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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웅비의 서재

버스기사의 이세계 슬로우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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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웅비
작품등록일 :
2024.02.01 16:18
최근연재일 :
2024.07.03 19:45
연재수 :
104 회
조회수 :
10,868
추천수 :
305
글자수 :
572,670

작성
24.02.15 19:45
조회
182
추천
7
글자
13쪽

15화 응급환자(2)

DUMMY

15화 응급환자(2)


“아... 안 돼. 일리아나, 일리아나!”


힐링포션을 마시고 상태가 조금 나아진 것처럼 보였던 일리아나는 다시금 신음하며 고통에 몸부리쳤다.


작은 몸은 덜덜떨며 오한증세를 보였고, 입술은 메말라서 시퍼렇게 변해가고 있었다.


남아있던 부인들이 일리아나의 작은 팔과 다리를 주무르며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려고 했지만 딱히 큰 효과는 없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일리아나는 경련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더 이상은 안 되겠어. 내가 애를 데리고 타란으로 가겠습니다.”


아이의 아버지는 상태가 점점 심해지는 일리아나를 보자. 코라 부인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점점 더 심해질 것만 같은 증상...


생각해서는 안 되는 공포감까지 들기 시작했기에 그는 더는 지체하지 않기로 했다.


“이 야밤에 길을 어떻게 찾는다고 그래!”


마을 주민 한 명이 그를 만류했다.


불빛 하나 없는 야밤에 도보로 산 하나를 넘어서 타란으로 가는 것은 미친 짓이나 다름없었다. 마물 출몰 지역과는 먼 그리지 마을이긴 했지만, 산짐승이 나타나서 공격할 수도 있었고 정말 작은 확률로 마물을 조우할 수도 있었다.


그때 주헌은 슬쩍 손을 들었다.


“제가 모셔다드릴 수 있습니다. 대신 제가 길을 몰라서 길잡이 역할을 해주실 분이 필요해요.”


“너는 갑자기 또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 하는 거야. 이 야밤에 어떻게 간다는 거야. 마차도 없다고!”


아이 아버지를 만류하던 주민이 인상을 찌푸리며 주헌에게 호통쳤다.


“다들 제가 처음 여기에 왔을 때 기억하시죠?”


“그러고 보니... 이상한 걸 타고 왔지 않았나?”


“그래 맞아! 밤인데도 밝은 빛을 내뿜고 있었잖아!”

마을 주민들은 기억을 더듬이며 드문드문 기억나는 내용들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그리고 그 장소에 있었던 아이의 아버지도 그게 기억이 났는지 주헌에게 달려들어서는 그대로 무릎을 꿇고 주헌의 바짓가랑이를 잡았다.


“제발 부탁이네. 우리 딸 일리아나를 제발 도와주게.”


“알겠습니다. 길 안내를 해주실 분이 필요합니다.”


“그건 내가 하지.”


험멜이 앞으로 한 걸음 내디디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바로 출발하죠.”



***



주헌은 곧바로 버스가 주차되어있는 마을 입구로 향했다.


늦은 시간 꾸벅꾸벅 졸고 있던 경비병은 인기척에 정신을 차리고는 창을 주헌 쪽으로 내밀었다.


“이 늦은 시간이 무슨 일이지? 신분증이 없으면 지나갈 수 없다고 말했을 텐데?”


주헌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뒤쪽을 가리켰다.


주헌의 뒤에는 횃불을 들고 있는 마을 주민들과 어린아이 한 명을 업고 있는 아이의 아버지가 오고 있었다.


경비병은 무슨 일이 일어났음을 직감하고 주헌을 옆에 있던 경비병에게 맡긴 채 그들에게 향했다.


경비병은 마을 촌장과 잠깐 얘기를 하더니 상황 설명을 듣는 모양이었다.


얼마 후.


상황을 인지한 경비병은 더 이상 신분증 얘기는 꺼내지 않고 거대한 나무 문을 열었다.


주헌이 가지고 온 버스는 그대로 문 앞에 세워져 있었다.


주헌은 바로 열쇠 하나를 꺼내 문 쪽에 끼우고는 열쇠를 돌려 문을 열었다.


마을 주민들과 아이의 아버지는 아직도 버스가 어색한지 근처에 서 있기만 하고 가까이 다가오지는 않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지금 최우선 상황은 아픈 아이를 타란 마을의 의원에 데려가는 것뿐.


주헌은 그들이 눈치를 보든 말든 그대로 시동을 켰다.


부르릉-


엔진음이 돌며 시동이 켜진다.


마을 주민들과 경비병은 익숙지 않은 엔진음에 흠칫했다.


그리고 주헌이 전조등을 키자. 주변이 환하게 밝아졌다.


“빨리 타세요!”


일분일초가 급한 상황. 버스를 보고 놀란 것은 첫날이면 족하다.


주헌은 창문 밖으로 얼굴을 내밀며 소리쳤고, 아이의 아버지는 침을 꿀꺽 삼키며 주헌의 버스로 발걸음을 내디뎠다.


“뒤쪽에 두 명이 앉을 수 있는 자리가 있으니, 거기에 앉으세요! 그리고 험멜 형님은 출입구 쪽에 있는 의자에 앉아서 위치를 알려주시고요.”


“그...그래!”


험멜과 아이의 아버지와 어머니, 일리야와 일리아나가 버스에 탑승하자. 밖에서 마중하고 있던 마을 주민들은 신기해하며 버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갑자기 올라타는 촌장과 코라 부인.


주헌은 당사자도 아닌 그들이 올라타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금 자네가 신분증이 없으니... 마을 촌장인 내가 보증을 해주기 위함이네... 타란 마을에서도 신분증을 제시해야 하는데 자네는 없지 않나.”


오케이. 저 이유라면 촌장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코라 부인은 왜?

촌장의 말에 공감하고 코라 부인을 바라봤지만, 코라 부인은 아무 말 없이 그저 빈자리에 앉을 뿐이었다.


그냥 신기해서 타고 싶었나 보지. 그게 뭐가 중요하랴.


주헌은 바로 밖에 있는 마을 주민에게 다녀오겠다며 인사를 한 뒤, 앞문을 닫고 기어를 변속했다.


“지금은 급한 상황이니까 빠르게 운행하겠습니다! 꽉 잡으세요!”


주헌은 그대로 클러치에서 발을 떼며 엑셀러레이터를 강하게 내리밟았다.


부와앙-


시끄러운 엔진음을 일으키며 앞으로 달려가는 버스.


동시에 안에서는 곡소리가 터져나왔다.


급출발과 급가속, 거기다가 비포장도로의 울퉁불퉁한 땅 때문에 시내버스 안 탑승객들은 몸이 앞, 뒤로 거칠게 흔들렸다.


“이... 이게 무슨... 아이고.”


험멜은 주헌 바로 옆, 제일 앞자리에 자리하고 있었는데 창밖을 보더니 빠른 속도감에 겁을 먹고는 앞에 있는 손잡이를 두 손으로 힘껏 잡았다.


대머리에 험악한 인상을 가지고 술배가 그득히 나와 커다란 몸집의 남성미를 풀풀 풍기던 험멜이었건만 벌벌 떠는 모습은 자그마한 엘로와 다를 바가 없었다.


뒷자리에 있던 일리아나의 가족들 역시 의자에 달린 손잡이를 잡거나, 옆에 앉힌 아이를 끌어 안으면서 보호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원래 살던 곳에서는 이렇게 과격하게 운전하지 않는 주헌이었다. 하지만 이세계는 자동차라는 존재가 없고, 지금은 위급상황이니까.


주헌은 평소에 잘 켜지 않았던 상향등까지 켰다.


- 상향등 스킬이 활성화 됩니다.

더 먼 거리를 밝게 비춰주고, 상향등을 정면에서 본 이들은 섬광효과로 5초간 시야가 흐려집니다.


주헌은 상향등 스킬의 섬광효과가 걱정되긴 했지만, 이 야밤에 마차나 사람이 있을 리는 만무했기에 계속 켜고 다니기로 했다.


상향등 사용으로 더 먼 거리를 볼 수 있게 되자, 먼발치의 두 갈래 길이 보였다.


“형님! 저기 갈림길에서는 어디로 갑니까!”


험멜은 아직도 곡소리를 내고 있었다.

얼마나 긴장했는지 대머리에서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어서는 조명에 반사되고 있었다.


“험멜!”


주헌은 정신을 못 차리는 험멜의 이름을 불렀다. 동방예의지국에서는 버르장머리 없다는 소리를 들을 테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단호함이 필요했다.


한 다큐멘터리에서 보기를 사고가 일어나면 정확히 누군가를 집어 요청해야 한다고 했다. 비행기 사고 같은 경우에도 승무원들이 비상착륙자세를 취할 때 ‘고개 숙여! 자세 낮춰!’라고 반말을 한다.


존댓말 지시의 경우, 긴장한 승객들이 상황 파악이 늦어졌고 반말 지시의 경우는 명령조로 느껴지기 때문에 승객들이 바로 행동에 나서면서 더 빠른 탈출 시간을 기록하는 연구 결과가 나오기도 했었다.


다큐멘터리에서 본 연구 결과가 도움이 되었는지, 주헌의 외침에 고개를 든 험멜이었다.


“험멜! 오른쪽! 왼쪽!”


한 손으론 운전대를 잡고 한 손으로는 앞쪽 두 갈래 길을 가리켰다.

험멜은 단호한 명령조에 버스의 빠른 속도에 겁을 먹은 와중에도 앞을 바라봤다.


“왼... 왼쪽!”


시속 100km가 넘어가는 상황에서 거의 두 갈래 길에 다다를 때쯤 험멜이 답을 줬다.


주헌은 바로 급히 핸들을 좌로 꺾었다.


빠른 속도에 급핸들 조작이 일어난 탓인지 버스가 옆으로 기우뚱거리며 살짝 들렸다가 내려앉았다.


촌장이 곡소리를 내며 허리를 어루만졌고, 코라 부인은 평온함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유리창에 머리를 박고 헝클어진 머리를 매만지고 있었다.


왼쪽 길로 들어서자, 나무가 우거진 숲이 나왔다. 길은 역시나 비포장도로였기에 자갈 같은 작은 돌들이 많이 있었다.


버스는 덜덜거리며 위아래로 진동하듯 움직였다.


주헌이야 안전벨트가 있고 의자 밑에 에어서스펜션이 있었기에 버틸만 했지만, 앉아있던 다른 이들은 아닌 모양이다.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모두 똑같이 곡소리만 내뱉었다.


***


한동안 숲의 비포장된 평지를 운행했다. 시속 110km 가까이 되는 속도.


속도제한 장치가 달려있는 시내버스로 최대로 낼 수 있는 한계치의 속도였다.


보통은 110km를 내는 일은 거의 없다. 보통 3~4단 넣고 국도에서 60 정도 밟는 게 다다. 주헌은 경험해 보지 못한 속도감에 흥분을 느꼈다.


앞에 아무것도 없는 것이 꼭 독일의 아우토반을 달리는 것 같기도 하고 말이다. 언제 또 이런 경험을 해보겠나.


마치 레이서가 된 듯한 느낌에 저도 모르게 도파민과 엔도르핀이 솟구치는 주헌이었다.


익숙해진 고속운전에 안주한 것도 잠시.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눈앞에 벌어졌다.


숲이라는 점을 너무 간과했던 걸까? 아니면 익숙함에 전방주시에 제대로 하지 못한 탓일까.


저 멀리 멧돼지 가족이 길을 건너는 것이 뒤늦게 보였다.


주헌은 재빠르게 브레이크를 밟았다. 하지만 제동거리가 충분치 않아 보였다. 클러치를 밟아 아랫단 기어로 변속하며 엔진브레이크도 사용했다. 하지만 고속으로 달리는 무거운 버스였기에 부딪히지 않을 거란 확신이 없었던 주헌은 버스 핸들 오른쪽에 있는 리타더브레이크(보조브레이크)까지 최대 단으로 사용하여 최대한 부딪히지 않게 멈추려 했다.


주헌은 핸들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가며 손을 쫙 뻗었다.

등은 의자 뒷좌석에 딱 달라붙었고, 브레이크에 올라간 다리에는 평소보다 더 많은 힘이 들어갔다. 얼마나 힘을 많이 줬는지, 엉덩이가 들리다시피 했다.


끼이익!


“으악!”


앉아있던 사람들이 비명을 내질렀다.


험멜은 급정지로 인해 그 반동으로 앞에 세워져 있던 기둥에 머리를 박았다. 나머지 사람들은 몸이 앞으로 밀리며 손잡이나 기둥을 잡고 겨우 중심을 유지했다.


그렇게 버스의 속도는 점점 줄어들며, 다행히 멧돼지 가족을 코 앞에 두고 멈춰 섰다.


[멧돼지가 상향등 스킬의 영향으로 시야가 흐려집니다. 5, 4, 3, 2, 1]


시스템창이 떴지만, 주헌은 시스템창을 손을 휘저으며 없애버린 후 운전석에서 백미러를 확인했다. 다친 이는 없을까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다들 괜찮으세요?”


“으...”


“아이고!”


곡소리가 들려오고 있었지만, 충격으로 인한 가벼운 타박상인 것 같다.


주헌은 안심하며 백미러에서 다시 앞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앞에 있던 멧돼지 가족들이 고개를 좌우로 거칠게 휘저었다. 아마 섬광효과 때문인 것 같다.


“어, 어? 저거 왜 저래!”


정신을 차린 가장 덩치가 큰 멧돼지가 이상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녀석의 입과 코에서는 많은 양의 김이 내뿜어졌고, 앞발을 땅바닥에 강하게 긁어대며 마치 버스로 달려들려는 모습이다.


멧돼지의 힘은 원래 세계에서도 강력했다. 멧돼지 로드킬의 경우 차가 아예 폐차 수준에 이르는 경우도 많았으니까.


그런데 이 한밤중에 응급환자가 탄 상황에서 버스에 손상이 가,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이 된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할 것이다.


주헌은 절대 그런 상황이 오지 않길 바랐다. 그렇지만 멧돼지는 그런 마음을 알 리 없다. 그저 지금 흥분된 상황을 분출할 뿐.


멧돼지는 몇걸음 뒷걸음질을 치더니 버스로 달려들기 시작했다.


주헌은 당황스러움에 뭐라도 해보고자 이것저것 만졌다.


그리고 무언가를 만짐과 동시에 눈앞에 시스템창이 나타났다.


-비상등 스킬이 활성화 됩니다.

비상등을 본 모든 이는 버스에 길을 양보합니다.


하지만 주헌은 시스템창을 볼 겨를이 없었다. 달려드는 멧돼지만 보일 뿐.


마치 드라마에서 덤프트럭이 주인공에게 다가올 때 이런 느낌일까?


주헌은 그 상황이 정말 느리게 지나가는 것 같았다.


그리고 멧돼지의 큰 엄니와 함께 녀석의 대가리가 버스에 닿기 직전...


“으악!”


주헌은 충격에 대비하여 머리를 그대로 숙였고, 비명을 내질렀다.


그러나 충격은 전혀 느껴지지 않고 멧돼지의 빠른 발소리만 들려오고 있었다.


조심스레 고개를 들어 사이드미러를 확인하니, 멧돼지는 가족과 함께 버스 뒤편으로 점차 사라지고 있었다.


“하아... 심장 아파...”



작가의말

안녕하세요. 진웅비 입니다.


오늘도 제 소설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과 좋아요, 피드백은 언제나 환영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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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14화 응급환자 24.02.14 194 6 12쪽
13 13화 50%의 지지를 얻어라! 24.02.13 205 6 12쪽
12 12화 신분증 그런 거 없는데요 24.02.12 208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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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9화 던지고 밟아도 문제 없어요! 24.02.09 240 7 13쪽
8 8화 호감을 얻자! (2) 24.02.08 259 8 12쪽
7 7화 호감을 얻자! +1 24.02.07 284 10 12쪽
6 6화 그리지 마을 +2 24.02.06 323 11 13쪽
5 5화 내가 데려다 줄게 +4 24.02.05 345 11 12쪽
4 4화 맛있는 생선구이 +2 24.02.04 378 9 12쪽
3 3화 히터의 따뜻한 온기 24.02.03 392 12 12쪽
2 2화 어딘지 모를 숲 24.02.02 444 11 13쪽
1 1화 그냥 쉴걸 +9 24.02.01 521 1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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