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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공의노래 님의 서재입니다.

사슬의 학살자와 오두막의 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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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천공의노래
작품등록일 :
2021.04.09 16:55
최근연재일 :
2021.08.02 07:50
연재수 :
118 회
조회수 :
8,190
추천수 :
231
글자수 :
613,867

작성
21.05.13 07:20
조회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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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11쪽

31화

+와 +사이의 글은 외국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DUMMY

이른 아침.

뒤숭숭한 꿈을 꾸고 나오자 공기가 차다.

긴소매 겉옷을 걸치고 밭으로 터덜터덜 걸어간다.


‘슬슬 수확해야겠네.’


첨벙, 하는 소리가 들리고 사슬들이 양동이로 물을 옮겨 밭에 조금씩 준다.

넘치는 물이 배수로로 들어가 다시 도랑으로 흐르는 장면을

잠이 다 깬 얼굴로 팔짱을 낀 채 보고 있다.


15분 정도 지나 슬슬 끝나갈 무렵, 오두막 문이 열렸다가 닫히더니

리나가 눈을 비비며 계단을 내려온다.

위즈는 양동이를 땅에 내리고 사슬들을 없앤 뒤 리나가 오는 걸 보며 기다린다.


“왜 왔어?”


리나가 가까이 오자 위즈가 애를 어르듯이 묻는다.


“위즈가 나가는 소리에 깼어.”

“그래? 너무 컸나?”


위즈가 머리를 긁적인다.


“이른 아침에 여기서 뭐 하는 거야? 물주기?”

“응. 딱히 잠이 안 오더라고. 너는 다시 안 자고 왜 나온 거야?”

“한번 깨니까 잠이 안 와서.”


그러면서 하품을 크게 한다.


“춥진 않아?”

“괜찮아. 시원해. 잠도 깨고.”


그러면서도 몸을 떤다.

위즈가 손가락을 살짝 움직이자 사슬이 빠르게 겉옷을 가져다준다.


“고마워.”


리나가 겉옷을 걸치며 활짝 웃는다.


확실히 배우는 게 빨라서 그런지 어느새 호라 말로 대화까지 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위즈는 신경 안 쓰고 그냥 크레센타 말로 하려고 했으나

오히려 리나가 먼저 호라 말로 말을 걸곤 해서 호라 말로 말하기로 했다.

위즈야 호라 말이 편하기도 하고.


“리나. 잠은 확실히 깼지?”

“응. 왜?”

“물 뿌리는 마법, 여기에 한 번 써 볼래?”

“어? 해봐도 돼?”

“응. 이쪽은 아직 물 안 뿌렸으니까 여기에 한 번 해봐.”

“얼마나 뿌리면 돼?”


위즈가 배수로를 가리킨다.


“살살 뿌리면서, 물이 슬슬 배수로로 빠진다 싶으면 멈춰.”


리나가 고개를 끄덕이고 침을 꼴깍 삼킨다.

실전에서 사용하는 건 처음이라 잔뜩 긴장한 모양이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리나가 심호흡하고 중얼거리자 위즈가 가까이 가서 격려하려고 하는데,


“너무 긴장하지 마. 정 안 되겠다 싶으면 조금만 줘. 나머지는 내가 주······.”


대포 같은 물줄기가 뿜어져 나가 그대로 밭 일부가 패이고 작물들이 쓸려간다.

리나가 빠르게 손을 빼도 이미 늦었다.


“어, 어, 어······.”


리나가 당황해서 밭과 위즈를 번갈아 본다.

위즈도 멍하니 밭을 보다 양손으로 얼굴을 가린다.


“저, 위즈. 그게······.”

“아니야. 내가 시켰으니까.”


그러면서 위즈가 계속 얼굴을 가리고 있자

리나가 어쩔 줄 몰라 하다가 일단 작물들을 모은다.

뿌리가 멀쩡한 게 거의 없지만 그래도 일단 다 줍는다.

후, 하고 다시 얼굴을 드러낸 위즈는 리나가 애쓰는 걸 보더니 다가간다.


“됐어.”

“하지만, 그래도······.”

“괜찮아. 처음 써보는 건데 실수하는 게 당연하지.”


위즈가 사슬들로 밭을 다시 정리하고 나머지 작물을 모아 손에 쥔다.


“그래도 이 정도면 많이 자랐네. 몇 개는 약재로 쓸 수 있겠다.”

“미안해. 나 때문에.”


한 발자국 물러나 사과하는 리나를 보고 위즈가 미소 짓는다.


“괜찮다니까. 리나, 내 뒤로 뭐가 보여?”


리나가 몸을 살짝 기울여서 위즈 뒤를 보고 말한다.


“그······, 밭?”

“응. 네가 망가뜨린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작물이 심어진 밭이야.”

“그래도 결국 손해를 본 거잖아.”

“내가 이 작물로 먹고살면 손해지만, 난 그냥 취미인걸.”


본가에 보내기는 하지만, 보내서 돈을 받는 것도 아니고

본가에서도 할당량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리고 차라리 지금 이렇게 실수하는 게 나아. 싸우다가 실수했다고 생각해봐. 아주 큰 일 나지.”

“지금 이렇게 실수하는데, 싸울 때도 실수하지 않을까?”

“실수하지 않는 마법사는 없어.”


위즈가 허리에 손을 올리고 말한다.


“이 세상 모든 훌륭한 마법사는 다 실수를 겪으며 강해졌어. 실수를 안 하는 것보다 중요한 건, 왜 실수했는지 깨닫고 고치는 거야.”

“위즈도 실수한 적 있어?”

“당연하지.”


사슬들이 땅에서 나와 다시 밭을 갈기 시작하자 리나가 신기한 눈으로 본다.


“이렇게 하는 것도 정말 힘들었어. 전에 말했던 것처럼 ‘그 장면 자체를 떠올린다.’라고 해도, 상상과 현실은 차이가 크니까.”


위즈가 다시 손가락을 까닥거리자 사슬들이 난동을 피우더니

흙과 돌을 이리저리 흩뿌린다.


“처음에는 이렇게 난장판이 되곤 했지. 그러다가 돌들이 저 멀리 오두막까지 날아가기도 했어.”


리나가 팔을 들어 흙을 막자 위즈가 말없이 리나 앞에 서서 날아오는 흙을 없앤다.


“나름 힘 조절을 한다고 약하게 갈면 아무런 의미가 없었고.”


이번에는 사슬들이 깔짝깔짝 움직이며 흙을 이리저리 튕긴다.


“이 실수로 네가 더 성장할 수 있다면야, 이건 싼 편이지.”


그러면서 리나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그러니까 너무 풀 죽지 마.”

“응. 그런데······.”


리나가 위즈가 만진 머리를 자기 손으로 쓰다듬고는 위즈를 노려본다.

흙이 잔뜩 묻어난 손.


“어떻게 알았어?”

“느낌이 나던데. 까끌까끌.”

“내가 가르치기는 했지만 너 정말 말이 많이 늘었구나.”


소설을 읽힌 게 효과가 있는지 이제 의성어까지 구사한다.

리나가 손바닥에 흙을 묻히더니 위즈의 얼굴에 문지른다.


“까끌까끌까끌까끌.”

“악! 하지 마!”


위즈가 얼굴을 뒤로 빼지만, 리나도 계속 쫓아간다.

아예 양손으로 얼굴을 붙잡으려고 한다.


잡히기 직전에 몸을 돌려 피하고 양동이로 물을 뿌리니

철썩, 하고 리나가 그대로 물을 맞는다.


“공격은 이렇게 하는 겁니다, 아가씨.”


위즈는 깔깔대자 흠뻑 젖은 리나가 씩씩거리며 위즈를 보다가 손을 뻗는다.


“받아라!”


물줄기가 정확히 위즈의 얼굴을 맞히자

쭈그려 앉아있던 위즈는 그대로 뒤로 넘어간다.

리나가 멈추지 않고 양손으로 번갈아 가며 물줄기를 쏘자

급히 사슬로 벽을 세워 막고 코에서 물을 뺀다.

계속 물을 뿌려도 사슬 벽은 굳건하다.


‘그렇다면 아래로.’


리나가 손을 휘젓는다.


벽 뒤에서 귀에 들어간 물을 빼려고 귀를 후비고 제자리에서 뛰는데

뭔가 다리를 휘감는다.

아래를 보고,


“덩굴?”


이라고 했을 때는 이미 늦었다.

덩굴이 위즈의 발을 홱, 뒤로 잡아당기고 위즈는 그대로 자빠진다.

그때를 놓치지 않고 리나가 달려가 물을 뿌린다.


“어?”


그런데 벽 뒤에는 아무도 없다.


'어라? 여기에 있었는데?'


리나가 손을 거두고 주위를 둘러본다.


“그런 거에 내가 걸릴 리가 없잖아.”


어느새 위즈가 리나 뒤에 나타나 뒤에서 리나의 손가락을 잡는다.

화들짝 놀란 리나가 바로 뒤로 돌지만,


“끝. 내가 이겼어.”


위즈가 리나의 미간에 검지를 댄다.


“이 상황이라면 네가 아무리 저항하려고 해도 소용없어.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닫는 순간 적이 바로 마법을 쓸 테니까.”


그러면서 손을 내린다.


“어, 어떻게 한 거야?”

“세상에는 리나 네가 모르는 마법이 아직 많단다.”


위즈가 그 한마디로 일축해버린다.


“그래도 배운 마법들은 잘 써먹네.”


바람이 살짝 부는 것 같더니 옷에 물기가 다 마른다.


“하루 이틀 한 게 아니니까.”


리나가 원하던 대로 기초적인 마법을 다 알려줬고,

약속했던 바로 그 어마어마한 마법까지 가르쳐줬다.

비록 마지막 마법을 배우고 주저앉아 움직이지도 못했지만,

어차피 그 정도는 예상했다.

리나와 위즈 둘 다 만족한 결과였다.


“그래도 너무해. 난 초보자인데, 진심으로 싸우고.”

“난 원래 상대가 누구든 최선을 다해. 너처럼 어린애라도 예외는 아니지.”

“어린애 아니거든?”

“그러고 보니, 너 몇 살이야?”


리나가 나이를 말한다.


“뭐야, 어린애네.”

“아니야. 내년에는 나도 성인이라고.”

“그래? 우리랑 다르네?”

“위즈는 몇 살이야?”


위즈가 나이와 함께 호라의 성년 기준도 말한다.


“그 정도면 나보다 별로 많은 것도 아니네.”

“세간에서는 그런 걸 많다고 합니다, 아가씨.”


아무튼,


“자, 이제 물주는 거 마무리하고 갈 테니까 먼저 오두막에 들어가 있어.”

“아니, 다시 해볼래.”


리나가 자신에 찬 목소리로 말하자 위즈가 당황한다.


“다시? 아니, 굳이 그럴 필요는 없는데.”

“괜찮아. 실수하면서 강해진다며. 방금은 위력 조절을 아예 생각하지 않아서 그런 거야. 대략 이 정도면,”


리나가 빈 곳에 물을 다시 뿜어보나 여전히 세다.


“좀 더 줄여야 하나?”

“아니, 많이 줄여. 더 많이.”


위즈가 침을 삼키고 말한다.


“어디, 이렇게?”


갑자기 물줄기가 넓게 퍼진다.

밭에 뿌리기에는 좋으나,


“어? 뭐야. 어떻게 한 거야?”

“모, 몰라. 갑자기······.”


멈췄다가 다시 쏘자 다시 그냥 센 물줄기가 나간다.


“리나. 일단 내가······.”

“그, 그래. 멀리서 위로 쏘면 괜찮지 않을까?”

“그러면 깊게 파이지.”

“가까이서 쏘면?”

“더 깊게 파이지.”


리나가 어떻게든 쏘고 싶어 안달이 나자

위즈도 어떻게든 작물들을 지키려고 애쓴다.


“위즈. 최대한 조절해 볼게.”

“아니야. 오늘은 내가 할게.”

“나 믿는다며? 못 믿는 거야?”

“믿지. 오늘 말고 언젠가는 성공할 거라고 믿어.”


리나가 볼을 부풀리자 위즈가 그 볼을 찔러 바람을 뺀다.


“에잇!”


그 틈에 리나가 물을 뿌리려고 손을 뻗지만 위즈가 손으로 물줄기를 막아 없앤다.

팔을 이리저리 움직여도 리나의 손 바로 앞에서 막는데,

위즈 손에선 물방울조차 떨어지지 않는다.


“대체 무슨 마법이야, 그거?”

“비밀.”


결국, 지친 리나가 패배를 선언한다.


“자, 빨리 들어가. 그래야 아침 빨리 먹지.”

“칫.”


리나가 혀를 차고 오두막으로 돌아가다 중간에 다시 몸을 돌려 몰을 위로 뿌린다.

하지만 예상한 위즈가 이상한 마법으로 중간부터 없애버린다.


“계속 그러면 아침밥 늦게 먹는다!”


위즈가 그렇게 외치자 그제야 리나가 부엌 뒷문으로 들어간다.

창문으로 계속 보고 있는 게 물 뿌릴 타이밍을 기다리는 것 같지만,

다행히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


물을 다 뿌리고 새로 갈아엎은 밭을 보며 한숨을 쉰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망가진 작물들이 너무 아깝다.


‘그나저나 왜 그렇게 힘 조절을 못 하지?’


보통 마법사들은 마법이 막 익숙해지기 시작하면

무의식적으로 조심하며 위력이 현저히 낮아진다.

그런데 리나는 위력이 일정 수준 아래로 내려가지를 않는다.


‘넓게 퍼진 건 위력을 억지로 낮추다 보니 생긴 부작용일 테고.’


같은 시간 동안 나온 양은 같다.

그렇다면 기본 마력 출력이 평범한 사람보다 월등히 높다는 얘기일까.

이전에도 그런 사람은 몇몇 있었다.

마력량은 평범한데 위력 조절을 못 한다는 이들.


결국, 그들은 마법을 포기하고 다른 길을 걸었다.


‘생각해보면, 전에도 그런 기미가 있었지.’


위즈가 뒤의 오두막을 본다.

리나가 계속 노려보기에 피식 웃으면서 손을 흔들어주자 쏙, 하고 숨어버린다.


어차피 여기에 측정 도구가 있는 것도 아니다.

한번 마법을 배웠으니, 크레센타에 돌아가 제대로 진단을 받을 테고

그때가 되면 리나도 알리라.

정작 리나 본인은 은근히 안 가겠다고 하는 것 같지만.


‘뭐, 가족끼리 문제야 충분히 있을 수 있으니.’


위즈가 그랬듯.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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