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유정아 - 3
21화 유정아
배민은 정아가 진정하고 마음을 다 잡은 것 같자, 슬며시 놓아주었다.
정아는 배민을 향해 고개를 끄덕인 후, 다부진 눈으로 선녀가 하려는 행동을 지켜보았다.
선녀는 방울과 단검을 들고 눈을 감은 채, 혼자 무언가를 계속 중얼거리고 있었다.
“누나······. 무서워······. 누나······. 이 아줌마가 날 죽이려나봐······.”
정아는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이번에는 정진이 안쓰러워서가 아니었다.
분명 정진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잠을 자듯이, 눈을 감고 있었는데, 선녀가 아줌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입을 크게 떼지도 않으면서 말을 이었다.
자신이 알던 정진과는 너무도 큰 괴리감.
그러한 것을 느꼈기에, 정아는 입을 막은 것이었다.
“장군님. 시작하죠.”
슬며시 눈을 뜬, 선녀는 한쪽 허공을 바라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방울을 흔들며 천천히 정진이 누운 병상 주위를 거닐었다.
짤랑짤랑짤랑짤랑짤랑
“으윽······. 끄악······!!!!! 그만!!!!!!!”
“흥, 나아갈 길도 찾지 못해, 엄한데 틀어박힌 못난 녀석이 어딜 소리를 치누?”
정진은 세상이 떠나가라 고래고래 과음을 질렀지만, 선녀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힘드니? 그럼 편하게 해줄 테니까, 그만 나와.”
“으!!! 이 더러운 년! 지 남편 잡아먹은 악독한 년!!!”
“입이 거네.”
선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품속에서 작은 주머니 하나를 꺼냈다.
그러고는 주머니 안에서 무언가 한줌 집은 후, 있는 힘껏 정진을 향해 집어던졌다.
촤르르르륵
“끄아아아아아악!!!!!”
선녀가 던진 것은, 붉게 잘 여문 팥이었고, 팥을 정통으로 맞은 정진은 끔찍한 비명소리를 내뱉었다.
신기한 것은 팥에 적중당한 정진의 몸, 여기저기에 빨갛게 화상 같은 것이 생겼다는 것이다.
선녀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부적을 한 장 꺼내 들고는 새끼손가락을 콰득 깨물었다.
피가 줄줄 흐르는 손가락으로 부적 위에 무언가를 덧쓰는 선녀.
그러자 그 부적에서는 신비하고 영험한 기운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배민의 눈에는 보이고 있었다.
그 부적 위에 장군신이 손을 얹고 자신의 기운을 집어넣고 있음을 말이다.
아무래도 선녀의 피가 그 매개체가 되는 것 같았다.
“요건 더 아플 거다. 못 참겠으면, 거기서 나오던지 이름을 말하던지. 둘 중 하나만 하렴.”
“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 끄아아아아아아악!!!!!”
치이이이이익
선녀가 저주를 퍼붓는 정진의 이마에 부적을 붙이자, 무언가 타들어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정진은 다시 비명을 질러댔다.
너무나 고통스러워 보이는 그 소리에 정아는 두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으으으윽!!!! 이 걸레 같은 년! 하나 뿐인 니 아들은 신들의 뒤만 닦다가 그들의 양분이 되어 비참하게 말라 죽을 것이다! 지옥에 있는 니 남편은 마귀들에게 둘러싸여 살이 뜯기고 뼈가 갈리는 고통 속에서 니년을 저주하며 울부짖고 있다! 그것이 안 들리느냐!? 끄아아아악!”
“응. 안 들려.”
“누나······! 살려줘. 나 죽을지도 몰라······.”
“······.”
정아는 눈을 감는 것도 모자라 고개까지 돌려버렸다.
얼굴을 마주쳤다가는 자신도 모르게 선녀를 밀쳐버릴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정아가 별 반응을 하지 않자, 정진은 또다시 불같이 성을 냈다.
“나 죽는다잖아!! 뭐하는 거야!! 니가 그러고도 누나야?! 이 씨발년아!!!!”
친누이에게 한다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너무도 상스러운 욕설.
선녀는 처음으로 미간을 찌푸렸다.
“아무래도 혓바닥부터 어떻게 해야겠네?”
선녀는 팥을 또 한줌 꺼내들고, 정진의 입을 강제로 벌린 뒤, 그 안에 쥐고 있던 팥을 모두 쑤셔 넣었다.
“빙수 좋아해? 빙수하면 팥이지. 꼭꼭 씹어 먹으렴.”
“으븡,으ㅡ읍으븝쁘으응븝브응브.”
입이 막히자 선녀는 다시 부적에 손을 얹고는 주문을 외웠다.
“중얼 중얼 중얼 중얼.”
선녀의 주문이 제창되자, 장군신은 그 주문소리에 맞춰 얼쑤덜쑤 어깨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휘둘러지는 언월도와 철퇴.
얼핏 보기에는 아주 살벌한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정진을 향해 직접 무기를 내려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니, 일어날 필요가 없다고 해야 할까?
그 정도만 선보여도 저 마귀가 뱉어내는 비명에 의해 얼마나 강대한 고통이 전해지는 지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힘들지? 그럼 선택해. 나갈래, 이름을 부를래?”
“으으윽!!!”
“아! 나 그 노래 좋아하는데, 잠깐만.”
이 와중에도 해맑게 웃으며 스마트폰을 뒤적이는 선녀.
누군가 지금 이 모습을 보았다면 아마 선녀가 악당인 줄 알았을 것이다.
“여기 있네. 재생.”
이름이 뭐예요~♪ 전화번호 뭐예요~♬ (왓쮸얼네임 왓왓쮸얼네임)
“노래 좋지? 따라 불러. 이름이 뭐예요? 전화번호 뭐예요? 호호호호.”
“이 더러운 년!!! 나를 갖고 놀다니!!!!!”
“이름이 뭐예요? 전화번호 뭐예요?”
배민은 무언가 이상한 모습에 뒤통수를 긁적였다.
아니 저런다고 악귀가 이름을 말한다는 게 가당키나 하단 말인가?
정아 보기 조금 낯간지러웠지만, 다행히 정아는 고개를 돌리고 귀를 막고 있어 저 모습을 들키지는 않을 것 같았다.
“끄아아아악! 내······ 이름은!!!!”
“되네?!”
배민의 놀란 목소리에 선녀는 슬쩍 고개를 돌려 배민에게 윙크를 날렸다.
오······.
역시 한 분야의 전문가란, 정도(正道)의 길만을 고집하진 않는단 말인가?
“내 이름은!!! 듀랑고!!!!!”
“좋아, 듀랑고여! 이제 가여운 아이의 몸에서 빠져나와 뜨겁고 습한 지옥의 문턱으로 돌아가라! 장군신이 발을 붙이고 있는 이 곳에는, 니가 있을 곳은 존재치 않으니, 당장 그 몸에서 나와 돌아가라! 장군신의 이름으로 명하노라!”
“끄아아아아악!!!!!”
비명과 함께 정진의 칠공(七孔)에서 시꺼먼 연기가 새어나왔다.
그 연기는 한데 뭉쳐 병실 천장에 둥둥 떠올랐다.
“돼, 됐나요?”
정아는 슬쩍 한쪽 눈을 떴다가, 정진의 낯이 돌아온 것을 보고, 희망에 차 물었다.
하지만 선녀와 배민의 표정은 그리 좋지 않았다.
“정아씨, 이리로 와요. 뭔가 이상해요.”
“네? 왜요? 된 거 아니에요?”
“그런 줄 알았는데······. 저거 보이죠?”
“네? 아, 네.”
배민은 그 검은 연기뭉치를 가리켰고, 정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저렇게 빠져나오면 흩어지면서 소멸해야 돼요. 근데 오히려 뭉치고 있어요. 제가 엄마 따라다니면서 퇴마하는 거 많이 봤는데, 이런 건 처음이에요.”
“아······.”
선녀도 이러한 경우가 처음이었기에 여차하면 뿌릴 수 있도록, 팥주머니 안에 손을 집어넣고 있었다.
그렇게 찰나의 시간이 흐르고, 연기는 별안간 천장을 한 바퀴 돌더니 빠른 속도로 정진을 향해 돌진했다.
쑤우욱
정진의 몸 안으로 스며든 연기.
정진은 눈을 번쩍 떴다.
그의 눈은 이미 인간의 눈이 아니었다.
마치 뱀과 같은 눈.
그리고 그 연기의 색이 피부에 배기라도 한 것인지, 몸도 어둡게 물들어 있었다.
“듀랑고! 분명 장군신님의 이름으로 너의 땅으로 돌아가라 명했다. 그런데 이건 무슨 짓이지?”
“나는 그동안 니가 쫓았던 다른 악귀들과는 다르다. 나는 주인의 명을 받는 몸. 그런 내가 고작 니년 따위의 말을 들을 수는 없지.”
“그래서 거기서 나가지 않겠다?”
“뿐만이 아니다. 이 소년의 몸을 빌려 너희 모두를 죽이겠다.”
“후······. 안되겠네.”
선녀는 무언가 결심한 듯, 방울과 단검을 내려놓고 합장의 자세를 취했다.
그 자세를 본 배민은 서둘러 정아를 끌어당기고는 최대한 선녀에게서 멀리 떨어진 병실 벽에 착 달라붙었다.
물론 정아도 같이 말이다.
공교롭게 정아는 배민의 품에 안긴 형상이 되었는데, 정아의 심장이 조금 빨리 뛰게 된 것을 배민은 선녀를 신경 쓰느라 느끼지 못한 것 같았다.
“또 무슨 수작을 부리려는 건가? 소용없다.”
“흥, 과연 그럴까? 사실 내 주특기는 부적술이 아니란다, 이 요망한 녀석아.”
“끝까지 허세를 부리는군. 좋다, 그럼 물어봐주지. 니 주특기가 무엇이지?”
“바로 접신(接神)이지.”
선녀의 말이 끝나자, 배민의 눈에는 새로운 장면이 보였다.
언제나 대들보처럼 선녀의 뒤를 버티고 서있던 장군신이 서서히 선녀의 몸 안으로 스며들고 있는 장면이었다.
이것이 바로 접신인 듯 했다.
“접신을 하게 되면 내가 모시는 신의 신통력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단다. 내가 얘기했지?”
“······?”
“내가 모시는 신은 장.군.신 이라고.”
“그래, 하지만 그런다고 바뀛뚫!”
선녀의 능력을 무시하던 정진, 아니 듀랑고는 채 말의 끝을 맺지 못했다.
선녀의 주먹이 그대로 듀랑고의 얼굴에 꽂혀버렸기 때문이다.
속된 말로 흔히 이야기하는 죽빵.
아주 제대로 들어갔다.
“끄악!”
“복부가 비었네?”
“뚫확!”
“어허, 가드는 필수지.”
“풜헉!”
“근데 요건 가드불능기지롱~?”
“푸확!”
선녀는 마치 자신이 파퀴아오라도 된 듯, 낮은 자세를 취하며 듀랑고에게 매섭게 주먹질을 쏟아냈다.
듀랑고는 죽도록 얻어터지고 있었는데, 그의 눈빛에는 ‘어? 이게 아닌데? 또 나만 몰랐던 거야?’라는 멘트가 적혀있는 것 같았다.
“워후, 그야말로 나락(NARAK)이네.”
무자비한 선녀의 모습에 배민은 몸을 흠칫 떨었다.
저런걸 보면 별다른 사춘기 없이, 사고 한번 안치고 바르게 자란 자신이 대견할 뿐이었다.
조금만 엇나갔어봐라.
지금 자신이 살아있었겠는가?
저걸 어린 나이에 뚜드려 맞았을 걸 생각하니, 아주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끄윽······.”
“휴~ 이제 몸이 좀 풀리네. 호호호호.”
웃음을 짓는 선녀.
그와 정확히 반비례하는 듀랑고의 모습은 거의 떡이 되어 있었다.
“음마야? 이, 머꼬?! 아를 마 작살을 내놨네.”
마침 벽을 통과해 병실로 슥 들어온 덕신은 걸레짝이 되어 너덜거리는 듀랑고의 모습을 보고는 화들짝 놀랐다.
무언가 영험한 기운이 뿜어져 나와, 재밌는 구경거리가 있을까 싶어 들어와 봤더니······.
아무래도 재밌는 건 다 놓친 것 같았다.
“자, 듀랑고. 어때? 한 판 더 할래?”
“아······. 아뇨······. 저 집에 갈래요······. 흑, 보내 주세요······.”
“그래. 듀랑고는 지옥으로 돌아가라. 장군신님의 이름으로 명하노라.”
“내가 씨발, 이놈에 인간계 다신 안 온다.”
듀랑고는 눈물 콧물을 쏙 빼면서 다시 연기로 뿜어져 나왔고, 서서히 흩어졌다.
“가기 전에 선물이다. 내게 명령을 내린 주인은 인간이야.”
“뭐? 야! 그게 무슨 말이야?!”
배민은 듀랑고의 말에 무언가 큰 문제점을 느끼고는 되물어보았지만, 이미 듀랑고는 완전히 사라진 뒤였다.
“아, 아야······. 아파······. 흑, 흑흑······. 아파······.”
듀랑고가 빠져나가 이제 진짜 완벽히 자신의 몸을 되찾은 정진.
하지만 되찾은 시기가 너무나 안 좋았다.
이미 정진의 얼굴은 하도 얻어맞아, 두 배 크기가 되어 있었고, 몸통 여기저기에는 큰 피멍들이 즐비했다.
“정진아!”
“누나······.”
정아는 그런 정진을 꼭 끌어안아주었다.
“아이고······. 내가 뒤 생각을 안했네. 호호호. 의사 선생님을 불러 와야 되겠죠?”
머쓱해진 선녀는 정아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드려 주고는 서둘러 병실을 벗어났다.
구해준다고 저지른 일이지만 아이를 이렇게 떡이 되도록 두들겨 놓았으니, 미안한 감이 들기도 했던 것이다.
하지만 정아의 표정은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너무 좋았다.
당장의 아픔이야 치료를 받으면 되는 것이고, 하마터면 자신의 하나뿐인 피붙이를 영영 잃을 뻔 했지 않은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정아는 정진을 껴안고 하염없이 감사하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 작가의말
이번주의 분량이 끝이 났네요 ㅎㅎ
다음주 월요일 같은 시각에
업로드 하도록 하겠습니다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 감사드립니다 ^_^
추천 선작 댓글 부탁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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