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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공의노래 님의 서재입니다.

사슬의 학살자와 오두막의 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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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천공의노래
작품등록일 :
2021.04.09 16:55
최근연재일 :
2021.08.02 07:50
연재수 :
118 회
조회수 :
8,182
추천수 :
231
글자수 :
613,867

작성
21.05.30 08:20
조회
38
추천
2
글자
12쪽

53화

+와 +사이의 글은 외국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DUMMY

온 사방에 아사르군더니움 군이 깔린다.


“놈의 마력 범위 밖으로 가서 연락하고 와.”

“여기에 요정이랑 변수 둘 다 있다! 빨리 이쪽으로!”

“군단장님께 가서 보고해. 어서!”


눈으로 보이는 것만 해도 수십에, 당장 감지한 수도 족히 백은 넘는다.

거기에 마력 범위 안으로 계속 들어오고 있으니.


“이, 이거 놔!”

“가만히 있어!”


‘저 병사를 공격해서 리나를 구해도,’


지금 여기서 빠져나갈 수 있다는 보장은 없고 오히려 리나가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부디 유일한 방법이 여기 있는 적을 모두 죽이는 게 아니길 빌 뿐.


“당황했나 보네?”


테르막시아가 위즈 앞으로 나오며 말한다.


“요정이 숲을 돌아다니기에 급히 세운 작전인데.”

“나?”


리나가 버둥거리다가 테르막시아를 쳐다본다.


“물론 처음부터 위즈 당신까지 잡으려고 한 건 아니야. 정말로 난 요정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거든.”


하지만 그렇다고 눈까지 마주쳤는데 아무런 대책도 세워두지 않을 수는 없다.

무엇보다 테르막시아는 열 몇 명의 목숨을 책임지고 있고.


“그래서 부대에서 지원군을 보냈다고 치고 대책을 세워봤어.”


가장 먼저 요정을 발견해 충분한 공을 세운 이상,

중대장은 늦게나마 요정이 발견된 위치를 다른 부대에도 알렸을 것이다.

그리고 다른 부대의 간부 역시 공에 눈이 멀어

쉬고 있던 특수조 병력까지 다 내보냈겠지.


“그래 봤자 겨우 수를 모으겠다는 작전일 텐데?”


상대가 백이든 천이든 위즈는 신경 쓰지 않는다.

며칠을 쉬지 않고 싸워도 마력은 차고 넘치니까.


“그래. 평소의 너라면 이 작전을 써봤자 우리만 전멸하고 끝났을 거야. 평소라면.”


테르막시아가 유난히 ‘평소’라는 말에 힘을 주어 말한다.

위즈가 테르막시아에 정신이 팔린 사이

병사 몇이 위즈의 팔을 노려 총을 쏘려고 자세를 잡는다.

그리고 방아쇠를 당기자,


“진즉 눈치챘어.”


위즈가 곧바로 반응해 팔을 휘두른다.


“우리도 네가 그럴 줄 알았어.”

“어?”


사라졌어야 할 총알은 총알이 아니라 무거운 돌팔찌.

무슨 수작인가 싶어 곧바로 마력을 뿜지만,


“으윽!”


갑자기 주위에 번개가 일더니 위즈가 고통을 호소한다.

마 엘구룬 사슬처럼 마력을 직접 넣어서 없애려 해도 고통은 마찬가지다.


“뭐, 뭐야, 이거.”

“마법을 쓸 때마다 고통을 주는 팔찌. 그 정도면 순순히 따라오겠지.”

“이런 것 따위, 으그그그그.”


위즈가 다시 마력을 직접 부어 넣지만,

고통만 심해지고 마 엘구룬은 가만히 남아있다.


“으으으으으!”


고통에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지고 입에서 피가 조금씩 새어 나온다.

마치 눈이 터질 것처럼 그렇게 힘쓰니 리나가 울부짖는다.


“위즈! 그만해!”


그래도 돌팔찌를 서로, 혹은 바닥에 부딪혀가며 계속 마법을 쓰나 금도 가지 않는다.


“위즈!”

“그거, 마법이 강하거나 집어넣으려는 마력이 많을수록 반동 때문에 더 고통스러운데.”


손목을 뽑을 기세로 당겨보나 아무 소용없다.

그래도 주저앉아있을 수 없어 자리에서 일어나지만,

원체 상태가 안 좋던 몸 때문에 무릎이 꺾인다.

주저앉은 김에 다시 마력을 집어넣지만,


“으그그그그그그그!”


그게 통할까.

고통에 지쳐 주저앉고는 헐떡대자 테르막시아가 툭 내뱉는다.


“미련하긴. 요정을 이쪽으로 데려와.”

“알겠습니다.”


병사가 리나를 끌고 테르막시아 곁으로 가는데

이상하게 다른 부대 조장들은 테르막시아에게 아무런 항의도 하지 않는다.

위즈가 리나를 데리고 도망칠 거라고 우길 법도 한데.


‘아니, 못 하는 건가?’


권력 싸움에 정말로 휘말렸든 아니든

테르막시아는 아사르군더니움에서 직접 스카우트를 할 정도로 강한 마법사다.


아사르군더니움 내부에서도 이를 잘 알 테니

테르막시아 아래로 나름대로 서열이 생겼을 테고

다들 제대로 항의하지 못하는 것이리라.


‘무엇보다 책임지기 싫기도 할 테고.’


여기서 테르막시아의 말을 그대로 따르기만 하면

일이 잘못돼도 오직 테르막시아의 책임이니까.


“아까 요정도 말했지만,”


테르막시아 옆에 붙잡힌 채로 선 리나가 계속 버둥거리며

테르막시아를 차려고 한다.


“너희는 서로를 가족이라고 여기고 있다면서?”

“그래.”

“그 말을 들었을 때 이 작전이 성공할 거라는 걸 알겠더라. 그리고 넌 정말로 요정 앞에서 우리를 함부로 공격하지 않았고.”


위즈는 고통 속에 고인 침을 뱉으며 테르막시아를 노려보기만 한다.


“그 짓을 저질러놓고 이 숲에 도망을 쳤어, 넌. 그리고 2년 가까이 혼자 살았지.”


오두막에 도착해 마법을 배우고 밤낮없이 연습하길 2년.

어느새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지내기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네 눈앞에 이 요정이 나타났어. 그리고 무슨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아이를 거둬서 돌봐줬고.”


목석이 사람이 되는 기분, 그렇게밖에 표현을 못 하겠다.

뭔가 이상하기는 하지만, 리나를 어떻게든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가문을 그 꼴로 만들어놓고 도망친 놈이 아끼는 존재라니, 약점으로 쓰기 딱 좋잖아?”


평소에 잘 웃어보지 않은 사람처럼 너무 부자연스럽다.

그런데도, 왠지 아까부터 조금씩 보여주던 미소보다 더 진짜 같다.


‘그때 웃음도 같이 잃어버렸던 게 아닐까.’


몇 년 전부터 끊긴, 테르막시아라는 이름의 학자가 쓴 논문.


그때가 크레센타가 와이바누스를 공격하고

테르막시아가 아사르군더니움에 들어간 시기라면

그때부터 웃지 않았다면 몇 년 동안 웃지 않았으리라.


“테르막시아 조장. 그 아이가 요정 맞소?”

“네. 놈과 같이 있던 크레센타 아이입니다.”

“그래도 일단 확인은 해야겠지.”


다른 조 병사가 자기 조장 명령대로 품에서 낡은 천과 바늘 하나를 꺼낸다.

어리둥절한 리나와 달리 무슨 짓을 하려는 건지 눈치챈 위즈가 억지로 움직인다.


“물러나. 조금이라도 리나한테 상처 입히면 절대 가만 안 둬.”

“걱정하지 마. 피 한 방울 내서 본인 확인만 할 거니까.”

“마찬가지야.”


하지만 쓰러진 위즈가 무서울 리 없어

적들은 리나의 손가락을 바늘로 찔러 피를 내고 낡은 천에 묻힌다.


그리고 주문을 외우는데

위즈가 아직도 가시지 않은 고통 속에서도 다가오려고 하자

테르막시아가 눈살을 찌푸린다.


“대체 왜 그렇게까지 하지?”

“뭐가?”

“왜 그렇게까지 저 아이를 지키려고 하냐고.”


그 말에 뭐가 그리 좋은지 고통에 물든 얼굴로 씩 웃는다.


“질문이 잘못됐잖아.”

“뭐?”

“왜 그렇게까지 리나를 지키냐고?”


다시 마력을 부어 넣는데 조금씩 넣는지

얼굴이 일그러지기는 해도 억지로 참고 버틴다.


“리나라서 지키는 게 아니라 원래 아이들을 지키는 게 당연한 거야.”


설마 저 팔찌를 깰 생각일까.

아무리 위즈라고는 해도 그 과정이 너무 고통스러워 힘들 텐데.


“내가 본가에서 그 짓을 저지를 때도 딱 한 가지는 지켰어.”


아이의 부모가 누구든, 아이는 죽이지 않는다.


어렸을 때 당연히 원로들 사이에서 위즈와 동생을 죽이자는 얘기가 돌았지만,

별 의논도 없이 무마되었다.


- 저놈이 죽는다고 해서 시조의 유산이 우리 쪽 사람에게 올 거란 보장은 없소.


라는 이유였지만, 몰래 회의를 엿듣던 위즈가

가장 먼저 반대한 원로에게 찾아가 이유를 물었다.

그 원로는 무뚝뚝한 표정으로, 그래도 굳이 위즈에게 대답했다.


“몸에 어떤 피가 흐르든, 아이가 만들 미래는 분명 찬란할 테니까.”


그 원로가 학살 전에 죽어서,

그리고 그의 장성한 자식이 마음껏 미워할 수 있을 만큼 쓰레기라 다행이었다.


“고통 없고 찬란한 세상을 위해 희생하는 게 바로 저 아이의 운명이야. 저 아이도 언젠간 그걸 깨닫겠지.”

“당장 죽게 생겼는데 무슨 소리야. 그리고 죄 없는 아이가 타인의 이상을 위해 죽는데 그게 찬란해?”


어느새 병사들이 위즈의 말을 듣고 있다.


“어린아이라는 이유만으로 사랑받기에 충분하다고 그러잖아. 그러니까 난 리나를 보호할 거야.”


리나를 검지로 가리킨다.


“상처 입힐 거면 맘껏 상처 입혀. 하지만 살점 하나 남지 않을 각오는 해야 하고.”

“협박이라도 하는 거야?”

“어. 그게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그리고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니까.”


테르막시아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다.


“왜? 대체 왜?”

“나는 사람이니까. 사람이 사람을 지키는 건, 어른이 아이를 지키는 건 당연하니까.”

“네게 자기 정체도 안 밝히는데?”

“그게 지키지 않을 이유가 될 수 있어?”

“만약 정체가 널 넘어서는 범죄자라고 해도?”

“그러면 정체가 밝혀진 뒤 처벌하면 돼. 범죄자일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배척하는 게 더 이상하잖아.”


테르막시아의 안색이 나빠진다.


“너, 정말 역겨워. 요정보다도 더.”


위즈는 별다른 대꾸도 없이 눈에서 빛을 흩뿌리며 차갑게 내려다본다.


“범죄자도 지키겠다고? 널 괴롭히던 이들도 지키겠다고? 네가? 다른 이들도 아닌 네가?”

“이미 선을 넘었다고 해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고 해서, 굳이 선을 더 넘을 필요는 없지.”


눈을 감을 때마다 보이는 피투성이 시체들.

악몽을 꿀 때마다 다가오는 썩은 시체들.


“그 일이 얼마나 후회되는지 잘 아니까, 더는 후회되는 일을 만들지 않으려고······.”

“아니, 그건 그냥 위선이야. 그냥 앞에 요정이 있어서 내뱉는 거짓말이야. 뭐? 다른 사람을 지켜?”


충혈된 눈으로 소리친다.


“테 살베니움을 몰락 직전까지 몰고 갔던 네가? 엘렌 성을 불바다로 만들었던 네가?”

“아니, 그 정도는 아니었······.”

“많은 이들을 고아로 만든 네가?”

“······야.”

“많은 이들을 자식 먼저 보낸 부모로 만든 네가?”

“그만해.”


테르막시아가 침까지 튀겨가며 외치자 위즈의 얼굴이 싹 굳는다.

이러다가는 위즈가 어떻게든 피해왔던 말까지 하리라.


“멈춰. 거기까지만 해.”

“멈추라고? 넌 살려달라고, 그만 공격하라고 했을 때 그 말대로 해 줬나? 죽······.”

“멈춰!”


식은땀까지 흘리는 위즈를 본 리나가 테르막시아보다 더 큰 목소리로 소리친다.


“그만해!”


그리고 버둥거리다가 테르막시아를 툭, 하고 살짝 친다.

별로 세지도 않았지만, 테르막시아는 고개를 돌려 리나를 노려본다.


“그, 그만해, 이제!”


리나에게 한 소리 듣는 테르막시아를 본 병사가 순간적으로 위기를 직감하고 리나를 뒤로 당긴다.


“조장님! 잠깐만!”


거의 동시에 테르막시아가 리나를 손등으로 후려치려다가 멈추고 병사의 눈을 본다.


‘여기서 후려치면 검은 기운이······.’


요상한 검은 기운이 요정을 보호한다는 것을 놈이 안다면

요정을 인질로 잡아야만 하는 이 작전은 실패한다.

하마터면 일을 그르칠 뻔한 테르막시아가 작게 숨을 몰아쉰다.


“그래, 때리면 안 되지.”


계속 리나를 노려본다.


“우리의 승리를 위해 이렇게 애써줬는데.”

“어? 내가?”


아까처럼 진짜로 때리려 할까 봐 잔뜩 움츠린 리나가 조심히 말한다.


“그래. 너무 고마워. 이렇게 멍청하게 숲 밖으로 나와 줘서 말이야.”


이번에는 목표를 리나로 바꾼다.


“정말, 멋대로 나와준 덕분에 우리가 이길 수 있었어.”

“아니, 내가 나오라고 했······.”

“뻔히 보이는 거짓말 하지 마.”


만약 위즈가 리나를 눈치채고 있었다면

테르막시아가 리나를 납치하는 순간에 어떻게든 마법을 썼을 텐데,

위즈는 그러지 않았다.


“놈의 유일한 약점께서 이렇게 친히 숲을 나와 우리한테 잡혀주셨는데, 당연히 우리의 승리를 위해 애써주신 것 아니겠어?”


아까 리나와 얘기했을 때 본능적으로 느꼈다.

이 아이는 본성이 선하다.

출신을 알면서도 인정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착하다.


“나, 나는 그러려고 그런 게······.”

“그만해.”


그런 만큼 책임감도 크고, 일이 잘못되었을 때 자책도 심하게 한다.


“당신이 이 전쟁을 패배로 이끈 거야.”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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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43화 21.05.22 42 1 11쪽
43 42화 21.05.21 39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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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39화 21.05.19 41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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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33화 21.05.15 46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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