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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사람을 물어요.

웹소설 > 자유연재 > 로맨스, 판타지

태어나버림
작품등록일 :
2021.11.03 19:09
최근연재일 :
2021.11.07 18:48
연재수 :
18 회
조회수 :
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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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94,402

작성
21.11.04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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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6, 기차역(2).

DUMMY

◆ · ◆ · ◆ · ◆ · ◆


토나스는 마탑에 맨 꼭대기에 위치한 포탈 시스템에 이동할 좌표를 찍고 있었다. 그 옆에서 조수직으로 붙어있는 헨더의 표정은 그닥 밝지 못했다.

더불어서 하루의 유일한 휴식 시간을 방해받는 연구원 두 명과 마탑 시설을 엄호하기 위해 뽑힌 계약직 용병, 이안도 마찬가지였다.


연구원들이야 마탑 소속이니 상사인 토나스에게 대놓고 구시렁거릴 수 없지만, 1년 계약직인 이안은 다른 문제였다.

그는 어깻죽지에 매달고 있던 소총을 꺼내 들어 애꿎은 탄창만 끼웠다가 빼내기를 수십 번을 한끝에야 볼멘소리를 터뜨렸다.


"저녁에 갑작스레 불러 들어서 바로 출발할 줄 알았는데, 벌써 30분째 이 짓거리거든? 베니스 도시는 언제 이동하는데?"


토나스가 그들을 부르는 호출 명령은 간단명료했다.

지금 당장 베니스 도시를 포탈 시스템을 통해 이동하며, 심상치 않은 조짐을 웨스트 채플린 공작께 들었으니 역학 조사원으로 급히 차출해 간다는 것.


물론 황실에서 꾸려야 할 조사원을 아닌 밤중에 홍두깨마냥, 마탑에서 소규모로 차출해가는지 알 수 없지만 윗대가리 생각들이야 일반 제국민들이 알 턱이 없었고··· 이안도 으레 마찬가지였기에 초과 근무에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토나스는 뒤에서 씨근덕거리는 일개 용병따윈 무시한 채, 신중히 좌표를 찍고 있었기에 본인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힌 지 모르고 있었다.

헨더는 그런 상사의 모습을 바라보며 옅은 한숨을 내쉬다가, 일개 용병의 볼멘소리에 미간을 찌푸렸다.


"곧 있으면 출발하니까, 잠깐 기다려봐. 그리고 잊고 있나 본데, 아무리 계약직이라고 해도 그 기간 동안 돈을 대주는 것 마탑 소속이거든? 계속 돈벌이 이어나가고 싶으면 처신 잘해라."


헨더가 뒤돌아서 이안을 째려보고는 대놓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러자 총기를 한 손에 들고 있는 이안조차도 신 부르주아 사회에서 자본을 이길 수 없는지, 무척 불쾌한 표정이나 두 입술을 꾹 다물었다.


이윽고 기계 부품의 엔지니어를 담당하고 있는 남성이 마탑 꼭대기까지 자동차를 끌고 올라왔다. 자다가 돌연 일어난 탓에 아직까지 머리칼이 부스스 올라온 엔지니어가 입을 열었다.


"본부대로 자동차 한 대, 끌고 왔습니다."


간략한 보고 설명이지만 한참 좌표 찍기에 열중하는 토나스에게 하등 들리지 않았다.

해서 헨더가 대신 대꾸해주었고, 엔지니어는 포탈 시스템과 두세 걸음 떨어진 거리에 자동차를 정차시켰다. 이유는 간단했다.

베니스 도시로 향하는 포탈 시스템이 열린다면, 차출된 소수 인원들이 자동차를 타고 넘어갈 것이기 때문에···.


현재 넘어갈 인원은 총 4명으로 연구원 두 명, 엔지니어 한 명, 이안 한 명이 전부였다.


그렇게 다시금 기다려야 하는 지루한 시간이 찾아왔을 무렵, 헨더는 베니스 도시로 넘어갈 인원들에게 무선 무전기를 하나씩 지급하였다. 역학 조사원으로 급히 차출해 넘어가야 하지만, 감염 경로를 조사하는 것이 아닌··· 기꺼해야 상황 보고만 할 테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심심한 위로는 덤이었다.


그녀의 말대로 보건과 의료 분야에서 몸을 담고 있는 이들이 아니기 때문에, 진중하게 감염 경로를 조사하리라 생각하는 이는 한 사람도 없었다.

그저 마탑에서 조사원을 차출하는 이유는 단순히 이동 시간을 한 방에 줄이는 포탈이 있어서 그렇다고, 은연중에 말하지 않아도 대충 짐작하고도 남은 결론이었다.


무전기를 건네받은 이안은 번호 버튼을 눌러 주파수 상태를 확인한 뒤, 허리춤에 꽂아 놓았다.


베니스 도시의 중심 광장에서 외곽에 빠진 운하 9번 다리로 겨우 좌표를 찍은 토나스가 큰소리로 외쳤다.


"모두 자동차에 타도록! 곧 포탈을 열 테니까."


토나스의 단호한 일언에 멀뚱히 지켜보고 있던 이들이 자동차의 뒤 좌석과 조수석에 탑승했다.

운전석의 핸들을 담당할 이는 자동차를 마탑 꼭대기까지 끌고 온 엔지니어가 하기로 했다.


모두가 포탈이 열리길 기다리는 동안, 마탑 꼭대기에 호출됐을 때 짤막한 상황을 설명했던 헨더가 다시금 입을 열었다.


"현재 시각은 11시 15분이니까, 포탈문이 다시 열리는 것 새벽 2시 15분이야. 세 시간 뒤에 자동 되는 포탈 시스템이니까, 그때 반드시 운하 9번 다리로 돌아오도록 하고···. 나머지 시간에 베니스 도시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자세한 보고만 전달하면 돼. 황실에 어떠한 상황인지 바로 알려줘야 한다 했으니까, 빠른 보고가 좋겠지? 어때? 간단하지?"


그녀의 말마따나 업무는 대단히 단순하고, 간단했다. 다만 이 한밤중에 베니스 도시의 동태를 급히 파악할 만큼, 심각한 재난인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토나스가 공작과의 통화를 이어나갔을 때, 급한 용무라고 강조하였으나 베니스 도시에 괴물이 돌아다닌다고 했지··· 그 이상으로 알지 못한다고 했다.


약간 찜찜하긴 했으나, 거짓은 아닌 듯해 토나스는 공작과의 제안을 수락했다.

포탈 시스템은 제국 내에서 유일무이하게 마탑 꼭대기에 위치해 있고, 이동 시간이 이만큼 단축되는 교통수단도 없을 것이다. 황실에서 대거 조사원을 파견하기 이전에 동태를 살펴봐 달라고 하는 것인데··· 쉬이 물릴 수 없는 제안이기도 했고.


헨더의 물음에 자동차 안에 착석한 이들이 저마다 고개를 끄덕였다. 상황 보고만 하는 데 커다란 문제가 있을까, 싶은 표정이기도 했고···.

그에 비해 계약직 용병이라 해도, 나름 굴러먹었던 이안은 썩 탐탁지 않았다.

언제나 위기의 순간은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발생했으니까.


이윽고 포탈 시스템이 토나스가 찍은 좌표를 찾아내고는 가느다란 빗줄기 형태로 통로를 구축했다.

포탈 시스템의 입구가 열리자 엔지니어는 곧이어 엑셀을 밟았다.


헨더는 무선 무전기를 한 대씩 지급했으니, 수시로 보고 사항을 전달할 것을 누누이 강조했다.

허나 한 시간 뒤, 지지지직-거리는 소리를 끝으로 한 사람도 제대로 된 상황 보고를 올리지 못했다.


◆ · ◆ · ◆ · ◆ · ◆


빗줄기는 멈췄다. 허나 운하 도시인 베니스에서 한바탕 쏟아지는 장대비에 해상 수면이 올라갔고, 간간이 통행을 방해했다.

바깥으로 나서서 길거리를 걷고 있는 포피와 샤이먼도 으레 마찬가지였다.

발목 위로 잠기는 수심은 걸음걸이를 무디게 만들었고, 행동에 미세한 제약을 걸었다. 예를 들어서 체력 소모가 더 든다고 해야 하나···? 어쨌든 느려지는 것 사실이었다.


무엇보다 중심 광장을 기준점으로 1번에서 4번까지는 운하 다리가 물에 잠겨 있는 터라, 중심 광장과 가까워질수록 해수면이 높아지는 것 피할 수 없었다.


하여 포피와 샤이먼이 걷고 있는 거리는 3번 운하 다리와 가까운 벤제리스 번화가. 온갖 보석점과 공예품을 전시한 노점상이 즐비하게 늘어선 탓에, 소매치기범이 활발히 활동하는 대표적인 거리라 해도 무방했다.


장화를 신고 있는 포피의 발을 바닥에 내디딜 때마다 처벙처벙-하는 가운데, 3번 운하 다리까지 다다른 두 사람은 기차역이 멀찍이 보인다는 것을 확인했다.


"얼마 안 남았어, 만두. 조금만 힘내."


샤이먼이 옆에 서 있는 포피를 내려다보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한 눈에 봐도 흠뻑 젖은 드레스 자락에, 밑단은 질질 끌리다 못해 물기를 머금은 무게까지 감당해야만 하니··· 일반 남성복보다 활동에 많은 제한을 가할 수밖에 없었다.


포피는 샤이먼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렸을 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체력이 남들보다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자부했던 그녀지만, 솜에 물을 적시는 것 마냥 무거운 드레스 차림에 슬슬 기진맥진하는 것이었다.

밑단은 지금 당장이라도 잘라내고 싶지만, 마땅한 도구가 없으니 사실상 찢는 것도 여의치 않았다. 물론 마음만 먹는다면야 못할 것도 없지만, 신 부르주아 사회에서 자본이 들어왔음에도 아직까지 여성의 치맛자락이 발목 위까지 드러내는 것은 그닥 허용하지 않은 시대였다.


그러므로 포피는 헥헥-거리면서도 치맛자락을 고수할 수밖에 없는 이유고···.


'망할.'


웬만큼 욕지기는 속으로 내뱉고 싶지 않지만, 한계를 실험하는 듯한 체력 단련에 포피는 어쩔 수 없이 내심으로나마 지껄일 수밖에 없었다.


샤이먼은 걷는 내내 포피의 왼손을 맞잡고 있었기에, 나름대로 끌어주는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었다.

포피가 어느 정도 숨을 가다듬을 때쯤, 드디어 주위를 살펴보는 그녀가 입을 열었다.


"워낙 늦은 시간이기도 하고··· 비도 왔으니까, 사람이 없는 것 이해하기는 한데 너무 조용하지 않아? 중심 광장이랑 너무 가까운 번화가는 아니지만, 그닥 멀지도 않은데. 조금 이상해."


하긴 그녀의 지적대로 이상하긴 했다.

서에서도 들키지 않았을 뿐, 괴물 새끼가 한적한 간이 주차장을 빙빙 도는데 이곳에 사람은커녕 인기척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게 기이했다.


그 사실이야 샤이먼도 진작이 눈치챘지만, 기차역이 멀찌감치 눈에 들어와서일까···?

지금의 심정으로서 복잡한 상념을 이어가고 싶지 않았다. 일단 베니스 도시를 탈출하면 눈앞에 있는 걱정은 잠시나마 접을 수 있으니까.


“맞기는 한데 탈출하고 나서 생각하면 안 될까, 만두? 왜 괴물 새끼로 변하는지 모르겠지만, 이미 몇 명 접한 이상··· 그게 우리가 될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하니까. 아직 죽는 날보다 살날이 많은데, 여기서 무덤 자리 떡하니 만들고 싶지 않거든. 문제는 괴물 새끼로 변하면, 온전한 시신으로 남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괴물 새끼로 변모하면 사람에게 무조건 딜려 드는 특성을 지니고 있는 듯해, 신체 훼손을 불가피할 것이다.

샤이먼은 그걸 콕 짚어서 지적하고 있었다.


포피는 여전히 틀린 말이 없는 그의 일언에 한 편으로 마음이 찜찜하면서도 시원하게 대꾸하지 못했다.


이제 슬슬 사람들이 잠든 시간대인 것 맞기는 한데, 이 정도로 인기척이 없을 수 있나···?


복잡한 심경을 드러내듯 포피가 멀뚱히 서서 미간을 찌푸리는 사이, 애꿎은 시간은 계속 지나가고 있었다.

샤이먼은 맞잡고 있는 그녀의 손을 살짝 끌어당겨 목적지로 향할 것을 재촉하려는 찰나, 상가 건물의 꼭대기 층에서 누군가 불쑥 얼굴을 들이밀었다. 열린 창문 사이로···.


아직 소년티도 나지 않은 앳된 어린아이가 시선을 밑으로 내리깔며, 3번 운하 다리 앞에 서 있는 포피와 샤이먼을 지켜보고 있었다.


어린아이는 누군가 들을세라 눈치를 보면서도, 두 사람에게 순수한 호의를 내보이고 싶은 건지 작은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3번 운하 다리··· 건너시면 안돼요.”


아이의 목소리는 원체 작았지만, 현모하다 싶을 정도로 자못 조용한 벤제리스 번화가는 그 조그마한 음성까지 잡을 만큼 쓸데없는 소음이 없었다.

운치 좋은 관광 도시에서 순식간에 유령 도시로 탈바꿈할 만큼···.


포피와 샤이먼은 고개를 들어 소리가 나는 쪽으로 시선을 던졌고, 곧이어 건물 꼭대기에서 아이가 있다는 것을 뒤늦게 파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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