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천공의노래 님의 서재입니다.

사슬의 학살자와 오두막의 손님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천공의노래
작품등록일 :
2021.04.09 16:55
최근연재일 :
2021.08.02 07:50
연재수 :
118 회
조회수 :
8,175
추천수 :
231
글자수 :
613,867

작성
21.05.31 08:20
조회
41
추천
2
글자
11쪽

54화

+와 +사이의 글은 외국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DUMMY

이 아이는 본성이 선하다.

출신을 알면서도 인정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착하다.


“나, 나는 그러려고 그런 게······.”

“그만해.”


그런 만큼 책임감도 크고, 일이 잘못되었을 때 자책도 심하게 한다.


“당신이 이 전쟁을 패배로 이끈 거야.”

“아니야, 리나. 아직 전쟁은 끝나지 않았어. 자책하지 마.”

“나, 난······.”

“너, 가만히 있······.”

“당신이나 가만히 있어.”


위즈가 움직이려 하자 병사가 리나에게 칼을 더 들이민다.

눈에서 빛이 더 강하게 내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리나, 괜찮아. 진정해.”

“아니, 괜찮지 않아. 봐.”


테르막시아가 위즈를 가리킨다.


“당신 때문에 놈은 아무것도 못 하고 저렇게 고통스러워하기만 하잖아.”

“너, 입 다물어.”

“당신,”


테르막시아가 무시하고 리나의 양 뺨을 잡아 똑바로 바라보며 말한다.


“멍청해 줘서 너무 고마워.”

“너······!”


위즈가 다 무시하고 위협이라도 하려는 그 순간에,


“윽, 흑,”

“자, 잠깐만! 리나!”


리나가 울기 시작한다.


‘이럴까 봐 마법까지 배웠는데······.’


결국 또 자신 때문에 다른 사람의 목숨이 뺏기게 생겼다.

그토록 사랑했던 사람들처럼 위즈도.

아니, 위즈도 그 사람들처럼 리나가 사랑하는 사람이라 이렇게 되는 걸까.


“리, 리나, 그만······.”


그리고 리나가 울자 위즈도 같이 고통스러워한다.

아픈 기억 중 하나가, 악몽 너머로 사라졌을 기억이 속에서 기어 올라온다.


“미안해.”


자신을 지키기 위해 죽어간 사람들에게,

리나에게 마법을 가르쳐준 위즈에게,

그리고 동시에 리나 때문에 저 꼴이 된 위즈에게.


리나가 그렇게 자책하며 울 때마다 그 얼굴에서 다른 사람이 보인다.

새까만 하늘을 집어삼키던 본가의 불.


“아니야. 아니, 야. 울지 마. 미안해하지 마.”


제 아비의 죄를 사과할 필요 없는데.

그 아이가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불꽃 속에서 아비의 주검을 끌어안고 울면서 잘못했다고 빌던 그 아이.

두려움이 몰려와 숨을 쉬기가 힘들어진다.


“울지 마. 진정해. 네 가슴을 네 손으로 후벼 파지 마.”


당장에라도 자기 가슴을 찔러 죽이고 싶게 만들었던 그 아이가

지금 피눈물을 흘리며 위즈 앞에 서 있다.


“안 돼, 제발,”


허공을 보며 두려워하는 위즈와 자괴감에 빠져 우는 리나.

테르막시아가 신기하다는 듯이 둘을 번갈아 보며 말한다.


“어떻게 된 건진 잘 모르겠지만, 뭐, 놈도 같이 꿇려.”

“알겠습니다.”


다른 병사들이 주춤하자 나이가 있는 창병 하나가 걸어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위즈의 상태를 본다.

좀 더 가까이 가도 반응하지 않아 창대로 위즈의 허리를 후려친다.


“엎드려!”


별다른 저항도 못 하고 무너진다.

그래도 몸을 완전히 바닥에 붙이지 않고 버티자 이번에는 팔을 때린다.


“무릎 꿇으라고!”


위즈가 털썩, 하고 넘어지고 고통 때문에 몸을 웅크린다.


“위즈!”


리나가 울부짖어도 신경 쓰지 못한다.


“놈을 묶어.”


위즈가 쓰러지자 다른 병사들도 다가와 누른다.

저항하고 싶어도 가위라도 눌린 것처럼 힘을 쓸 수가 없다.


“놔! 위즈를 놔줘! 위즈는 아무 짓도 안 했단 말이야!”


힘겹게, 울부짖는 리나를 올려다본다.

지금 보는 저 얼굴은 리나의 얼굴일까, 그때 그 아이의 얼굴일까.

병사들이 위즈의 손을 밧줄로 맨 뒤 움직이면 아프도록 온몸을 꽁꽁 묶는다.


“아무 짓도 안 했다고?”


테르막시아가 비웃으며 위즈 앞에 쭈그려 앉는다.


“놈에게 재갈도 물립니까?”

“아니.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자기 입으로 직접 말하게 해야지.”


테르막시아가 위즈의 머리를 잡아 누르고는, 자리를 위즈의 머리 옆으로 옮긴다.

그리고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당겨 고개가 들리게 한다.


“놔, 놔.”


테르막시아 덕분에 피눈물 흘리는 아이가 허상이라는 건 알았지만, 몸은 여전하다.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리나를 살리기 위해 칼 한 자루만 들고 홀로 뒤에 남았던 그 사람.


“리, 리나, 그만, 울어.”


다른 사람들이 우는 건 많이 봤다.

특히 경력이 얼마 안 된 병사들은 위즈에게 죽기 전 언제나 울어댔다.

그렇다고 단 한 번도 이렇게 허상이 보이고 몸을 가누지 못하는, 그런 일은 없었다.


그런데 왜 리나에게 들키자 시체들이 위즈를 뒤덮고,

왜 리나가 울자 이렇게 고통스러울까.


생각해 보면, 이상하다 싶은 건 꽤 많았다.


리나가 말 한마디 때문에, 위즈는 거짓말도 못 하고 침묵할 수도 없다.

리나에게 해가 될 것 같다 싶으면, 머리가 알아채기도 전에 몸이 먼저 반응한다.

마치 누군가 위즈와 리나를 연결해서

리나의 상태에 따라 위즈가 반응하도록 만들기라도 한 것처럼.


‘어?’


- 왜 공격 안 했어?


그러고 보면, 정말로 위즈는 왜 리나에게 친절하게 굴었을까.

왜 처음 본 리나를 가족처럼 여기고 돌봤을까.

왜 리나만 보면 과거가 희미해졌을까.

숲의 목석 중 하나로 살아가던 위즈를 그렇게 만들 만한 이가 있······.


그걸 마지막으로 잠시 생각이 멈춘다.


“위대하신 분께서 우릴 도우신 건가, 이렇게 공을 세우게 되었네.”


테르막시아가 내동댕이치듯 위즈의 머리를 놓는다.

코를 세게 부딪쳐 싸한 맛이 콧속과 입속에 퍼진다.

그나마 뭔가 흐르는 느낌이 나지 않는 걸 보니 피가 나지는 않는 모양이다.


“이제 우리는 요정과 무력화된 변수를 데리고 가서 성을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테르막시아가 주위에 있는 병사들에게 외친다.


“변수를 성 앞에서 베어 엘렌의 영주가 항복하도록 만들고, 요정으로 크레센타를 협박해서 크레센타가 호라를 절대 돕지 못하도록 만들 수 있습니다!”


병사들이 환호와 창칼이 부딪치는 소리가 숲을 울린다.


“권력자들을 아래로 끌어내리고, 핍박받던 이들의 낙원을 만듭시다!”


몇 년간 염원하던 소원이 눈앞에 다가와서일까

테르막시아는 지금까지 봤던 것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기뻐하고 있다.

마치 다른 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위즈······.”


아픈 와중에도 리나의 목소리를 듣고 고개를 움직인다.

고개를 살짝 들자 환호하는 병사들과

그 한가운데에 서 있는 테르막시아가 어렴풋이 보인다.

그 모습이 마치,


“그냥 광신도들이네. 정신은 어따가 팔아버렸는지.”


위즈가 숨을 헐떡이며 그렇게 말하자 환호성을 지르던 병사 중 들은 이들이 소리 지르는 것을 멈추고 위즈를 노려본다.

곧 그 뒤에 있던 병사들도 멈추고 위즈와 앞줄에 서 있던 동료를 번갈아 가며 쳐다본다.

위즈가 한 말이 뒷줄까지 전해지자 누군가 외친다.


“죽이자! 여기서 죽이자!”


그리고 다른 병사들도 욕을 하며 소리친다.


“위대하신 분을 모욕하다니!”

“우리는 정의의 군대다!”

“여기서 죽여라! 차라리 목을 베고 머리를 염장해 성안에 던져주자!”


그리고 가장 분노한 테르막시아가 위즈를 걷어찬다.


“감히, 위대하신, 분의, 이상을, 따르는 우리가, 겨우 광신도라고?”


발로 밟으며 외치자 병사들이 더욱 환호한다.

리나의 비명 속에서 이리저리 구르던 위즈를

테르막시아가 잡아 얼굴을 바짝 들이밀며 말한다.


“다시 얘기해봐. 광신도라고.”

“정신나간 광신도.”


그리고 침을 뱉자 테르막시아도 뺨을 후리며 똑같이 대응한다.

리나처럼 검은 기운이 막아주거나 하지는 않는다.


“이제 죽을 때가 되니 네가 정말 미쳤나 보네.”

“미쳐봤자 너희보다 더 미쳤겠어?”

“이게 진······.”

“대답해 봐! 핍박받던 이들이 힘으로, 폭력으로 권력을 잡으면!”


위즈가 목청껏 소리를 질러 온 병사들에게 말한다.


“본래 권력을 가진 이들을 반대로 핍박하지 않을까?”


테르막시아에게 얻어맞다 보니 팔찌 때문에 느껴지던 통증이 그나마 묻혀

소리 정도는 지를 수 있게 되었다.

온몸이 아파서 문제지.


“왜 더 좋은 해결책을 찾지 않고 가장 더러운 결말을 좇는 건데?”

“그건 그들이 감당해야 할 처벌이야.”


테르막시아가 다시 무뚝뚝한 얼굴로 돌아와 말한다.


“죄 없는 이들을 핍박했으니 당연히 그에 응당한 처벌을 받아야지.”

“그래? 그러면 너희가 싸우는 근본적인 이유는 복수라는 거겠네? 너희가 힘들었으니 다른 사람도 힘들어 보라는 못된 심보고?”


숨을 고르고 다시 외친다.


“너희가 이 전쟁에서 이겨도 달라지는 건 없어. 웃대가리는 너희 수령으로 바뀔 뿐, 너희는 여전히 그 자리 그대로겠지.”

“그렇다 하더라도 위대하신 분께서는 너희가 따르던 권력자와는 달라. 그리고 그분을 따르는 이들도 훌륭한 이들이야.”

“훌륭?”


위즈가 웃지 않고 눈을 질끈 감으며 온 힘을 다해 소리친다.


“날 미행하다가 걸려서 죽을 뻔했던 너희 군단장이 훌륭해?”


그 말에는 테르막시아도 가만히 있다.


“권력을 빼앗길까 무서워 너를 겨우 조장에 앉혀놓은 간부가 훌륭해?”

“그건 다 다른 사정이 있어서······.”

“너희가 맘에 안 든다는 이유로 나한테 와서 죽으라는 간부가 훌······.”

“다물어!”


테르막시아가 한 번 더 위즈의 머리를 내동댕이친다.

인중 부근에 뭔가 느껴져 혀로 핥아보자 비릿한 맛도 같이 느껴진다.


“됐어. 너랑 얘기해봤자 궤변에 넘어갈 뿐이야.”


테르막시아가 숨을 헐떡이며 리나를 본다.


“우리가 할 일은 오직 하나, 너희 둘을 군단장님께 바치는 것뿐이다. 그러면 그분께서도 우리를 인정해주시고, 진급까지도 시켜주시겠지.”


진급이라는 말에 병사들이 다시 환호한다.


“불쌍한 것들.”

“불쌍? 불쌍한 건 너지. 결국, 우리한테 죽을 텐데.”


테르막시아가 위즈의 머리를 밟는다.


“너뿐만 아니라 엘렌 성의 백성들도 다 죽을 거야.”


그런데도 힘이 나지 않아 움직이지를 못한다.


“엘렌 성의 영주도 마찬가지고.”

“······어?”


엘렌 성의 영주.

마지막으로 봤던 날, 눈에 보일 정도로 떨리던 칼이 떠오른다.


“블라스투스······.”

“그래, 블라스투스 테 살베니움. 네 동생 말이야.”


적의 입에서 동생의 이름이 나오자, 정신이 들기 시작한다.


“내가 말했지? 너와 나는 비슷하다고. 사실 내가 그렇게 느낀 건 권력을 가진 이들에게 핍박받아서가 아니야.”


- 네가 블라스투스를 지켜주렴.


“나도 너와 똑같이 했거든. 피로 물든 복수.”


- 너라면 할 수 있단다.


“그나마 네 동생은 너한테 안 죽고 영주까지 됐는데 다 허사가 되겠네? 그 끔찍한 지옥에서 정적들이 죽어도 도와주지 않았는데 말이야.”

“그, 이상, 말하지 마.”

“거기다가,”


테르막시아가 무시하고 이어 말한다.


“우리 군을 그렇게나 초토화했으면서, 네가 그렇게나 아끼는 요정도 구하지 못하고.”


몇몇 병사들이 비웃는다.


“그럴 거면, 대체 학살은 왜 한 거야?”


위즈의 숨이 멎는다.


“아니, 제대로 말해 줄까? 대체, 사람은, 왜, 죽인 거야?”


깔깔 웃더니 고개를 팍 숙여 위즈 귓가에 대고 직접 말한다.


“너, 이 말 싫어한 것 맞지? ‘사람을 죽였다’라는 거 말이야.”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사슬의 학살자와 오두막의 손님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58 57화 21.06.03 37 2 11쪽
57 56화 21.06.02 38 2 12쪽
56 55화 21.06.01 39 2 11쪽
» 54화 21.05.31 42 2 11쪽
54 53화 21.05.30 38 2 12쪽
53 52화 21.05.29 39 2 12쪽
52 51화 21.05.28 39 2 12쪽
51 50화 21.05.27 42 2 12쪽
50 49화 21.05.26 39 1 12쪽
49 48화 21.05.25 37 1 12쪽
48 47화 21.05.24 41 1 12쪽
47 46화 21.05.23 38 1 11쪽
46 45화 21.05.23 41 1 12쪽
45 44화 21.05.22 35 1 11쪽
44 43화 21.05.22 42 1 11쪽
43 42화 21.05.21 39 1 12쪽
42 41화 21.05.20 47 1 11쪽
41 40화 21.05.19 51 1 11쪽
40 39화 21.05.19 41 1 12쪽
39 38화 21.05.18 39 1 11쪽
38 37화 21.05.17 43 1 12쪽
37 36화 21.05.16 51 2 12쪽
36 35화 21.05.16 48 2 12쪽
35 34화 21.05.15 40 2 12쪽
34 33화 21.05.15 46 2 12쪽
33 32화 21.05.14 44 2 12쪽
32 31화 21.05.13 49 2 11쪽
31 30화 21.05.12 59 2 11쪽
30 29화 21.05.11 56 2 11쪽
29 28화 21.05.10 61 2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