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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현 님의 서재입니다.

아카데미에 드래곤이 산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이이현
작품등록일 :
2022.05.14 19:46
최근연재일 :
2022.06.13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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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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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글자수 :
14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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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20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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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8화 길랑이를 줍다

DUMMY

“큼··· 커헝··· 이건.. 참으로··· 언제 봐도 놀랍습니다.”


천향산에서 아기 백호를 주워 온지 두 달이 흘렀다. 처음 세웠던 계획에서 다소 틀어진 결말이었다.


당시에는 나를 보좌하고 싶다는 백호의 말을 한사코 거절했다. 더해서 나는 대호라는 인류의 위협을 제거한다는 목적도 갖고 있었다.


그렇긴 했는데···


-“미안하지만 난 너를 죽여야 해.”

-“이유를 말씀해주십시오!”

-“인간에게 위협이 될 정도로 네가 인간을 미워하기 때문이야.”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토록 바라던 주군을 다시 만나게 되었으니 죽이고 싶을 정도로 인간이 밉지는 않습니다. 조금··· 밉기는 합니다만.”


백호가 말하는 걸 보니 그렇게 위험해 보이진 않았다. 거기다 동굴보다는 차라리 내 옆에 두는 것이 마인에게 홀릴 가능성이 덜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리고 준1급의 포텐셜에 달하는 영물을 아군으로 삼는다면, 그것보다 든든한 것도 없었다. 애완동물처럼 작은 백호지만 이래 보여도 경험이 많으니 여러모로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다.


“에휴..”


백호에게 진화한 인간의 문명을 보여주기 전까지는 말이다.


“크흠 크흠···! 낭자들의 옷차림이.. 이게··· 몹시도 파렴치하군요.”


2차선 도로의 육교 위에서 사람들을 구경하며 내뱉는 말이 이 모양이다. 뭔가 부끄러워하며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는 모습이 신선하기는 했다.


“호산아, 내가 다른 사람한테 너 말하는 거 들키면 안 된다고 했지?”

“헙! 송구스럽습니다, 주군!”


호산. 내가 이 녀석에게 지어준 이름이었다. 이름이 없다 해서, 산에서 사는 호랑이니 대충 섞어서 지어줬더니 감사하다며 눈물 콧물을 다 흘리면서 머리를 박아댔던 적도 있었지.


아무튼, 이렇게 러닝 도중에 육교 위에서 쉬면서 호산이를 현대 문명에 적응시키는 것이 요즘 일과 중 하나였다.


집에 호산이를 놓고 나가려니 주군이 어떤 훈련을 하는지 궁금하다며 떼를 써서 어쩔 수 없이 데리고 다니고 있다.


아무래도 호산이는 오랜 시간 동안 천향산에서 박혀 있다 보니 호산이가 기억하는 문명과 현대 문명의 차이가 컸다.


호산이 나름대로 적응하려 노력을 하고 있지만 뭇 여성들의 옷 차림에는 영 얼굴을 붉힌다. 한창 겨울이라 노출도가 거의 없는데도 말이다. 치마와 부츠 사이에 드러난 허벅지가 그렇게 남사스럽다고 한다.


그렇게 이리저리 눈알을 굴려대는 호산이의 목덜미를 집어 들고 육교 아래로 향했다. 구석에 던져둔 타이어 두 개를 머리 위에 올리고 집으로 향했다.


“오.. 오오오! 주군, 달콤한.. 달콤한 냄새가! 저기서! 낭자들이 넙적한 빵 사이에 하얀 크림과 사과를 짓누른 것을 넣어서 먹고 있습니다!”


천 년을 넘게 산 호랑이, 호산.


그에게는 그 흔한 와플도 너무나도 신기한 먹거리였다.






****






“오늘도 새로운 것을 배웠습니다, 주군.”

“뭐를?”

“교복을 입은 낭자들에게선 떡볶이 냄새가 많이 납니다. 달콤하고 매콤한 그 냄새 말입니다.”

“잘 배웠군.”


세상 진지한 표정으로 말하는 호산이. 적당히 대답해 준다. 여기서 지나치게 칭찬하면 성은이 망극하다며 엉엉 울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주군이라고 하니 궁금한 게 있는데, 네 주군은 어떤 드래곤이었어?”

“이야~ 주군은 그야말로 저희들의 우상과도 같았습니다. 아, 주군이 처음부터 우상이었던 건 아닙니다. 옛날에는 굉장히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으셨는데 말이죠, 이게 또 들으면 무척 흥미롭습니다. 이 이야기는 태초에서 시작되―”

“··· 그만.”

“예? 아직 주군의 일대기는 시작도 안 했습니다.”

“그 시작을 하지 말라고.”


이쯤에서 말려야 한다. 이놈의 호랑이는 드래곤에 관련된 이야기만 나오면 멈출 줄 모르고 쓸데 없는 이야기를 줄줄 늘어 놓았다. 호산이는 전형적인 투머치토커였다.


“그거 말고 그··· 그래. 성격 같은 거 있잖아. 아니면 무슨 능력을 썼다던가.”

“아 그거 말씀이시군요. 주군은 평화의 상징과도 같았습니다. 드래곤 두 분이 싸우고 있으면 어디선가 날아와 두 분을 반으로 쪼개버리곤 하셨죠 하하하. 그 누구도 주군의 눈을 마주치지 못했습니다.”


잘나가는 양아치라는 소리군.


“심성은 어찌나 호탕하신지, 여성 드래곤을 열 분이나 품으셨습니다.”


음음. 여자까지 밝히는 나쁜 놈이라는 소리구나.


“거기다 생각하시는 것도 굉장히 유연하셨습니다. 언제는 드래곤 무리에서 정해놓은 규칙을 깨고 드래곤은 자유로워야 한다는 명언을 던지신 적도 있었습니다. 그때는 얼마나 눈물이 나오던지···”


법도 어겼어? 아주 대단하시네. 판결 났다. 내가 빌리고 있던 힘의 주인은 쓰레기 드래곤이다.


“그렇구나. 그래, 이름은 뭐디?”

“크으~ 한 손으로 대지를 도륙내고, 날개 짓 한 번으로 기후를 바꾼 주군의 존함 말씀이십니까?”

“그래 그래.”


어쨌든 나는 힘을 빌리는 입장이니 빌려준 드래곤의 이름 정도는 기억해둬야 할 것 같았다.


“그건··· 어라?”

“···?”

“그게.. 주군··· 존함이···”

“뭐냐고.”

“어 기억이··· 어라? 이상한데? 이럴리가.. 제가 주군의 성함을 잊을 리가 없습니다.. 없는데···”


호산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보기에는 굉장히 당황스러워 보였다.


“너도 너무 오래 살아서 치매라도 걸린 거 아니야?”

“그럴리가.. 없습니다.. 그러고 보니 저번에 주군을 다시 뵙기 전 까지 주군의 존재 자체를 잊고 있었습니다··· 다른 몇몇 드래곤 분들은 성함부터 점의 위치까지 기억나는데.”

“즉?”

“··· 제 기억에서 주군만 지우개로 지워졌던 느낌입니다.”


머리를 붙잡고 신음을 내는 호산. 확실히 이상하기는 했다. 호산이가 그렇게 좋아하는 주군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한다는 건 앞뒤에 맞지 않는 이야기다.


그렇다는 건 누군가가 호산이의 기억을 조작했다는 뜻이다.


“기억에서 주군의 부분만 지우는, 그런 기묘한 재주가 가능한 자는··· 그 밖에 없습니다.”

“그게 누군데?”

“그게.. 윽! 머리가! 허억···”

“야야 됐어. 아프면 괜히 기억하려 하지 마라.”


끙끙대는 호산이의 목덜미를 잡아 침대 위에 올려 놨다. 아무래도 이야기가 조금 복잡해질 것 같다.


기억을 삭제하는 마법이 있다는 건 들어본 적도 없었다. 그런데 기억을 조작하는 마법? 그건 더 어려운 마법일 것이 분명했다.


쓰레기 드래곤과 호산이를 알고 있을 정도로 오래 전에 살았던 존재이면서, 영물의 기억을 부분적으로 조작할 수 있을 정도의 기예가 가능한 존재?


많지 않을 것이다. 헌데 장차 나에게 위협이 될 존재인가? 라고 묻는다면, 그렇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호산이와 쓰레기 드래곤을 알고 있을 정도면, 그 당시에 살고 있던 놈이라는 뜻이다. 그러면 지금은 수명이 다해 죽었을 것이다. 애초에 호산이나 드래곤처럼 장수하는 놈들이 희귀한 것이다.


아무리 영물이라고 천 년 이상의 수명을 누리는 것이 당연한 일은 아니다. 호산이가 특이한 거지.


다만, 몇 가지 변수가 있기는 하다.


호산이와 쓰레기 드래곤에게 악의를 품었던 드래곤이 호산이의 기억을 지우고 지금까지 살아있거나 혹은···


-“알기 쉽게 표현 하자면··· 신이 만든 조금 특별한 피조물이야. 저 놈들은 아무리 나라도··· 당해낼 재간이 없어. 저건 그런 생물이야. 요 며칠 사이에 세계 곳곳에서 일어난 일들도 마찬가지지. 그건 그냥.. 그렇게 된거야.”


전 회차에서 황금빛 드래곤이 언급한 ‘신’의 존재. 신이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뭐가 되었든, 머리 한 구석에 염두하고는 있어야겠군.”






****






김세환 대표 : [진혁아, 네가 예상했던 대로 일이 잘 풀리고 있다. 루드벤, 오딘, 스타폴 아카데미의 교수들과 라인 만들었고 슬슬 입 소문이 퍼져서 해외 변방 기업들한테서 문의가 들어오고 있다.]

[좋습니다. 어느 정도 초석은 마련 되었네요. 마공석 연구는 어떻게 되고 있죠?]

김세환 대표 : [이르면 내년 2분기 정도에 공정이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아. 확실히 마공석을 물량으로 밀어 붙여서 연구하니까 속도가 붙네. 다 네 덕이다.]

[저는 그냥 마공석이라는 아이템을 만들어서 드린 것뿐이에요 ㅋㅋ 그걸 활용하신 건 아저씨잖아요. 암튼 팔만한 거 몇 개 생각 났는데 다음주에 한번 들를게요.]


김세환 대표랑은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편해져서 말을 놓기로 했다. 어렸을 때 몇 번 봤던 사람이라 나름 내적 친밀감도 있었기에 불편함이 없었다.


세환 아저씨는 간단하게 말하면 뛰어난 경영자였다. 회사의 이익과 사원들의 근무 환경을 저울질 하며 균형을 유지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덕분에 내가 마반 엔지니어링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알아서 잘 해나가고 있다. 역시 마반 엔지니어링을 버리지 않는다는 내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흐흐흐.”


스마트워치에 찍힌 통장 잔액을 보니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자그마치 5억! 이제 생활비는 물론이고 루드벤 아카데미의 입학금도 문제 없다.


마공석 특수 연구비다 뭐다 이런 저런 것들을 합친 수당으로 받은 금액이었다. 지금의 나는 마반 엔지니어링의 공동대표가 아닌, ‘특수기술연구원’ 라는 직책이었다.


몇 달 전, 내가 부담감 때문에 대표이사 직을 내려 놓고 싶다고 하자 세환 아저씨가 나를 위해 자리를 하나 만들어 주었다.


특수기술연구원. 출근 자유, 회식 참여 자유, 연구실적 압박 없음. 3박자가 고루 걸친 신의 직장!


이제 당당한 월급 루팡이 되었다는 뜻이다. 이 직책이 만들어 진 데는 이상훈 과장님의 역할이 컸다고 한다. 다른 사원들과 세환 아저씨를 열렬히 설득했다고 하는데 고마울 따름이다.


계속해서 룬 마법을 사용하면서 단련했더니, 마나 쪽에도 진척이 있었다. 마나의 양도 조금 늘어난 데다가 한 번에 두 개의 룬 마법을 새길 수 있게 된 것이다.


신체 개조 계획도 아주 실크로드가 따로 없다. 신체능력 자체는 이번에 입학할 루드벤 아카데미 1학년 중, 상위권에 위치하지 않을까 싶다.


“타이어도 슬슬 세 개로 늘려야지. 슬슬 가볼까?”

“주군, 어제 TV에서 중요한 시험날 아침에는 미역국을 먹어야 한다고 합니다! 어서 드시지요!”

“호산아··· 반대야.”

“소.. 송구하옵니다. 네 이놈 TV··· 또 다시 본좌를 속이다니···!”


TV를 노려보며 그르렁거리는 호산이. 시험날 미역국을 먹으면 재수가 없다는 건 미신이기는 하지만 굳이 찾아서 먹고 싶지는 않았다.


“헛! 주군, 생각해보니 미역국이 아니라 엿이었습니다. 엿 드십시오!”


··· 요즘 된장 값이 얼마나 하더라.






****






오늘은 꽤나 중요한 시험날이다. 무려 루드벤 아카데미의 입학시험이 있다. 루드벤 아카데미는 세계에 단 3개뿐인 영웅 육성 아카데미 중 하나이며, 세계 최고의 시설과 교수진을 자랑한다.


많은 영웅 지망생들이 최고의 시설과 교수진을 누리기 위해 ‘루드벤’이라는 이름 밑에 모인다. 당연히 그 중에는 잠재력이 높은 유망주들도 있는 법이다.


그런 유망주들이 전 세계에서 지원을 하기에 선발 과정의 난이도가 다른 아카데미보다 높은 편이다.


입학시험은 인원을 나누어 9일에 걸쳐 진행이 되며, 나는 4일째인 오늘이 시험 날이었다. 시험 과정은 총 필기시험 2과목, 실기시험 3개, 이능 검사로 이루어진다.


“필기는 문제 없겠지만.. 그래도 방심할 수는 없지.”


시험 과정에 필기시험이 있기는 하지만, 전투부답게 실기시험의 비중이 조금 더 컸다.


실기시험의 종류가 내가 알던 것과 같다면, 아마 필기시험에서 100점을 따낸다고 한들 내 합격 여부는 위태위태할 것이다.






****






인천공항에서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1시간을 걸려 도착한 곳은 루드벤 아카데미가 위치한 동해 바다의 섬이다.


수십 년 전, 비익의 탑이 쓰러지고 그 탑에 대한 보상 중 하나로 울산의 오른쪽에 섬이 하나 떠올랐다.


그렇게 바다에서 떠오른 섬에는 과학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아티팩트가 몇 개 있었는데, 그것들을 토대로 루드벤 아카데미를 지었다고 한다.


다양한 건물들이 잔뜩 지어진, 울릉도보다 조금 큰 이 섬은 그렇게 아카데미 섬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썩 오랜만이군.”


루드벤 아카데미의 입학시험을 치루는 건 처음이 아니다. 저번 회차에서는 무려 수석으로 입학했던 전적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때는 전투부가 아니라 일반학부였지만.


“그럼.. 필기시험을 찢으러 가볼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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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24화 마령 22.06.13 28 1 12쪽
23 23화 저주 22.06.12 35 1 12쪽
22 22화 전투 실습 (3) 22.06.12 33 1 13쪽
21 21화 전투 실습 (2) 22.06.11 38 1 13쪽
20 20화 전투 실습 (1) +1 22.06.11 38 1 14쪽
19 19화 껄끄러운 사람 22.06.10 43 1 13쪽
18 18화 의심을 샀을 때 해결하는 방법 22.06.09 44 1 13쪽
17 17화 사건의 전조 22.06.06 48 1 13쪽
16 16화 심봤다 22.06.05 52 1 13쪽
15 15화 스토커가 붙어서 22.06.04 50 1 13쪽
14 14화 재회의 맛 22.06.02 53 1 15쪽
13 13화 심층세계 +2 22.05.31 58 3 13쪽
12 12화 하지윤 +1 22.05.28 58 1 12쪽
11 11화 합격 +1 22.05.27 60 1 13쪽
10 10화 불합격과 합격 그 어딘가 +1 22.05.24 62 2 13쪽
9 9화 못 먹어도 고 +1 22.05.23 65 3 14쪽
» 8화 길랑이를 줍다 +1 22.05.20 70 3 13쪽
7 7화 천향산의 호랑이 (3) +2 22.05.20 73 2 12쪽
6 6화 천향산의 호랑이 (2) +1 22.05.19 86 2 12쪽
5 5화 천향산의 호랑이 (1) +1 22.05.18 102 3 14쪽
4 4화 형세역전 +1 22.05.17 114 5 13쪽
3 3화 벌 준비를 하다 +2 22.05.16 139 7 13쪽
2 2화 금제와 맹약 +1 22.05.15 166 10 14쪽
1 1화 회귀하다 +2 22.05.14 251 1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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