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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사람을 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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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버림
작품등록일 :
2021.11.03 19:09
최근연재일 :
2021.11.07 18:48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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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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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1.03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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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1, 물의 도시(1).

DUMMY

물의 도시, 수상 도시, 운하의 도시라 말할 수 있는 베니스.


연간 관광객 수가 200만 명을 웃돌며 수상 택시는 물론이거니와 곤돌라를 끄는 뱃사공들이 즐비하게 손님은 받고 있었다.


운하 가까이에 늘어선 노점 상점과 식당, 각종 테라스 카페에서 옹기종기 앉아있는 이들이 휴식을 맛보며 평화로운 오전을 즐기고 있을 무렵··· 그러지 않은 여인이 한 사람 있었으니 그 사람은 바로···!


"만두, 왜 그렇게 손을 떨어?"


레이 자작 가문의 영애, 포피 레이가 그 주인공이었다.

만두는 제국어로 '포피'란 억양을 사용할 때 소리가 비슷하여, 강제적으로 붙여진 별명이자 애칭이었다.


포피는 맞은 편에 앉아 있는 붉은 장발과 왠지 모르게 사나운 듯하면서도 화려한 이목구비를 지닌 사이먼을 바라보았다.


약 한 달 전, 두 사람의 관계는 갑작스럽게 기묘해졌다.


귀족 가문의 영애이긴 하나 하급이기에 재산이 풍요롭지 못하면 변변치 못한 남성과 언젠가 혼약을 맺어야 한다는 사실을, 포피는 어린 시절부터 일찍이 깨달았다.

해서 쥐꼬리만 한 살림을 이어가면 아등바등 살 바에야 전문 기술을 하나 익혀 사회 진출을 노려보는 게, 현명한 선택이 아닐까 고려했었다.


그 현명한 선택을 실행에 옮기고자 포피는 10살의 나이에 '의학'을 배우겠다면, 부모님의 바지와 치맛자락을 붙잡고 한동안 칭얼거렸었다.


여성이 의학 분야에 진출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우대를 받을 수 있는 직종이나, 쉽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의학 분야는 공부하는 데 있어서 상당한 고도 지식이 필요하므로 단기간 습득할 수 없었고, 엄청난 자금을 퍼부어야만 했다.

간혹 상급 귀족 자제 중에서도 뛰어든 이가 있긴 하겠으나, 드문 케이스에 속했다.


보통은 중급 귀족들이 대대로 직업을 물러주듯 의사 집안에서 의사가 튀어나오는 것이 대다수였다.

물론 하급 귀족들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공통적인 특징이 후원자의 지원을 받는다는 것.


결국 포피는 의학 기술을 배우기 위해서라도 물심양면하고 후원자를 알아보는 선택지밖에 없었다.

다행히 포피의 간절함이 부모님께 닿았는지, 하나뿐인 고명딸을 위해 발바닥에 땀이 날 정도로 뛴 부모님은 후원자 물색에 성공했다.


대대로 무기 상인을 연임하였고, 3년 전에 남작 가문이었으나 연달아 사업이 성공하여 백작 작위를 사들인 위치 가문이었다.

신 부르주아로 급부상하였으나 구 귀족파 세력들에게 졸부란 인식이 강한 탓에, 전문 지식이 고도 방면으로 필요한 주치의나 집사를 구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들은 기꺼이 후원을 자청했다.


물론 의사가 되기 위해서 총 6년간의 아카데미 과정을 거치고 1년간의 수습 기간을 마쳐야 정식 의사란 직업을 달 수 있기에, 모든 걸 완수하면 위치 가문에서 주치의로 고용되는 형태로 조건을 내밀었다.


장기간의 후원과 더불어 의사 과정을 수료할 때까지 필요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데, 포피 입장에서야 당연한 조건부라 생각했다.

해서 후원 지원금을 받고 11살 때 의학 아카데미에 입단, 17살 때 졸업을 마치고 1년간의 수습 기간을 선배 밑에서 한참 해나가고 있었는데 대뜸···.


- 나랑 사귀자.


11살 때부터 데면데면 알고 지냈던 샤이먼이 한 달 전에 갑작스레 교제를 제안했다.

그거도 의료 기관에서 모든 근무를 끝마치고 밤거리를 비척비척 거닐고 있는데, 돌연 나타나서 한 말이 다짜고짜 저거이니 심정지가 와도 이상하지 않았다.


대체 뭐가 문제여서 교제를 제안하는지 알 수 없으나, 별로 내키지 않았다.

화려한 이목구비와 어울리게 얼굴값을 한다고, 샤이먼은 열다섯 살 때부터 문란한 교제 생활을 즐겼다고 아는 사람들은 다 안다.

약은 안 해서 그나마 다행이다, 싶을 정도로 술과 담배는 좋아했고 질펀하게 여자들과 놀아나는 게 특기라고 한다면야 하는데.


'갑자기 왜 이러는데?‘


그녀 입장에서 도통 이해할 수 없으니 거절하려고 했다. 아니, 하고야 말겠다고 결심한 순간 그가 술에 취한 사실을 눈치챘다.

어둠컴컴한 밤거리에서 그의 낯빛이 뚜렷하게 안 보였을 뿐, 술 냄새가 진동했다.

또한 무기 사업을 커다랗게 일꿔나가는 위치 가문답게 그의 허리춤에 리볼버가 창작되어 있었다.


'아, 이러면···.'


섣불리 거절하다가 신문지에 헤드라인으로 피해자 명당이 작성될 게 아닐까 싶어서, 두 입술을 다물었다.

그러자 샤이먼은 침묵을 긍정의 뜻으로 받아들였는지, 당사자의 동의도 없이 '수락한 거다? 오늘부터 1일.'이라면서 터벅터벅 사라졌다.


그때부터 포피는 가족들과 함께 살고 있는 타운하우스로 돌아와, 믿지도 않은 신께 기도했다.

위치 가문의 장남 샤이먼이 술에 취했으니 모든 기억이 말소당하고, 다짜고짜 내뱉은 교제 제안은 진심이 아니길 바란다고.


하지만 다음 날, 수습 기간을 거치고 있는 의료 기관으로 출근하기 위해 타운 하우스를 벗어났을 때 샤이먼과 마주하고는 진심임이 드러났다.


그는 어울리지 않게 약간 수줍음을 타고 있는 지라, 가깝게 지낸 사이가 아닌데 불구하고 포피는 퍽 당황스러웠다.

미래에 고용주가 되실 뿐이니 거친 언사는 입에 못 담겠고, 설마 아침 식사에 누군가 그의 접시에 약을 타 먹였나···?

상당히 의심됐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예상외로 좋아하는 그의 교제 반응에 포피는 거절의 의사를 단 한마디도 내뱉지 못했다.

그의 사생활이 문란하다는 것과 별개로 샤이먼은 총을 기가 막히게 잘 사용하는 명사수로도 입소문이 탔다.


동그란 머리에 벌집마냥 구멍이 뚫리고 싶지 않다면야, 입을 다물 것은 종용하고 있었다.


음, 근데···.


'한 달이 될 줄 몰랐지.'


포피는 한 손에 찻잔을 들고 있었기에 그의 지적대로 바들바들 떠는지라, 찻물이 좌우로 흔들었다.

그녀는 입가에 찻물을 들이대며 중얼거렸다.


"어제 수전증 환자를 맡아서 처음으로 살펴봤거든. 환자의 패턴을 나름대로 익히기 위해 몸의 증상을 따라 한다고 할까? 뭐 그럴까나···."


아, 당연히 개소리였다.

그와 수도에서 벗어나 비록 2시간의 열차 여행이지만 이리 데이트 코스를 즐길지 상상도 못했다.

이거 괜찮은 거냐, 싶어서 샤이먼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기 때문에 황당함은 두 배였다.


그는 손에 들고 있는 커피잔을 흔들며 씩 미소 지었다.


"이렇게?"


음, 그게 아니고 수전증 환자는 손목을 돌리는 게 아니라 나처럼 떠는뎁쇼···? 라고 지적하면 쫄았다는 사실을 발각될까 봐 섣불리 다음 말을 꺼내지 못했다.


그때 불현듯 옆 테이블에서 소란이 일었다.


두 영애가 테이블 의자에 앉아 연신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는데, 아름다운 여인을 보면 참지 못하고 짖는 개가 어슬렁어슬렁 다가온 듯··· 세 명의 남성이 두 영애에게 다가섰다.


여기에서 빼먹지 않고 날리는 상투적인 대사.


"아름다운 여성분이신데, 남자 없이 둘이 오셨나?"


딱 봐도 어디 한 번 지지고 볶고 싶은 음욕적인 감상이 그대로 드러나는 남성 무리들이, 두 여인에게 깔짝거리고 있었다.


관광 사업으로 생계를 꾸려나가고 생활하는 베니스 도시에 안 좋은 점을 굳이 뽑자면, 희한한 외국 놈들이 많아서 생각보다 치안에 허점이 많다고 할까나···?


저 세 명의 무리들도 제국 사람이 아닌, 타 국가 사람의 복식 차림이라서 외국인임을 한 방에 알아볼 수 있었다.


“이러지 마세요.”


테이블 의자에 앉아 있는 하늘색 드레스를 입은 여인이 단칼에 대응했다.

그러나 그 대응조차도 여성이 으레 부리는 앙탈로 느껴지는지, 세 명의 무리 중에 조끼 코드를 입은 남성이 따라 했다.


"아앙~, 이러지 마세요."


그러자 두 명의 남성이 너나 할 것 없이 히죽히죽 웃는 가운데, 테라스 카페 분위기는 점차 싸늘하게 식어갔다.

한 명은 허리춤에 단도를 착용하고 있고, 또 다른 한 명은 황소 한 마리 때려잡은 건지 몸집이 우락부락했다. 그나마 나머지 조끼 코드를 입은 남성은 체구가 비실비실해 보여서 만만해 보이긴 한데, 안타깝게도 동행이 만만치 않았다.


해서 험상궂게 변하는 분위기 속에서 카페 손님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주눅 드는 가운데··· 주인장도 마찬가지인지 어디다가 급하게 전화기를 돌리고 있었다.


'환장하겠구나.'


하필 옆에서 난리블루스를 치는 통에 포피는 자신의 별명처럼, 이제 고기만두가 되지 않을까 염려하는 상황에 놓여져 있었다.

그에 비해 맞은 편에 앉아 있는 샤이먼은 태연자약하게 커피를 홀짝이고 있으니, 같은 공간에 있는 것인가 의심이 될 정도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커피잔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은 샤이먼이 입을 열었다.


"베니스에 오길 잘한 것 같아. 매일 의료 기관으로 출근하는 것도 지겹고 답답하잖아. 가끔 힐링이 필요하지 않겠어?"

"뭐··· 그렇긴 한데, 내가 원해서 가는 거니까. 위치 가문의 소야벤 백작님께서 지속적으로 후원해준 덕분에 여기까지 온 거잖아."

"아하. 우리 아버지? 그냥 편하게 불러도 되는데. 후원이든, 뭐든 간에 지금은 백작님보다 아버님 호칭이 더 어울리지 않겠어?"


가벼운 어조로 중얼거리는 했으나, 포피에게 상당한 치명상을 입히는 대화 내용이었다.

무렵 6년을 넘게 후원을 해주시는, 사실상 키다리 아저씨라 해도 무방한데 한 달 사이에 아버님 호칭으로 변경돼 있었다.


거절의 언사를 입에 담지 못했으나, 교제 사실을 위치 가문 집안에 알리지 말라고 단단히 못을 박아놓은 터라 아직까지 괜찮은데···.


'계속 이대로 헤어지지 않고 어물쩍 끌다가 언젠가 아시겠지?'


생각만 해도 눈앞이 아찔했다.

아무리 샤이먼이 지나치게 좋은 반응을 보이고, 그의 온갖 사생활과 소문이 결합돼 무섭다고 해도 이런 식은 곤란했다. 제대로 매듭 지어놓지 못하면 나중에 엄청난 사달이 날 것이다.


지금이라도 정신을 번쩍 차리고 있는 그대로 말하려는 찰나, 옆 테이블이 우수수 넘어졌다.

조끼 코드를 입은 남성이 하늘색 드레스 차림의 영애를 한 손으로 붙잡고는, '어이, 좋은 곳으로 같이 가자고.'라면 시답지 않은 대사를 시전하고 있었다.


두 남성이 깔깔깔 거리는 가운데, 영애의 동행자인 또 다른 여성이 어쩔 줄을 몰라 했다.

하늘색 드레스 차림의 여성이 어떻게든 남성을 뿌리치기 위해 한쪽 팔을 휘두르는데, 당연히 어림도··· 있었다.

종잇장 같은 몸매의 남성은 가냘픈 여성의 체구에 밀려 앞으로 꼬꾸라졌다.


그와 동시에 샤이먼과 포피를 사이에 둔 테이블이 남성의 몸통에 부딪쳐 '우당탕-!' 한 바탕 뒤집혀졌다.

샤이먼이 테이블 위에 내려놓은 커피잔이 공중부양하여, 정확히 포피의 드레스 앞섶에 직격타로 들어갔다.

커피의 뜨거운 열기가 식기도 전이었다.


포피는 자신이 우려했던 고기만두가 아닌, 간장 만두가 됐음을 느끼며 테이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가슴 앞섶이 자못 홧홧 거리는 탓에, 화상을 입지 않았을까 온 몸을 버둥거리는데 샤이먼이 재빨리 차가운 물병을 가져다가 뿌렸다.


순식간에 홧홧 올라오는 열기는 가라앉았으나, 포피는 물 맞은 생쥐 꼴이 되었다.

샤이먼은 근심 어린 표정으로 그녀를 위아래로 살펴보며 물었다.


"만두, 괜찮아?"

"응···, 괜찮은 것 같애."


사실 안 괜찮아도, 왠지 모르게 괜찮아야 할 것 같았다. 그러지 않는다면 본의 아니게 이 소란에 휘말릴 것 같으니까.


샤이먼은 한쪽 눈썹을 까딱이며 그녀의 대답을 믿을 수 없는지 다시 한번 훑어보았다.

그러는 동안 테이블을 밀치고 바닥에 고꾸라졌던 조끼 코트의 남성이 나지막이 욕을 내뱉었다.


'아, X발. 재수가 없으려니까 놀아 주겠다는데도 지랄이네. 내가 만만해? 뜨거운 맛을 봐야지, 정신 차리지? 다 뒤졌어."


그러면서 조끼 코트 품속으로 손을 집어넣은 남성이 갈무리했다.

어느새 테라스 카페에 있는 모든 손님들이 바짝 긴장하는 가운데, 샤이먼이 더 빨랐다.


"너야말로 재수가 없으려니까 가만히 있겠다는 데도 건드네. 너, 내 여자 친구가 만만해? 한 번 머리에 구멍 좀 나 봐야 정신 차리지?"


샤이먼이 허리춤에 소지하고 있던 신형 리볼버를 자연스레 꺼내며, 남성의 정수리에 조종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포피는 그 광경을 코앞에서 목격하고는 마른침을 꿀꺽 삼킬 수 밖에 없었다.

무수한 소문 중에 하나, 샤이먼은 빡이 치면 이도 저도 따지지 않은 미친개의 습성을 보인다는 낭설이 전해지곤 했다.


그리고 그 낭설은 진실인 듯하고.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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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6, 기차역(1). 21.11.04 9 0 11쪽
12 5, 그딴 생명체(2). 21.11.04 6 0 12쪽
11 5, 그딴 생명체(1). 21.11.04 6 0 12쪽
10 4, 사람에게 달려 들어요(3). 21.11.04 10 0 11쪽
9 4, 사람에게 달려 들어요(2). 21.11.04 10 0 11쪽
8 4, 사람에게 달려 들어요(1). 21.11.04 9 0 12쪽
7 3, 전파(3). 21.11.03 8 0 12쪽
6 3, 전파(2). 21.11.03 8 0 11쪽
5 3, 전파(1). 21.11.03 8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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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2, 시초(1). 21.11.03 8 1 11쪽
2 1, 물의 도시(2). 21.11.03 10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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