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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웅비
작품등록일 :
2024.02.01 16:18
최근연재일 :
2024.07.01 19:45
연재수 :
103 회
조회수 :
1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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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2
글자수 :
567,180

작성
24.02.14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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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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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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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4화 응급환자

DUMMY

14화 응급환자


험멜과 메이랑 같이 유세를 돌아다녔음에도 불구하고 이탈표가 나왔다.


처음에는 한 사람에 불과했지만, 그 한 사람이 반대의사를 확실히 표명하니 애매모호한 입장이었던 이들도 거기에 동조하며 반대의사를 표명하기 시작했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


첫째. 외지인인 건 둘째치고 이곳에 대한 기억을 잃었다는게 마치 조작이라도 한 것 같아 꿍꿍이가 있는 것 같다는 것.


둘째. 수인과 같이 다니는 것이 탐탁지 않다는 것이었다.


험멜과 메이등 찬성 측이 항변하면서 주헌은 그런 위인이 못 된다고 의견을 피력했으나 반대파는 그것 또한 본심을 숨기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며 그들의 주장을 일단락시켰다.


주민 회의를 다 보고 있던 주헌은 가시방석에 있는 것 같았다.


‘확실히 통과될 줄 알았는데.’


마른 세수를 하며 입씨름하는 그들을 불안하게 바라봤다.


확실히 주헌은 외지인이며 이곳 그리지에서 지낸 지 불과 1주일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도 그동안 잡일거리를 도맡아 하면서 물지게꾼 역할을 했고, 별건 아니지만 늘 밖을 돌아다닐 때면 만나는 이마다 인사하며 호감적인 인상을 심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현실은 각박했다.


“개판이 따로 없구만.”


주헌의 앞자리에 앉아있던 코라 부인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코라 부인은 주헌이 주민이 되는 것을 반대하는 입장 쪽이었으나, 딱히 나서서 반대하는 이유를 말하거나 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눈만 이리저리 굴리며 주민들이 무슨 의견을 나누는지 그저 보기만 했을 뿐.


하지만 귀족 출신인 코라 부인은 그들의 모습이 딱히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코라 부인은 조용히 손을 들어 올리고는 촌장이 불러주기를 가만히 기다렸다.


촌장은 이미 회의에서 거의 말싸움으로 이어지는 상황에 정신없었기에 그런 부인을 한동안 보지 못하다가 잠깐 분위기가 잠잠해지는 틈에 그녀를 확인했다.


“아, 코라 부인 말씀하시죠.”


촌장의 한마디에 혈투가 벌어지던 주점은 순식간에 정적이 되며, 코라 부인에게 이목이 집중됐다.


평소 그리지 마을 주민과의 교류가 없다시피 했기도 하고 몰락 귀족 출신이기에 마을 주민들은 그녀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시끄럽기만 하고 일이 진행되지 않아 내가 나서게 됐네.”


“큿흠...”


“흠”


유독 심하게 다투던 찬성 측 인원과 반대 측 인원이 본인 얘기인 것 같아 헛기침을 하며 멋쩍여 했다.


“이런 일을 결정할 때는 확실히 우리에게 이득이 되는 가를 따지는 게 좋다고 생각하네만.”


코라 부인은 간단히 한마디만 하고 손을 내렸다.


“마...맞습니다. 저 녀석이 우리 마을 주민이 된다고 해서 이득이 있습니까?”


“아니, 일손 부족한 거 뻔히 알면서 자네는 어찌 그렇게 얘길 해?”


“일손이 부족하다고? 우리끼리 충분히 할 수 있는 일 아닌가? 물지게나 도끼질이나 장작을 구해오는 일은 우리끼리 해도 충분하지 않나? 겨울이라서 농사를 하는 것도 아니고 일손이 부족하긴 뭐가 부족하다는 건가. 난 오히려 자네를 이해하지 못하겠어.”


또 다시 한바탕 싸움이 시작된다.


코라 부인은 다시금 그들을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쿵-


점점 개판이 되어 가는 주점 문이 덜컥 열렸다.


그러곤 숨을 헐떡이는 소년이 주점 안으로 들어와 거칠게 숨을 골랐다.


주민 회의는 성인만 참여할 수 있었기에 주민들의 자녀가 주점으로 올 일은 없었다.


“일리야, 무슨 일이니?”


반대 측에서 격렬히 의견을 피력하던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문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소년에게 다가갔다.


“그... 하아... 일리아나가... 하아...”


“일리아나가 왜? 어? 무슨 일인데?”

남자는 소년의 양 어깨를 붙들며 앞뒤로 흔들어 대었다. 그러자 부인으로 보이는 이가 옆으로 다가가 남편을 말리고는 소년을 달래기 시작했다.


“천천히 숨 쉬고... 천천히 말해보렴.”


“일리아나가 아파요. 갑자기 머리가 아프다고 하더니 쓰러졌어요. 그런데 아무리 깨워도 일어나질 않아요.”


웅성웅성-


걱정어린 목소리가 이곳저곳에서 나올 때쯤.


남자는 곧장 소년을 등에 업고 부인과 함께 아무런 말도 없이 뛰쳐나갔다.


마을 주민들도 걱정이 되었는지 하나둘 따라나서며 여관을 나섰다. 코라 부인조차도 걱정스런 표정을 지으며 천천히 걸어나갔다.


순식간에 비어버린 주점.


“따뜻한 물을 준비해야겠어요.”


메이가 말하자, 험멜은 거대한 양동이에 물을 들이 부었고, 메이는 곧장 굴뚝이 있는 곳에 장작불을 강하게 피웠다.


그리고 마치 이렇게 해야할 것을 알고 있었던 사람처럼 타이밍을 딱딱 맞춰 물을 가득 채운 양동이를 굴뚝에 있는 지지대에 걸어놨다.


끼익 끽-


2층에서 인기척이 들려온다.

1층에서 멀뚱히 있던 주헌은 계단 쪽을 바라봤다.


“아까 꽤 소란스럽던데. 다 끝난 거예요?”


엘로가 주헌 앞으로 다가오고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주점을 확인했다. 의자가 엎어져 있고 급히 나간 흔적들이 남아있다.


“마을 주민의 아이가 갑자기 아프다네.”


“예? 어디가요?”


“나도 잘은 모르겠어. 어지럽다고 한 후에 갑자기 쓰러졌다고만 들었지.”


“흠... 잠시만요!”


엘로는 미간을 찌푸리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다가 급하게 2층으로 올라갔다.


탁탁탁탁-


얼마나 급하게 뛰어가는지 2층의 마룻바닥 소리가 1층에서도 커다랗게 들려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려온 엘로는 작은 가방을 조심스레 열더니 작은 유리병 하나를 건넸다.


“하급 힐링포션이에요.”


“하급 힐링포션?”


“보통 상인들은 불미스러운 상황에 대비해서 힐링포션을 하나씩 들고 다녀요. 그래봤자 하급 이라 타박상 정도 치료밖에 하지 못하지만, 체력 회복이랑 진통 효과도 있으니, 아마 도움이 될 거예요.”


그런데 그걸 왜 주헌에게 준단 말인가?


주헌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눈만 껌뻑거렸다.


“제가 가면 사람들이 싫어할 수 있으니까... 형님이 가져다 주시라고요.”


“아...”


그제야 엘로의 의도를 파악한 주헌은 조심스레 주머니에 손바닥보다 작은 유리병을 집어넣었다.


엘로에게 물건을 받고 내려오자. 다급히 움직이는 메이와 험멜이 보인다.


“이 정도면 충분해. 당신은 마른 수건 좀 챙겨와.”


험멜이 거대한 양동이를 오른손으로 들고 빠른 걸음으로 주점을 나갔다. 주헌은 바로 험멜을 따라나서며 손잡이를 같이 들었다.


“같이 들어요!”


***


주헌이 아픈 소녀가 있는 집에 도착했을 때는 상황이 더 심각해 보였다. 소녀는 호흡곤란 증세를 보이며 숨을 불규칙적으로 쉬고 있었고, 소녀의 부모와 모인 주민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전전긍긍하며 소녀의 팔다리를 주무르는 것밖에 하지 못했다.


“온몸이 불덩이야... 찬물로 열을 내리게 해야겠어.”


마을주민 하나가 말을 하자. 울고 있던 소녀의 어머니는 부엌으로 달려갔다.


“잠깐만요! 찬물 마사지는 오히려 좋지 않아요.”


주헌은 의학지식이 많지는 않았지만, 혼자 지내면서 아팠던 경험이 많았다. 한번은 한여름에 감기 몸살로 고생하면서 고열에 시달린 적이 있었다.


여름이라 덥기도 하고 거기다 열까지 동반되니, 땀이 폭포수처럼 나는 것은 당연했고, 찝찝한 몸에 불쾌해 하다가 찬물로 샤워하면 열도 내리고 찝찝한 몸도 씻고 일석이조가 아닐까? 라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했었다.


결국 그날 새벽, 응급실에 실려 갔다.


알고 보니 열이 날 때 찬물로 열을 내리는 것은 오히려 체온이 더 올라가고 오한 증상과 더불어 감기를 악화시키는 방법이라고 했다.


“미지근한 물로 마사지 하는 게 좋습니다.”


“날이 추워서 미지근한 물이 없어요...”


“내가 뜨거운 물 들고 왔어! 찬물이랑 섞어쓰면 될 거야.”


험멜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거대한 양동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뒤이어 도착한 메이가 마른 수건 여러 개를 뜨거운 물과 찬물을 적절히 적셔 미지근하게 만들고는 소녀의 엄마와 함께 소녀의 팔과 다리를 마사지하듯 쓸어냈다.


하지만 이미 호흡곤란까지 온 상태의 소녀에게 미온수 마사지가 그리 효과적일 리는 없다... 그저 주헌은 상황을 더 악화시키지 않게끔 찬물 마사지를 막았을 뿐.


주헌은 곧장 주머니에 있던 포션을 꺼내 소녀의 침대 옆에서 기도하고 있는 남자에게 건넸다.


“이거 그... 엘로가 전해달라고 했습니다.”


“이게 뭔데...”


남자는 눈이 벌게져서는 힘없이 말했다.


“하급 힐링포션이라고 했어요.”


힐링포션이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소녀의 부모는 물론이고 주변에 있던 모두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라했다.


“힐링포션이라니? 그 비싼 걸 왜?”

“세상에 살면서 포션을 보는 일이...”


소녀의 아버지는 곧장 주헌의 손에 있던 포션을 가져가며, 소녀의 입에 조금씩 따르기 시작했다.


얼굴을 찌푸리고 있던 소녀의 표정이 조금씩 풀리며 불규칙적이었던 호흡이 점차 안정을 찾아간다.


“고맙네. 정말 고마워.”


“아뇨. 제가 뭘 한 게 있다고... 엘로가 자기 걸 내준 건데요.”


“그 친구에게는 내가 직접 가서 말하겠네.”


일단 호흡이 안정된 순간부터 큰 고비는 넘긴 것 같았다.


“휴... 다행이야 힐링포션을 먹었으니 일리아나도 금방 좋아지겠지.”


“아니.”


근처에 있던 주민들이 안도하자 구석에 고풍스럽게 서 있던 코라 부인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하급 힐링포션은 타박상 같은 상처에는 효과적이지만, 질병에 관한 부분에서는 그리 큰 효과는 없네. 그저 임시방편일 뿐이야.”


“코라 부인!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럼 다시 아이의 증상이 심해질 거란 겁니까?”


“안타깝지만... 그렇다는 거지.”


“그래도 그 비싼 포션을 먹었으니...”“힐링포션은 만병통치약이 아닐세. 그럴 거면 엘릭서를 먹어야지.”


“아이가 이리 안정적이고 표정도 좋아졌는데 어찌 더 심해질 거라고 안 좋은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내 귀족으로 지내며 병든 귀족 놈들을 많이 봐왔네만... 많은 돈을 써서 고급 포션을 먹는다고 하더라도 병이 낫는 건 본 적이 없네. 내 말은 안도하고 있지 말라는 거네. 빨리 의원으로 데려가는 게 좋을 게야.”


그리지 마을엔 의원이 없었다. 몸이 아프거나 하면 그저 쉬거나 약초를 캐서 먹는 게 다반사인 곳이다. 하지만 지금은 늦은 야밤이라 약초를 캐올 수 없을뿐더러 의원이 있는 타란 마을은 걸어서 가기에는 꽤 먼 곳이었다. 대부분 마차를 이용하기도 했고.


아이의 아버지는 코라 부인의 말을 듣고는 다시 얼굴이 사색으로 변했다.


“마차... 그래 마차를 지금 당장...”


흥분한 아이의 아버지는 정신을 놓아버린 듯 ‘마차’라는 단어만 내뱉었다.


그리지 마을에는 마굿간이 단 하나 있었는데, 주헌이 며칠간 마을에서 지냈을 때 그곳에 말이 있는 것은 본 적이 없었다.


“마차는 지금 없는 거 자네도 알지 않나...”


“그럼, 내가 산에 올라서 약초라도 캐오겠네.”


아이의 아버지는 농기구가 들어있는 통에서 낫 하나를 꺼내고는 밖으로 나가려 했다.


“자네 제발 좀 진정해. 이 야밤에 이 추운 날씨에 어떻게 산에 올라간다는 건가.”


아이의 아버지와 친해 보이는 남자가 그를 막아섰다. 다른 주민들도 상황의 심각성은 인지하고 있었지만, 빛 하나 없는 산을 오르는 것은 위험했기에 남자의 말에 동조했다.


“아... 아! 그러면 나보고 어떻게 하란 말이야.”


들고 있던 낫을 바닥에 떨구고, 그대로 주저앉는 아이의 아버지.


주헌은 가족애를 느껴본 적이 없었지만, 그때만큼은 아이를 향한 아버지의 절절한 부성애를 느낄 수 있었다.


지금 당장 어떻게 그를 도와줄 수 있을까?


현대 의학이라도 좀 알고 있으면 도와줄 수 있을 텐데 딱히 아는 것도 없어 주헌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그렇게 서로를 위로하면 시간은 흘러가고.


모두 아이가 고통을 이겨내기만을 기도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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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9화 던지고 밟아도 문제 없어요! 24.02.09 237 7 13쪽
8 8화 호감을 얻자! (2) 24.02.08 257 7 12쪽
7 7화 호감을 얻자! +1 24.02.07 281 9 12쪽
6 6화 그리지 마을 +2 24.02.06 319 10 13쪽
5 5화 내가 데려다 줄게 +4 24.02.05 342 11 12쪽
4 4화 맛있는 생선구이 +2 24.02.04 375 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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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2화 어딘지 모를 숲 24.02.02 441 1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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