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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사람을 물어요.

웹소설 > 자유연재 > 로맨스, 판타지

태어나버림
작품등록일 :
2021.11.03 19:09
최근연재일 :
2021.11.07 18:48
연재수 :
18 회
조회수 :
155
추천수 :
5
글자수 :
94,402

작성
21.11.04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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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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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4, 사람에게 달려 들어요(2).

DUM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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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자식들. 제국에서 돈 따박 따박 받는데, 뭐? 출동 시간이 한 시간 안팎으로 소요될 수 있다고? 그동안에 피하지도 못하면 X발, 부상을 당하든 말든 알 바 아니라는 소리잖아. 제기랄!'


무전기를 한 손에 들고 있던 운전수가 어떤 여성의 일방적인 통보를 들은 직후, 바로 끊겼다. 서에 불만 사항이 있으면 본청에 넣으라고 하다니. 내가 못 넣을 줄 알고?


운전수는 이를 바득바득 갈며, 신경질적으로 무전기를 꽂는 동안 아직도 창문을 향해 미친놈이 들이박고 있었다.

이제 부슬비가 아닌 장대비라 해도 무방할 만큼 하늘 위에서 빗줄기가 쏟아지는데, 창문을 들이박은 미친놈은 멈출 생각을 안 하니 운전수로서 소름이 돋았다.


"아까 그 사람이 인간 아니라고 하더만, 말 그대로 괴물 새끼잖아."


미친놈의 목덜미에서 피부가 벗겨진 찰과상이 창문 너머로 보이는지라, 운전수는 더 이상 상종하고 싶지 않았다.

아까 우산대를 미칠 듯이 휘두른 그 사람은 나름대로 방어 기제를 위한 행동이었다. 그 사람 말이 딱히 틀린 게 없었다.


운전수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저 미친놈에게 물렸던 팔뚝을 다시금 바라보았다. 역시 심각하지 않지만, 상태도 그닥 좋지 않았다.


쾅. 쾅. 쾅.


"아, 진짜! 그만해라."


운전석 창문을 쉴새 없이 몸통으로 부딪치는 미친놈 때문에, 차량 내부에 있음에도 차분히 기다릴 수 없는 운전수가 다짜고짜 소리를 질렀다.

그러거나 말거나 어떻게든 창문을 깨부수겠다는 일념만 가득한 듯한 미친놈은 쉬지 않았다.


결국 오랜 시간 동안 버틸 수 없는 쪽은 운전수였다.


'에이! 치사해서 안 남지. 이미 신고도 때렸고, 뒤처리 못하면 엄연한 책임은 그 보안관 자식들이지. 두고 봐라. 내가 오늘 접수 받은 그놈들 앞으로 신상 알아내서 불만 사항을 넣나, 안 넣나.'


저 미친놈을 형무소로 보내는 것은 물론이고, 또 다른 목표가 생긴 운전수가 기어 변속을 바꾸었다.

쾅, 쾅 부딪치는 소음도 신경질을 돋우지만 그보다 진심으로 창문을 깨뜨릴 수 있지 않을까···라는 의구심이 뭉게뭉게 피어났기 때문에 그러했다.


운전수는 엑셀을 밟아 후진하면서, 앞서 정차했던 차량을 한 번 눈여겨봤다. 저 미친놈에게 물렀을 때 도와주지 않고 냉큼 들어간 저 남성이 괘씸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그는 계속 경고를 보냈다. 무시한 것 일방적으로 운전수였고···.


'쳇, 그래도 사람이 당하면 도와주는 게 좀 인간답지 않냐.'


허나 머리와 가슴은 따로 논다고, 모르는 사람인데 불구하고 서운함은 감출 수 없었다.

그래봤자 운전수는 자리를 벗어날 테니 이제 알 바 아니지만.


'급하면 저 인간도 핸들을 돌리겠지.'


별로 걱정되지 않았다. 저 인간도 무사히 차량 내부로 피신했고, 나아갈 수 있는 운전대가 있을 테니까.

그리 생각을 마친 운전수가 후진으로 대로변을 막았던 자동차와 서서히 거리가 벌어지자, 창문에 몸통을 들이박던 미친놈이 쫓아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리 날쌘 인간이라도 자동차를 따라올 수 없는 법.

운전수가 핸들을 꺾여 방향을 튼 이후 빗길에서 전속력으로 엑셀을 밟자, 빠른 속도로 대로변을 질주했다.

비척비척 달리던 미친놈도 어느새 점이 되어 보이지 않았다.


무슨 한밤중에 공포 소설을 한 편 읽는 것도 아니고, 괜한 봉변을 당한 탓에 물린 팔뚝이 아릿했다.

당장 의료 기관으로 목적지를 정해 야간 치료를 받아야만 하는지 고민할 찰나, 치아 자국이 선명히 남아있는 팔뚝 위로 갑작스레 열기가 솟구쳤다.


운전수는 양손으로 핸들을 부여잡고 있었기에 자못 당황스러웠다. 한쪽 팔뚝에 감각이 없었다.

돌연 가파르게 올라가는 통증에, 운전수는 아랫입술을 사리물었다.

무언가 단단히 잘못됐다.


그걸 깨달은 직후, 앞 조명에 비친 시야 사이로 웬 마차 한 대가 지나치고 있었다. 미처 보지 못한 것이다.

운전수가 핸들의 방향을 급하게 돌렸다. 마부석에 앉아있는 이는 재빨리 상황 판단을 마쳤는지 말고삐를 잡아당기며 멈춰 세웠다.


운전수는 핸들을 꺾는 동시에 브레이크를 밟았으나 빗길에서 잘 들어먹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마차 앞에서 아슬아슬하게 멈춘 차량은 엔진 과열로 인해 시동이 급작스레 꺼졌다.


운전수는 좌측으로 쏠린 반동으로 인해 목덜미에 커다란 충격이 가해졌다. 죽을 위기까지 아니었으나 커다란 타박상임이 분명하기에, 운전수는 순간적이지만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목울대가 진심으로 아파서 그런 건지, 물린 팔뚝에서 아직도 사그라지지 않은 열기가 그의 폐부까지 깊숙이 들어찬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다만 차량의 창문과 후드를 때리는 빗소리만이 가득한 가운데, 희미한 목소리가 마차 근처에서 들려오고··· 지나치게 큰 것 같았다. 이상할 정도로.


"X발."


운전수가 나지막한 욕설을 입 밖으로 내뱉으며, 운전석 문을 열어젖히기 위해 손을 뻗었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은 듯, 물린 팔뚝에 푸른 혈관이 자못 괴기스럽다 싶을 정도로 창백하게 튀어나왔다.

그 신체적인 변화를 깨달은 동시에 운전수는 게거품을 물며 발작했다. 이윽고 운전수의 푸른 동공이 얇은 막을 뒤집어쓴 듯 순식간에 하얗게 변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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쾅-!


하늘 위에서 벼락이 내려치는 것은 아니었다.

운전석에 앉아있던 남성이 창문 너머로 자신을 바라보고는 연이어 이마를 부딪친 까닭에, 샤이먼은 당황스러울 뿐이었다.


베니스 도시가 운하 시설로 유명해서 마약 범죄도 자주 빈발되는 것은 모르지 않았다. 그러니 이 자식도 약은 했나···라는 눈빛으로 바라볼밖에.


그거보다···.


'이 새끼 이대로 두고 가면 사고 칠 것 같은데. 목적지도 가까워졌으니 모른 척하고 싶지만 그렇기에 사람이 많지.'


샤이먼은 속으로 중얼거리며, 마부석에 앉아있는 할아범과 기차 내부에 있을 포피 때문이라도 자신이 원하는 행동과 방향대로 할 수 없단 걸 알았다.

해서 운전석에서 연이어 이마를 박은 녀석을 상대하기 위해서라도 간단한 안전장치가 필수일 것 같았다.


샤이먼은 홀딱 젖은 붉은 머리칼을 뒤로 넘기고는 할아범을 향해 외쳤다.


"할아범, 지팡이 있어?"

"내가 그딴 게 왜 있어. 아직 정정해. 뛰어다닐 수도 있다고."


그러면서 한쪽 다리를 들어 올린 노년의 남성이 무릎을 접었다가 펴기를 반복했다.

샤이먼은 할아범의 다리 상태는 애초에 궁금하지 않았던 터라 설풋 인상을 찌푸렸다.


"그딴 것 별로 안 궁금하고 물어본 적 없거든? 말채찍이라도 들고 다닐 것 아니야?"

"그거야 당연히 있지. 근데 휘두르는 게 아니라 스틱이야. 최고급 탄성으로 구부려지는 데 불과 일주일 전에···."

"다 집어치우고 할아범, 일단 주기나 해봐."


샤이먼은 이 빗속에서도 조잘조잘 말이 많아질 것 같은 할아범을 단칼에 제지하고는, 터벅터벅 마부석으로 다가왔다.

노년의 남성은 미간을 좁히며 마부석 옆자리에 배치해 놓은 스틱을 집어 들었다.

두 마리의 숫말이 앞으로 전진해 가지 않고 계속 멈춰있자 슬슬 콧김을 뿜어냈다.


"어디에다가 사용하려고?"


노년의 남성이 스틱을 건네기 전, 두 눈매를 가늘게 치켜뜨며 물었다.

샤이먼은 가벼운 고갯짓으로 앞을 막아선 차량을 가리켰다.


"저 안에 미친 놈 있어. 약을 했는지 모르겠는데, 워낙 발악해대서 일단 문부터 열어야 하지 않을까?"


즉 슨 가만히 내려 번들 수 없으니 살펴보겠다는 소리였다. 노년 남성의 미간이 더욱더 좁혀졌지만, 확실히 어두컴컴한 거리에서 본인들 말고 현장에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지나치는 것 어불성설이었다.

최소한 운전자의 상태는 확인해봐야만 했다.


해서 노년의 남성은 마지못해 스틱을 샤이먼에게 건네면서도 한 마디를 덧붙었다.


"참고로 비싼 스틱이네."

"알겠어. 부서지면 이거 보상하면 될 것 아니야, 할아범."


샤이먼은 별로 알지도 못하는 할아범이지만 물질주의에 너무 성실한 그를 두고 응수를 해줘야 순순히 빌려줄 듯싶었다.

역시나 샤이먼의 예상대로 노년의 남성은 고개를 위아래로 흔들었다.


"알겠네. 팍팍 써도 좋네."


이 정도면 130km/h로 달리는 증기 기관차도 울고 갈 수준의 태도 변화였다.

샤이먼은 자신도 살짝 골 때리는 인간이란 걸 알지만, 이 할아범도 만만치 않단 걸 새삼 느끼며 스틱을 손에 쥐었다.


사실 허리춤에 차고 있는 신형 리볼버로 상대방을 제압하고도 남겠지만, 그거 어디까지나 사리 분별한 인간일 때 통용되는 말이었다. 거하게 약을 한 놈들은 판단력이 흐려져서 총구를 들이대도 무서운 줄 모르고 덤비니 답이 없는 경우도 상당했다.


마약이 흘러 들어가는 도시에 시체가 널브러지는 것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는 법이었다.


한 손에 스틱을 들고 샤이먼이 차량으로 다가서는 동안, 마차의 창문을 올린 포피가 어느새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인지 파악하기 위해서라도 바깥을 내다볼 필요성이 있었다.


포피는 마차 앞 조명에 비친 샤이먼의 뒷모습을 바라보고는, 짐짓 사고가 있었을 것 같은 정황을 포착했다.

마차 앞을 막아선 차량은 꼼짝하지 않았으니까.


'부상은 없는 건가?'


포피는 장시간 고개를 내밀었던 터라 머리칼과 얼굴이 축축이 젖었음에도 개의치 않았다. 그저 마차 내부에 홀연히 앉아있는 것보다 나가는 게 낫지 않을까··· 망설여졌을 뿐이었다.


차량에 가까이 다가선 샤이먼이 한 손으로 스틱을 몇 번 휘두르고는, 운전석 문고리를 잡고자 빈 한 손을 뻗치는 게 보였다.

포피는 그 순간 창문 너머로 내밀었던 고개를 빼고 나가고자 결심했다.

이미 한 번 의상실에서 드레스를 환복한 탓에, 비에 홀딱 젖으면 다시 갈아입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하지만 운전사가 부상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고 마차를 운영하는 노년의 남성도 괜찮은지···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그렇다면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포피는 빵집에서 사 와 옆에 놓아두었던 휘닝시에를 힐끔 쳐다보고, 마차 문을 열어 조심스럽게 내려왔다. 드레스는 밑단이 살짝 끌렸기 때문에 비 오는 날씨에 더욱더 조심해야 하지만, 이미 나오는 순간부터 별반 상관이 없었다. 조심하지 않기로 마음먹은 행동이니까.


포피가 순식간에 젖어 들어가는 밑단을 뒤로 한 채 마부석으로 다가왔을 때, 노년의 남성이 두 눈동자를 동그랗게 치켜뜨고 있었다.

이와 더불어 장대비에 묻힌 소음이 정확하게 두 귓가에 꽂혔다.


크르르르륵-!

울부짖음과 비슷한 소리가 여러 번 들렸다.

포피가 고개를 돌려 샤이먼 쪽으로 시선을 던지자, 놀랍게도 운전석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된 남성이 샤이먼과 몸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제법 격렬한 탓에 그 광경을 목격한 포피는 딱딱하게 굳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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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5, 그딴 생명체(1). 21.11.04 6 0 12쪽
10 4, 사람에게 달려 들어요(3). 21.11.04 9 0 11쪽
» 4, 사람에게 달려 들어요(2). 21.11.04 7 0 11쪽
8 4, 사람에게 달려 들어요(1). 21.11.04 9 0 12쪽
7 3, 전파(3). 21.11.03 8 0 12쪽
6 3, 전파(2). 21.11.03 8 0 11쪽
5 3, 전파(1). 21.11.03 8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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