타까워할지언정 24.02.03 40 3 12쪽
87 87화. 일사불란하게 24.02.02 49 3 12쪽
86 86화. 에코포인트 EP 24.01.27 48 3 12쪽
85 85화. 만능 에너지 M 24.01.26 52 2 13쪽
84 84화. 에너지 혁명의 전조 24.01.25 54 3 12쪽
83 83화. 신비주의 최초 각성자 24.01.24 52 3 12쪽
82 82화. 축산업이 살아난다 24.01.23 52 2 12쪽
81 81화. 고층 축사? 24.01.22 58 2 12쪽
80 80화. 이거 어떻게 참아 24.01.20 59 2 12쪽
79 79화. 그들의 존재만으로도 든든했다 24.01.19 65 2 12쪽
78 78화. 동물 조화 스킬의 위엄 24.01.17 65 3 12쪽
77 77화. 드디어 인디고 24.01.16 68 3 12쪽
76 76화. 포인트도 중대 문제다 24.01.15 69 3 12쪽
75 75화. 먹고 사는 문제는 중대사였다 24.01.13 76 3 12쪽
74 74화. 결국 다 이어져 있다 24.01.11 74 2 12쪽
73 73화. 시너지를 내고 있다 24.01.10 76 3 12쪽
72 72화. 명성을 떨치고 있었다. 24.01.09 74 2 12쪽
71 71화. 요원만 천만 명인 나라 24.01.08 78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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