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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남녘
작품등록일 :
2020.05.13 18:25
최근연재일 :
2021.01.28 20:00
연재수 :
10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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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505,603

작성
20.05.2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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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7.

DUMMY

다행히 현은 희서와 화해를 할 수 있었다. 현이 소연과 풋풋한 추파를 주고받았던 그 날. 달싹거리는 감정을 그대로 희서의 문 앞에서 사과와 함께 전달했다. 그것이 생각보다 주효했는지, 정확히 일주일 정도 후에 희서가 우물쭈물 저녁 식탁에서 사과를 건넸다.


“미안해, 오빠. 광호랑 조금 다퉜었어.”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했으나, 현은 일단 희서가 먼저 다가와준 것에 고마움을 느꼈다.


“아냐, 됐어.”


그리고 현은 수저로 밥을 푸며 덧붙인다.


“먼저 사과해줘서 고맙다.”


그 이후는 말 안 해도 되는 화목한 이야기가 포장된다. 하지만 내용물 속에서 희서는 그날 홀로 방 안에 들어와 다시 한 번 울음을 터트린다.

어린 나이에 생각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 가장을 짊어진 오빠의 부담을 더는 일 중, 가장 효과적인 것이 침묵이란 걸 배워버린 희서는 몰래 날마다 베개에 눈물 자국을 찍는다.


* * * *


소연이 있는 편의점에 다시 현이 모습을 드러낸 건, 희서와 화해를 하고 딱 일주일 정도가 지난 후였다. 여전히 눈부신 편의점 불빛이 현의 어두침침한 눈동자를 따끔하게 만들었다.


“어서 오세요.”


평소와 같은 소연의 목소리가 현을 반겼다.


‘평소?’


현은 순간 고개를 휙 돌린다. 평소의 그녀가 자신을 반길 때 길게 끌던 끝 음이 마침표로 끝났기 때문이다.

현은 그녀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는 걸 직감했다. 하지만 무슨 일이 있는지 물어볼 용기가 없어, 그녀의 앞에 늘 사던 물품만을 내려놓고 입을 다물었다.

삑-.

바코드 리더기의 소리가 그런 현의 마음을 재촉했다. 하나의 카운트다운과 같은 소리에 현은 진땀을 흘린다.


“이천칠백 원이요.”


처음 운전대를 부여잡은 것처럼 더럭 겁나는 말투였다. 현은 그 순간이 말을 붙여볼 마지막 기회임을 알았지만, 끝내 그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하고 물품을 챙기고 말았다.

그렇게 나온 밖은 썰렁했다. 분명 그건, 아까의 행동에서부터 불어오는 바람 때문일 것이다.


“나도 물어봐줬어야 했는데······.”


현이 그렇게 중얼거리며, 테이블이 아닌 편의점 빛이 쏟아져 나오는 창가 아래에 앉았다. 아까의 겁쟁이 같은 모습을 후회하며 머리채를 부여잡고 괴로워했다. 그는 괴로움을 참을 수 없어 테이블을 청소하기 위해 벌떡 일어난다.


“어······?”


그런데 지저분한 테이블은 하나도 없었다. 마치 현이 일주일 전에 청소해 놓았던 상태와 똑같았다.

현은 고개를 돌려 편의점 안에 있는 소연을 바라본다.


“저도 그쪽이랑 같을 거라고요. 집이든, 가정이든.”


소연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항상 밝았던 그녀의 모습이 편의점 빛에 둘러싸인 가면처럼 느껴졌다. 오히려 지금의 저 모습이 진짜 그녀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도달했으나, 현은 다시 고개를 돌렸다.

안쓰럽다. 무슨 일이 생겼다. 도와준다. 말을 건다. 그런 생각이 피어날수록 현의 머릿속에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환청이 돼 들려왔다. 그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귀를 막는다.


“왜······. 왜!”


현에게는 모두 어려운 일이었다. 자신은 소연이 아니고, 희서가 아니다. 먼저 무엇인가를 하지 않는다. 바라지도 않는다. 그게 충격과 실망만 커지게 한다는 걸 그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지워지지 않아.”


자신의 더러운 손을 바라보며 현은 과자를 한 번에 입에 털어 넣었다.


‘그때도 그랬고, 언제나 그랬어.’


음료까지 완전히 입에 털어 넣은 현은 숨을 깊게 내쉬었다. 그때, 그의 휴대폰을 낮게 진동한다.


“오빠, 어디야?”


희서의 문자였다. 고통에 가까웠던 현의 표정이 조금 누그러졌다. 그는 손가락을 놀려 희서에게 답장한다.


“지금 편의점. 뭐 사갈까?”

“아니, 됐어. 집에 없어서.”

“응, 금방 갈게.”


현이 몸을 일으키려는 찰나 갑자기 편의점 안에서 소연의 비명이 내질러졌다. 단단한 유리문을 꿰뚫고 날아오는 투창과 같은 그녀의 비명에 현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찬란한 편의점 불빛. 찬란한 천국의 빛이라 생각했던 그 불빛 속에 악마가 소연의 영혼을 거두기 위해 서 있었다.


“저, 저······!”


그때 보았던 뚱뚱한 사내. 인범이라 불렸던 그 사내가 악마와 같은 무시무시한 얼굴로 소연의 앞에 서 있었다. 그녀를 간신히 지켜주고 있는 계산대를 사이에 두고, 인범은 날카롭게 갈아 놓은 식칼을 휘둘렀다.

한 번의 칼질에 소연의 비명이 바코드 리더기의 소리처럼 울려 퍼진다. 그 소리는 현의 마음속에서 카운트다운이 된다.

현은 주먹을 꽉 쥔다.

현은 이도 악문다.

현은 종아리 근육을 단단히 조인다. 하지만 그게 무슨 소용일까. 그는 그때까지도 망설였다. 신체는 그에게 모든 준비를 끝냈다고 신호하지만, 그 모든 신호를 담당하고 있는 뇌가 그를 붙들었다. 소연의 두려움 가득한 얼굴이 더욱 짙어질수록 악마의 칼부림은 더욱 무자비하고 광기가 서린다.


“내가 만나지 말라 했지!”


인범이 소리쳤다.


“손님! 도대체 왜 이러세요!”


소연이 받아쳤다. 인범에서 손님으로 호칭이 바뀌자 악마는 견딜 수 없다는 듯, 몸을 비틀었다.


“경찰에 신고하겠어요!”


하지만 그건 소연과 같은 인간의 언어에 면역을 지닌 악마에겐 소용없는 저항이다.


“내가 만나지 말라 했잖아, 그 새끼랑!”


분을 참지 못한 식칼이 기어이 계산대 위의 포스기를 부서트린다.


“어제 본 그 새끼랑 작당해서 나 죽이려고 했지? 맞지?”

“손님! 아니, 인범 씨!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그럴 리가 없잖아요!”


보통 악마는 이름을 부르면 사라진다고 하는데, 인범이라 이름 불린 이 악마는 아무래도 그것마저 초월한 듯싶다.


“내가 자주 오질 않으니까 이제 질렸어? 어? 그래서 다른 남자한테 꼬리를 쳐? 내가 저기서 다 봤어! 그 새끼랑 말 섞는 거!”


악마가 가리키는 손가락에는 현이 그를 발견했던 어둠의 공간이 펼쳐져 있었다. 언제나. 항상. 인범, 이 악마는 소연을 지켜보고 있었다.

현은 인범의 악마와 같은 형상과 그때 느꼈던 묘한 분위기에 그만 준비시켜 놨던 신체 명령들을 철수시키고 만다.


“제발··· 제발 이러지 마세요.”

“날 좋아한다며! 다정하게 이름 불러주고, 다 품어줄 테니 괜찮다며!”

“제가 언제요!”


광기에 빠진 악마가 터무니없는 말로 그녀를 유린하기 시작한다. 칼보다 날카로운 모욕과 질타가 그녀의 정신을 부서트리기 위해 사정없이 달려들었다. 하지만 소연은 이미 그것을 예견하기라도 한 듯, 서글픈 표정에도 두 눈만은 반짝이고 있었다. 탈출을 궁리하는 눈은 빠르게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그리고 그 눈은 계속해서 담배 진열장에 숨겨 놓은 호신 스프레이로 향한다.


“죽어!”


악마의 그 신호와 동시에 소연이 긴 다리를 쭉 내뻗는다. 식칼은 당연하다는 듯 허공을 갈랐고, 소연의 “킥”은 완벽히 인범의 급소를 강타했다.

편의점 안에 새로운 비명이 유리창을 꿰뚫고 나왔다.

현은 그제야 조금 정신이 든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편의점 유리창에 식은땀만 흘리고 가만히 서 있는 자신이 보인다.


“으아악!”


소연이 아까부터 살피던 스프레이가 급소를 부여잡고 있는 인범의 얼굴에 뿌려졌다. 뚱뚱한 체구가 이리저리 비틀거리자, 그녀는 계산대를 열고 나와 그대로 그를 들이받았다.

악마가 무너지고, 소연은 곧바로 편의점 밖으로 빠져나오는 데 성공한다.


“현 씨······?”


땀과 난투의 흔적으로 엉망진창이 된 소연이 현을 발견한 건 그때였다.


“왜 아직도 안 가시고! 아니 이럴 때가 아니에요.”


소연은 현의 손목을 잡고 달리기 시작했다. 현의 몸은 그제야 그녀에게 이끌려 달릴 수 있었다. 그때 현이 붙들고 있던 휴대폰을 바닥에 떨어졌다. 그런 걸 신경 쓸 겨를도 없이 둘은 한참을 내달렸다. 가로등이 비추는 곳. 가로등이 없어 어두컴컴한 곳을 가리지 않고 쉼 없이 달렸다.


“제가 일부러 빨리 가라고 그렇게 대한 건데, 아직도 계시면 어떡해요!”


소연이 차오르는 숨에도 현에게 외쳤다.

그걸 차마 몰랐던 현의 입은 그제야 하고 싶은 말을 뱉는다.


“무, 무, 무슨 이. 일이 있으신 거 같아서요.”

“당연히 무슨 일이야 있죠! 그래도 눈치껏 도망치셨어야죠!”

“제가.”


현은 꿀꺽 침을 삼킨다.


“제가 도울게요.”

“못 도와요! 모르겠어요? 저 미친놈한테 도망치는 게 최선이라고요!”


소연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낸다. 덜컹대는 와중에 간신히 112를 누른다.


“개 같은 놈들아!!!”


뒤에서 쫓아오는 인범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소리로 보아 꽤 가까운 것 같다. 체구에 비해 달리기가 빠르다는 건, 소연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사실이었다.

소연이 통화 버튼을 누르며 뒤를 돌아보았다. 숨을 몰아쉬며 따라오는 현의 얼굴 뒤로, 섬뜩한 악마의 형상이 날붙이와 함께 번뜩인다. 그녀는 그때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을 느낀다.


“괜찮아, 괜찮아.”


스스로 그렇게 다독여 보지만, 앞을 바라보고 달리는 그녀의 얼굴은 전혀 괜찮지 않았다. 악마와 코앞에서 대치할 때도 멀쩡했던 정신이 그의 형상에서 한 가지 사실을 똑똑히 보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인범의 방문을 예상한 것처럼, 그도 지금 이 상황을 예상하고 있었다는 걸.


“·········아······!”


결국, 그 사실에 대한 공포가 소연의 다리 힘을 풀어버린다. 그대로 소연과 현은 나자빠졌다. 그녀의 휴대폰을 저 멀리 날아가 허공에 경찰의 음성을 터트렸다.

현이 서둘러 몸을 일으켜 소연에게 달려간다.


“일어나요, 어서!”


드디어 조금의 용기를 얻은 현이 소연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 몸을 움직였다. 그녀의 손을 붙잡아 일으키고 풀린 다리를 달리게 했다.


“죄송해요.”

“도대체 누구예요?”


가쁜 숨을 몰아쉬며 현이 물었다.


“몇 달 전부터 찾아오셨던 분이에요.”

“그런데요?”

“가끔 저한테 이름이랑 이것저것 알려주셨던 게 다였어요. 정말 가끔 말 거실 때 대화 나눈 거. 그것밖에 없었는데·········.”


둘은 골목을 꺾어 들어갔다.


“그럼 저 사람 올 건 어떻게 아셨어요?”

“오늘 아침에······. 오늘.”


소연이 차오른 숨을 깊게 고르고 다시 말했다.


“오늘 아침에 찾아오셨는데 이것저것 묻고 그러는 게 너무 이상해서. 혹시나 해서. 준비하고 있었던 거였어요.”


소연이 갑자기 현을 멈춰 세웠다.


“잠깐만요!”


현이 그녀에게서 조금 더 떨어져 멈췄다. 턱까지 차오른 숨들이 실낱같은 이 휴식 시간을 놓치지 않고 본능적으로 가쁘게 이동했다.


“도망가기만 해서는 안 되겠어요.”


현은 불안하게 떨리는 눈으로 소연을 바라봤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대안을 막아 세우는 것도, 또 다른 대안을 마련하는 것도 현은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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