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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녘의 서재입니다.

살인앱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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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남녘
작품등록일 :
2020.05.13 18:25
최근연재일 :
2021.01.2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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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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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505,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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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2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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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DUMMY

현의 앞으로 고급스러운 비단 뭉치가 내밀어졌다. 안에 무엇인가 들었는지 비단으로 둘둘 말린 물건은 꽤 두툼했다.

저녁 10시 30분.

창석이 내민 물건이 놓인 곳은, 현이 일하는 대형 마트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삼겹살집의 상 위였다.


“풀어 봐.”

“뭔데요?”


창석은 현이 따라준 술을 홀짝 삼켜 넣었다.


“갖고 싶다던 물건이여.”


현은 어릴 때를 기억하지 못했다. 도려낸 듯, 트라우마를 제외한 기억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은 현은 창석의 말에 얼굴을 구길 뿐이었다.

그래도 현은 창석이 가져온 물건에 조심스럽게 손을 대본다. 현은 두툼한 비단 속에서도 확실한 쓰임새를 느끼게 하는 윤곽에 흠칫 놀랐다.


“이거 뭐예요?”

“뭐긴 뭐여. 말했잖어. 네가 갖고 싶다던 물건이라고.”


비단을 비집고 서슬 퍼런 날카로운 칼끝이 반짝였다. 현은 행여 누가 볼 새라 그것을 얼른 덮었다.

현의 머리로는 도저히 이 상황이 이해되질 않았다.


“·········아버지······ 때문에 오신 거예요?”

“고기 타. 어여 먹어.”


창석이 현의 물음을 무시하고 구워진 고기를 그의 앞으로 놓아줬다.


“아저씨. 아버지 때문에 오신 거면, 말해줘요. 아버지가 찾아갔었어요? 자기 일 대신해 달래요? 저보고도 살인자 되래요?”


창석은 가만히 고기를 굽는 데 열중했다.


“말씀 좀 해보세요! 아버지가 그러래요? 자기 빵에 처넣었으니까, 뭐 그런 거예요?”

“아녀. 그런 거.”

“그럼 뭔 데요?”


현의 목소리는 살짝 상기돼 있었다.

창석은 물끄러미 현을 바라봤다.


“니. 내랑 일헐래?”

“일이요?”


뜬금없는 제안이었다. 난데없이 칼을 쥐여주며 일하자고 하는 건 도대체 무슨 경우란 말인가.

애초에 이 사람이 아버지의 지인이라는 것에서 걸렀어야 했나, 하는 후회가 현의 머릿속을 스쳤다.


“이상한 일이면 안 해요. 그런 건 아버지한테 부탁하세요.”


그 말에 창석은 고개를 저었다.


“네 애비랑은 끝났어.”

“전 아버지도 아니고, 아버지처럼 안 될 거예요.”

“막 일 아니여. 그리고 난, 네가 필요한겨.”

“자꾸 이상한 소리만 하실 거면 이만 일어날게요.”


슬슬 현은 화가 나려 했다.

나이 지긋한 사람이 와서 한다는 말이 도통 이해할 수 없는 것들투성이니, 가뜩이나 생각이 복잡한 현에게는 스트레스 덩어리였다.


“나랑 하는 일은 고통받는 이들을 구하는 일이여.”

“하, 진짜······.”


어이가 없어 헛웃음조차 나오질 않았다.


‘이 할배가 노망이 났나?’


현은 그냥 빨리 이 자리를 파하려 했다. 하지만 창석은 마치 그런 현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날카롭게 쏘아보며 테이블 위에 있는 비단을 부여잡았다.


“노망난 거 아녀. 멀쩡혀! 그니까, 아가. 잘 들어.”


창석이 쥔 비단에는 칼이 들어있다. 아주 잠깐 보았던 칼의 서슬 퍼런 끝이 떠올라 현은 긴장을 삼켜야 했다. 창석의 눈빛이 단숨에 칼을 꺼내 휘둘러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섬뜩했다.


“아, 알겠어요. 그러니까 그거. 그것 좀 놓고 말해요.”

“저런 놈을 보면 니는 무슨 생각이 드니?”

“저런 놈······이요?”


창석이 비단을 쥐고 있는 손의 반대 손으로 가게에 처박혀 있는 구시대의 텔레비전을 가리켰다. 그 속에는 막 출소하는 흉악 범죄자, 고동만의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답답허지 않니? 상식이 벗어난 범죄를 저질러도 저렇게 뻔뻔하게 걸어 나올 수 있는 세상이라는 게. 화나지도 않디?”


이글이글 타오르는 창석의 눈을 제대로 마주하지 못하고, 현은 더듬더듬 말했다.


“자, 잘 모르겠어요. 나쁜 건 맞지만,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은 없어서.”

“거짓말 마러. 네 눈. 네 눈! 거짓말하지 말란 말이여!”


현은 슬슬 창석이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그의 의자가 조금씩, 창석에게 멀어지기 위해 불편한 소리를 내었다.


“저런 놈들이 주변을 활개 친다고 생각해봐! 저 새끼의 표적이. 저 새끼의 커리어에 네 몸뚱어리가 들어간다고 생각해 보란 말이여! 네 아버지가 다시 출소해서 뻔뻔하게 웃으며 네 앞에 서 있다고 생각을 해보란 말여!”


창석의 “커리어”라는 표현에 현은 소름이 쫙 돋았다. 범죄자가 아닌 창석에게서 느껴지는 순수한 두려움이었다.


“네 애비도 그렇고, 저런 놈들이 활개 치면 언제 죽을지 몰러. 너도, 희서도.”


미쳐버린 종교를 광적으로 믿는 집단의 전도사와 대화를 나누는 기분이었다. 그런 그의 입에 희서의 이름이 올라오자, 현은 소중한 동생이 더럽혀진 기분이 들었다.

현의 눈썹 끝이 꿈틀댄다.


“······희서요?”

“그려. 그러니까, 네놈이나 희서가 죽기 전에 죽여야 하지 않겠어? 너나 모두를 위해서 말이여.”


헛소리.

헛소리다.

희서를 함부로 입에 담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이는 이 노망난 사람을, 현은 이제 감당할 수 없었다.

그래서 현은 표정을 완전히 차갑게 식혔다.

슬슬 관계를 끊어버리고 일어날 시간이다. 이쯤 어울려준 것도 대단한 일이었다. 앞으로는 상종하질 말자, 고 현은 생각했다.


“그만 일어날게요.”


그 말에 창석의 표정이 슬프게 누그러진다.


“헛소리라 생각혀?”

“당연하죠.”

“그려?”


그러자 창석이 기세를 모두 누그러트리고 힘없이 바닥을 바라봤다. 지긋지긋한 헛소리와 감당할 수 있는 정도를 넘어선 태도가 사그라졌다. 차마 현은 축 처진 노약자의 모습에 박한 말과 행동을 던지지 못했다. 그건 죽은 소연의 유산과 같은 것이었다.


“후우······.”


현은 한숨을 내뱉었다.

오락가락한 정신을 견딜 수 없어, 그나마 지인의 아들인 자신에게 찾아온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런 거라면, 이제는 두렵고 뭐고 간에 창석이 안쓰러울 뿐이다.


‘안쓰러운 사람.’


소연의 말을 현은 속으로 창석에게 뱉고 있었다.


“병원, 가보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쩌면 이 사람도 아버지에게 당하신 걸지도 몰라.’


그렇게 생각하며 현은 조심스럽게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창석의 앙상한 손을 잡아주었다.


“여차하면 같이 가드릴게요.”

“그래도······.”


창석은 그렇게 중얼거렸다.

.현은 그게 자신의 제안에 대한 망설임이라 생각했다.


“괜찮아요, 시간 비우는 거야 쉬우니까.”


하지만


“그래도 말이여.”


그건 완전한 착각이었다.

창석이 현의 손을 덥석 부여잡았다. 현은 깜짝 놀라 몸을 뒤로 빼려 했지만, 창석의 단단한 악력에 꿈쩍도 할 수 없었다.


‘무슨 힘이······.“

“아직도 맑고, 반짝여. 네 눈. 아직도 반짝인단 말이여!”


걱정은 다시 두려움으로.

안쓰러움은 다시 공포로.


“그, 그게 무슨 말이에요.”


최대한 태연한 척하려 했으나, 두려움은 숨겨지질 않았다. 창석은 비어 있는 잔에 얼른 술을 담고 입에 털어 넣었다.

그 맑고 씁쓸한 액체에 창석은 누그러졌던 기세를 다시 회복하고 현에게 말한다.


“잘 들어라, 아가야. 네가 기억을 못 허는 거 같은데. 그때 어렸던 네게서 난 보았어. 똑똑히 봤단 말이여. 현태가 보여줬던 건······ 하아나도 안 보였는데. 네 눈동자는 똑똑히 보였단 말이여.”

“그러니까, 도대체······.”


창석이 현의 두 눈앞에 가까이 얼굴을 가져다 대고 속삭인다.

현은 달달 떨리는 눈으로 그 섬뜩한 시선을 마주 해야 했다.

창석은 고요히 말한다.


“살인자의 눈을 말이여.”


쨍그랑!

현은 쥐고 있던 술잔을 바닥에 떨구고 말았다.

종업원이 소리에 놀란 눈으로 달려와 현을 걱정했다.


“괜찮으세요, 손님?”

“아, 아뇨. 괜찮아요. 별거 아니에요. 제가 치울게요.”


종업원은 현이 치우겠다는 말에도 굳이 부스러진 유리조각들을 다 치우고 사라졌다. 그가 사라지자 창석은 얘기를 이어갔다.


“잘 들어. 아가.”

“아뇨, 잠시만요. 제가······제가 뭐라고요?”


살인자.

현태.

그리고 인범의 휴대폰.


“할아버지도 절 그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현은 화를 냈지만, 그건 자신이 아버지와 똑같아지는 것과 인범의 휴대폰 어플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살인자 취급이라니! 살인자라니!’


현은 넘치는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저는 아버지와 달라요. 아저씨가 제 아버지의 친구라면······ 알고 계시잖아요! 아버지가 어떤 분인지! 내가 무슨 일을 겪었는지!”


현의 눈에 눈물이 달렸다. 눈가의 끝에서 눈물과 함께 그의 목소리가 흔들린다.


“근데 어떻게 그렇게 말씀하실 수 있죠?”

“그려. 알고 있어. 네 어미가 그렇게 죽어버렸을 때도, 내는 그때도 현태 욕했응께. 다시는 안 보려고도 했고. 지금도 빵에 들어가부린 게 참말로 다행이라 생각혀.”

“그런데 왜요!”


창석의 눈빛이 반짝인다.


“근디, 숨길 수가 없어 아가. 알잖어? 너도 이미 알고 있잖여.”


현은 그 말에 입을 다물었다.


『당신은 한 달 후, 박 현 (25세, 남) 에게 살해당합니다.』


현은 인범의 휴대폰에서 보았던 어플 내용을 떠올리고 헛구역질했다. 그리고 그건 자신에게 다가올 죽음도 상기시켰다.


『당신은 한 달 후, 최 인범 (29세, 남) 에게 살해당합니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손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 현과 다르게, 창석은 침착한 모습으로 소주잔을 들었다. 그리고 그 속에 담긴 맑은 액체를 두어 번 흔들어 바라보더니 단번에 입에 털어 넣었다.

창석은 크게 한숨을 토해낸 후에 비단 꾸러미를 부여잡는다.


“그려. 아직은 때가 아닌가 벼.”


창석은 몸을 일으켰다. 현은 떨리는 몸 때문에 일어나지 못하고 고개만 들었다.

불판에 올려진 고기는 다 타버렸고, 굽지 않은 생고기도 두 덩이나 남아 있었다. 현의 앞에는 창석이 놓아준 다 익은 고기 몇 점이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다.


“내가 한 말. 잊지 말어.”


창석이 말했다.


“칼. 언제든지 찾으러 와.”


붙잡을 틈도, 무어라 말할 틈도 없이 창석은 자리를 떠나갔다. 현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차갑게 식은 고기와 바싹 타들어가는 고기. 그리고 전혀 익혀지지 않는 생고기. 그 세 가지의 고깃덩어리를 단 한 점도 먹지 못한 현은 비참한 감정이 휘몰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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