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프리드 (1)
안녕하세요~
지극히 평범했다.
뭐, 남들이 보기에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지만 적어도 그 스스로만큼은 자신이 특별하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하나 굳이 꼽자면 힘이 좀 센 정도?’
그렇기에 남들보다 잘나지도, 못나지도 않은 삶을 살았다.
그랬다. 지극히 평범한 삶. 가장 보통의 삶을 살아가던 현대인이 바로 그였다.
물론 방금 전까지만.
지금 그는 생전 처음 보는 공간에 와있었다.
기록적인 폭설이 내렸던 어린 시절의 눈밭도 이렇게 하얗지는 않았다.
도대체가 어디까지 벽인지, 어디서부터 천장인지도 분간이 가지 않았다.
그 텅 빈 공간 속에서 그의 시야에 존재하는 건 사무실에서나 볼법한 테이블과 그 앞에 앉은 누군가였다.
슥- 스윽-
남자는 조심스레 테이블이 있는 곳에 다가갔다. 머리를 거의 덮은 후드 때문에 앉아있는 누군가의 얼굴조차 보이지가 않았다. 그는 뭔가를 열심히 작성하고 있었는데 그 탓인지 이방인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한 걸로 보였다.
“저기요?”
스-윽.
바쁘게 놀리던 펜대가 멈췄다.
후드에 가려진 안면이 남자가 있는 곳을 향했다. 놀랍게도 그 안은 어둠이었다. 온통 새하얀 이 방에서 후드 안의 안면만 어둠에 덮여 보이지가 않았다.
“이런 손님이네.”
터억.
바쁘게 작성하던 서류를 옆으로 밀어낸 그, 아니 그녀는 남성을 바라봤다. 후드 속에서 흘러나온 음성은 여자의 그것이었다.
“환영해. 선택받은 아이야. 그래. 넌 이제부터 저 대륙에서 살아가야 할 예정인데 따로 하고 싶은 말 있어?”
두서없이 완벽한 개소리였다.
안 그래도 나이를 먹으면서 스트레스받을 일만 늘어가는 마당에 신박한 미친놈이었다. 그래서였나? 평소답지 않게 화를 낸 것 같기도 했다.
그때였다. 그의 옆으로 빛무리가 어렸다.
로브녀는 그에게도 비슷한 투로 말을 했고 새로 온 그의 반응은 최초에 남성이 보인 것과 비슷했다.
“꿈치고는 실감 좀 나네.”
“스읍.”
다만 그는 분노가 아닌 조롱으로 대꾸했다. 로브녀는 조용히 손을 뻗어 그의 머리로 향하게 했다.
삐이이-
듣기 싫은 소리였다.
귀가 아닌 뇌로 직접 들어가 꽂히는 초 고음역대의 초음파. 최대한 차단하기 위해 귀를 틀어막고 자세를 숙인 그의 시야에 이질적인 움직임이 들어왔다.
털썩.
눈이 마주쳤다.
그의 동공은 활짝 열려있었다. 바로 좀 전까지 같은 공간에서 말하고 숨을 쉬고 있었다는 사실조차 구역질이 날 정도로 싸늘하게 식어갔다.
남성은 그대로 그에게 달려가 흔들었다.
“이봐요! 정신 차려요!”
쓰러진 남성은 불러도 답이 없었고 곧 시체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마치 원래부터 존재하지 않았다고 말하고 싶은 것 같았다.
“이게 지금 뭐하는 짓이야-!”
남성은 주먹을 강하게 쥐고는 로브녀에게 달려들었다. 그녀가 앉아있는 테이블. 앞으로 몇 보만 더 걸어가면 닿을 거리였기에 망설임이 없었다.
힘껏 달려들어 주먹을 뻗었지만 거리는 좁혀지지 않았다. 분명히 몸은 앞으로 움직이고 있었지만 테이블은 그 모습 그대로였다.
“닿지... 않아.”
서늘한 공간이었기에 비교적 뽀송뽀송한 상태였지만 격렬하게 움직인 탓에 땀이 송골송골 맺힐 정도까지 되어버렸다. 결국 지친 그는 로브녀를 노려봤다.
“하하하하-!”
“뭐가 그렇게 웃긴 거지? 방금 그렇게 사람을 죽이고 아무런 감흥이 없는 건가?”
“그거 더미에요. 이렇게까지 집요한 방문자는 처음이네요. 그렇게 열까지 받을 필요 없다구요. 당신들과 시작부터 척을 져서 좋을 건 제게도 없으니까요.”
그는 이를 악 물었다.
멋대로 데려와놓고 뭐? 더미? 사람의 감정을 대체 뭐라고 생각하는 건가?
완전히 놀아나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오히려 착 가라앉았다.
불같이 끓어올라야 하는 분노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더 할말은 있어요?”
“내 몸에 무슨 짓을 한 거지?”
“생각보다 인간의 뇌는 단순하답니다. 적당히 만진다면 감정 정도를 조절하는 건 일도 아니지요.”
감정조차 통제해버리는 그녀의 모습에 그는 마지막 전의까지 상실해버렸다. 투쟁의 기본적인 요건도 생겨나지가 않았다. 적어도 이 공간 안에서만큼은 그녀에게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걸 완전히 자각해버린 것이다.
“당신은 이 공간에서 나가게 되는 순간부터 지금 겪은 모든 걸 망각하게 될 거예요.”
“굳이 그렇게 할 거면 날 왜 여기까지 부른 거지?”
“간혹 있거든요. 잊지 않는 부류들이. 그런 자들을 식별하기 위한 테스트에 불과해요. 그럼. 앞날에 행운이 있기를.”
◎◎◎◎◎
갑자기 느껴지는 주위의 부산함.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공간의 이동이었다. 더 놀라운 건 그 누구도 갑자기 나타난 그에게 의문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 본인조차도.
그는 결국 잊고 말았다. 아마 앞으로도 그 장소를 기억할 일은 없을 것이다.
“여기는...”
의문을 잔뜩 품은 한마디. 대륙에서 그가 뱉은 첫마디였다. 사내의 복색은 흔히 볼 수 있는 트레이닝복에 새하얀 후드티였다. 뭐? 왜 갑자기 궁금하지도 않은 옷차림을 말하는 거냐고?
분명 사내의 옷은 평범했다. 하지만 그를 둘러싼 풍경이 일반적이지가 않았다.
‘야? 분명 운동 다녀오는 길이었는데 여긴 대체 뭔데?’
지난 밤, 채널을 돌리다 본 중세영화 속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퍼레이드라도 하는 건가?’
그것이 그가 눈을 뜨고 처음 한 생각이었다. 신기했다. 거리에 즐비하던 고층 건물들은 이곳에서는 단 한 채도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높은 건물을 꼽자면 저 건너편에 있는 회색의 고성.
그래서 꿈이라고도 생각해봤다.
“하, 수축기압 145면 요즘 시대에는 고혈압도 아니라고 의사 선생님이 그랬는데...”
하긴, 날이 가을답지 않게 많이 무덥기야 했어. 오늘따라 몸이 운동도 잘 받는 것 같아서 무리를 한 게 원인이었을까? 분명 자신은 고혈압으로 쓰러져서 꿈 따위의 허상을 보고 있을 것이리라. 라고 사내는 생각했다.
삐비빅! 삐비빅!
“이건 또 뭐...”
손목에서 느껴지는 이질적인 감각. 귀를 간질이는 익숙한 신호음. 이건 또 뭔가 싶던 순간이었다. 머리 안쪽에서 갑자기 처음 듣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당신은 선택을 받았습니다. 이 이름 없는 대륙에게 선택을 받았기에 전이된 겁니다. 분명 개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멋대로 불러낸 건 잘못된 거라고 생각합니다.」
“미안해? 뭐가? 꿈이라면 그럴 수도 있지. 실감나긴 하네.”
「죄송하지만 꿈 따위의 것이 아니랍니다. 이건 명백한 현실이에요. 당신이 앞으로 녹아들어야 할 새로운 현실. 하지만 갑작스레 불러놓고 아무런 기반도 없이 시작하라는 건 저도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
「그래서 기본적인 편의 자체는 보실 수 있게 손을 써뒀답니다. 가능하면 빠르게 적응하실 수 있도록 그 세계에서 가장 익숙하다고 할만한 형태로 준비해봤는데... 가볍게 시스템이나 인터페이스 정도의 어감으로 보시면 되겠네요. 모든 걸 수치화할 수 있으니 편리할 겁니다.」
“아니, 잠깐만. 이거 진짜라고?”
거리의 중간에 멀뚱멀뚱 서있었기에 지나가는 행인들과 지속적으로 부딪혔다. 귀에 들려오는 그들의 언어, 머릿속으로 직접 들어오는 이 알 수 없는 말들. 눈으로 보고 있는 모든 것들.
현실을 자각하자 모든 감각들이 더욱 무겁게 다가왔다.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렇게 쉽게 받아들일 수 있지가 없지 않은가? 볼을 몇 번이고 꼬집었다. 손톱으로 인해서 선홍빛의 상처가 날 정도로.
“아프잖아. 하. 하하. 이게 왜 아픈 거지?”
「혹시 추가적으로 궁금한 점이 있다면 머리에 떠올려보세요. 답해드릴 수 있는 부분이라면 단말기는 언제든 도움을 드릴 것입니다. 단말기가 자의로 알려드릴 수 있는 부분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답니다.」
눈앞에 어딘가 익숙한 사각창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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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살아남아라.
아무것도 없이 머나먼 대륙에 떨어진 당신.
일단 살아남아라. 방법은 중요하지 않다.
어떻게든 살아남기만 한다면 대륙은 당신에게 길을 열어줄 것이다.
“이 대륙에서 자신의 길은 자신이 만들어가는 거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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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한 심정을 말하자면 아무런 생각도 들지가 않았다. 당장에라도 정신이 붕괴할 것만 같은 감각이 온 몸을 간지럽혔다. 서있는 것조차 부담이 갈 정도로 다리에 부담이 느껴졌다.
“아...”
결국 그는 버티지 못하고 길 한가운데에 주저앉고 말았다.
당황스러움이 지나간 뒤에 찾아온 감정은 분노였다.
‘빌어처먹을! 갑자기 데려와놓고 뭐? 침착? 개소리도 두서가 있게 해야지.’
패닉에서 쉽게 빠져나올 수 없었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당장에라도 배 안에 들어있는 모든 걸 쏟아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그는 바닥에 앉아 있음에도 물에서 버둥거리는 것처럼 허우적거렸다.
‘전신의 감각이...’
아득해져만 갔다.
그런 그를 깨운 건 어깨를 두드리는 누군가의 손과 목소리였다.
“이봐. 젊은 친구. 거리 한복판에서 이러면 통행에 방해가 된다네. 헤엄은 거리 구석으로 가서 치는 게 좋을 거야.”
“예?”
“예? 는 무슨... 빨리 구석으로 빠져. 장사도 안 되는데 무슨...”
“아, 예. 죄송하게 됐습니다.”
그는 기다시피해서 구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입으로는 끝없이 알 수 없는 소리를 중얼거리면서. 그렇게 얼마나 앉아있었을까?
머리가 차갑게 식는 기분이 들었다.
그것 역시 이질적인 기분이었다.
해소할 틈이 없었는데 갑자기 화가 가라앉고 침착해진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를 둘러싼 모든 요소들이 부자연스러웠다.
그렇게 부유하던 그의 생각이 메시지가 말했던 내용에까지 이르렀다.
‘인터페이스? 시스템? 그렇게 말만 해주고 입 닫으면 어떻게 하라고? 보는 방법을 알아야 보지.’
그렇게 한탄하며 10여초 정도 그것에 대해서 생각했을까?
그 ‘시스템’이라는 친구가 알아서 그의 생각을 인식하기라도 한 것인지 그의 머리에 익숙한 인터페이스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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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프리드
레벨: 1
직업: 초심자(Novice)
업적: 비활성화
힘 : 57 체력 : 10 민첩 : 7 지능 : 15 행운 : 2
상태: 정신상태가 매우 불안정합니다. 안정을 취하는 게 좋아 보입니다. (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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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레벨? 업적? 진짜 지랄났네. 게임이냐? 애새끼도 아니고 상상력이 이렇게 얄팍해?”
사그라 들었던 분노가 다시금 머리를 적시기 시작했다.
허나 분노는 오래 가지 않았다. 또 다시 이질적인 차가운 기운이 머리를 식혔으니까.
“이봐. 거기, 말 많은 친구. 아직 있지? 이게 대체 뭐지? 설명이 조금 필요할 것 같은데.”
잠시 뒤, 대답이 머릿속에 들려왔다.
「아까도 말했다시피 당신은 대륙의 의지에 의해 전송되었습니다. 이건 좋을지 나쁠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당신 혼자에게만 국한된 사실이 아니기도 합니다.」
“나를 제외하고도 나 같은 사람들이 이 대륙에 여럿 있다는 말이야?”
「정답입니다. 그들은 당신과 같은 단말기를 착용하고 있을 테니 알아보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을 거예요. 상황에 따라서는 그들과 함께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예요. 인간은 언제까지고 혼자일 수 없으니까요.」
“후우... 그러면 다음 질문. 대체 내 머리를 식히는 이 느낌은 뭐야? 이제는 내 마음대로 화도 느낄 수 없는 거냐?”
「당신은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그대로 정신이 붕괴하는 이들이 있어서 부득이하게 내린 판단입니다. 그들 중 대부분은 현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죽음을 부르니까요.」
“...”
그는 침묵했다. 그 자신도 정신이 붕괴되기 직전까지 갔었으니까. 아마 그 차가운 느낌이 냉정을 찾는 걸 도와주지 않았다면 지금쯤 발광을 하고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
「언어는 어때요? 그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죠? ‘대륙 공용어’에요. 언어적인 부분까지 신경 쓰기에는 정신력의 소모가 너무 크다고 판단했습니다. 모든 언어는 자동으로 변환될 것입니다.」
“참 친절하시기도 하셔라. 몸 둘 바를 모르겠군.”
「당신에게 배정된 이름의 힘은 프리드. 아무래도 원래의 이름은 대륙의 언어로 표현하기에 이질적일 수 있다고 판단이 내려졌습니다. 어색할 걱정은 할 필요 없습니다. 이 순간 이후로 스스로를 프리드라고 인식하게 될 테니까요.」
“오케이. 대충 정리했어.”
「살아남으세요. 최선을 다해서. 인간은 파멸하기 위해서 창조된 존재들이 아닙니다. 어떤 상황이 닥치든 당신은 살아남을 수 있을 거예요. 일단 움직이세요.」
“언젠가 그 낯짝을 꼭 확인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
더 이상의 유동적인 답은 없었다. 그저 마지막으로 출력되었던 시스템 메시지가 기계적으로 흘러나올 뿐이었다. 그렇게 비슷한 메시지를 세 번째 읽고 있던 와중이었다.
「살아남으세요. 최선을 다해서. 인간은...」
메시지가 깨졌다. 기이한 형상에 잠시간 벙찐 그의 뇌로 누군가의 간섭이 들어왔다. 그의 눈앞에 기이한 환상이 아른거렸다.
태양을 등지고 그를 향해 날갯짓하는 거대한 새.
새가 날갯짓을 함에 따라서 황금색과 붉은색이 아른거리는 아지랑이를 뿜어댔다.
「네 시야를 가리고 있는 거짓된 장막을 걷어주마.」
항거할 수 없는 목소리였다.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은 그의 머리에 존재하지 않던 기억들이 새어들어왔다. 바로 조금 전에 망각했던 백색 방에서의 기억들이.
몇 가지의 단편적인 이미지들이 기억을 잠식했다.
「지켜보겠다. 이방의 여행자야.」
아직 정신도 없고 다리에 힘이 빠진 건 그대로였지만 주르륵 떠오른 텍스트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망각하지 않았다고 달라지는 건 없었다. 의외로 화는 나지가 않았다.
‘시간이 모든 걸 해결해줄 거라고 하지만 정작 스스로가 움직이지 않는다면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어.’
그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거리는 그와는 별개로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오갔지만 손목에 그와 같은 모양의 단말기를 착용한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기다려라. 반드시 널 만나러 가주겠다.’
그 뒤로도 어떻게 10분 정도를 걸었을까? 평시, 남들을 신경도 쓰지 않았던 때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한 아주머니가 파리해진 안색으로 한숨을 푹푹 쉬고 있는 게 아닌가?
‘왜 자꾸 눈이 가는 거지?’
아니나 다를까 현실이라는 걸 순간 망각하게 할 정도로 직관적인 표식이 그녀의 머리 위에서 빙빙 돌아가고 있었다.
‘노란 원... 참, 센스하고는...’
그래도 일단은 즐겨하던 게임의 그것과 굉장히 유사했다. 프리드는 곧장 그녀에게 다가가서 말을 걸었다.
“저기, 아주머니?”
“음? 무슨 볼일이라도?”
“그... 이상하게 듣지는 마시고요. 정말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건데요. 혹시 어디 불편한 일이라도 있으셨나요? 표정이 너무 안 좋아 보여서요.”
물론 추측했던 게 틀릴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이 생각하는 게 맞다면 이건 ‘그거’였다.
“음? 그게, 작은 걱정거리가 하나 있어서 그런데...”
‘빙고. 이거네.’
퀘스트, 임무, 의뢰 등 편할 대로 부르지만 의미 자체는 일맥상통.
“뭔데요? 혹시 제게 말해주실 수 있을까요?”
“거리의 상인들끼리 분담해서 영주성에 내는 공물이 있는데... 요즘 나이를 먹어서 그런가 셈을 헷갈렸는지 토끼 가죽만 수가 조금 부족하더라고. 에응... 납품일이 내일까진데 어떻게 할까 몰라? 에휴.”
아주머니는 근심이 상당히 크신 듯 말하시는 내내 한숨만 푹푹 쉬었다. 애초에 처음 보는 프리드에게 털어놓을 정도면 정말 급하다는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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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화점의 주인 아주머니가 공물로 성에 내야 할 토끼 가죽의 수량을 헷갈렸습니다.
몹시 곤란해 하고 있는 그녀를 위해 토끼 5마리만 잡아올 능력이 당신에게는 있나요?
보상 : 소량의 코퍼, 도시에서의 약간의 평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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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비슷한 수준이 아니라 그냥 게임이잖아?’
“토끼가 어디에 있는데요?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제가 한번 해볼 수 있을까요? 값만 제대로 쳐주세요. 지금 뭘 가려서 할 처지가 아니라서요.”
“아이구~ 총각, 고마워! 저어기~ 도시 동쪽이나 남쪽으로 나가면 들이 있어. 거기에 많이 있을 거야. 조금 더 가면 나오는 산에도 많이 있고.”
“알겠습니다. 그런데 아직 너무 좋아하진 마요. 일단 한번 해보겠다는 거니까요. 그럼 갔다 올게요.”
역시 초보자들이 게임 초반부에 하는 일종의 퀘스트 같았다. 이런 패턴은 흔하지 않은가? 게임에 처음 접속한 초보자들이 이따금 여우나 토끼 같은 동물들을 잡으면서 감각을 익히게 하는 그런 느낌의? 딱 그런 느낌이었다. 아주머니의 가벼운 부탁을 받은 프리드는 그 길로 거리를 가로질렀다.
“저거, 약간 느낌 오는데?”
“아까 발광하는 것도 그렇고요.”
그런 프리드를 지켜보던 일단의 무리가 있었다. 대화를 들어보니 프리드가 패닉에 빠져있던 그때부터 지켜봐왔던 것 같았다. 두 명의 남성과 한 명의 여인. 그들 역시도 한 손에는 단말기를 차고 있었다.
“하는 걸 봐서는 확실히 초짜에요. 그런데 감은 좋은 녀석인 것 같네요. 보통은 전송 첫날에는 정신도 못 차리고 마구 날뛰는 게 정해진 수순일 텐데. 보아하니 초심자의 노란 원을 정확히 이해한 것 같기도 하고요.”
“센스가 조금 좋다고 해도 그래봤자 초짜다. 그러면 무슨 의미겠어? 우리들이 이용해먹기 딱 좋다 이 말이지. 마침 타이밍도 좋잖아. 저번에 발견한 던전 발굴에 써먹자고.”
눈 옆에서부터 입꼬리까지 사선으로 길게 이어진 흉터. 처음 본 이들이라면 누구나가 움찔할 것 같은 인상의 사내였다. 그가 자신의 은빛 스틸레토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 바위 뒤에 숨겨져 있던 그 동굴 말이죠? 알아서 하세요. 어차피 저희가 반대해도 당신 마음대로 할 거잖아요. 뭘 물어요?”
여인이 표독스럽게 말했다. 아쉽게도 사이가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닌 듯. 이런 상황 자체가 익숙한 것인지 험악한 사내는 프리드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한켠에서 일언반구도 없이 듣기만 하던 거한과 소녀 역시 그의 뒤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대충 봐도 일반적으로 좋은 축의 부류는 아닌 걸로 보였다. 뭐, 그걸 알 리가 없는 프리드는 성질은 잔뜩 나서 걸어가고 있겠지만.
“음? 누가 내 얘기라도 하나?”
프리드의 이세계 생존물은 그 시작부터 장르를 알 수가 없게 되어버렸다. 단순한 생존? 뭣도 없이 시작한 걸 보니 먼치킨은 아닐 것 같고... 추리? 아니고.
뒤따라가는 남성의 액면가를 잠깐 보니 딱 그림이 그려졌다. 고생 좀 하겠네.
제 글이 여러분에게 어떤 방향으로라도 영향을 끼쳤기를 바랍니다.
- 작가의말
말이 그렇다는 거지. 정말 피폐물은 아닙니다.
소설에 나오는 모두가 행복할 수는 없겠지만 가능한행복하게 만들어볼 생각이에요.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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