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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밀 님의 서재입니다.

나를 죽인 히로인만 회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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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풀밀
작품등록일 :
2024.06.06 02:47
최근연재일 :
2024.06.10 15:04
연재수 :
6 회
조회수 :
87
추천수 :
4
글자수 :
41,157

작성
24.06.09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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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그의 기억

DUMMY

하이드레건 베레스는 어려서부터 조숙했다. 배려심과 인내심을 겸비해, 타인과 갈등을 만드는 일이 없었으며, 하고자 하는 일은 반드시 이루어냈다.


8년 전의 성마전쟁의 원정에 따라나섰을 때도 그랬다. 인류 정점인 자신의 어미에 이를만한 업적은 아니었으나, 가진 힘과 이룬 업적을 비교하면 충분히 어미를 뛰어넘은 위업이자 역전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힘을 넘어선 일을 감당했고, 성장했다. 불가능한 일이 가능한 일이 되는 상황을 여러번 반복했다.


그렇게 주위에서 어미가 아닌 자신을 용사라고 부르게 되었을 때 즈음. 그녀는 또다시 불가능한 일을 꿈꾸었다,


‘마족과도 대화를 하고 싶다.’


성벽 내부에 숨은 채 고난도의 성법과 탈인간 급의 감각으로 시험장을 훔쳐보고 있던 베레스는 생각했다.


‘멍청한 여자.’


살아생전, 거기에 이재는 전생이라 불러야 할 과거에서도, 그 누구의 흉도 보지 않았던 그녀가 처음으로 음흉한 속내를 품었다.


악의가 오른손으로부터 전해졌다. 욕망과 분노, 조소와 모멸이 가슴 속에서 끓어 올라왔다.


그녀는 자신의 오른손바닥을 보았다. 피부 한중간에 박혀 있는 핏빛의 결정은 형태만으로도 흉흉했고, 뿜어내는 마력은 흉악했다. 그 정체까지 아는 사람이 본다면 즉시 그녀의 손을 베어내려 하리라.


‘마왕의 결정’. 8년 전 사망한 마왕의 마력이 결정화된 물건이었다.


힘의 응집 그 자체라는 성질 탓에 폐기가 매우 힘들었다. 아무리 작게 쪼개여도 일대의 생태계를 침식해 나아갔고, 마수나 마족이 취하기라도 하면 대참사였다.


그 때문에 마왕의 결정은 수많은 지역, 세력, 인물에게 분배되어 누구도 그 전모를 알 수 없도록 흐려져 사라졌다.


“...나는...”


그랬어야 했다.


철저한 계략과 비겁한 음모에 의해 세상을 부술 재앙의 씨앗이 세상을 선도할 새싹이 자라는 아카데미아에 모였다.


누군가는 신념을 위해, 누군가는 욕망에 의해, 또 누군가는 꿈을 위해... 그리고 그 모든 위험이 한 존재에 모였다.


그 존재는 수많은 계략과 음모를 쳐부수고, 모든 싸움에서 살아남아 정점을 거머쥐었다. 할 줄 아는 거라고는 숨어서 숨을 죽이는 것밖에 없던 히델족의 남자는 그렇게 마왕이 되었다.


베레스는 그 흐름을 막지 못하였다. 계략과 음모는 모두 그녀를 위한 것이었다. 최선을 다했음에도, 최선 이상의 결과를 만들었음에도 마왕이 또다시 탄생했다.


아카데미아의 모든 학생을 알고 있던 그녀는 에이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 태생의 성적에 미진하나 전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남자였다.


사람 사귀는 것에 어색해, 툭하면 문제를 일으키고 싸움을 벌이나, 분명히 선을 추구하는 남자였다.


그렇기에 분노했다. 자신의 동료와 친구를 죽이고 배신하였던 것에. 인간임을 그만두고 마왕이 되기 위해 인생을 바친 그에게.


“멍청한 년!”


사람이 없다곤 하나, 벽 몇 개만 넘으면 강자가 넘쳐나는 이곳이었다. 이곳에서 장갑을 벗은 채 소리치는 것은 절대 현명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리 외치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검에 찔려도 비명을 지르지 않았고, 배신을 당해 심장에 구멍이 뚫려도 소리치지 않은 그녀가, 자신을 욕하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왜 눈치채지 못했지? 아아. 그래. 그것까지도 그의 계획이었으니까.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에 의해 보호받은 것이었으니까!’


수많은 희생을 치렀다고, 그 끝에 얻은 승리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되감아 져 다시 이곳에 왔을 때조차도 말이다.


모든 재앙이 한곳으로 모였다. 온갖 요소가 엮여 풀어내기는커녕 움직일 수도 없던 현실이, 옛 동화에나 나오는 절대선과 절대악의 대립이 되었다.


하지만 안도의 한숨을 내쉬지 않았다. 그럼에도 분명 희생은 있었기에. 그렇기에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절대악이 되어야만 했던 남자들의 희생을.


“이건...역시 그의 기억이야.”


베레스는 과거로 회귀한 후, 혹은 미래의 기억을 얻은 후 곧장 이 사태를 조사했다. ‘세계를 되돌리는 성법’에 대해 어느 정도 파악했고, 그 때문에 지금 확신했다. 미래의 에이의 기억은 이 세계의 모든 마왕의 조각에 나뉘어 새겨졌다.


당시의 에이를 이루던 영혼은 이 세상에서 히델 남성 하나와 수많은 마왕의 결정으로 존재했다. ‘세계를 되돌리는 성법’이 기억을 새길 대상은 비율로 보나 특질성으로 보나 마왕의 결정 쪽이 우위였다.


그리 생각하여 가지고 있던 마왕의 결정을 자신의 몸에 삽입했었다. 그리곤 2일 내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었다.


기억이, 한 사람의 일생이 흘러들어왔다. 완벽하지는 않았다. 선명하지도 않았고, 확실하지도 않았다.


허나 강렬했다.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저주가 몸을 관통했을 때보다, 누구보다 소중했던 자신의 어머니가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었을 때보다도 강렬했다.


처음이 아님에도, 흘릴 눈물이 사라질 때까지 울며 익숙 해졌을 텐데도 또다시 눈물이 흘러나왔다.


머리가 크고 나서 사람이 되려 했다. 친구, 동료, 연인, 가족. 그 의미를 끝없이 곱씹으며 실수하며 겨우 만들어 낸 관계였다.


이미 있던 것이 아니라, 어느새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모든 것을 갉아내며 겨우 이어진 것이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그녀가 자신에게 준 것이다. 그렇다면 그녀를 위해 버려야 할 터였다.


그리... 해야 마땅할 터이다.


본디 생존에 민감한 그는 선택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다. 버릴 것을 버리지 않으면 잡아끌려 죽는다. 얻어야 할 것에 몸을 던지지 않으면 바닥에 머리를 박고 죽는다.


그는 자신에게 모든 것을 준 여자를 위해 모든 것을 버렸다. 그녀를 위해 그 사실조차 가슴에 묻고 나아갔다.


전장에 몸을 던져 고통받고, 자기 살을 파 인연을 끊으며 고통받고, 매 순간 자신의 이성에 찔리며 고통받고,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으며 고통받았다.


한 인간이, 한 존재가 받을 수 있는 모든 종류의 고통을 버텨냈다.


그렇게 한 여자가 용사가 되어, 세상을 평화롭게 만드는 영웅담이 탄생했다.


흘러들어오는 기억이 그녀를 괴롭혔다. 아니었다. 기억은 그녀를 사랑했다. 그 한없는 사랑은 세상의 사랑을 받는 그녀에게도 버거웠다.


...참을 수 없었다.


오른손이 멋대로 펴졌다. 마력이 흘러나오며, 자세가 감당하지 못하고 비틀렸다.


“...참아. 참아야 해. 제발...!”


뛰쳐나가고 싶었다. 벽을 부수고, 당장이라도 그에게 가고 싶었다. 진득하고도 새까만 감정이 들끓었다.


역시...참을 수 없었다.


스윽. 베레스는 다시금 장갑을 꼈다. 그 순간 몸을 지배하던 욕망과 감정이 단숨에 사라졌다.


평온. 이성. 의지. 함께 해야 마땅한 것들이 다시 그녀를 이루었다. 큰 노력도 없이, 그저 그리 태어났기에.


다리가 무너졌다. 그녀의 등이 벽에 닿았다. 스르륵, 벽에 문질러지며 땅에 주저앉았다.


무릎에 팔을 올리고, 팔에 얼굴을 묻었다. 또다시 울기 시작했다. 태어날 때조차 울지 않아, 사람들은 마왕 말고는 그녀를 울릴 수 없다고 이야기했다. 실제로, 그러했다.


“나는... 한 사람의 인생을 농락했어.”


마족과 이해할 수 있을 거라는, 그들도 노력한다면 인간과 대화 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그에게 강요했다.


그에 수반되는 고통 따위 이해하지도 못한 채.


지금 이 순간에도, 그는 자신도 참을 수 없는 욕망을 참고 있었다.

.

.

.

성력은 그 주인의 의향대로 움직이는 경향이 있었고, 여러 술수와 도구를 이용해 구조적인 형태를 띨 수도 있었다.


그러한 성력을 이용해 다채로운 효과를 만들어 내는 것을 성법이라고 하고, 그것은 실로 유용했지만, 농사에 쓸 수 있을 정도로 비용이 가볍지는 못했다.


농사를 위해 태어나 농사를 위해 죽는 이들에 대다수인 이 세계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현상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알립니다. 하이드레건 베레스님 응원 연설은 연기되었습니다. 잠시 후 1차 평가가 진행 될 태니 대기 하여 수십시오.]


"오오."


일대를 울리는 거대한 여성의 목소리에 지원자들이 열광했다. 그리 부유하지 않은 영주의 자식, 떠돌던 평민들은 물론, 어려서부터 성법을 접해온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렇게나 깔끔한 성법이라니.'


하르는 감탄을 내뱉었다. 할아버지의 성법만 해도 뚫을 수 없는 벽이었는데, 완성도로 따지면 이것은 그 이상이었다.


"...시발..."


정련된 성력의 흐름을 관찰하려니 옆에서 들린 욕설이 신경을 건들였다. 하르는 주의를 하라는 뜻에서 눈치를 주었다.


하지만 에이는 그것을 이해조차 하지 못했다. 하르는 남은 눈치챌 수 없는 작은 한숨을 쉬었다.


"아카데미 앞에서 욕설은 어울리지 않지 않을까?"


"아, 나 욕했냐?"


"...입버릇은 빨리 고치는게 좋아."


하르는 아카데미에 오기까지 많은 이들에게 '참견'을 했고, 모든 일이 잘 풀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는 포기 하지 않았다. 15살 소년에게 무너진 폭력 조직만 14곳, 소위 건달을 건실한 청년으로 만드는 데에 어느 정도 숙달되어 있었다.


"쯧. 하고 싶다고 되면 진작했지."


"그건 변명이야."


투덜거리는 에이에게 하르는 단호히 말했다. 움찔. 에이의 몸이 떨렸다. 결단코 찔렸다거나 하는 반은 아니었다.


"니가 어떻게 아는데."


에이의 관자놀이가 불룩 튀어나왔다. 하르를 담은 동공이 축소되어 사백안이 되었다. 하르는 그것을 피하지 않고 마주보았다.


하르의 사람 고치기가 시작되려는 그때였다.


[1차 평가가 시작됩니다. 통제에 따라 시험을 치루지 않은 분들은 떠나 주십시오. 반복합니다. 1차 평가가 시작됩니다. 통제에 따라 시험을 치루지 않는 분들은 떠나 주십시오.]


그 말에 하르와 에이는 주춤했다. 이성과 감정 모두 1차 평가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때마침 르펠가오의 목소리가 들려온 것도 컸다.


"자 자. 시험 안 몰 사람은 빨리 나가시요. 치는 사람들은 제 앞에 10명씩 쭉 서시고요."


힘없는 목소리를 억지로 크게 외치는 듯한 어투임에도 사람들은 그의 통제를 따랐다. 우수수 많은 사람들이 빠지고, 서로 처음 보는 이들이 대열을 갖추었다.


하르는 그것을 보며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


"이 대화는 나중에 이어서 하자. 열심히 해."


"....."


마치 자신은 당연히 합격할 거라는 듯한 말투, 남의 성격에 어떤 지분이라도 있다는 듯한 태도. 그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에이였다.


하지만 입을 여는 순간 정말 이곳에 어울리지 않는 말이 나올 것 같았다.


휙. 몸을 돌린 에이는 대열에 따라붙었다. 하르도 자연스레 그 뒤에 따라붙었고, 강대국의 행군을 연상케 하는 수많은 이들이 전진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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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1차 시험 24.06.10 6 0 11쪽
» 그의 기억 24.06.09 9 0 11쪽
4 지각한 자들 24.06.08 11 0 18쪽
3 싸우고도 친해질 수 있다면 좋은 친구 24.06.07 12 1 12쪽
2 시작은 착각으로 24.06.06 16 2 14쪽
1 이야기가 시작하기도 전의 이야기 24.06.06 34 1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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