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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남녘
작품등록일 :
2020.05.13 18:25
최근연재일 :
2021.01.2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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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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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5,603

작성
20.05.19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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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5.

DUMMY

부서진 문을 열며 현이 집 안으로 들어온다. 그런 현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광호가 거실에 앉아 있다.


“오셨어요?”


조금 졸았는지, 광호의 눈이 퉁퉁 부었다.


“미안하다. 늦었지?”

“아뇨. 희서는 자고 있어요.”


그렇게 말하며 광호가 몸을 일으켰다. 그 모습이 미안했던 현이 문 쪽으로 나서는 광호에게 말한다.


“고맙다. 피곤하면 오늘 자고 갈래?”


광호는 신발을 신으며 그런 그의 요청을 거절했다.


“아뇨. 잠은 집이 편해서요.”


광호의 배려를 갚을 길 없는 현은 그저 손바닥으로 목을 어루만질 뿐이다.


“그래. 다음에 또 보자.”

“네.”


그렇게 대답한 광호가 문손잡이를 붙잡다 말한다.


“이 문 고칠 거죠?”

“응. 내일 고쳐야지.”

“으음. 그럼 다음에 또 봬요.”


이리저리 문고리를 돌리던 광호가 인사를 남기고 떠났다.

현은 광호를 보내고 희서의 방문 앞에 잠시 선다. 조용히 방문 밖으로 희서의 잠잠한 인기척이 흘러나온다.


“미안해, 희서야.”


그렇게 현은 오늘 해주고 싶었던 말들을 산타클로스처럼 남겨놓았다. 그리고 자신의 방에서 가만히 휴대폰에 깔린 게임 속 세상에 빠져 엄지손가락 하나를 이용해 시간을 죽인다.


* * * *


조금 밝은 표정으로 현이 문을 고치고 있다. 힘찬 망치질 소리가 조용한 골목에 울려 퍼진다.


“아예 도어 락으로 달아버릴까?”


희서가 열심히 못질하는 현에게 물었다.

현이 희서를 돌아본다. 막 등교를 하기 위해 나온 모양이다.


“도어 락?”

“응. 비밀번호 누르는 거.”

“글쎄···.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현이 다시 고개를 돌려 못질에 집중했다.


“하긴. 그거 달아봤자 또 부수고 들어오겠지?”


현은 잠시 침묵한다.

퉁. 퉁.

못질 소리가 현의 온몸을 떨게 한다.


“그렇지······?”


현이 못질을 멈추고 어두운 목소리로 말하자 희서가 난처한 표정을 짓는다.


“에이, 또! 또 어두워진다!”


희서가 현의 등을 부드럽게 두드리며 외쳤다. 그리고 조용히 현의 등에 기댄다.


“어제처럼 지켜주면 돼, 오빠.”


그 말에 현의 등은 여름의 햇살을 맞은 것처럼 따뜻해졌다.


“어서 가. 학교 늦겠다.”


현은 다시 못질을 시작한다. 희서는 그제야 웃음을 보이며 종종걸음으로 떠나간다.


* * * *


희서의 교실이 새로운 분위기로 웅성댄다. 암암리에 진행되는 어두운 범죄의 계획과 같은 쑥덕임이 교실 아이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는 희서가 있다.

동물원에 갇힌 침팬지의 기분이 희서의 가슴을 훑고 갔다. 그건 자연스럽게 희서를 중심으로 둥글게 형성된 포지션 때문일 것이다.


“그럼, 쟤 아버지가 살인마야?”


누군가 눈치 없게 큰 소리로 그렇게 물었다.

당연히 희서의 귀에도 들어간 그 질문에 잠시 주먹이 꿈틀댄다. 그녀의 눈이 질문자를 찾아 날카롭게 움직였다.


“아 어제 그래서 경찰한테 잡혀갔다니까?”


화들짝 놀라며 답답해하는 이의 입을 막는 무리는 잘못한 것은 아는지 눈치를 살피기 시작한다. 희서가 더는 참을 수 없어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나 교실 밖으로 빠져나갔다. 어서 광호를 만나고 싶은 마음뿐이었지만, 그는 그날따라 교실에 없었다.

광호의 위치를 묻고자 해도 입을 떼려는 희서에게 돌아온 것은 자신의 교실과 똑같은 눈빛이었다. 목적이 확실한 그들에 비해 희서의 눈은 목적을 잃고 뒤흔들렸다. 순간 역한 감정에 희서는 서둘러 화장실로 달려갔다.

헛구역질을 화장실 변기에 쏟아내는 희서는 자신이 어떤 감정으로 여기까지 달려왔는지도 알 수 없을 정도로 혼란스러웠다.


‘익숙하잖아. 익숙하잖아, 이런 일. 그만 생각해.’


떨리는 손으로 물을 내리며 희서는 혼란을 정리해 본다. 이제는 덤덤해질 정도로 무뎌졌다 생각했는데, 어째서인지 처음 따돌림을 당할 때와 같이 온몸이 떨렸다.

그때, 밖에서 난데없이 남학생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자, 자! 특급 속보입니다.”


그 목소리의 주인을 알아챈, 희서는 단번에 얼굴을 구겼다. 유독 그녀를 놀리는 데 도가 튼 녀석들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가 여자화장실이라는 거다. 남학생들은 그곳을 자신들의 교실처럼 크게 떠들고 있었다.


‘뭐하는 거야?’


그 태도에 당황한 희서의 구겼던 얼굴이 불안으로 차올랐다.


“여기 바로 살인자의 딸이 있다는 제보를 받고 왔는데요? 제가 한 번, 살해당할지 모르는 위험 속에서도 취재를 진행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두 명 정도로 파악되는 목소리가 호기롭게 화장실 칸의 문을 열어젖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텅 빈 화장실을 향해 아쉬움을 가득 담아 외친다.


“아아! 아쉽네요. 이 칸은 아니었습니다. 그럼···후. 떨리지만, 다음 칸으로 가보죠.”


희서의 떨리는 주먹이 꽉 쥐어진다. 불안으로 차올랐던 얼굴이 다시 한 번, 분노로 바뀌었다. 그리고 곧바로 일어나 문을 박차고 나간다.


“야, 너네!”


두 번째 화장실 칸을 열려고 자세를 잡고 있던 두 명의 남학생이 깜짝 놀란 얼굴로 희서를 바라봤다. 한 명은 휴대폰 카메라로 촬영하고 있었고, 다른 한 명은 그 휴대폰 카메라의 앞에서 과장된 자세로 서 있었다.


“해도 해도 너무한 거 아니야?”


희서가 날이 선 목소리로 둘을 향해 외쳤다.

두 남학생이 막상 희서가 먼저 밖으로 나와 노려보자 그대로 굳어 대답도 못 하고 시선을 피했다.


“너네 미쳤어? 여기 여자 화장실이야!”


촬영하고 있던 남학생이 정신을 차리고 카메라를 희서 쪽으로 돌린다. 그리고 옆에 있는 자신의 친구를 툭, 툭 쳤다.


“아, 아. 방금 그녀가 나왔습니다!”


정신을 차린 남학생이 카메라를 향해 그렇게 말했다.


“후···. 그럼 인터뷰를 시도해 보겠습니다.”


마치 희서를 유령을 대하듯 하는 그들은 조금씩 그녀를 향해 접근했다.


“야······. 진짜 뒤지고 싶어? 니들 이거 선생님들한테 알리면······”

“지금 살인자의 딸이 뭐라고 떠들고 있는데, 가까이에서 자세히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희서의 말은 이미 그들에겐 잡음의 수준이었다. 그저 인터넷에 심심치 않게 올라오는 심령 현상을 발견한 사람들처럼 두 남학생은 공포와 조심을 동반한 채 그녀에게 접근할 뿐이었다.

희서는 이제 참을 수 없었다. 소리를 꽥, 하고 지르고 둘을 향해 성큼성큼 먼저 걸어가기 시작한다. 두 남학생이 흠칫하고 그대로 멈춰 서서 그녀를 경계했지만, 한심하기 짝이 없는 동작이다. 희서는 단번에 앞에 있는 남학생의 멱살을 붙잡았다.


“아아! 아파, 아파!”


남학생이 엄살을 부리며 얼굴을 찡그렸다. 희서는 그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주먹을 치켜든다.


“그래, 내 아빠 살인자 새끼다. 니들이 보태준 거 있어? 아님, 뭐. 똑같이 죽여줄까?”


그런 희서의 말이 가벼운 농이 아니라는 것이 눈에 담긴 분노로 충분히 표출됐다. 멱살을 붙잡힌 남학생이 방정맞게 놀리던 입은 그때서야 멈춰 섰다. 대신에 딸꾹질해가며 카메라를 들은 녀석에게 도움을 청한다.


“빨리! 빨리 꺼내, 미친놈아!”


희서의 시선이 잠시 카메라를 향했다. 카메라를 들은 남학생이 주머니에서 커터 칼과 드라이버를 꺼낸다. 그걸 발견한 희서의 표정이 급격히 사색이 됐다. 그녀가 몸을 달싹이며 주저하는 눈빛으로 변한 걸 발견한 남학생은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야, 빨리 나한테 줘!” “여기!”


카메라를 들은 남학생이 드라이버를 그에게 건넨다. 드라이버가 단번에 희서의 눈앞에 가까워진다.

날붙이.

단단한 날붙이를 보자 희서의 머릿속에 불이 붙는다. 끔찍했던 악몽이 그녀의 뇌 속을 단번에 채워가기 시작한다.


“······아, 아······. 아아아!”


희서가 멱살을 붙잡고 있는 손을 놓치고 바들바들 떨었다. 그리고 소리를 지르며 날붙이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황급히 뒤돌아 달려간다. 슬리퍼가 화장실 타일에 미끄러졌음에도 그녀는 다시 일어나 도망쳤다.

희서는 자신의 도망이 벽에 의해 막히자 절망스러운 표정으로 차가운 벽면을 이리저리 더듬기 시작한다. 쥐구멍이라도 찾아 들어가려는 듯 애처롭고 처절한 모습의 뒤로 두 남학생이 입가를 씰룩인다.


“진짜네?”


뒤에서 들리는 남학생들의 목소리는 다급하고 애처로운 그녀의 모습과 완전히 상반된 침착함이었다.


“야, 걔 말이 진짜다. ······이거면 평생 괴롭힐 수 있는 거 아니냐?”

“이걸 왜 지금 알았을까?”

“근데 너무 자극하지는 말라고 했잖아.”


두 남학생은 자신들에게 드라이버를 보여주던 조언자를 떠올렸다. 자신들과 같은 나이와 교복을 입은 남학생이 음흉한 웃음을 띤 채로 말했다.


“너무 자극하지는 마.”


물론 두 남학생은 그 이유에 관해 물었었다. 하지만 이미 그 내용은 변태적 쾌감에 가려져 떠오르지도 않는다.


“그게 무슨 상관이야, 지금······.”


변태적인 묘한 쾌감에 사로잡힌 두 남학생이 꿀꺽, 침을 삼키고 날붙이를 앞세워 희서에게로 과감히 접근했다. 희서는 벽면을 벅벅 긁으며 날붙이로부터 도망치려 하지만, 그녀가 갈 수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도움을 바랄 광호도 여기서는 찾을 수 없다.


“어, 엄마! 엄마!”


희서가 엄마를 부르짖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머릿속에 스치는 건, 현태가 그녀의 어머니를 끔찍하게 찔러 죽이는 잔상뿐이다. 그녀의 눈은 더욱 공포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남학생의 카메라에 그런 그녀의 모습이 낱낱이 담기고, 두 남학생의 괴물과 같은 웃음소리가 화장실의 공기에 더럽게 채워졌다. 그리고 그 순간, 희서가 공포 속에서도 가까스로 부여잡고 있던 어떠한 이성의 끈이 그대로 끊겨버리고 만다.

벽면을 애처롭게 긁던 손이 멈추고, 희서가 고개를 돌린다. 서슴없이 걸어오는 두 남학생의 얼굴이 그녀의 눈에 들어온다.


“죽여 버릴 거야·········. 죽여 버릴 거야·········”


방에서 숨죽이며 외던 중얼거림. 그리고 그건 점점 소리를 더해가 악으로 바뀐다. 급발진을 위한 엔진의 예열과 같이 그녀는 그대로 두 남학생에게 달려든다.


“죽어! 죽어!!!”


희서의 손에 그들의 카메라가. 드라이버가. 커터 칼이. 그리고 두 사람의 얼굴이 뭉개진다. 납작하게. 납작하게. 그녀가 이제까지 눌러왔던 분노와 기억처럼.

짓이겨지는 자신의 광대뼈의 통증을 느끼며, 남학생은 조언자의 경고를 떠올렸다.


“그 아이가 웅크리고 있는 건, 너희를 위한 배려니까.”


* * * *


아름다울 달이 먹보다 더 검은 구름들에 의해 빛을 빼앗겼다. 가로등 빛으로도 밝아지지 않는 유독 어둡고 찬 날이었다. 가뜩이나 그렇게 무서운 날에, 희서의 어머니가 어린 희서와 현을 붙잡고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오늘은 내가 죽는 날이야.”


왜 그러냐 묻는 두 어린 자식들에게 사랑스러운 키스를 해주며 아득하게도 슬픈 눈으로 그녀는 떠나갔다.

빠금, 방문을 열고 현과 희서는 함께 어머니와 아버지를 보았다.

어머니는 말했다.


“오늘 네가 죽는 날이야.”


아버지는 그런 그녀를 향해 웃었지만, 손에 들린 시퍼런 식칼을 바라보고는 그 웃음을 뚝 그쳤다. 그리고 이어지는 욕지거리와 함께 두 사람은 뒤엉켰다. 희서는 그날 본 다큐멘터리를 떠올렸다. 야생의 피식자라는 다큐멘터리였다.

거기서 포식자의 사냥 장면에서 아나운서는 말했다.


“약하면 먹히죠. 하지만 먹히는 이들이 그냥 먹히지는 않습니다.”


그럼요?


“최대한 포식자의 힘을 빼거나, 어떻게 서든 미리 인지하려 노력하죠. 그렇게 했는데도 포식자의 포위망에 든다면 피해를 최소화합니다. 가장 필요 없는 무리 일원을 넘겨주는 것이죠.”


가장 약한 무리 일원이 모든 무리를 위해 희생하는 장면이 지나간다. 그것과 함께 희서의 어머니가 서슬 퍼런 날붙이에 찔린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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