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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녘의 서재입니다.

살인앱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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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남녘
작품등록일 :
2020.05.13 18:25
최근연재일 :
2021.01.28 20:00
연재수 :
101 회
조회수 :
3,981
추천수 :
29
글자수 :
505,603

작성
20.05.1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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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
추천
5
글자
9쪽

#1

DUMMY

불도 켜지 않은 방안.

침대에 누워있는 현의 눈동자가 핸드폰 빛을 받아 동태처럼 디글거린다. 계절에 상관없이 언제나 추운 이불을 잔뜩 끌어안은 채로 그는 어플 스토어의 게임 순위에 멍하니 집중하고 있다. 스크롤을 내리는 손톱이 삐뚤빼뚤 깎여있다.

한참 100위 권 밖으로 넘어가던 스크롤 화면이 갑자기 껌껌해지더니, 통화 벨이 울렸다.

검은 화면의 위로 “살인자”라는 단어가 딱딱하게 떠 있다.


“여보세요.”


담담한 표정과 동태와 같은 눈알을 닮은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현은 말했다.


“현이냐.”


쇳소리가 가득 담긴 목소리 그리 말했다.

아버지 현태였다.


“네.”

“아버지다.”

“알아요.”

“아는 놈이 전화를 이딴 식으로 받아?”


대뜸 그는 화를 냈다. 뒤에 그가 잘 들리지 않게 “죽여 버릴까 보다.” 라는 그 말이 장난기가 전혀 없어서 현은 등골에 소름이 쫙 돋는다.

현은 수화기를 저 멀리 떼고 그가 듣지 못하게 손으로 가린 후에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죄송해요. 습관이라······.”


옛 생각마저 겹친 현은 바들바들 몸을 떤다.


“짜식이. 사내새끼가 덜덜 떨고는······ 쯧. 쯧.”


혀 차는 소리가 현에게는 회초리보다 매서웠다.


“그건 그렇고 어쩐 일이세요, 아버지?”

“다른 게 아니라. 생활비 보냈다고.”

“아······.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네요.”


그 말을 한 건 실수였다.

"뭐?"로 시작한 현태의 욕이 한 바가지 쏟아진다.


“아주 배가 불렀지? 꼬박꼬박 보내주니까 돈이 아주 차고 넘치디?”


현이 허공에 손사래를 친다.


“아뇨! 아뇨! 전혀 아니에요. 그냥 제가 해 놓은 게 없어서······.”

“그래, 이 녀석아. 이제 네가 벌어먹고 살아야지 않겠냐? 그만 쳐 놀고 좀 일이라도 해라.”

“······네.”


수화기 너머로 쩝쩝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그가 무엇을 하는지, 현은 전혀 알고 싶지 않은지 눈을 질끈 감는다.


“희서는 잘 지내고?”


그 말에 현의 동태 같은 눈에 처음으로 생기가 돈다. 지뢰라도 밟은 사람의 표정이 돼서 말이다.


“···희, 희서요?”


현은 저도 모르게 말을 더듬는다.


“왜 그래? 내가 희서 잡아 먹을까 봐?”

“잡아 먹는 다뇨, 아버지. 이제 안 그러시잖아요.”

“그래. 그 새끼는 몰라도 내가 너흰 사랑하는 거 알고 있지?”

“그럼요.”


현의 입술이 바싹바싹 말라간다. 그 말라붙은 입술을 비집고 엄지손톱을 밀어 넣어 잘근, 잘근 씹기 시작한다.

역겹다는 감정을 느낄 새도 없이, 두려움이 앞선다.


“그래서 희서는?”

“잘 지내요.”

“어떻게 잘 지내느냐고.”

“학교 다니고, 늘 똑같죠.”

“남친 생겼다며.”


현의 머리가 다급하게 돌아간다.


“맞아, 아니야!”

“걔···걔가 그래요?”

“희서랑은 통화 안 해.”

“그럼 저도 몰라요.”


또 미세하게 욕지거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그 욕들은 한 아름 담아 뱉어내는 것과 똑같은 한숨이 토해진다.


“끊는다.”


그제야 현은 조금 밝게 웃어본다.


“들어가세요.”

“그래.”


통화 종료 음이 일정하게 현의 귓속을 파고든다. 그 소리가 구조대라도 되는 듯, 현은 핸드폰을 꼭 잡고 놓칠 않는다. 그리고 그의 몸은 그대로 다시 침대에 쓰러진다.

쓰러진 현의 눈앞으로 핸드폰은 마켓 광고 하나를 띄운다. 음침한 다크 판타지 세계관의 게임 속 주인공은 이렇게 말한다.


“계속 여기 있고 싶다. 이 칠흑 같은 어둠 속에······ 평생 숨어 지내고 싶다.”


현은 속으로 “정말로.”라고 외치며 뒤이어 나올 희망적인 대사들을 모로지 무시하고 돌아누웠다. 그러다 문뜩 현태가 보냈다는 돈의 액수를 확인하기 위해서 다시 돌아와 은행 어플을 켠다.

입금 내역에 십만 원이 찍혀있다.


“씨발······.”


앞으로 이 돈을 아껴 삼 개월을 버틸 생각에 현은 저도 모르게 속삭였다.


* * * *


창가로 청춘을 가득 담은 햇빛이 내려온다. 하지만 그것을 받아들이고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 ‘어둡다.’라기 보다는 ‘무겁다,’ 라는 표현이 걸맞은 학교의 으슥한 상담실에 희서와 그녀의 담임선생님인 세란이 마주 보고 앉아있다.

왁자지껄한 젊은 녀석들의 소음으로 멀리 떨어진 상담실은 쥐 죽은 듯 고요했다. 이곳을 자주 오갈 수 있는 세란 조차도 긴장을 삼킨 채 들어오는 데, 희서는 이상할 정도로 생글생글 여유를 보인다.


“흠흠.”


꺼내려는 말이 상당히 불편한 그녀는 선뜻 말은 꺼내지 못하고 괜히 분위기를 잡기 위해 목을 가다듬었다.


“하실 말씀이 뭐에요?”


그런 세란에게 희서는 당돌히 묻는다.


“···어어, 그게 희서야.”


세란은 힘겹게 말을 뗀다.


“혹시··· 반에서 왕따나 괴롭힘당하고 있는 애가 있니·········?”


멀뚱.

희서가 큰 눈을 깜빡인다. 그러다 다시 씽긋 웃으며 답했다.


“아뇨.”


세란의 양손이 불안한 듯, 번갈아 서로를 쓰다듬었다. 하도 어루만져 피부가 벌겋게 달아올라 있다.


“············네가.”


세란은 조금 더 조심스럽게 다시 물었다.


“괴롭힘당하고 있지는 않고?”


물으면서 고개를 떨궜다.


‘선생인데······.’


그런 자책과 함께 세란은 잠시 희서의 얼굴을 바라보지 못한다. 미안함과 죄책감. 그리고 그녀 나름의 배려가 섞인 태도였다. 하지만 그 태도가 오히려 희서에게는 극도로 불쾌감을 선사한다.

희서의 얼굴이 세란의 시선이 땅에 떨궈질 때, 눈에 띄게 구겨진다. 그리고 세란의 고개가 들리는 것과 동시에 다시 표정을 바꿔 싱긋 웃었다.


“문제없어요, 선생님. 걱정하지 마세요. 선생님은 걱정이 많아서 탈이라니깐요?”


희서가 집게손가락 끝으로 세란에게 장난을 치며 말했다. 그게 효과가 있는지, 세란의 표정도 점차 밝아진다.


“그, 그래? 다행이다. 희서야 무슨 일 있으면 꼭 선생님한테 말해야 해? 선생님이 희서를 얼마나 아끼는지 알지?”

“그럼요.”

“그래, 그래. 이만 가 보렴.”


희서는 꾸벅 인사를 하고 일어났다. 상담실 밖으로 나가기 전에도 인사를 꾸벅하는 그녀의 예의 바름을 바라보며 세란은 내심 안심한다.


‘저렇게 착한 애를 괴롭힐 리 없지. 그리고 저렇게 착한 애가 내 앞에서 거짓말할 일도 없을 거야.’


세란은 그렇게 스스로 이해하고 학교폭력 관련 서류들을 들고 상담실 밖으로 빠져나와 자신의 책상에 앉았다.

서랍에 자료들을 넣으려고 하는 그녀의 눈에 오늘 상담을 잡게 된 원흉이 들어온다. ‘마음을 전해요.’ 학교 화장실과 복도마다 설치된 건의함에서 나온 쪽지였다.

가장 초임인 세란이 아침마다 하는 업무가 아무도 건의하지 않는 건의함을 확인하는 일이었는데, 오늘 아침 정말 특별하게 건의함 안에 이 쪽지가 들어있었다.

쪽지는 선생님으로써 학생을 도와줄 수 있을 거라는 세란의 마음에 불을 붙였다. 하지만 쪽지 내용을 확인하는 것과 동시에 뜨거웠던 불꽃은 급격히 흔들렸다.


“2학년 3반 박희서 친구가 학교 폭력을 당하고 있는 것 같아요.”


쪽지의 내용이 머리를 때리자, 세란은 서둘러 서랍을 닫아버린다. 자기가 떠안기에는 너무 무겁고, 남에게 넘기기에는 너무 큰 사항이 될 것 같아 무서웠다.


‘그래, 이 정도면 잘했어.’


그래서 세란은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하며 다음 수업을 준비하기 위해 출석부를 챙겼다.

그런 그녀를 아직 교무실 밖으로는 나가지 않았던 희서가 지긋이 바라보더니 나가버린다. 교무실에서 벗어나자 활기찬 비명들이 쏟아져 내려온다. 아무 소리 없는 교무실과 다르게 어디서 오는지도 모를 비명들이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희서는 그 소리들에 얼굴을 구겼다.


“뭐래?”


그녀를 기다리고 있던 광호가 물었다.


“···아. 왜 기다리고 있어.”


희서가 툴툴거렸다.

광호는 미소를 지으며 희서에게 안긴다.


“걱정되니까 당연하지~ 담탱이가 뭐래?”

“학교 폭력 당하고 있느냐던데?”


그 말에 광호의 표정이 싹 굳는다. 당장에라도 교무실로 들어갈 기세였다. 그런 그를 희서가 서둘러 막아선다.


“됐어, 광호야. 그냥 가자."

“아니, 자기가 뭘 해줄 수 있다고. 애초부터 관심을 줬었으면!”

“광호야!”


둘의 소리가 복도에 쩌렁쩌렁 울린다. 광호는 자신의 목소리보다 희소의 목소리에 놀라 두 눈이 커다래진다.


“그냥 가자. 그렇게 말하면 나 힘들어.”


그 말에 광호는 주인을 잃은 강아지 같은 표정을 지으며 꼬리를 내린다.


“···미안해. 교실로 돌아갈까?”

“응. 고마워.”


둘은 서로에게 기댄 채, 교실로 걸어간다. 중간에 각자의 교실로 찢어질 때, 희서의 얼굴은 심각할 정도로 어두워진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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