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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사람을 물어요.

웹소설 > 자유연재 > 로맨스, 판타지

태어나버림
작품등록일 :
2021.11.03 19:09
최근연재일 :
2021.11.07 18:48
연재수 :
18 회
조회수 :
154
추천수 :
5
글자수 :
94,402

작성
21.11.04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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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7, 번뇌.

DUMMY

“3번 운하 다리를 건너지 말라니. 무슨 소리니?”


어두컴컴한 밤하늘 아래에서도 새하얀 피부 탓에 보이는 조그마한 얼굴···.

포피는 어린아이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드디어 들리는 사람의 인기척에 기꺼워 조금은 반가운 기색으로··· 혹은 놀라지 않을까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자 창문 틈에 두 손을 부여잡고 있는 어린아이가 살짝 움찔한 기색으로 다시금 눈치를 살피더니, 더듬더듬 포피의 말에 응수했다.


“말 그대로예요. 그··· 방금 전에 사람이 엄청나게 지나갔어요. 베니스 도시를 빠져나가려는 외국인들인데, 괴물한테도 많이 당해서··· 잘 모르지만 이상하게 변했어요. 사람들을 전부 쫓아가서 지금 거리가 텅 빈 거예요.”

“사람들을 전부 쫓아간다는 게 괴물을 말하는 거니?”

“네예···.”


어린아이가 말꼬리를 늘어뜨리면서도 성실히 대답해줬다. 옆에서 고분고분 듣고 있던 샤이먼도 한 마디를 건넸다.


“꼬맹아, 사람들을 쫓아갔다는 괴물 몇 십 분 전에 있었냐?”

“저 꼬맹이 아닌데요. 윌리엄인데요.”


꼬맹이란 호칭이 썩 마음에 안 들었는지, 아랫입술을 삐쭉 빼낸 윌리엄이 반박하듯 웅얼거렸다.

샤이먼은 윌리엄의 뿌루퉁한 얼굴을 바라보면서도, 은근히 나잇값 못하는 유치한 인간이기에 싱겁게 말했다.


“꼬맹이든지, 윌리엄이든지 그게 그거지. 아직 사탕도 못 뗀 어린아이잖아.”

“아니라니까요. 윌리엄이예요.”

“초코맛 사탕 좋아하냐?”

“좋아하기는 한데··· 아니, 윌리엄이라니까요―!”


조금 전까지 바깥 눈치를 살폈던 어린아이가 맞을까 싶을 정도로 큰소리로 외친 윌리엄이, 돌연 자신의 음성에 놀랐는지 두 입술을 다물었다.


포피는 족히 10살 차이는 훌쩍 넘을 것 같은 아이를 상대로 뭐 하는 짓이냐고, 샤이먼에게 지적하고 싶었지만 일단은 후원자의 아들인 자본주의의 압승이므로 하고 싶은 말을 삼켰다.


“미안해, 윌리엄.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닌데 지금 예민해져서 그래. 저녁도 제대로 못 먹고, 계속 걸어 다니기만 했거든. 그래서 말인데 자세히 알려주면 안 될까? 그 괴물들이 몇 시에 이 길을 지나쳤니?”


샤이먼은 원래 그런 인간이지만, 어린아이의 대답이 어느 정도 필요한 포피 입장에서 적당히 포장할 수밖에 없었다.


윌리엄을 달래는 듯한 그녀의 부드러운 일언이 통한 것일까···?

아이는 대답을 살짝 망설이는 듯싶었으나, 기꺼이 입술 사이로 소리 내어 중얼거렸다.


“15분 전이예요.”


15분 전···?

포피와 샤이먼은 윌리엄의 답변에 두 눈을 끔뻑거릴 수밖에 없었다.


정말 기가 막힐 정도로 아슬아슬한 시간차가 벌어진 상황인 터라 잠시 받아들이기까지 몇 분간의 공백이 필요했다.


이윽고 먼저 입을 여는 이는 샤이먼이었다.


“진짜 15분 전이라고?”

“네, 거짓말 아니예요. 15분 전에 바깥에서 꺅꺅-거리는 비명 소리를 들었어요.”

“직접 본 것 아니고···?”


어린아이를 상대로 잔혹한 장면을 끄집어낼 수 있는 트라우마를 건드는 질문이 아닐까 싶지만, 샤이먼은 유치한 사람답게 너무 진솔히 내뱉는다.


윌리엄은 설풋 미간을 찌푸리다가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네···. 잠깐 보다가 엄마가 ‘그런 것 보면 못써!’ 하면서 끄집어냈거든요. 그래서 끝까지 못 봤지만 초반에 드문드문 봤으니까 알아요. 사람들이 요상하게 변하는 것쯤은···. 그래서 절대 나가지 말라고, 엄마가 그랬어요.”


윌리엄의 표정은 어느덧 침울하게 변했다.

포피와 샤이먼은 상가 꼭대기에 얼굴을 들이민 월리엄에게서 시선을 떼고는 서로를 마주 보았다.


어린아이가 거짓말을 할 이유는 없고···, 저 말이 진심이라면 현재로서 기차를 교통수단으로 베니스 도시를 탈출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운하 3번 다리를 지나 코앞에 닿을 듯한 장소가 기차역인 것은 분명하니까···.


그럼 이제부터 어떻게 해야만 하는 것일까?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는 포피와 샤이먼이 잠깐의 상념에 빠지는 사이, 윌리엄의 어머니가 어린 아들이 창문 사이로 얼굴을 들이밀 것을 뒤늦게 확인하고는 다시 한 번 끄집어냈다.


그 광경을 목격한 포피가 도움을 청할 수 있지 않을까··· 일말의 희망에 입을 열 찰나 어머니와 시선이 마주쳤다.

자못 경계심이 가득한 눈초리로 두 사람을 내려다보는 가운데, 마치 못 본척할 요량인지 창문을 단단히 잠가버렸다.


필시 도움은커녕 빵부스러기조차 얻어먹기 쉽지 않을 듯한 단호한 태도.

절대 타인에게 기댈 수 없는 상황과 입지라는 것만 공공연히 알아버린 듯해, 포피는 쓰디썼다.

그에 비해 샤이먼은 허리춤에 장착한 신형 리볼버를 꺼내 실탄을 한 방 먹이고 싶은 표정인지라, 포피가 잽싸게 말문을 텄다.


“아이가 거짓을 말할 일은 없고 이대로 간다면, 운하 다리에서 자결 기도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뛰어드는 듯한데. 기차역, 꼭 가야 할까?”


포피의 표정은 쓰디쓴 실망감이 올라오지만, 또 다른 가면을 덧씌울 만큼 대단히 진중했다.

샤이먼은 두 눈썹을 끔뻑거리며 옅은 차양막을 드리우고 있었다. 그 역시도 대단히 신중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반대로 저 아이가 괴물한테 당해서 외국인들이, 이상하게 변한다고 한 것 같은데. 마차를 타고 거의 목적지에 다다랐던 운하 7번 다리에서 여기까지 오는데 총 4명의 괴물 새끼를 만났지. 그 말은 싫든, 좋든 광범위하게 퍼졌다는 소리야. 베니스 도시는 운하 다리가 1번에서 11번까지 존재하잖아.”


베니스 도시에 당도하기 이전, 기차 내부에서 여행 팸플릿을 통해 지도까지 살펴본 터라 포피도 모르지 않았다.


다행히 운이 좋게도 감염병치고는 많은 괴물 새끼와 마주치지 않았지만, 운하 7번 다리에서 보안관이 근무하는 서까지의 거리는 걸어왔었기에 적은 폭이 아니었다.

그 말인즉슨 이미 소규모의 돌림병이 아니란 사실을 증명하고도 남았다.


또한 어린아이가 진술한 목격담까지 덧붙이면 이미 3번 운하 다리까지 돌림병이 뻗쳤으니, 1번과 2번 다리도 얼마 남지 않을 것이다.

약간의 희망이라도 남아있다면 글쎄···? 걸어볼 법한데, 현재로서 없는 것 같았다.


포피가 잠시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한 채 마른침을 삼키는 사이, 샤이먼은 다음 뒷말을 이었다.


“이미 3번에서 7번 다리까지 이어지는 운하. 그리고 그 운하의 물줄기를 따른 모든 거리들은 감염병에 노출됐다고 해도 무방하지. 그럼 최소 희박한 가능성이라도 걸어볼 수 있는 운하 다리는 1번,2번,8번,9번,10번,11번이야. 기차역은 3번 다리와 코 닿을 듯한 거리지만 위치는 1번과 2번 운하 다리 사이에 있어. 해상 철도는 부둣가 끝에 설치되어 있으니까.”

“그래서 지금 건너자고?”


포피는 개미지옥을 향해 가는 듯한 3번 운하 다리에 시선을 두고는 여상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샤이먼은 아직까지 그녀의 왼손을 붙잡고 있었기에, 살짝 힘을 주며 응수했다.


“응, 꼬맹이의 말이 사실이면 더더욱 가야지. 지금 아니고서 기차역에 닿을 수 있는 기회는 절대 없다는 소리와 똑같애. 여기에서 뒤돌아서면 탈출은 불가능한 것 기정사실이고. 다시 이 지점까지 올 보장은 죽었다가 깨어나도 없잖아.”


결국 모 아니면 도라는 소리였다.

포피는 짐짓 비장한 그를 향해 미쳐서 불구덩이에 뛰어드냐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그러기에 지금 현 상황이 예측불허였다.

기차역으로 발길을 돌려 죽을 수 있는 목숨값이지만, 반대로 베니스 도시에 하루라도 버틸 수 있을는지 장담 못 하는데 무모하다고 내빼기에 어중간했다.


말 그대로 수상 도시인 베니스는 상가 건물들이 층수가 낮은 편이고, 그에 비해 관광객 수는 해마다 급증해 면적과 비례해 본다면 언제나 인구 포화상태였다.


또한 지형물이라고 해봤자 단층 주택과 노점상들이 제일 많고, 뻥 뚫린 대로변보다 구석진 골목길이 많다는 게 이 도시의 지리적 특성이었다. 한마디로 구석구석 잠적할 곳이 많겠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괴물 놈들이 어디에서 튀어나올지 더욱더 미지수인 게 바로 이 베니스 도시···.


'기차가 운행되는지 알 수 없지만, 여기에서 하루를 보낼 거처도 알아내지 못하면 죽는 것도 순식간일 수 있어. 그럼 괴물이 득실득실한 기차역에 불확실한 탈출권 한 번으로 목숨까지 걸어야 하나? 아, 모르겠어.'


의사 수습 기간을 거치고 있는 포피의 머리에, 인생에서 세 번째 번뇌가 찾아왔다.

첫 번째는 부모님에게 의학을 배우겠다면 첫 마디를 내뱉었던 일···.

두 번째는 바로 눈앞에 있는 샤이먼과 얼토당토않게 연인관계가 돼서, 아직도 거절하지 못 하는 일.

세 번째는 지금 바로 이 순간이었다.


포피의 번뇌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바깥에서 무방비하게 노출되는 시간도 퍽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호락호락하게 죽고 싶지 않다면야 마냥 기다려줄 수 없는 노릇이었다.


해서 샤이먼은 그녀의 대답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기 전에, 의지에 반하는 짓이기는 하나 어쩔 수 없었다.

손자, 손녀까지 볼 정도로 만수무강하려면 3번 운하 다리에서 일단 벗어나야 할 것 같았으니까.


샤이먼이 맞잡은 그녀의 손을 끌어당길 찰나, 발목 위까지 차오른 해수면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정확히 말하자면 물이 넘실거리는 수로 밑에서 손 하나가 튀어나와 포피의 드레스 자락을 움켜쥔 것이다.


고심하는 그녀의 낯빛이 수상한 인기척을 발견하고는 새파랗게 질렸다. 재빠르게 뒤를 돌아봤을 때 수로에서 허우적거리는 괴물 놈이 그녀의 치맛자락을 붙잡고 올라오기 위해 버둥거렸다.

마치 눈앞에 있는 먹음직스러운 고깃덩어리를 놓칠 수 없다는 것 마냥 흰 동공을 번득거리면서.


포피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한 손에 든 양산으로 괴물 놈의 손등을 마구 두들기자, 샤이먼도 이에 동참하듯 해수면 위로 허우적거리는 괴물 새끼를 향해 진압봉을 들었다.


맞잡고 있는 왼손을 놓기 아쉽지만, 괴물 새끼를 제지하기 위해서는 양손을 사용하는 것이 당연한 방안이었다.

샤이먼은 수로 위로 손과 머리를 내민 괴물 새끼를 향해 진압봉을 몇 번이나 내리꽂았다.

퍽―, 퍽―!


괴물 새끼의 끈질긴 생명력을 익히 학습한바, 애꿎은 손만 때려봤자 그녀의 치맛단을 놓지 않을 것이라고 샤이먼은 예상했다.

그래서 진압봉으로 계속 가격한 부위는 머리···.


포피가 하이힐로 괴물의 머리를 뽀갰을 때 미동조차 하지 못한 채 쓰러졌으니, 추측한 급소 부위가 맞는다면···!


샤이먼이 다음 생각을 이어가기 전 빠각-거리는 소리와 함께 괴물 새끼의 두개골이 움푹 패였다.

그러자 끈질기게 포피의 치맛자락을 붙잡았던 괴물 새끼가 순식간에 행동을 중단했다.

마치 널브러진 시체마냥 해수면 위로 둥둥 뜨는 괴물의 몸뚱아리···.


괴물 놈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포피가 순간적으로 중심을 잡지 못해 비틀거릴 찰나, 샤이먼은 잽싸게 그녀의 팔꿈치를 잡아끌었다. 다행히 뒤로 발라당 넘어지는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단지 죽은 괴물 새끼의 몸뚱이가 운하를 따라 찬찬히 떠밀려갔다.

이로써 확실해졌다. 괴물 새끼의 급소는 머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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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6, 기차역(2). 21.11.04 10 0 11쪽
13 6, 기차역(1). 21.11.04 9 0 11쪽
12 5, 그딴 생명체(2). 21.11.04 6 0 12쪽
11 5, 그딴 생명체(1). 21.11.04 6 0 12쪽
10 4, 사람에게 달려 들어요(3). 21.11.04 9 0 11쪽
9 4, 사람에게 달려 들어요(2). 21.11.04 6 0 11쪽
8 4, 사람에게 달려 들어요(1). 21.11.04 9 0 12쪽
7 3, 전파(3). 21.11.03 8 0 12쪽
6 3, 전파(2). 21.11.03 8 0 11쪽
5 3, 전파(1). 21.11.03 8 1 12쪽
4 2, 시초(2). 21.11.03 7 1 12쪽
3 2, 시초(1). 21.11.03 8 1 11쪽
2 1, 물의 도시(2). 21.11.03 9 1 12쪽
1 1, 물의 도시(1). +1 21.11.03 18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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