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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사람을 물어요.

웹소설 > 자유연재 > 로맨스, 판타지

태어나버림
작품등록일 :
2021.11.03 19:09
최근연재일 :
2021.11.07 18:48
연재수 :
18 회
조회수 :
164
추천수 :
5
글자수 :
94,402

작성
21.11.03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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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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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11쪽

2, 시초(1).

DUMMY

◆ · ◆ · ◆ · ◆ · ◆


"아직까지 생명에 지장은 없지만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혼수상태라 해도 좋을지··· 경과를 지켜봐야 알겠지만 징후가 그다지 좋지 않습니다. 고열도 심하고요."


의사의 간략한 설명에 챙모자를 쓴 여인이 속수무책으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옆에 서 있는 포피는 화들짝 놀라 그녀를 부축하려고 애썼다.


샤이먼은 노상 카페에서 전화기를 빌려 의료 기관과의 연락을 무사히 마쳤고, 갓 후송한 남성의 상태를 진단한 의사가 보호자에게 내린 결론이었다.


예후가 좋지 않다는 연인의 갑작스러운 통보에, 챙모자를 쓴 여성이 두 어깨를 잘게 떠는 동안 샤이먼이 입을 열었다.


"어이, 의사 양반. 백번 양보해서 혼수상태를 그렇다 치고, 정확한 질병이 있을 것 아니야? 예를 들어서 심한 폐렴이라든지, 급성 패혈증이라든지 뭐든. 그런 진단 없어?"


샤이먼의 물음에 의사가 잠시 두 눈을 끔뻑거리더니 말을 잇지 못했다.

두 어깨를 잘게 떨었던 여인이 의사를 향해 고개를 들어 올렸고, 포피도 으레 진단명을 말해줄 의사의 두 입술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기다란 체구의 의사가 세 명의 열렬한 시선이 자못 부담스러워 고개를 모로 숙였다.

그러다가 하는 말이···.


"처음에 감기 증상으로 인한 심한 폐렴이 아닌지 의심했습니다. 아니면 본의도 모르는 사이 알레르기 반응이 일어나는 무언가를 먹거나, 닿은 게 아닌지 피부도 살펴보았으나 이상 소견이 없더군요. 환자의 기본적인 신상 정보를 작성한 보호자께서 고고학자라고 직업란에 적으셨던데··· 현재로서 유물 발견이나 탐사로 각지를 돌아다니는 직업이니 급성 바이러스에 감염이 되는 것이 아닐까 유추하고 있습니다."

"그 말인즉슨 정확한 진단명을 모른다는 소리네?"


의사가 말을 끝내는 즉시 샤이먼이 토를 달듯 콕 짚었다.

의사는 침묵만 유지할 뿐, 샤이먼의 대꾸에 별다른 반응을 내비치지 않았다.

실제로 그의 말대로 진단명을 알아내지 못했고, 한참 고열이 올라가는지라 얼음찜질과 해열제 효과가 뛰어난 지모를 달인 포션만 겨우 먹인 상태였다.

해서 딱히 할 말이 없었다.


포피는 두 어깨를 잘게 떨며 흐느끼기 시작한 여인을 바라보고는, 심적으로 물어보기 어렵다는 것을 알지만 남성의 징후가 그다지 좋지 않다면야··· 한시가 급하다는 것을 예측할 수 있었다.

포피가 한 손으로 여인의 등을 토닥토닥 두드리며 중얼거렸다.


"최근 남성분이 어디로 멀리 떠나셨나요? 그게 아니면 생전에 접해보지 못한 것들을 경험했거나, 특이한 음식을 먹었거나··· 그런 종류들 말이예요."


포피는 두 속눈썹에 눈물이 맺힌 여인의 눈가를 소맷자락으로 쓱 문지르고는, 차분히 다음 대화가 나올 것을 기다렸다.

그러자 끅끅거리는 신음 소리를 잇새 사이로 내뱉은 여인이 간신히 두 입술을 뗐다.


"그, 그게 최근에··· 동쪽 섬인 모나타로 부족 시대의 유물을 탐구하려고 떠났었어요. 거기에 살···살았던 부족민들이 센시아 부족이라고 했나. 어쨌든 오래전에 사라졌다고 했는데, 터를 발견해서 한참 지리학자나 고고학자들 사이에서 각광받고 있다고 하던데··· 우연치 않게 교수진과 닿아서 탐사할 기회가 생겼다고 상당히 기뻐했어요."


여인이 울음이 잠긴 목소리로 조곤조곤 중얼거리는지라, 의사를 포함해 대화를 듣고 있는 포피와 샤이먼은 숨을 죽이고 있었다.

원체 본인의 이야기에 집중하는 듯한 타인의 모습에, 여인은 혼란 속에서도 잠시 쑥스러웠던 건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이윽고 다음 말을 덧붙었다.


"그 뒤로 두 달 여간 동쪽 섬인 모나타에서 숙식하면 생활했다고 해요. 먹는 것들은 떠나기 이전, 잘 챙겨두고 갔으니 알 수가 없고··· . 센시아 부족들은 오래전부터 심령 전사를 필두로 강력한 미신을 믿었다고··· 벤자민이 설명해줬어요."


벤자민은 현재 쓰러져 예후 상태가 좋지 않다던, 환자를 말하는 것이 분명했다.

여인은 곱슬거리는 자신의 앞머리를 한차례 쓸어넘기고는 계속 이어갔다.


"그 강력한 미신이 죽은 자의 혼령을 불러온다거나, 되살려 놓는다는 것들이라 했어요. 어쨌든 제사를 많이 지냈다고 하더라고요."

"설마 심령 전사가 얼토당토않은 부두 술사를 말하는 것 아니겠지?"


샤이먼이 여인의 이야기를 잠잠히 듣다가 예상치 못한 의표를 찔렀다.

그러자 여인의 두 눈동자가 동그랗게 치켜떴다.


"맞아요. 부두 술사라고 벤자민이 말했었어요. 온 대륙에 많은 부족민들이 있었지만, 부두 술사가 대를 이루고 같이 생활하는 집단은 찾아보기 쉽지 않다고 하더라고요. 그것만으로도 센시아 부족민들의 터를 연구하고, 유물을 찾아내는 것이 고고학자로서 상당한 가치가 있다고 말했어요."

"미친···. 내가 이래서 연구에 심취한 책상 걸이 인간들을 싫어한다니까. 과거의 야만인을 조사하는데, 뭐가 그리 좋다고. 쯧."


샤이먼이 여인의 모든 대화를 마치자 가볍게 혀를 차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방금 전에 눈물을 흘렀던 지라 두 눈가가 충혈된 여인이 샤이먼의 거들먹거리는 행동에 깊은 상처를 받았는지, 두 어깨를 축 내려뜨렸다.


포피는 여인이 상심하는 듯한 반응에, 샤이먼이 무서운 인간인데 불구하고 답지 않게 옆구리를 콕 찔렀다.


갑작스러운 포피의 접촉에 샤이먼이 둿덜미를 곤두세우며, 소스라치게 놀란다.

자못 놀라는 듯한 그의 반응에 더욱더 어이가 없는 것은 포피였다.


'왜 저래···?'


그러거나 말거나 여인의 대화를 곱씹은 의사가 다른 의료진들에게도 이와 같은 사실을 전달한다면서, 자리를 벗어났다.


포피는 이야기하는 내내 바닥에 주저앉았던 여인을 간신히 일으켜 세운 뒤, 부드럽게 등을 쓰다듬는 것 이외에 해줄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본인의 생사 여부는 자신이 감당해야 할 문제이지, 의료진은 서포트만 해줄 뿐 그 이상은 손쓸 수 있는 여력이 없다는 걸 알기에···.


◆ · ◆ · ◆ · ◆ · ◆


의료 기관을 빠져나간 뒤 걷는 밤거리.


곤돌라를 타기 위해 대기 줄을 섰던 것은 대략 4시간 전이었으니, 해가 뉘엿뉘엿 져도 이상하지 않았다.


오붓하게 둘이서 여행하기 위해 온 베니스 도시라고 하던데, 병명도 알 수 없는 이상 징후 통보를 갑작스레 현 남친인 벤자민이 받았으니···.

포피는 짐짓 불안에 떠는 여인을 달래는 터라, 의료 기관을 빠져나가는 시간이 더욱더 늦춰질 수밖에 없었다.


잔잔한 밤바람 소리와 적당히 찬 공기가 폐부 깊숙이 스며드는 느낌이 상쾌하지만, 머릿속은 하염없이 복잡한 가운데···. 덩달아 의료 기관에서 같이 시간을 보낸 샤이먼이 나란히 그녀 옆에 서서 걷고 있었다.


샤이먼은 중심 광장으로 이어지는 기다란 운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베니스 도시 일정은 딱 하루밖에 잡지 못했는데, 홀라당 날려 먹었으니 아쉽지 않아?"


아침 기차로 동이 튼 새벽녘에 베니스 도시에 도착하였으니, 반대로 돌아가는 기차 일정은 어둑한 새벽녘으로 잡았다고 했다.

포피는 옆에 서 있는 샤이먼에게 눈길을 돌리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닥··· 별로 아쉽지 않아. 오히려 앞에서 사람이 쓰러져서일까? 좀 걱정돼서 마음이 뒤숭숭한 달까."

"으흠···. 하긴 권총으로 사살된 동물도 아니고, 눈앞에서 사람이 쓰러졌는데 놀랄 만도 하지. 이럴 때 보면 만두는 조금 여린 것 같네."

"그게 아니라···."


포피는 누구라도 인간의 존엄성을 의심하지 않는다면 걱정하는 게 당연한 것이 아닐까··· 지적하려 했으나 그만두었다.

현재까지 한 달의 교제 기간이지만 샤이먼이 남들보다 공감 능력이 떨어질 수 있단 걸, 어렴풋이 느낀 정황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오늘도 포함해서.


하여 주워섬길 수 없는 말을 내뱉어 긁어 부스럼을 만들기보다, 다른 대화를 이끌어 가는 게 나을 듯싶었다. 어차피 걱정해봤자 해결될 문제는 없으니, 무사하길 기원할밖에.


"그 하루 일정을 날리는 게 아쉽지 않은데, 베니스의 명물인 까만 휘닝시에를 먹지 않으면 아쉽다랄까? 그런 거지."


대화 주제를 나름 유들 있게 넘어간 것이라고 자부한 포피가 살짝 그의 눈치를 봤다.

샤이먼은 가늘게 치켜뜬 두 눈동자로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으나, 별다른 지적은 들어오지 않았다.


오히려 옅은 한숨을 내쉰 그의 표정이 더욱더 아쉽다는 듯, 씁쓸한 미소가 얼핏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착, 착각이겠지.'


포피는 그냥··· 그렇게 믿고 싶었다.

미래의 고용주와 고용인의 연애는 어감부터가 별로 좋지 않았다. 머릿속에 마구니가 꼈다고 하면 어쩔 수 없는데, 마치 허드렛일하는 시종이 주인장을 몸으로 꿰찬 느낌이랄까? 어후, 모르겠다.


"하긴 곤돌라를 타고 빵집에 들릴 예정이었으니까, 캄캄한 저녁에 뱃놀이는 위험해도 빵집 방문쯤이야 얼마든지 할 수 있지. 웬 시커먼 남성이 만두 앞에 쓰러져서 좋은 시간이 모조리 뺏겼지만, 저녁이라도 둘이서 오붓하게 보내야 하지 않겠어? 가도록 하자고."


오, 오붓?

포피는 두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지만, 거기에 콤보로 들어가는 단어 선택에 잠시 초점이 흐려질 뻔했다.

의료 기관에서 한참 경과를 보고 있는 벤자민이 그의 두 눈에 한낱 시커먼 남성일 뿐인가 모양이다.

동정도 그닥 사지 못했다.


이걸 장단에 맞춰져야 하나, 말아야 하나 쭈뼛거리는 사이 샤이먼이 미리 약도를 챙겨봤는지 곧잘 빵집으로 안내했다.


포피는 속으로 깊게 신음하면서, 마지못해 두 입꼬리를 치켜세울 수밖에 없었다.


◆ · ◆ · ◆ · ◆ · ◆


벤자민은 1인용 침실에 누운 채 두 눈을 질끈 감고 있었다. 침대 옆에 간이 의자를 끌어다 앉은 여인이 고작 반나절만 지났음에 불구하고 속이 탔다.


이럴 줄 알았으면 오늘 하루는 푹 쉬게 내버려둘 걸, 혹 그의 의지를 꺾어서라도 의료 기관이나 숙소로 빨리 돌아가는 게 현명한 판단으로 여겨질 정도였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후회만이 점철되는지라 여인은 아까 전에 울음을 터뜨렸음에도, 다시 한번 고개를 숙인 채 흐느꼈다.

그 순간, 침실 위에 고이 올려진 벤자민의 손이··· 힘없이 떨어졌다.


여인은 그거마저 시리게 눈이 아픈 터라 떨어진 그의 손을 붙잡는데, 이상하게 감도는 온기가 없었다.

마치 도륙한 생고기를 붙잡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 이상 맴돌지 않은 기운에, 여인의 낯빛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윽고 나직하게 벤자민을 부르며, 그의 콧대 밑으로 손가락 하나를 들이댔다.


허나 이상하게도 희미한 숨소리는 물론이거니와 미세하게 불어오는 콧김조차 없었다.


여인은 자못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간이 의자에서 벌떡 일어선 그녀가 그의 심장 소리를 듣기 위해, 왼쪽 가슴으로 고개를 기울고는 귓가를 바짝 댔다.

몇십 초간 귀를 기울였지만 심박동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여인은 그가 죽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나서야 딱딱하게 굳은 낯빛이 새하얗게 질렀다.

지금 당장 의사를 호출해야 한다는 생각에 여인이 몸을 돌릴 찰나, 포갠 손을 놓지 않았던 벤자민의 손아귀에서 불쑥 힘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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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6, 기차역(1). 21.11.04 9 0 11쪽
12 5, 그딴 생명체(2). 21.11.04 6 0 12쪽
11 5, 그딴 생명체(1). 21.11.04 6 0 12쪽
10 4, 사람에게 달려 들어요(3). 21.11.04 10 0 11쪽
9 4, 사람에게 달려 들어요(2). 21.11.04 10 0 11쪽
8 4, 사람에게 달려 들어요(1). 21.11.04 9 0 12쪽
7 3, 전파(3). 21.11.03 8 0 12쪽
6 3, 전파(2). 21.11.03 8 0 11쪽
5 3, 전파(1). 21.11.03 8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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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시초(1). 21.11.03 8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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