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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공의노래 님의 서재입니다.

사슬의 학살자와 오두막의 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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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천공의노래
작품등록일 :
2021.04.09 16:55
최근연재일 :
2021.08.02 07:50
연재수 :
118 회
조회수 :
8,174
추천수 :
231
글자수 :
613,867

작성
21.05.19 19:20
조회
50
추천
1
글자
11쪽

40화

+와 +사이의 글은 외국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DUMMY

“잠깐만 이대로 있어.”


그대로 손을 얹어 머리를 쓰다듬는다.

이리저리 움직이는 머리카락 사이로 리나의 손가락이 느껴진다.

리나가 시키는 대로 가만히 있다가,


“어?”


정신을 차리고 몸을 뒤로 빼려고 하는데 리나가 위즈의 팔을 잡는다.


“어? 갑자기 왜?”

“위즈.”


못 뿌리칠 정도로 세게 잡은 것도 아닌데 물러날 수가 없다.

다른 누군가가 시키기라도 한 것처럼.

대충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짐작이 가서 먼저 말한다.


“굳이 이렇게 할 필요 없어. 겨우 그 정도 상대하는 데 내가 지칠 리 없잖아.”


잔뜩 허세를 부리며 부디 리나에게 통하길 빈다.


“그럼 왜 나한테 말 안 했어?”

“리나 네가 이렇게 쓸데없는 걱정할까 봐 그랬지.”

“그럼 왜 싸운 거야?”


위즈가 이상한 자세로 리나를 올려다보며 말한다.


“왜냐니. 그래야 리나 네가 마음 놓고 숲을 돌아다닐 거 아니야.”

“물론 내가 숲에 가고 싶다고 말하기는 했지만······.”

“숲에는 신기한 게 많아.”


머리를 쓰다듬도록 가만히 두고 이어 말한다.


“보름달 아래에서만 활짝 펴서 빛을 내는 꽃도 있고 책에서나 봤을 동물들도 있어. 전에 보여줬던 폭포가 이 숲에서 가장 멋진 곳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만큼 멋진 곳들도 많아.”


리나에게 보여줬던 은둔자의 폭포를 제외하면 숲의 많은 부분이 피로 얼룩져있다.

엘렌 성 쪽에서 위즈의 활동반경까지,

아사르군더니움군 병사의 시체가 쓰러지지 않았던 곳이 있을까.


“따로 찾아다니지는 않았지만, 다람쥐가 비를 피하는 곳도 있겠지.”


아무리 위즈 머리를 쓰다듬어 봐도 그때처럼 위즈의 속이 느껴지지 않는다.


“숲이 안전해지면, 리나 너를 데리고 숲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고 싶어. 보여주고 싶은 게 많거든.”


숲에서 처음으로 만난, 말이 통하는 사람이라서 그럴까.

새 친구를 사귄 어린아이처럼 잔뜩 자랑하고 싶다.


“아, 숲에서 마법을 가르쳐 줄 선생님도 모셔오기로 했지.”


그때 했던 대화가 농담으로 그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 언젠간 널 그만 괴롭히고 제대로 봐줄 날이 오지 않을까?


헛된 희망도,


- 우리가 가문을 바꿀 수 있을 겁니다.


결과만 다르고 겪는 고통은 같던, 그런 최악의 상황들도 이제 지겹다.


“위즈.”


이름을 불러 말을 막는다.

위즈는 힘들어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대신,


“응.”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기분이 고조되어있다.


“그 일, 힘들어?”


이 정도라면, 루미가 아니더라도 느낄 수 있다.

위즈는 리나 앞에서 억지로 웃음을 잃지 않으려 하고 있다.


“딱히 힘든 건 없는데?”


힘들다.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다.

다시는 그런 짓 따위 하고 싶지 않았다.

그 짓거리가 안 힘든 사람은 이미 뭔가를 잃어버린 게 아닐까.


“그만두거나 하고 싶지는 않아?”

“별로?”


포기하고 싶다.

리나가 아니었다면, 아사르군더니움과 마주쳐도 서로 신경도 쓰지 않았을 것이다.


“아가씨를 위해서 한 선택인데, 제가 왜 힘들어하고 포기하려 하겠습니까.”


- 넌 네가 스스로 선택을 한다고 생각하는구나.

- 당연하지.

- 하긴, 내가 만난 흐리, 아니 너희는 다들 그렇게 생각하더라.

- 그러면 내가 타의로 선택한다는 거야?

- 그거야 모르지. 네가 한 선택이 정말 너 스스로 고른 선택일지,


자신이 왜 리나를 위해 그렇게까지 하는지 알게 된다면,


- 다른 누군가가 네 머릿속을 헤집어서 그 선택을 하도록 한 건지.


“저 아이는 그때도 받아들일 수 있을까.”


- 내 모든 행동은 다 내가 한 선택이야. 졸업 후 여행을 떠났던 것도, 그리고 가문에서 나온 것도.

- 그렇게 생각하는 자일수록 조종이 쉬워.

- 왜?


“자신의 행동을 의심하지 않으니까, 라고 했지.”


숲에 바람이 불지도 않고 나무도 움직이지 않았는데, 그림자가 혼자서 움직인다.


“위즈 넌, 모든 사실을 알고 나서도 그렇게 언니를 대할 수 있을까?”


오두막이 보일 리 없는데도 그 방향을 보며 혼잣말한다.


“위즈. 힘들면 기대도 돼.”


많이 위로해주라는 루미의 말을 떠올리며 말한다.


“나, 적어도 위즈가 우는 건 봐줄 수 있으니까.”

“아니, 정말 괜찮다니까. 울 정도는 절대 아니야.”


리나의 손을 잡아 내리고 고개를 드니 우는 걸 봐준다면서 정작 리나가 울려고 한다.

그런 것들을 속에 품었다는 걸 보기만 해도 이렇게 가슴 아픈데,

의연한 척하는 위즈는 속이 어떨까.

오히려 위즈가 손을 들어 리나의 눈가를 살짝 건드리고는 말한다.


“울고 말고 할 것도 없이 정말로 안 힘드니까.”


울고 싶다.

자면서 울었다는 게 너무 아쉽고 아까울 정도로.


“만약 울고 싶어도 네 앞에서는 울지 않을 거야.”


모두 리나를 위해서 한 일인데, 리나가 가슴 아파하는 꼴은 못 본다.


“거의 매일 싸웠다면서.”

“어차피 군인이 되었으면 했을 일이야. 전투 마법 쪽으로 진로를 정했을 때부터 이미 각오했어.”


진로는 그저 토운사나스가 전투마법쪽을 배운다고 하기에

갑자기 흥미가 생겨 따라갔을 뿐,

군인이 된다거나 다른 사람을 지킨다거나 하는 최소한의 각오도 하지 않았다.


“전혀 안 힘드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악몽 꾸는 건 힘들 거 아니야.”

“괜찮아. 이제는 일상인걸.”


오늘 밤에는 얼마나 또 고통스러워하며 잠을 설칠까.

아예 리나가 깨지 않도록 밖에서 잘까.


“정말?”


그렇게 물으면서도, 위즈의 대답과는 상관없이 전혀 안 믿겠다는 눈이다.


“당연하지. 내가 너한테 거짓말을 할 리가 없잖아.”


대화 중간부터 거짓말이 술술 나왔다.

평소라면 한 번도 못 했을 거짓말인데, 유난히 거짓말이 쉽다.

리나를 위해서라고 생각하니 그런 걸까.


“응.”


리나가 고개를 끄덕이나 믿는다는 것도, 위즈가 옳다는 것도 아니다.

그저, 위즈나 리나나 힘드니 그만하자는 의미다.


‘결국, 사람을 죽였다고는 안 말했네.’


마음 한구석에 약간의 불편함을 품고,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물론 눈치는 챘겠지만.’


그래도 직접 말하지는 않았다는 게 중요하다.

말하지 않는 이상, 직접 찾아와서 볼 수 없는 리나에게

‘위즈가 적을 죽였다는 것’은 사실이 아닐 테니까.


“그래도 위즈.”

“어?”

“이제 그만해.”


위즈가 가만히 쳐다보다가 말한다.


“아니, 이건 리나 널 위해서······.”

“나를 위해서.”


위즈의 말을 중간에 끊고 언성을 살짝 높인다.


“나를 위해서, 이제 그만해줘.”

“왜? 숲에 가고 싶지 않아?”

“가고 싶어. 하지만······.”


위즈가 싫어하는 일을 하게 두고 싶진 않다고,

그렇게 더 말했다가는 결국 대화가 원점으로 돌아간다.

둘 다 그걸 아는 만큼, 서로 마주 보기만 한다.


“알았어.”


위즈가 한숨을 쉬면서 말하나 이번에도 역시 거짓말이다.


“이제 안 그럴게.”


유난히 거짓말이 잘 나오는 날이다.

마치 뭔가가 씐 듯.



******



“위즈는,”


묵묵히 빨래를 개던 리나가 어색한 침묵을 깨고 입을 연다.


“무슨 꿈을 꿔?”

“악몽 말이야?”

“응.”

“별거 아니야. 싫어하는 사람들이 나오는 것뿐.”

“그게 끝이야?”


차마 말하기에는 너무 끔찍해서 적당히 둘러댄다.

당연히 리나의 성에는 차지 않는다.


“누가 나왔느냐 같은 거 말고. 말해도 상관없는, 어, 꿈속 상황 같은 그런 거라도 더 말해줘.”


‘그게 더 말하기 힘든데.’


리나에게 들려주기에도 안 좋지만,

무엇보다 계속 꿔온 악몽을 다시 떠올리는 게 여러모로 힘들다.

위즈가 대답하지 않자 리나가 조용히 주제를 바꾼다.


“내가 싸우지 말라고는 했지만, 그래도 위즈가 싸우는 걸 보고 싶기는 해.”


그 말에 위즈가 눈을 크게 뜨고, 아무 말 없이 노려본다.

무서워 살짝 움츠리면서도,


‘왠지 루미랑 닮았네.’


하고 속으로 생각한다.


“위즈.”

“왜.”


위즈가 살짝 쌀쌀맞게 대답한다.


“화났어?”

“응.”

“진심으로 화내고 있는 거야?”

“아니.”


- 위즈는 말이야, 화가 나면 정말로 눈에서 빛이 나.

- 정말?

- 응. 물불 안 가리고 막 휘젓는 게 정말로 옛날이야기에서 나오는 괴물 같다니까?


루미가 했던 말이 떠올라 살짝 미소 짓는다.


“왜?”

“아무것도 아니야.”


그리고 혀를 살짝 내민다.


“위즈도 안 알려주잖아.”


위즈는 리나를 좀 더 노려보다가 이내 표정을 푼다.


“위즈. 위즈는 오늘도 악몽을 꿀까?”

“글쎄. 그건 꿈을 꿔야 알겠지?”


숲에서 죽였던 이들을 떠올린다.


‘꿈속에 나타나는 시체 수가 더 늘어나겠네.’


괜히 소름이 돋아 몸을 부르르 떤다.


“왜? 악몽 떠올리는 거야?”

“응.”

“그렇게 무서워?”

“악몽이니까 당연히 무섭지. 그리고 리나 너, 나 자는 거 봤다면서.”

“하긴. 몸을 이리저리 비틀고 소리 지르고 우는 걸 생각하면.”


정말로 나가서 자야 할 것 같다.


“위즈.”

“응?”

“자다가 악몽 때문에 깨서 무서우면 나 깨워도 돼.”

“어? 내가 리나 너를 왜 깨워?”

“내가 재워줄게.”


조금 생각해보고 말한다.


“그런다고 효과가 있을까?”

“거절은 안 하네.”


히힛, 하며 이상한 소리를 내고는 말한다.


“내가 재워주면 더 잘 잘 수도 있잖아.”

“잠에 못 드는 게 문제가 아닌데.”


잠은 잘 든다.

처음에 악몽에 시달렸을 때도, 피곤해서 그런 건지 잠은 잘 들었다.

잠들고 나서가 문제지.


“잠이 아무리 잘 들어도, 악몽 때문에 계속 깰걸?”

“내가 재워주면 좋은 꿈꿀지도 모르잖아.”

“그건 아닐 거야.”


위즈가 단언한다.

이 아이가 재워줬다고 악몽을 안 꾸기에는 쌓아둔 업보가 너무 많다.


‘나도 나름대로 벌로 여기니까.’


숲에서 나가지 않는 것도 벌의 일환이다.

물론, 숲에서 못 나가는 것도 있지만, 벌이라고 생각해 나가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다.

리나가 나가자고 하면 그때는 다시 생각해보겠지만.


“그러면 잘 때 꼭 껴안아 줄까?”

“대체 왜 결론이 그쪽으로 가는 거야?”


위즈가 대놓고 싫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 나 잘 때 거의 발작 일으키는 수준이라면서. 내 근처에 있다가 다치지 않을 자신 있어?”

“위즈를 묶는 건 어때?”

“묶였다고 제가 가만히 있을 거 같습니까, 아가씨?”

“하긴, 위즈 근처에서 자는 건 정말로 위험할 거 같아.”


리나가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빨래를 모두 개고, 사이좋게 하품을 한다.


“피곤하네. 리나 넌 뭐 할 거 있어?”


고개를 젓는다.


“오늘은 일찍 잘래.”

“그래. 나도 일찍 자야겠다.”


여러모로 서로에게 피곤한 하루였다.

사슬이 방에서 이불을 끌어온다.


“위즈.”

“어?”


방에 들어가던 리나가 멈추더니,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뒤를 돌아본다.


“정말로 괜찮아?”

“괜찮다니까. 어여, 들어가 자.”

“어여? 어여가 뭐야?”

“어서 들어가 자라는 뜻이야.”


위즈가 웃으면서 들어가라고 손짓한다.

리나는 위즈를 더 쳐다보다가 문을 닫는다.


“잘 자, 위즈.”

“응. 잘 자, 리나.”

불을 끄고, 잠자리에 눕는다.


여러모로 숨 가쁜 하루였다.

내일은


‘리나가 말려도, 역시 적을 찾아 죽여야겠지.’

‘+루미한테 위즈 몰래 뒤를 따라가겠다고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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