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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서재입니다.

악의 문명

웹소설 > 작가연재 > 퓨전, 일반소설

완결

FromZ
그림/삽화
포타리
작품등록일 :
2019.02.22 23:57
최근연재일 :
2019.04.24 00:05
연재수 :
58 회
조회수 :
38,563
추천수 :
2,277
글자수 :
332,014

작성
19.04.22 00:06
조회
451
추천
29
글자
11쪽

10. 살인충동과 바벨탑 (2)

DUMMY

***1***



계단의 가장 위에 있는 로봇들이 그자를 보는 즉시 정확하게 사격을 가했다.


하지만 그는 죽어가면서 기어이 방아쇠를 당겼다.


엄청난 폭음이 일어나며 앞에 있던 로봇들과 진압 방패를 든 거주민들이 튕겨져나갔다.


나는 고개를 돌리고 자세를 낮추었다.


위에서 피가 비처럼 쏟아지고 계단 전체가 새빨갛게 물든다.


소리가 작게 들린다.


바로 앞에 있는 하사가 나를 붙잡고 뭐라고 소리치는데 너무 작게 들린다.


"······! ···!"


코앞에서 말하는데 멀리서 들린다.


얼굴이 따갑다. 작은 파편이 튀어서 내 얼굴에 생채기를 낸 걸까.


그래도 일단 살았다.



"계단이 끊겨서 로봇은 못 올라갈 것 같습니다."


"······여기서부터는 로봇 없이 갈게요."


이제 로봇도 없고 진압 방패도 없다. 싸울 때마다 목숨을 걸어야 할 빈도가 높아진 것이다.


"리더! 지하철 감시조로부터 연락입니다!"


"대위의 지원군이 지금 막 출발한다고 합니다!"


"서둘러 올라가야 해요."


오래 끌어서 좋을 것 없다. 지원군이 오기 전에, 대위가 어떤 방법을 떠올리기 전에 최대한 신속히 끝내야 한다.


"뒤쪽의 로봇들은 지상의 병력에게 인계해주세요."

"알겠습니다."


다리를 길게 뻗어서 끊어진 계단을 한 사람씩 오른다.


"이건 쓸 수 없겠습니다."


적이 흘린 미사일 발사기는 방금 전의 폭발로 파손되었다. 어차피 우리에겐 쓸 수 있는 미사일 탄두도 없으니 아쉬울 것 없다.


계단에 일부 인원을 남겨두고 3층에 조심스럽게 진입해본다. 모든 방향에 총구를 항시 겨누며 발소리를 죽이고 침묵 속에서 보이지 않는 적들을 경계한다.


컴퓨터, 책장, 책상, 의자, 낮은 칸막이, 여러 가구들을 지나치며 사무실을 탐색한다.


3층엔 아무도 없는 것 같다.


그러다 계단 쪽에서 총소리가 들려왔다.


"···한층 위의 계단에 적들이 있습니다."


"네?"


"적들이 계단 위에 있습니다."


그의 말이 이상하게 들린다.



내 왼쪽 귀가 들리지 않는다.



***2***



"몇 명이나 보이세요?"


"다섯입니다. 여기선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도 있습니다."


다른 건물에서 대기하고 있는 저격수들이 그렇게 무전을 보내왔다.


적들이 이제는 우리가 위로 올라가려는 걸 제지하려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신호하면 쏘겠습니다."


"사살하고 나서도 제압사격을 계속해주세요."



멀리서부터 날아오는 총탄이 날카로운 소리를 낸다.


"커억···!"

"저격이다···!"


적들이 우왕좌왕하는 그 순간을 노려 계단을 오른다. 그들의 다리가 보인다. 저격 당해 죽지 못하고 계단에 쓰러진 몸뚱이가 보인다.


총구를 위로 향하고 방아쇠를 당긴다.


사람이 죽어가는 소리가 들려오고 핏물이 계단을 타고 강처럼 흘러내린다.


바닥에 떨어진 탄피가 계단을 따라 굴러내려간다.


"아악···!"


거주민이 부상을 당하면 적들을 향한 복수심이 더욱 커진다. 복수심이 커지니까 다소 이성이 사라지면서 용기를 얻게 되는 것 같다. 죽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망설임이 사라진다.


그렇게 우리는 계단을 돌파하고 4층에 진입했다.


"돌입조 인원 점검 좀 해주세요."


"총원 36, 부상자 6, 사망자 8, 현재원 24입니다. 부상자 네 명은 전투가 불가능한 상태라 열외 했습니다."


"전투가 가능한 두 명은요?"


"한 명은 어깨의 끝부분에 총상을 입었는데 에너지탄이었는지 깔끔하게 관통했다고 합니다. 다른 한 명은 총격에 귓바퀴가 날아갔습니다."


간결하게 인원을 점검했더니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부상자나 사망자가 꽤 나왔다. 아마 건물의 바깥에서 손실된 인원까지 따져보면 사망자가 꽤 많이 나올 것이다.


그래도 우리가 죽은 것보다 우리가 죽인 적들이 더 많다고 생각한다. 우리와 적들 사이에 발생하는 사망자의 격차를 더욱 벌리고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 우리가 승리하면 대위는 반드시 죽임당할 것이다.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다.


죽은 사람들의 애도는 어떻게 하고 이렇게 발생한 피해는 어떻게 복구하고 여전히 위협적인 바다 건너의 세력은 어떻게 하고···. 어차피 이기지 못하면 다 불필요한 고민이다. 대위를 죽이지 않으면 거주지는 나아갈 수 없다.


나는 대위만 죽일 수 있다면 그걸로 끝이고.


해가 조금씩 저물고 있다.

다른 건물의 그림자가 이 건물에 드리워지면서 자연스럽게 실내가 어두워졌다.


지상에서 총성···. 아니, 전투를 벌이는 소리가 퍼져나가고 있다.


그리고 여전히 왼쪽 귀는 들리지 않는다. 그래도 괜찮다. 영구적으로 왼쪽 귀를 못쓰게 되었다고 해도 상관없다.


"리더! 머리 내미시면 안 됩니다!"


아래를 살짝 내려다보면 엄폐물을 사이에 두고 교전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가끔 수류탄이나 미사일이 터지면서 사람의 몸이 고무줄처럼 늘어지거나, 팔다리가 멀리 날아가기도 한다.


여기서도 핏자국이 선명하게 보인다.


멀리서 보면 그저 빨간 물감 같다.

가까이서 보면 검붉거나 새빨간 물감이 혼합되어 작은 거품을 만들어내는 것 같다. 조금 시간이 지난 핏자국은 신발 밑창에 끈적하게 엉겨 붙거나 딱딱하게 굳는다.


적들은 우리의 저격에 경계한 것인지, 더는 계단을 방어하려고 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없는 5층과 6층을 지나 7층까지 올라왔다.


커다란 회의실이다.

기존의 공간을 나무 벽으로 나누어서 한쪽은 작은 로비로 만들고 다른 한쪽은 회의실로 만든 것이다.


이번에도 계단에 소수 병력을 배치하고 로비에 진입한다.


회의실의 앞문과 뒷문에 나뉘어 접근해서 귀를 기울여본다.


"···!"


문에 귀를 기울인 거주민이 적들이 있다는 손짓을 했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는데, 소곤거리는 말소리나 옷깃이 스치는 소리라도 들은 걸까.


안에 확실히 적들이 있는데도 저격수들로부터 아무런 무전이 없다는 것은 저들이 창문을 가리고 있다는 뜻이겠지.


저 나무 벽 너머에 적들이 얼마나 있는지 모른다. 저들이 어떻게 포진하고 어떤 것을 엄폐물로 삼고 어떤 무기를 겨누고 있을지 모른다.


최악의 경우, 문을 뚫자마자 함정이 터질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보란 듯이 총구를 회의실 쪽으로 향했다. 그러자 다들 나를 의아한 얼굴로 쳐다본다. 내 말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건가.


그대로 총구를 살짝만 흔들었다. 이제서야 다들 알아들었다는 눈치다.


처음엔 한 명이 나를 따라서 회의실 방향으로 총을 겨누었다. 그러다 두 사람, 세 사람이 그런 자세를 따라 하고 이제는 모두가 회의실로 총구를 겨누고 있다.


화약 소총으로도 얇은 콘크리트를 뚫을 수 있다.


설마 우리가 들고 있는 에너지 소총으로 저 나무 벽을 뚫지 못할까.


엄폐물이 상대의 화력을 견뎌낼 수 없으면 그건 엄폐물이 아니게 된다.


심지어 상대가 자신의 위치까지 파악하고 있으면 그건 은폐조차 아니다.


시민 출신인 적들은 모르고 있는 것이다. 전쟁기계나 기술력 싸움이 아니라, 인간끼리의 투박한 전투라는 것에 어떤 상황이 연출될 수 있는지를···.


우리는 나란히 섰다.


"쏠게요."


내 격발을 시작으로 모두가 방아쇠를 당긴다. 회의실에 수없이 많은 구멍이 뚫리고 뚫리고 뚫리고 계속 구멍이 생겨 퍼져나간다. 철을 깎는 소리가 연달아 겹쳐 이어지고 총구의 짧은 불꽃들이 눈을 깜박이게 한다. 멈추지 않고 계속 쏜다. 저마다 탄창이 다 비워질 때까지 손가락에서 힘을 풀지 않는다.


벽의 모든 범위에 구멍이 뚫리고 가열된 공기가 가느다란 연기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총격이 만들어낸 연기가 고요하게 흩어진다. 고약한 화약 냄새가 코를 찌른다.


몇 사람이 너덜너덜해진 앞문과 뒷문으로 동시에 진입한다.


그들이 회의실에 진입했는데도 조용하다.


"···섬멸했습니다!"


회의실 안은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것처럼 어지럽혀져있다. 우리의 총격을 그대로 받아낸 적들의 시체가 바닥에 쓰러져 피를 고이게 하고 있다.


그 순간이었다. 누군가 내 발목을 붙잡았다.


"그으으···. 으으윽···."


모르는 얼굴이 콧구멍과 입에서 피를 흘리며 나를 노려보고 있다.


"악마 같은 년······. 죽어버려···"


"뭐 하는 거야? 확인사살 똑바로 하라고 했잖아!"


하사가 화를 냈다.


그가 화를 내는 모습은 처음 봤다.


"그으윽···."


그렇게 분노에 찬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보아도 상황은 변하지 않는다.


더는 누군가에게 자비를 베풀 생각도 동정심을 가질 생각도 없다. 그를 거주지로 데려가 치료하고 우리 쪽 사람으로 만들거나 포로로 삼을 생각은 티끌만큼도 없다. 깊게 생각하는 것은 과거의 나에게 버려두고 왔다.


그는 내 발목을 붙잡고 있는 '적'이다.


한 번 적이 된 인간은 반드시 배제해야 한다.


나는 소총을 그의 머리에 겨누었다.


"리더······."


"다음부턴 꼼꼼히 확인해주세요."



- 타앙!


방아쇠를 당겼다.

그러자 내 발목을 붙잡는 손이 힘없이 풀려났다.


"적들이 거주지로 공격을 퍼붓고 있다고 합니다!"


"그거 주세요!"


통신을 담당하는 거주민에게서 무전기를 넘겨받았다.


"리더입니까?"

"말씀하세요."


"갑작스럽게 거리에서 대위의 병력들이 튀어나왔습니다! 아무래도 지하철을 이용한 것 같습니다!"


괜찮다. 반쯤 무너진 제2 거주지를 버리고 남은 병력을 제1 거주지에 집중시켰으니까.


애초에 싸울 수 있는 인원을 절반으로 나누었다. 한쪽은 나와 함께 이곳을 치고 다른 한쪽은 거주지를 지키는 것이다.


"전차와 드론 병기를 아끼지 마세요. 그 적들만 빠르게 섬멸하면 다음 공세는 없을 거예요."


적들이 미사일 발사기를 가지고 있지만 전차가 한 번에 터지진 않을 것이다. 하늘에서 날아드는 드론 병기도 수동으로 발사되는 미사일 발사기로는 격추할 수 없다.


"잠깐만···! 이거 무슨 소리야?"

"······!"

"뭐라고?"



"폭격입니다······!"



폭격?

설마 하늘에서 폭탄이 떨어지는 그런 걸 말하는 건가?


"전차를 건물에 붙이세요···! 그리고 이미 바깥에 있는 분들은 흩어지게 하세요!"



거주지에 퍼져나가고 있을 폭발음이 여기서도 들린다.


나는 창가로 달려나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에 무인기가 있었다.



저번에 보았던 그 무인기와 똑같이 생겼다.


또 무전기가 시끄럽게 울린다.


"아닙니다···! 그게 아닙니다···!"



바다 건너의 세력이 하필이면 지금···.


거주지의 건물이 버틸 수 있을까.



"폭격이···! 적들 위로 떨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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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Epilogue. 맴도는 기억의 끝자락 (1) +2 19.04.23 665 42 13쪽
56 10. 살인충동과 바벨탑 (5) +1 19.04.23 545 35 11쪽
55 10. 살인충동과 바벨탑 (4) +2 19.04.22 473 29 11쪽
54 10. 살인충동과 바벨탑 (3) +1 19.04.22 474 30 10쪽
» 10. 살인충동과 바벨탑 (2) 19.04.22 452 29 11쪽
52 10. 살인충동과 바벨탑 (1) 19.04.19 453 30 9쪽
51 9. 지옥으로 향하는 핏빛 계단 (5) +3 19.04.18 463 33 10쪽
50 9. 지옥으로 향하는 핏빛 계단 (4) 19.04.17 440 35 11쪽
49 9. 지옥으로 향하는 핏빛 계단 (3) 19.04.16 452 30 10쪽
48 9. 지옥으로 향하는 핏빛 계단 (2) +2 19.04.15 458 32 10쪽
47 9. 지옥으로 향하는 핏빛 계단 (1) +1 19.04.12 486 31 11쪽
46 8. 어리석은 역사의 되풀이 (5) 19.04.11 523 31 10쪽
45 8. 어리석은 역사의 되풀이 (4) +1 19.04.10 457 35 11쪽
44 8. 어리석은 역사의 되풀이 (3) 19.04.09 450 33 11쪽
43 8. 어리석은 역사의 되풀이 (2) +2 19.04.08 470 37 13쪽
42 8. 어리석은 역사의 되풀이 (1) +1 19.04.05 484 35 11쪽
41 7. 부디 이 신기루를 영원히 (5) +1 19.04.04 486 38 12쪽
40 7. 부디 이 신기루를 영원히 (4) +1 19.04.03 515 40 12쪽
39 7. 부디 이 신기루를 영원히 (3) +2 19.04.02 509 3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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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7. 부디 이 신기루를 영원히 (1) +1 19.03.31 502 38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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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6. 악연의 파편 (3) +9 19.03.28 503 37 12쪽
33 6. 악연의 파편 (2) +1 19.03.27 556 34 12쪽
32 6. 악연의 파편 (1) +1 19.03.26 522 38 12쪽
31 5. 그래도 그들은 나를 따라온다 (5) +2 19.03.25 529 38 14쪽
30 5. 그래도 그들은 나를 따라온다 (4) +1 19.03.24 556 3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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