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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현 님의 서재입니다.

아카데미에 드래곤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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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현
작품등록일 :
2022.05.14 19:46
최근연재일 :
2022.06.13 20:44
연재수 :
2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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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글자수 :
141,030

작성
22.05.19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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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6화 천향산의 호랑이 (2)

DUMMY

팍!


“··· 이걸로 다섯 마리째.”


4급 마물 랜들 웜의 몸체에 박아 넣은 단검을 회수하고, 이마의 땀을 훔쳤다. 처음 조우했던 글레어울프 이후로 4마리의 4급 마물과 만나, 그들을 사냥했다.


처음에는 싸움의 템포와 4급 마물 특유의 방어력에 당황하기도 했지만, 계속 부딪히다 보니 어느 정도 적응이 끝났다. 역시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 틀림없다.


“끙차..”


마물의 소재를 갈무리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갈무리하는 법은 전 회차의 아카데미 공통과목에서 배워서 막힘 없이 해치웠다. 망설임 없이 단검을 이리저리 찔러 넣고 가죽을 찢었다.


“이건 이제 못써먹겠구나.”


거칠게 다뤘던 단검의 검면을 훑어봤다. 피를 머금어 날이 상해 있었다. 이 단검이 공산품인 것을 감안하면, 이 정도면 나쁘지 않았다.


원래 같았다면 버리겠지만, 지금은 이런 단검도 쓸 데가 있다. 나는 단검을 바닥에 내려놓고 손끝에 마나를 모았다. 푸르른 마나가 맺힌 손을 검면에 옮겼다.


정신을 집중하고, 룬 마법을 사용했다. 발현할 마법은 「폭발」. 단검을 감싸던 푸른 빛이 사라지자,이가 다 나간 망가진 검날에 룬 문자가 새겨진다.


“됐군.”


아직 할 일이 남았다. 나는 마나를 거둬들이지 않고, 가방에서 새 단검을 꺼내 들어 룬 문자를 새긴다.


이번에 사용하는 건 「예리(銳利)」. 단검의 날을 더욱 날카롭게 만드는 룬 마법이다. 아드리안의 씰을 사용한 게 아니라 지속시간은 하루 정도지만, 그걸로 충분하다.


대호는 지금쯤 자고 있을 것이 분명하겠지만, 혹시 모를 준비는 해둬서 나쁠 것이 없다. 가방에서 마공석을 입에 물고 바닥난 마나를 다시금 채웠다.


“지도를 보니 슬슬 보이겠구나. 가볼까.”


오늘의 목적지가 멀지 않았다. 이미 풀이나 나무는 찾아볼 수 없었고, 나아갈수록 바위가 가득했다. 여기는 산행의 베테랑인 약초꾼들 조차 찾아오지 않는 오지가 분명했다. 대호가 잠자는 동굴이 있다면, 이 주변일 것이다.


“여긴···”


삼십 분 정도를 바위계곡 안쪽으로 들어가자, 계곡 옆면에서 뚫린 큰 구멍을 찾았다. 단단하게 지반을 이뤄, 금방 무너질 것 같지는 않은 동굴이었다.


바위동굴은 한껏 습기를 머금고 있었다. 어두움에 익숙해진 눈으로 조금씩 전진하던 와중, 동굴의 구석에서 하얀 털 뭉치가 눈에 띄었다.


저게 뭔가 싶어 다가가자, 거뭇한 실루엣이 점점 선명해졌다. 이윽고 들어난 하얀 털뭉치의 정체는 나를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이게··· 뭐야?


라는 말이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튀어나올 정도로 말이다.


내 눈앞에 있는 작은 털뭉치는··· 한마디로 말해 잠자는 아기 백호였다. 순간, 뱅갈고양이인가 싶었지만 그건 아니었다. 뱅갈고양이 치고는 귀가 너무 둥글었기 때문이다.


정리를 좀 해보자.


일단 영상을 통해 봤던 대호의 줄무늬, 얼굴과 굉장히 흡사하다. 그 대호를 조그맣게 만들면 딱 이 아기 호랑이가 될 것 같았다. 아마 대호는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2105년에 나타난 대호는 기차 1칸만한 크기였는데, 이 아이가 6년 동안 아무리 벌크업을 해도 그 정도로 성장하는 건 불가능하다.


일단 떠오르는 건 대호가 아이를 낳았고 그 아이가 이 녀석이라는 가능성인데.. 대호를 죽이려 온 건 맞으나 이 아기 호랑이도 죽여야 하나? 이 아이에게 대호 정도의 위험성이 있을까?


그건··· 모르겠다.


하지만··· 만에 하나 이 아이가 6년 동안 폭풍 같은 성장을 이룬 것이 대호라고 한다면···


마른 침을 억지로 넘기고, 「예리(銳利)」 룬 마법이 걸린 단검의 자루를 잡았다.


세계를 구해야 하는 건 맞지만, 앞으로 죽어갈 모든 사람을 구해야 한다는 건방진 생각은 하진 않는다. 다만 내가 대호를 미리 죽이려고 하는 이유는, 대호가 갖고 있는 변수가 너무나도 크기 때문이다.


대호는 마인에게 홀린 상태로 영웅사무국과 은빛날개 길드를 혼자서 상대했다. 정신이 온전치 못한, 세뇌된 상황에서 말이다.


만약 홀리기 전의 대호가 인간을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워하고 있었다면?

만약 대호가 홀리지 않은, 현명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상태로 인간을 상대했다면?

만약 대호가 기연을 얻어 저번 회차의 그것보다 더 강해진다면?


죽는 건 백 명이 아닌 천 명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그 피해자의 명단에 나나 나를 도와줄 사람들이 없으리라는 보장도 할 수 없다.


그러니 대호가 잠을 자면서 마나를 빨아들이고 있는 지금. 지금 죽여야만 했다. 어쩌면 이게 내가 그 강력한 대호를 죽일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철컥


단검을 뽑아 역수로 쥔다.


“기어코 이곳을 찾아와 천 년의 잠에서 본좌(本座)를 깨워버렸구나, 어리석은 필멸자여.”


아기 호랑이가 눈을 뜨고 근엄한 목소리로 나에게 고했다. 자리에서 일어난 백호. 형언할 수 없는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그래.. 너희들은 예부터 그래왔지. 스스로 멸망을 자초하기에, 필멸자라는 이명(異名)이 붙은 것이고. 참으로 우스운 일이야.”


백호가 말을 이어나갈수록 대기중의 마나가 요동쳤다. 심상치 않은 마나가 흐르고 그 목적지는 눈 앞의 백호였다.


영상을 통해 간접적으로 느꼈던 대호의 기백. 그것과 비슷한 것이 이 아기 호랑이에게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자네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돌연, 그렇게 꿈틀거리던 대기중의 마나가 정지했다. 복잡하게 엉킨 푸른 선이 공중에 박제되었다. 턱 하고 백호가 발을 내딛자, 대기중에 굳게 뭉친 마나가 폭발한다.


-콰아아앙!


“크윽!”


폭발의 여파로 크게 날아갔다. 몇 바퀴를 구르자, 짙은 어둠으로부터 벗어났다. 동굴 밖으로 나온 것이다.


화창했던 태양은 모습을 감추고, 어느새 천향산에는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었다.


생각을 정리할 틈은 없었다. 뒤쪽으로 크게 뛰어오르자, 동굴이 무너져 내리며 언젠가 봤던 대호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기차 1칸의 거대한 하얀 몸체, 그것을 뒤덮는 줄무늬. 또렷한 눈빛만 제외한다면 그때 영상으로 봤던 대호가 분명했다.


“요즘은 호랑이가 말도 하나?”

“자네들의 언어로 표현하면, 영물이라고 부를 수 있지. 뭐, 오래 살다 보면 이것저것 알게 되는 법이라네.”

“그래··· 아무튼, 깨운 건 미안하다. 날.. 그냥 보내줄 수는 없나?”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는 모습은 나쁘지 않구나. 허나 본좌를 잠에서 일으킨 죄는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을 잊지 말게. 유언은 그게 끝인가, 필멸자?”


숨을 가다듬고 대호의 시선을 마주한다. 기묘한 압박감이 하얀 호랑이의 몸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 하나만 묻지.”


대호가 눈을 뜨기 전에 죽인다는 계획은 어찌되었든 실패로 돌아갔다. 리스크 없이 변수를 제거한다는 작전이 수포로 변한 것이다. 이제는 나도 리스크를 짊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 내 앞의 커다란 백호에게 물어야만 한다.


“인간을 미워하나?”

“옛날 이야기를 조금 해주겠네. 자네는 인간이 존재하기 이전의 세상에 대해 알고 있나?”


침묵이 이어진다. 백호는 잠시 아련한 눈빛으로 비가 내리는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이제는 점점 기억이 희미해져 가지만··· 존경하는 그분들과 함께 내게 있어서 아주 소중한 세상이었어. 하지만 자네들 필멸자가 출현 하면서 모든 것이 틀어졌네. 정말 모든 것이.”


고개를 내리고 나를 노려보는 백호.


“그 분들은··· 인간과 같은 세상을 공유하기엔 너무나도 강했어. 그렇기에 몇 번의 조정이 이루어 졌고··· 결국 그 분들은 이 세상에서 추방되었지.”


백호는 마지막에 이르러 어금니를 꽉 깨무는 듯한 시늉을 보였다.


“그런 내가 인간을 미워하는 선에서 그칠 것 같나?”

“···”

“증오하네. 죽여버리고 싶을 만큼.”


짓씹듯이 말하는 백호. 이로써 결론은 지어졌다. 백호는 인류에게 있어서 큰 변수가 확실했고, 마인에게 홀리든 그렇지 않든 언젠가는 인류에게 위협이 될 영물이었다.


리스크를 짊어지더라도 지금 이곳에서 끝을 봐야 한다.


“대호. 너는 인간에게 있어서 너무나도 위험한 동물이야. 그러니 이곳에서 내 손으로 네 목을 비틀어야겠다.”


“필멸자가 본좌의 앞에서 꽤나 건방진 말을 하게 되었구나, 크흐흐”


룬 마법을 걸어뒀던 단검을 반대 손으로 뽑아 든다. 두 자루의 단검을 교차로 들고, 순식간에 뛰쳐나가 대호의 앞까지 도달했다.


“흡!”


백호가 가소롭다는 듯이 앞발을 치켜들어 반격할 준비를 한다. 예상했던 대응이다. 대호의 품 안으로 들어가기 전, 왼손으로 단검을 던지고 대호의 우측으로 돌아간다. 동시에 몸의 중심을 낮추고, 대호의 시선이 닿지 않는 땅바닥에 룬 문자를 휘갈긴다.


“뭣이?”


이렇게 가까이 접근해서 단검을 던질 줄은 몰랐는지, 백호가 당황한다. 정면으로 쇄도하는 단검. 대호가 앞발로 얼굴을 가로막았다.


-팅!


흔한 공산품이라 대호의 피부에 박히지는 않았다. 허나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폭발」이 새겨진 단검에 충격이 가해지자, 룬 문자를 중심으로 균열이 일어난다.


-퍼어어엉!


백호의 앞발에 작열하는 단검 수류탄. 검날의 파편들이 대호의 몸과 앞발을 파고들었다.


“크으.. 네놈, 짜증나는 룬 마법을 쓰는구나··· 문자에 마나를 담아 작동시키는 원리인가..”


백호의 거구를 방패 삼아 피했기에, 나에게는 수류탄이 튀지 않았다. 나는 그 틈을 타, 가방에서 미리 만들어 뒀던 룬 마법이 새겨진 돌맹이 들을 바닥에 흩뿌렸다.


「폭발」, 「늪」, 「빛」, 「부식」 등의 마법이 새겨진, 이른바 룬 지뢰들이었다.


일종의 추격전이 시작되었다. 앞발과 이빨로 나를 찢으려는 백호. 나는 그것을 피하면서 룬 지뢰와 단검을 이용해 자잘한 상처를 남겼다.


백호는 단순하게 강력하고, 단단했다. 속도도 어느 정도 빠르기는 했으나 금제와 맹약으로 인해 상승한 동체시력으로 따라 잡을 수는 있었다.


거기다 아직 마나가 충분하지 못해서 그런지, 영상에서 봤던 정도로 빠르지는 않았다.


스피드는 거의 호각.


“에에잇! 귀찮구나, 이 돌맹이들! 어떤 돌에 어떤 마법이 걸려 있는지 모르니···”


백호는 다소 곤욕스러웠다. 지천에 널린 어떤 돌맹이는 갑자기 터졌고, 어떤 돌맹이는 늪을 만들었으며, 어떤 돌맹이는 장렬한 빛으로 시야를 가렸다.


약해진 지반에 발을 헛디디는 것은 일상이었고, 시야에서 나를 조금만 놓치면 곧바로 단검으로 응징했다.


허나, 아무래도 결정적인 일격이 부족했다. 조금씩 조금씩 대호의 몸에 상처가 나고 있지만, 아직은 부족했다. 단검의 고질적인 단점인, 약한 위력. 그것이 수면위로 올라와 점점 나를 압박했다.


“크읏!”


폭발이 일었다. 그 많던 룬 지뢰들도 이제 거의 사라졌다. 바닥을 한 바퀴 굴러, 땅에 떨어진 마공석을 부수고, 뭉친 마나를 입 안에 털어 넣는다.


“후우.. 이제 그 귀찮던 돌도 없군. 필멸자여, 칭찬해주마. 그리도 약한 주제에 잘도 이렇게까지 싸우는 구나. 그 비루한 마나로 본좌를 이렇게까지 곤란하게 만들다니 말이야..”


알고 있다.


지금의 내가 약한 것도, 대호가 강한 것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스크를 안고 대호를 찾아온 이유는 자신이 있기 때문이다.


놈을 이길 자신이.


금제와 맹약의 의식을 치른 후, 매일같이 연구하고, 고민하고, 분석했다. 그로 인해 내가 어떤 힘을 얻었는지, 어떻게 발현하는지, 얼마나 발현할 수 있는지를 파악하는데 성공했다.


“하아···.”


숨을 뱉어내고, 집중한다. 용언이 새겨진 상체에서 타오르는 듯한 아픔이 느껴진다.


돌연 두 개의 작은 뿔이 솟아 오르고 피부에 단단한 비늘이 생긴다. 동시에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이 비구름으로 어둑한 바위계곡을 밝게 비춘다.


금제, 「금제와 맹약을 타인에게 말하는 것을 금한다.」

금제, 「회귀의 사실을 타인에게 말하는 것을 금한다.」

금제, 「후회하는 것을 금한다.」


세가지 금제로 얻어낸, 내 몸에 깃든 이름 모를 뇌전룡의 힘을 발현한다.


5초.


주어진 시간은 짧다. 하지만 눈 앞의 대호를 바닥에 처박는 데는 충분한 시간이다.


작가의말

아카데미는 9~11화에 들어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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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24화 마령 22.06.13 28 1 12쪽
23 23화 저주 22.06.12 35 1 12쪽
22 22화 전투 실습 (3) 22.06.12 33 1 13쪽
21 21화 전투 실습 (2) 22.06.11 38 1 13쪽
20 20화 전투 실습 (1) +1 22.06.11 38 1 14쪽
19 19화 껄끄러운 사람 22.06.10 43 1 13쪽
18 18화 의심을 샀을 때 해결하는 방법 22.06.09 44 1 13쪽
17 17화 사건의 전조 22.06.06 48 1 13쪽
16 16화 심봤다 22.06.05 52 1 13쪽
15 15화 스토커가 붙어서 22.06.04 50 1 13쪽
14 14화 재회의 맛 22.06.02 53 1 15쪽
13 13화 심층세계 +2 22.05.31 58 3 13쪽
12 12화 하지윤 +1 22.05.28 58 1 12쪽
11 11화 합격 +1 22.05.27 60 1 13쪽
10 10화 불합격과 합격 그 어딘가 +1 22.05.24 62 2 13쪽
9 9화 못 먹어도 고 +1 22.05.23 65 3 14쪽
8 8화 길랑이를 줍다 +1 22.05.20 69 3 13쪽
7 7화 천향산의 호랑이 (3) +2 22.05.20 73 2 12쪽
» 6화 천향산의 호랑이 (2) +1 22.05.19 86 2 12쪽
5 5화 천향산의 호랑이 (1) +1 22.05.18 101 3 14쪽
4 4화 형세역전 +1 22.05.17 114 5 13쪽
3 3화 벌 준비를 하다 +2 22.05.16 139 7 13쪽
2 2화 금제와 맹약 +1 22.05.15 166 10 14쪽
1 1화 회귀하다 +2 22.05.14 251 1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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