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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킴 님의 서재입니다.

천재 작가는 재벌이 부럽지 않다

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드라마

돌킴
작품등록일 :
2024.03.04 08:30
최근연재일 :
2024.03.20 08:35
연재수 :
1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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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3
글자수 :
108,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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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19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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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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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18화. 존재의 증명(7)

DUMMY

18화. 존재의 증명(7화)






“하, 뭐? 에세이를 써오라고? 여기가 미국이야? 프랑스야?”


배 회장은 차에 올라타자마자 투덜거렸다.


“글이라고는 일기만 겨우 써본 앤데. 제일 어려워하는 게 글쓰기인 아이한테 에세이를 써오라니...”


회장님의 얼굴에 수심이 어린다.


“수아가 그 난리만 안쳤어도 이런 꼴은 안 당하는 건데. 이건 최 회장도 우리 수아 떨어져 나가길 바라는 거 아니냐.”


답답한 마음에 그는 차창을 열었다.


“회장님...무슨 일이십니까.”


운전대를 잡고 있던 김 비서가 물었다.


“최 회장이 그럴 줄 몰랐네. 내 부탁이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들어줄지 알았어. 우리가 골프 머리도 같이 얹은 사이고 솔직히 내가 이안 백화점 가서 팔아준 게 얼만데. 이안 물산 만든 거 그거 죄다 사줬는데. 근데 고작 그런 부탁 하나 안 들어 주냐? 그것도 자식 부탁인데?”


사정을 아는 김 비서가 말했다.


“그 모임이 보통 모임입니까. 대한미국 최고 명문가 여식들이니 최 회장님께서 아무래도 눈치 좀 보셨겠지요. 수아 아가씨가 먼저 그 아이를 때렸다면서요? 그쪽에서도 아마 난리도 아니었을 겁니다.”

“그래서 내가 잘해 볼 생각으로 가지 않았나. 그리고 말이야. 먼저 욕한 게 누구냐. 백옥 그 딸램이다. 쌍방이 잘 못했으니 나만 죽을 순 없잖은가. 내 오늘 그 영감 작품 하나 팔아 줄 생각도 했었는데, 에잇. 망해버렸네.”


김 비서가 빙긋 미소 짓는다. 그는 생각했다. 천하의 재벌 회장님도 자식 문제엔 장사 없구나. 혁명이니, 혁신을 논하는 대인배의 모습은 어디를 가고 그저 평범하고 옹졸한 아비의 모습이다.


“최 회장님하고 가장 친하지 않으세요. 걱정 마세요. 제 생각엔 그리 어렵지 않은 테스트 일 것 같습니다. 그냥 명목상의 벌칙이라고 할까요?”

“아니야. 그 영감 진심이야. 영감탱이 나중에 뭐래는 줄 알아? ‘배 회장. 행여 편법 쓸 생각은 하지도 말게. 대리로 에세이 냈다가는 바로 탄로 날 거야. 당장은 위기를 모면 할지 몰라도. 우리 불란서 선생이 얼마나 깐깐하지 몰라. 몇 번 수업을 해보면 얘가 허당인지 진짠지 금방 안다니까. 그 선생 프랑스에서 그랑제꼴 입시 전문으로 활약했던 선생이야. 수준 어떤지 알겠지? 잘해 보라고...’ 내 그 말을 듣고 기가차서. 원...”


에세이 주제는 아무거나 란다.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메뉴가 제일 어려운 주제가 아무거나다. 그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어쩐다. 이대로는 진짜 수아가 쫓겨나게 생겼는데...


“잠깐!”

“무슨 일이십니까, 회장님?”

“그, 그 아이 말이야. 천승오. 나 그 아이 좀 만나야겠네.”

“갑자기 승오를요?”

“어쩌면 승오라는 아이가 아주 좋은 자극제가 될지도 몰라. 수아 성격 알지? 지고는 못사는 거. 걔 기획안 쓴 거 봐라. 그 글이야 말로 좋은 글의 정석이지. 우리 수아가 그 글을 보고 꽤 충격을 받더군. 둘을 한 번 만나게 해주는 게 좋겠어. 그 후에 과외 선생을 붙이던 해야겠다.”

“오, 회장님. 아주 좋은 생각이십니다.”


김 비서는 서둘러 비서실에 전화를 걸었다. 승오와의 약속을 잡기 위해서다.



***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 사랑한다...?”


화랑 초등학교 운동장. 학교가 파하고 백장미와 이혜인이 운동장에 퍼질러 앉아 놀고 있다. 백장미는 학교 화단에서 꽃을 꺾어다 사랑점을 보고 있었다. 그 사랑점의 대상이 누구인지는 아주 뻔했다.


“아씨, 사랑 안한데! 뭐야! 엉터리! 안 되겠다. 반지점 봐야지.”


백장미는 끼고 있던 플라스틱 반지를 빼더니 머리 고무줄을 끼워 큰 고리 형태로 묶는다. 반지점을 볼 도구가 완성됐다.


“봐봐. 내가 몇 살 때 천승오랑 결혼할지 이 반지가 알려줄 거야. 숫자를 세면서 이렇게 손등 위를 왔다 갔다 하면 특정 숫자가 나올 때 반지가 반응해. 반지가 360도로 돌아가면, 그 숫자가 바로 결혼할 나이인거야.”

“치, 그런 게 어딨어. 넌 그딴 걸 믿어? 가만있던 반지가 빙그르르 돌아간다고? 360도로?”

“얘는 속고만 살았니? 이거 무려 ‘소라의 봄’에서 나온 신뢰도 높은 결혼점이라고. 이거 옆동네 학교에서 아주 핫한 점이야. 씨이. 내말 안 믿는 거야? 그럼 너 한번 해봐봐. 반지 돌아가나 안돌아가나.”


백장미는 강제로 이혜인의 손을 끌어당겼다.


“자, 봐봐. 이렇게... 이렇게 해서. 이렇게 하는 거야. 참. 네 결혼 상대는 누구로 할래?”

“천승오.”

“뭐야? 미쳤니? 걔 내 남자야.”


멍한 이혜인의 얼굴을 보던 백장미가 한 숨을 푹 쉬며 말한다.


“뭐, 니가 아는 남자 이름 천승오 밖에 없다면...인저앻 줄게. 어차피 결혼 나이 알아보는 거지 그 상대랑 결혼하는 걸 맞추는 게 아니니까.”

“응,응.”

“암튼 재미로 해봐.”


백장미는 천승오의 이름을 부르며 반지 점을 치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스물, 스물 하나, 스물 둘, 스물 셋...세른. 서른 하나, 서른 둘, 서른 셋... 빙그르르. 반지가 돌아갔다. 그것도 정확히 360도 회전.


“와!”

“뭐, 뭐야!”

“우앗, 신기하다. 어떻게 한 거야? 백장미 니가 그런 거야?”


혜인의 표정이 아주 신기한 것을 본 것 마냥 들떴다.

혜인의 신기한 표정과 백장미의 절규어린 표정이 교차됐다. 그 교차된 화면 너머 작은 아이의 얼굴 하나가 보였다. 승오였다. 승오가 멀찌감치 두 소녀를 훔쳐보고 있었다.

뭔가 낌새를 알아차린 이혜인이 고개를 획, 돌렸다. 놀란 승오. 승오가 그대로 달아 나려는데 이혜인이 불렀다.


“야! 천승오!”


이혜인이 승오에게로 저벅저벅 걸어갔다. 마치 황야의 무법자처럼. 운동장의 황무지를 가르는 혜인의 발자국 소리에는 비장한 기운마저 느껴졌다.


승오는 그런 혜인의 모습을 보며 입을 벌렸다. 황혼이 질 무렵. 역광이 진 혜인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 실루엣이. 몸의 비율이며 자태가 미래의 자신의 아름다운 연인 이혜인임을 증명했다. 투박한 걸음걸이마저도 아주 우아하게 느껴졌다.


물론, 이건 콩깍지다. 혜인은 더러운 운동화를 질질 끌며 그저 터벅터벅 승오에게 걸어오고 있었다. 시간의 법칙을 거스르고 죽은 연인이 살아 돌아왔다. 그리고 승오의 앞에 섰다.


“천승오, 너...”

“응...”

“너 장미 좋아해?”


장미? 갑자기 장미라니. 혹 이 아이가 장미를 주려는 것일까. 저기를 보니 꽃 비스 무리한 무언가가 보인다. 꽃잎이 죄다 흐트러져 있지만 꽃은 꽃이었다. 분명 꽃이었다.


“조, 좋아해.”


시뻘겋게 얼굴이 달아오른 채로 천승오가 말했다.

갑자기 혜인의 얼굴이 구겨진다. 그리고 승오를 아주 힘차게, 아주 세게 밀어버린다.


“꽈당!”

“이, 나쁜놈!”


이혜인은 짧은 머리칼을 휙, 휘날리더니 그대로 달아나 버렸다.


“승오야!”


백장미가 헐레벌떡 승오에게 달려갔다.



***



#존재의 증명


- 마을에 사람들이 하나 둘 사라졌다. 주로 마을 흉악한 악당들이 사라졌는데 가끔 질병을 앓고 있는 노인이나 장애를 앓는 아이들도 사라졌다.


마을 사람들은 사람들의 실종을 굶주린 늑대나 짐승이 물어갔다고 의심했지만 건장한 악당들마저 사라지는 걸 보고 뭔가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경찰에 실종 신고를 했지만 역병이 도는 시절에 수사가 제대로 이루어질 리 없었다.


아무튼 우리는 안심이었다. 아무도 우리를 의심하지 않았다.


“양동이를 하나 더 가져와! 이 썩어문드러진 것들아. 부지런히 소죽을 쑤어서 소새끼들 먹여야 할 것 아니여. 봄이 오면 저 소새끼들이 밭일을 해 줄 것이다. 그 때를 대비해 부지런히 살을 찌워야지.”

“할머니. 봄은 오지 않아요. 벌써 1년 내내 겨울이잖아요.”

“썪을 놈들아.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1년 내내 겨울이라니. 조선이 망했냐?”

“예전에 망했는데요. 하늘을 보세요, 할머니. 온통 시커먼 구름뿐이에요. 하늘이 인간에게 주는 건 오직 눈과 비 밖에 없는 걸요? 차라리 저 소를 잡아먹는 게 훨씬 낫겠어요.”

“미친 소리 하지마라. 쳐 맞고 싶은 거냐! 어서 일들 해! 꾸물거리지 말고.”


할머니는 자신의 삶의 방식을 절대 바꾸지 않았다. 부지런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고 욕심이 하늘을 찔렀다. 그 욕심의 결과물들이 무엇인지 우리는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할머니는 가끔 깊은 밤에 일어나 옷장을 열고 무언 갈 확인했다.

우리 형제는 할머니가 나무뿌리를 깨러갈 때 몰래 할머니의 방을 뒤졌다.


옷장을 뒤졌더니 비밀이 드러났다. 문이 있었다. 열어보니 제법 큰 공간이 드러났고 우리는 그곳으로 들어갔다.


‘우아...’


거기엔 각종 선진 문명의 음식들과 금은보화가 가득했다.

미제 마크가 그려진 통조림과 햄, 딱딱한 치즈, 열대과일이 담긴 병. 가루우유. 쵸콜렛과 과자. 육포와 술 같은 것들이 잔뜩 있었다. 이딴 게 왜 여기에 가득한지 모를 일이다. 게다가 궤짝 한가득 들어차있는 금붙이는 대체 어디서 난걸까.


우리 형제는 글을 스스로 깨쳤다. 그리고 세상을 글로 깨쳤다. 닥치는 대로 읽었고 그것이 우리가 강해지는 또 다른 방법이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세상일에 밝은 편이다. 굴러다니는 선전물. 버려진 책들. 똥 닦는 종이로 쓰던 도색 잡지 조차 우리에겐 공부거리였다.


할머니가 가진 것들이 얼마나 진귀한 것인지 전부 다 알았다. 특히나 저 금. 저 정도 금이면 마을 사람 전부를 부자로 만들만큼 엄청난 양이었다.


“우아...진짜 엄청나다.”


동생과 난 허겁지겁 쵸콜렛을 먹었다.


“이것 봐. 여기 해열제 같은 것도 있어. 비타민 같은 것도 있는데? 약이 엄청 많아.”

“정말 너무해. 내가 아파서 누워 있을 때 할머니는 아무것도 해주지 않았어. 일 안하고 누워있다고 불평만 했었지. 버젓이 약이 있는데...죽을 만큼 아팠는데 아까워서 안 준거야? 정말 지독한 할망구다.”


나는 이를 빠득 물로 그 약들을 챙겼다.


“이거, 아기에게 갖다 주자.”

“오오. 나도 그 생각 했어. 아기에게 주자. 아픈 아기를 살려주자.”



아픈 아기를 데리고 동냥을 하러 온 젊은 여자가 있었다. 할머니는 욕을 하며 여자를 쫓아냈고 애가 죽던 말던 내 알빠냐며 상소리를 해댔다.

할머니는 알면 알수록 이해가 되지 않은 사람이다. 혹, 할머니는 저주 받기 위해 태어 난 인간일까? 일말의 동정심도 없는 악마다.

우리는 그 모습에 대단한 충격을 받았었다. 할머니가 다시 보였다.


가루우유와 약을 챙기고 약간의 식량을 챙겨 우리는 아기가 있는 곳으로 갔다. 할머니를 대신해 우리가 아기를 구할 생각이다.


나의 일에는 원칙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살고 싶은 자에겐 도움을. 죽고 싶은 자에게도 도움만을 줄 뿐.


이런 희생은 진정 강한 자들만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세상 모든 걸 다 안다. 어른들 보다 더 잘 안다. 이 세상의 이치를. 우주 삼라만상이 돌아가는 이치를. 저 작은 생명을 살리지 못한다면 인간은 스스로를 멸망의 구렁텅이에 빠지게 할 것이다.우리는 안다. 순수한 생명을 구하는 일이 얼마나 값진 일인지.-



최율은 천승오가 쓴 소설의 파트 중에 이 부분을 가장 좋아했다. 이 지독한 악동들은 병든 아기를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이것이 이 소설의 하이라이트라 생각했다.


과연 나는 이런 소설을 쓸 수 있을까? 죽었다 태어나도 쓸 수 없을 것이다.

피가 철철 흘러내리는 똑같은 잔혹한 소설을 쓰는데도 승오의 소설은 지신의 소설과 결이 달랐다. 미묘하게 느껴지는 온기, 포근함, 따듯함, 힐링. 온갖 자극적인 것들로 가득한 소설이지만 이 소설의 밑바탕에는 사람의 온기가 있었다.


마치 우리 같은 살인자에게도 따뜻한 피가 흐른다고 악동들이 스스로를 대변하는 것 같다.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하고 많은 질문을 던져주는 이야기였다.


‘하...어쩐다. 그 제안을 받아 들여야 하나.’


그는 한참을 고민 하다 하얀 서류 봉투를 열었다.


[문학 마을 신인상 공모 양식]


최율은 천천히 프린트 물을 넘기며 공란을 기입을 했다. 그리고 마지막 장에 응시자 최율이라는 이름을 썼다. 그의 두 번째 공모전 도전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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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17화. 존재의 증명(6) +1 24.03.18 696 26 13쪽
16 16화. 존재의 증명(5) +4 24.03.17 804 34 11쪽
15 15화. 존재의 증명(4) +1 24.03.16 850 35 13쪽
14 14화. 존재의 증명(3) +1 24.03.15 936 44 12쪽
13 13화. 존재의 증명(2) +1 24.03.14 1,016 42 11쪽
12 12화. 존재의 증명(1) 24.03.13 1,086 38 14쪽
11 11화. 청운 건설 배 회장(4) +3 24.03.12 1,132 41 12쪽
10 10화. 청운 건설 배 회장(3) 24.03.11 1,130 40 14쪽
9 9화. 청운 건설 배 회장(2) +2 24.03.10 1,149 43 12쪽
8 8. 청운 건설 배 회장(1) +1 24.03.09 1,225 42 13쪽
7 7화. 꽃보다 변호사님(3) 24.03.08 1,310 43 14쪽
6 6.꽃보다 변호사님(2) +3 24.03.07 1,303 44 14쪽
5 5. 꽃보다 변호사님(1) 24.03.06 1,321 34 12쪽
4 4화. 악역의 조건(4) +2 24.03.05 1,313 35 11쪽
3 3.악역의 조건(3) +3 24.03.04 1,348 32 14쪽
2 2. 악역의 조건(2) 24.03.04 1,444 32 12쪽
1 1.악역의 조건(1) +2 24.03.04 1,755 37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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